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09
109화
“…….”
“…….”
장진홍 감독의 컷 소리와 함께 촬영이 끝났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한시우의 창이 시작되고서 모든 스태프들이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이 장면을 방해해서 안 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나중으로 갈수록 그런 의식과 상관없이 숨조차 내쉴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압도.
한쪽에서 한시우의 노랫소리를 담은 오디오 팀들은 모두 경악한 상태였다.
“와하…… 대박이다. 이번 영화 촬영하게 되면서 처음 배운 거 맞지?”
“어어, 맞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급하게 저번 일주일 촬영 비워준 거잖아. 장 감독님이.”
“그런데 저렇게 잘한다고……?”
“판소리 되게 어려운 거라고 하지 않았어……?”
오디오 팀은 흥분해서 서로 속삭였다.
이제 카메라가 안 돌아가서 크게 말을 해도 되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소름 돋았어.”
“이거 통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화제성 장난 아니겠는데.”
“편집되면 무편집본이라도 나중에 공개해야지.”
한쪽에서는 기대감에 가득 차서 미지근한 물을 들이켜는 한시우를 힐끔거리고.
“강수정이랑 합도 좋네.”
“역시 한번 모자 관계로 합을 맞춰서 그런가? 둘 다 별 표정이 없는데 애틋해 보여.”
다른 한쪽에서는 두 배우의 연기력을 칭찬했다.
수군거리는 스태프들의 말을 들으면서 모니터링 중인 장진홍 감독의 입꼬리도 슬며시 올라갔다.
연습 좀 하라고 했더니 너무 엄청난 소리를 완성해왔다.
구슬픈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여운을 남기는 듯했다.
“감독님. 원테이크로 가길 잘한 거 같네요.”
“그래. 이걸 끊는다는 건 말이 안 되긴 하네요. ……시우가 조금 고생이겠지만.”
“저것 좀 보세요. 별로 힘 안 들어 보이는데요?”
조연출이 웃으면서 한시우를 가리켰다.
어느새 웃으면서 강수정과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니 정말 괜찮아 보이기는 했다.
“바로 촬영 속행할까요?”
“어? 아니 잠깐…….”
쉬었다가 갈까, 이야기하려던 장진홍 감독은 부르르 떨리는 휴대폰에 얼른 발신자를 확인했다.
그가 촬영 중에 알람이 오게끔 해놓은 인물은 몇 없었으니.
“……스승님?”
놀랍게도 이번 연락의 주인공은 장진홍 감독의 스승, 노백찬 감독이었다.
“뒤다, 이놈아.”
“……네? 언제 오셨어요?”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음성에 장진홍은 정말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모습을 보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음 지은 노백찬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안 그래도 세트장이 넓어서 이거 몰래 숨어들기 딱 좋겠어. 오늘 세트장은 또 왜 이리 어두워?”
“……그런 장면입니다.”
옆에서 조연출이 자신이 맞이했다며, 약 한 시간 전에 오셨다는 말을 전했다.
노백찬이 촬영에 방해될까 봐 말하지 말라고 해서 입 다물고 있었다고.
그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이 된 장진홍이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워낙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잘하시는 분이니 깊게 생각하면 머리만 아팠다.
“촬영 쉬어갈 거냐?”
“네? 네…… 그럴까 합니다. 긴 곡인데 한 번만 부르는 걸로도 체력소모가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모니터 한번 하고 다음 테이크 가게요.”
“흐음, 그래? 그럼 그 아이한테 좀 다녀와도 되겠나.”
으레 첫 번째 테이크 후에는 어느 정도의 텀을 두고 다음 촬영을 이어간다.
직접 촬영하기 전까지 미처 잡지 못했던 미스나, 모니터에 담긴 조명, 배경, 배우들의 느낌을 체크하고 수정할 부분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백전노장 노백찬이 이를 모르고 물어본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을 어려워할 제자를 위한 배려의 태도였다.
“네에? ……아, 그럼요. 그러세요.”
노백찬은 자신의 수염을 슬슬 쓰다듬으며 허허롭게 웃더니 한시우 쪽으로 거침없이 다가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장진홍은 고개를 내저었다.
