A reincarnated genius RAW novel - Chapter 7
007. 이렇게 해보면요? (2)
새로운 학교, 새 학기.
그리고 처음으로 들어선 교실.
어색한 공기가 흐르고 데구르르 눈알 굴러가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온다.
그러다 아는 친구를 발견한 아이들은 구세주라도 만난 것처럼 다가가고, 그렇지 않은 애들은 슬쩍슬쩍 눈치만 보고.
나 또한 후자였으나, 남들처럼 애쓰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잉크처럼 번지는 영감에 집중하면서.
자잘한 소리가 귀에 스며들어 뭔가를 자꾸 떠올리게 했다. 자연스레 손가락이 근질근질하다.
가만있자, 오선지가 가방에······.
“어?”
의자에 걸어둔 가방을 뒤적거리는데 뒷문 쪽에서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멈칫거리는 통통한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어째 살이 좀 더 오른 것 같은 이호익이었다.
녀석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쭈뼛쭈뼛 다가오며 묻는다.
“너도 여기 학교였어?”
“응, 심지어 우리 같은 반인 것 같은데?”
모른 척 되묻자 이호익이 끄덕였다.
“그런 것 같네. 근데··· 아무 데나 앉는 건가?”
“아마도?”
녀석이 슬그머니 내 옆에 앉았다.
가방을 걸고 괜스레 책상을 살펴본다. 중학교 때랑 똑같은데 뭘 그렇게 보냐.
기어이 책상 서랍에까지 손을 넣은 이호익이 ‘윽!’ 소릴 내며 안에서 쓰레기를 끄집어낸다. 녀석이 쓰레기통에 다녀오는 동안 나는 소리 없이 웃었다.
돌아온 녀석이 잠시 눈알을 굴리더니 불쑥 내게 말했다.
“아, 스피타 신곡 자켓 사진 나왔어. 선비는 이번 컨셉이 진짜 잘 어울리더라.”
“그래?”
내가 몰랐다는 듯 묻자, 얼른 핸드폰 화면을 들이대며 보여준다. 이럴 때만 의욕적인 녀석이다.
신이나 설명하는 녀석에게 적당히 맞장구를 치다 보니 담임 선생님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내 기억 속의 모습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 많이 잡아도 20대 중후반쯤? 예전엔 정말 어른의 느낌이었는데 말이지.
간단한 소개를 마친 선생님이 출석부를 보며 한 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중간에 대답 없는 이름이 있었지만, 담임 선생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두리번거리는 애들과는 달리 나도 그러려니 했다.
‘······그럴만한 애니까.’
그렇게 차례대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나는 쉬는 시간마다 콩나물 대가리를 그려나갔다. 그렇다고 이번에도 중학교 때처럼 아싸를 자처하며 음악에만 몰두한 건 아니다. 틈틈이 친구도 사귀었지.
이호익을 비롯한 회귀 전에도 친구였던 녀석들.
그중 붙임성 좋은 양한길이 덧니를 뽐내며 묻는다.
“학교 끝나고 다들 뭐해?”
“물어 뭐해. 학원이지.”
“너두? 야 나두. 혹시 영어학원?”
“수학.”
“윽.”
“그리고 과학.”
“넌 계획이 다 있구나? 이과 확정이네. 호익이 넌?”
“난 집에서 가서 스피타 팬카페 활동해야 할 것 같네. 요새 좀 소홀했거든. 이번 달 게시물 개수 순위가 10위권 밖으로 밀려났어.”
“그, 그래. 바쁘겠네······.”
턱 괴고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봤다.
같이 있으면 마냥 재밌는 녀석들.
무려 3년 만이다. 이렇게 둘러앉은 게.
그땐 우리 모두 30대였고, 책상 대신 불판, 필기구 대신 소주 앞이었지.
‘새삼 또 신기하네.’
전생이 떠오른 뒤로 줄곧 브리너의 감정을 받아들여 왔다면 이번엔 어쩐지 반대였다.
어쨌든, 지금의 나는 한서호다.
-라는 게 명확해진달까.
물론, 음악이 좋아져 버린 한서호······.
피식. 웃으며 연필을 슥슥 움직이는데, 양한길이 이번엔 내게 묻는다.
“서호 너도끝나고 학원가? 아, 피아노 학원 가나?”
녀석의 시선이 책상 위의 오선지로 내려간다. 아마 날 모르는 애들은 내가 예대라도 준비 중인 줄 알겠지.
내가 녀석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
나는 오선지 맨 끝부분에 Fine(-Finale)라고 끄적이며 답했다.
“작업실.”
#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사무실로 들어가 인사를 돌았다.
자리들이 꽤 비어있었다. 내 방으로 가는 길에 슬쩍 보니 역시나. 메인 녹음실에 붉은 불이 들어와 있다. 녹음 중이란 거다.
‘궁금하네.’
저 안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회사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니 구경하고 싶단 말이 잘 안 나온다. 철없어 보이잖아.
내가 진짜 고등학생이었다면 시치미 떼고 말했을 텐데 말이지.
‘다음 기회를 노려봐야겠다.’