자신의 스승은 제자의 촬영을 지켜보러 온 것이 아니라, 목적이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
“그래서, 방금 문이 열릴 때…….”
첫 촬영을 무사히 넘기고 방금 했던 장면에 대해 강수정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옆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지?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주변 스태프들이 모두 입을 떡 벌리고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허억……!”
“가, 감독님이 여긴 어쩐 일로…….”
그것뿐만 아니라 세트장에 있던 모든 이들이 놀라워하며 그에게 말을 걸려고 성화였다.
아니면, 넙죽 허리를 숙이거나.
“……노백찬 감독님?”
옆에 있던 강수정마저 미간을 좁히며 중얼거렸다.
그 말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놀란 기색이 만연했다.
아니, 근데 잠깐.
노백찬이라고?
나는 내게로 다가오면서 두터운 손바닥으로 박수를 짝짝 치고 있는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인자한 미소를 띤 채로 내게 다가오는 흰 수염 할아버지.
이분이 장진홍 감독님 스승이구나.
그의 작품을 다 보기는 했지만, 감독의 얼굴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어느새 지척으로 다가온 그가 내 앞에 멈춰 섰다.
“반가워요, 한시우 군. 촬영에 방해가 될까 봐 뒤에서 봤는데……. 재밌게 봤소이다.”
“……감사합니다.”
나는 얼떨떨하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언제 온 거지?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스태프들도 몰랐던 일인지 쩔쩔매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촬영장 모두를 경악시켰음에도 노백찬은 허허롭게 웃으며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감독님. 배우 강수정입니다.”
“아, 그래요. 반가워요. 연기 좋더군요.”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빠르게 표정 수습을 마친 강수정이 인사를 마쳤다.
거장이라는 소리는 들었지만, 촬영 현장을 마비시킬 정도구나.
나는 신기하게 주변을 둘러보는데 장진홍이 멀리서 20분만 쉬었다 가자고 소리를 치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저쪽으로 가서 얘기 나누시죠. 안 쓰는 별실이 있거든요.”
“그래, 그러자꾸나.”
아, 역시 장진홍 감독을 만나러 온 거구나.
나는 납득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고 있다.
장진홍 감독이 노백찬의 제자라는 것을.
애제자 장진홍 감독의 천만 영화 이후 첫 작품이니 신경을 쓸 만도 하지.
장 감독이 휴식이라고 했으니 방금 했던 창이나 모니터링할까 하는데, 노백찬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 한시우 군도 같이 좀 보게나. 얘기 좀 하고 싶은데, 시간 괜찮겠나.”
“……?”
저요?
갑작스러운 지명에 당황스러워 눈을 껌뻑였다.
지금까지 일면식도 없던 감독의 부름이라…….
물론 나도 명장과의 대화는 언제나 환영이었다.
그의 작품도 많이 봤으니 할 말도 많고.
하지만…….
“네, 저도 좋아요. 그런데, 촬영 다 끝내고 얘기할까요? 저희 촬영이 아직 안 끝났거든요.”
“시우야…!”
“헉…….”
“허업.”
내 말에 옆에 있던 강수정이 놀라서 나를 불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스태프들도 놀라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
왜, 우리 아직 촬영 마무리 안 했잖아.
내 첫 창이 어떻게 찍혔는지도 봐야 되고.
만에 하나 감정선이 흐트러져서도 안 되잖아.
“왜요?”
정말 이해가 안 간다는 듯이 묻자, 노백찬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그래, 네 말이 맞다. 장 감독, 촬영을 마무리하시게나. 나는 연락도 제대로 안 하고 들이닥친 불청객이니 당연히 기다려야지.”
“스, 스승님…….”
“네. 얼른 끝내볼게요!”
당황한 장진홍이 뭐라고 말을 붙이려는데, 내가 얼른 대답했다.
늦은 저녁 시간에 시작한 촬영이라 밤새고 싶지 않으면 얼른얼른 진행해야 했다.
얼른 끝내겠다는 내 말에 노백찬의 눈빛에 웃음이 스몄다.
“이 어려운 장면을 얼른? 그래, 기대해보마. 내가 기다린다고 대충하면 안 될 텐데.”
“그럼요. 대충 안 해요.”
노백찬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사정 봐주지 않겠다는 내 말에 스태프들이 다시 한번 기함을 했다.