쩝. 아쉬워하며 방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휑한 풍경이 나를 반긴다.
가장 먼저 피아노 의자 뚜껑부터 열었다. 학교에서 메운 오선지 뭉치를 꺼내 집어넣는다.
어느새 안쪽에 가득 찬 오선지들.
사실 영감이 떠오르는 대로 마음껏 휘갈긴 거라 아직 음악이라 부를만한 것들은 아니었다.
그림으로 따지면 러프한 스케치 정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언제든 음악이 될 수 있는 원석들이기도 했다.
하나하나 공들여 완성 시키다간 순간의 영감을 계속 놓치게 될 것 같아 선택한 나름의 방법이었다.
‘좋은 편곡 방향이 떠오르면 하나씩 꺼내서 작업해야지.’
그러기 위해선 편곡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할 게 많아.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즐겁다.
아 물론, 그렇다고 마냥 즐거운 생각만 드는 건 또 아니다.
내가 여기에 들어오는 걸 반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이 회사가 어쩌다 어려워지는지도 알아내야 하는데······.’
주제가 무거워지자 머릿속도 착 가라앉는다.
사운드필름 스튜디오.
아직까진 계속 성장 중인 회사다. OST로 유명한 회사들과도 어느 정도 경쟁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온.
그걸 증명하듯 회사는 지금 꽤 바빠 보이고.
하지만 회사가 망한 시기까진 고작 1년 남짓 남았다. 이유를 모르기에 나도 좀 놀랐다. 생각보다 회사가 너무 잘 돌아가서. 이 정도면 아버지가 어디에 빚을 지지 않고서야······.
똑똑-.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작은 창에 아버지의 얼굴이 보인다. 눈이 마주치자 문이 열리며 가벼운 곡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구야, 죽겠다.”
“녹음 끝나셨어요?”
“일단은. 첫 등교는 어땠어?”
“뭐, 괜찮았어요.”
“그게 끝? 싱겁긴.”
두 번째 첫 등교라 확실히 격한 리액션은 잘 안 나오네.
푸스스 웃은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와 괜히 두리번거린다. 달랑 피아노 하나뿐인 방인데.
“하고 싶은 건 잘 돼가는 중이야? 필요한 건 더 없고?”
“그럼요, 어째 아빠가 필요한 게 있어 보이는데요?”
“어? 흐흐, 예리한 녀석.”
아버지가 부슬부슬 웃으며 다가왔다. 이제야 손에 뭐가 들려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악보인 것 같은데······.
“내일 녹음에 피아니스트 한 명이 갑자기 빵꾸났어. 그래서 새로운 피아니스트 구해야 하는데, 혹시 해볼 생각 있나 해서.”
“내일요?”
“어. 시간도 조금만 미루면 얼추 맞을 것 같은데.”
아버지가 손에 든 악보를 내밀며 으쓱거린다.
솔직히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건 언제나 즐거우니까. 그것만으로도 영감과 편곡 아이디어들이 떠오를 때도 많고.
게다가 녹음실 안에서 프로들이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볼 수 있잖나. 구경이야 몇 번 해봤어도 정작 내가 보고팠던 건 진짜 현장이었으니까.
“어때, 해볼래?”
내가 악보를 받아들며 답했다.
“네. 재밌을 것 같아요.”
#
다음날.
젊은 남녀들이 사운드필름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어깨에 얹어진 다양한 악기 케이스로 짐작할 수 있듯이, 오늘 녹음을 위해 모인 연주자들이었다.
가장 먼저 들어온 바이올리니스트 강준서가 활짝 웃으며 김윤주 실장에게 인사한다.
“오랜만이네요, 누나.”
“그러게. 정말 오랜만이다. 요새 너무 보기 힘든 얼굴들이야. 다들 너무 잘 나가~.”
“에이, 누나. 전 어제도 거실에 누워있었는데요? 수아가 바쁘죠, 수아가.”
강준서의 속삭임에 김윤주 실장의 시선이 자연스레 뒤쪽으로 향한다. 맨 뒤에서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이 보인다.
포니테일로 단정하게 머릴 묶은 신수아였다. 새하얀 얼굴에, 도도하게 뻗은 눈매. 같은 여자가 보아도 매력적인.
‘좀 차가워 보여서 친하게 지내긴 어렵지만.’
짧은 단상을 마친 김윤주 실장이 사람 좋게 웃었다.
“수아야 뭐, 요새가 아니라 원래 바빴고.”
“저 그렇게 안 바빠요.”
“아니긴. 요새 OST뿐만 아니라 가요 쪽에서도 러브콜이 쏟아진다더만.”
그 말에 강준서가 덧붙인다.
“작곡가분들이 바이올린 세션은 얘만 찾는대요. 신수아만 쓰면 곡 분위기는 시작부터 잡고 가는 거라고. 그래서 날 안 찾아······.”
신나게 말하던 그가 문득 현타 온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김윤주 실장이 웃음을 터트리며 걷기 시작했다. 그 뒤를 연주자들이 따랐다.
“아 참, 승재 형 갑자기 못 온다고 연락 왔다면서요? 피아노는 어떡하기로 했어요?”
“어제 급하게 구했지.”
“저희도 아는 사람이에요?”
김윤주 실장이 갸우뚱했다.
“아닐걸. 대표님 아들이 치기로 했거든.”
“엥? 한 대표님이요? 김 대표님이요?”
“한 대표님. 한서호라고 아직 고등학생이긴 한데, 피아노 진짜 잘 치거든. 예술의 전당에서 영재 교육도 받고 그랬다니까?”
그녀의 말에 강준서가 신수아 쪽으로 고갤 돌렸다.
“어, 수아도 거기 다녔었는데?”
“정말?”
신수아가 느릿하게 끄덕인다.
“대학 입학 전까진 그랬었죠.”
“서호한텐 선배님이네~.”
시종일관 별 관심 없는 표정이던 신수아가 불쑥 궁금증이 일었는지 물었다.
“어떤 교수님께 배우는데요?”
바이올린과 피아노.
악기는 다르지만, 클래식이란 테두리 안에 있었던 이상, 다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이었다.
당장에 피아노 교수라면 몇 명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을 정도였고, 누구 밑에 있냐에 따라 유추할 수 있는 건 더욱 많아진다.
어떤 스타일이냐부터 어느 정도 실력일지까지도.
그러나 김윤주 실장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글쎄. 그것까진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얼마 전에 관뒀어.”
“아···.”
신수아가 느릿하게 끄덕이며 입을 닫았다.
살짝 돋았던 흥미가 팍 죽어버렸다.
저러면 누구 밑에서 배웠냐의 문제가 아니다.
중간에 관두고 나왔다는 건 결국,
그만한 재능이 안 됐다는 소리니까.
#
“네가 서호구나?”
녹음 부스 밖에서 아버지와 유쾌하게 인사하던 남자가 안으로 들어오며 말을 건넨다.
슬쩍 그가 메고 온 악기 케이스를 훑었다.
‘바이올린.’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했다. 뒤따라 들어오는 연주자들에게도.
“반가워!”
“잘해보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그리고.
“안녕.”
또 바이올린.
비올라 하나, 바이올린 둘, 첼로 하나.
그리고 피아노.
전형적인 피아노 5중주 구성이었다.
“네, 안녕하세요.”
······어쩐지 차가운 느낌의 여자 바이올리니스트를 끝으로 바쁘게 접히던 내 허리도 멈췄다.
기다렸다는 듯이 남자 바이올리니스트가 그녀를 가리키며 웃었다.
“아, 이분이 서호 네 선배더라고. 업계에서 엄청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시거든? 혹시 신수아라고 알아?”
“쟤가 날 어떻게 알아. 그리고 왜 자꾸 내 PR을 네가 하는 건데?”
“몰라. 재수 없는 고교동창인데 자랑스럽고 뭐 그런 느낌?”
“뭐래.”
투덕거리는 둘을 보며 말꼬릴 올렸다.
“선배요?”
“너도 예전(-예술의 전당) 다녔다면서.”
“아, 네.”
“얘도 거기 다녔거든.”
내가 아, 하고 입을 벌리며 그녀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도 날 슬쩍 본다.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후배한테 반갑다고도 좀 해줘라.”
“아까 안녕이라고 했어.”
“반갑다곤 안 했네.”
“꺼질래 좀?”
싸운다, 싸워.
사그라들 기미가 안 보인다. 이미 나는 안중에 없는 것 같길래 슬그머니 자리에 앉았다.
이윽고, 연주자들도 각자의 자리에 앉아 차분히 준비를 시작했다.
장난기 넘쳐 보이던 남자 바이올리니스트조차도 진지한 눈빛으로 활을 점검한다.
신수아라는 바이올리니스트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랜만에 보는 눈빛이네.’
날 볼 때만 해도 딱딱하기만 하던 눈빛이 바이올린 위로 올라가자 따끈따끈하다. 악기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저런 음악가들이 많았지. 볼프강만 해도 자신의 피아노에 이름까지 붙여놓고 마치 연인처럼 대했으니. 그 양반은 좀 과하긴 했어.
스윽-.
내가 너무 쳐다봤나? 신수아가 그걸 느꼈는지 내 쪽을 돌아본다. 얼른 시선을 피했다. 왠지 ‘뭘 봐.’라고 쏘아붙일 것 같아서.
나, 쫄았잖아?
피식 웃으며 건반을 내려다보았다.
“······.”
솔직히 나는 이름을 붙이는 것까진 오글거려 못 하겠다.
그래도,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을 것 같네.
‘녹음, 잘 부탁한다.’
작게 중얼거렸을 때쯤.
아버지 목소리가 녹음 부스 안에 울렸다.
-준비 끝났어. 안쪽은 어때?
시선을 돌리자 끄덕이는 네 명의 현악 연주자들이 보인다. 나도 유리 너머의 아버지를 보며 끄덕였다.
흐뭇하게 웃는 아버지의 얼굴에서 은근한 기대감이 비치는 순간.
생애 첫 녹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