옆에서 강수정은 그러려니 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허허, 아주 대단한 친구구만. 몇 시간이 걸리든 끝날 때까지 있을 테니 넉넉하게 찍거라. 늙으면 밤잠이 없어지거든.”
“네. 저도 더 늦으면 목 잠겨서 안 돼요.”
“그래. 기다리마.”
노백찬은 내 말에 흥미로운 표정을 고개를 끄덕이며 옆 방으로 향했다.
아까 장진홍이 말했던 별실이 있는 곳이었다.
“……시우 넌 간도 크다. 저분이 어떤 분인 줄 알아?”
“그러게나 말이다. 나 방금 심장이 철렁했어.”
“저는 오한이 들던데요. 시우 대답 듣고…….”
강수정이 놀랍다는 듯이 말하자, 옆에서 스태프들도 하나둘 동조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는 웃으면서 대꾸했다.
“에이, 그래도 저희 작품이 더 중요하죠.”
“그건, 그렇지만.”
강수정은 내 말에 고개를 기울이며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누나도 가체 계속 이고 있으면 힘들잖아요. 얼른 해요.”
“네 말 듣고 나니 그러네. 우리 얼른 오케이 받아버리자.”
“좋아요.”
***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나와 강수정이 출연한 별궁의 장면이 드디어 끝났다.
이 한 장면을 촬영하는 데 총 세 시간이 걸렸다.
노백찬은 처음 말을 건 이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들어갔던 별실에서 나와, 내 연기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었다.
자신이 말한 대로 촬영은 방해하지 않으면서 날 기다려줬다.
그렇게 촬영이 끝나고 모니터까지 마친 후, 장진홍이 나를 노백찬에게 데려다줬다.
“그럼, 두 분 이야기 나누고 나오세요. 저는 현장 정리하러 가보겠습니다.”
“그러마.”
장진홍은 노백찬 앞에 내가 앉을 만한 방석을 놓아주고 별실을 떠났다.
별실에 붙어있는 장지문이 탁, 닫혔다.
어두운 별실에 마주 보고 있는 70세가 훌쩍 넘은 노인과 어린아이의 몸을 하고 있는 나.
문을 닫는 바람에 더 어두워질까 장진홍이 주고 간 전등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문을 닫으니 한결 나았다.
촬영이 끝나고 노백찬과 나를 힐긋거리는 사람이 어찌나 많던지.
장진홍도 이럴 줄 알고 자리를 따로 마련해준 모양이었다.
예전에 장진홍에 내게 노백찬 감독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들었다.
노백찬과 장진홍은 사제관계라고.
그러나 공공연하게 알려지지 않았단다.
나도 지금까지 노백찬의 이름을 찾아보면서 그의 제자가 누구다, 이런 내용은 본 적이 없었다.
아마 짐작하건대, 그의 배려 때문이지 않을까?
수많은 명작을 남긴 거장인 노백찬은 이미 수년 전에 은퇴한 인물이다.
이제 저명한 영화제에서조차 볼 수 없고, 시상식이나 TV 프로그램에도 일절 나오지 않는 걸로도 유명하다.
끽해야 몇 년 전에 했던 잡지 인터뷰가 전부인 사람인 것.
하지만, 방금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보여줬던 반응대로 이쪽 업계와 현장에 여전히 거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노백찬이 인터뷰에서 제자들을 언급하면 어떻게 될까.
온갖 추측 기사가 난무할 것이다.
그 제자들이 신작이라도 낼라치면 그런 구도는 더욱 심해지겠지.
노백찬이 자신이 키운 제자들이 경쟁 구도에 휘말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노백찬은 자신이 누구를 키웠네, 어쨌네 떠들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의 제자 중 이번에 누구는 잘됐고, 누구는 안됐고.
이런 여론을 만들어 분열을 일으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장진홍과의 연도 언론에 크게 알리지 않은 것이겠지.
근데 이런 사람이 왜 나를 보러왔나?
왜 짧지 않은 그 시간 동안 현장을 지키며 나를 기다렸나?
풀리지 않는 최대 의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뭐, 직접 물어보면 알겠지.
“할아버지.”
나는 대한민국의 거장, 노백찬 감독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