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별궁으로 쫓겨나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의 대비.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태에서 난 세자가 고작 여덟 살의 나이로 보위에 올랐으니 그럴 만도 했다.
부군을 잃고, 하나 남은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오라버니에게도 배신당해 큰 충격을 받은 대비는 궁의 중심부에서 쫓겨나오게 된 별궁에서 단 한 번도 나오는 법이 없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진짜 딱한 사람인 것 같아. 이제 믿을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거잖아.”
강수정이 벌써부터 감정에 이입했는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네. 엄청 불쌍한 사람이죠. 계속 이렇게 불쌍하고 처연한 장면으로만 나와서 칙칙하다고 이 역할 맡기 싫다고 한 배우들도 진짜 많대요.”
이게 바로 장진홍 감독이 대비마마 역할의 배우를 쉽게 못 찾은 가장 큰 이유였다.
에서 거의 유일하게 나오는 여인의 역할이지만, 여주인공도 아니고.
나와봤자 뒷방 신세에, 칙칙한 얼굴로만 스크린에 비춘다.
그렇다고 비중이 큰 것도 아니다.
거기에 연기는 잘해야 한다니.
캐스팅이 어려울 만도 했다.
“배가 불렀네.”
하지만, 강수정은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조금 전 울 것 같은 때와 달리, 그 목소리가 퍽이나 시니컬해서 나는 멍하니 있다가 주위 눈치를 보며 말했다.
“누나, 여기 촬영장…….”
“나 되게 작게 말했어. 시우 너밖에 못 들었을 거야.”
배우에게 이미지는 생명인데, 강수정은 털털하게 말하고 넘겨버렸다.
이런 사람이 원래는 촬영장에서 한마디도 안 하는 사람이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들이 아닌 아들에게 위로 받는 상황…….”
“저도 처음에는 강창의 마음에 완전히 공감을 가지진 못했어요.”
대비마마는 끝까지 자신의 아들 몸에 생판 모르는 평민 소리꾼이 들어왔다는 것을 모른다.
갑작스럽게 낯선 여인을, 그것도 강창 자신보다 나이도 어린 여인을 어미라고 부르게 된 강창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강창은 어린 시절 이렇게 삶의 의지를 놔버리고 피폐하게 변한 어미의 모습을 한번 본 적이 있다.
바로 강창의 친어머니이다.
강창의 어머니도 과거 전쟁에 나갔던 아버지를 잃고, 세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한순간에 삶의 버팀목을 잃은 여인이 작달막한 초가집이 떠내려가도록 울부짖는 모습.
그 모습을 어린 시절 바로 앞에서 가감 없이 본 적이 있는 강창이다.
대비마마는 이 어린 왕, 이권의 어미이기에 강창과는 사실상 아무런 관계도 없다.
아마 갑자기 왕의 몸에 빙의되지 않았더라면 마주칠 일도 없을 인물이었겠지.
그러나 강창은 이권의 몸에 살게 되면서 대비마마에게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동정인지 연민일지 모를 감정.
그 시절 억장이 무너져내려 울음을 토해내던 어미의 모습이 뇌리에 남아 있기 때문일까.
대비는 대비라는 직책 때문에 울음도 쉬이 터트리지 못한다.
강창은 이권의 몸으로 살아가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울지도, 누구를 원망하지도 못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녀는 결국 저 별궁 안에 자신을 가두는 것을 택했을 것이다.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과 대비를 겹쳐 본 것이겠죠.”
“참…… 안타까운 일이네.”
우리는 강창의 서사를 공유하며 오늘 찍을 장면에 서로의 감정을 동기화하는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오늘, 나와 강수정은 이 뒤에 이어질 내용을 찍게 된다.
***
‘아마 시우가 없었다면 강수정이 우리 작품에 출연해주지 않았겠지…….’
장진홍은 열심히 연기 이야기를 나누는 한시우, 강수정을 보면서 생각했다.
배우라면 연기는 당연히 잘해야 하지만, 소통도 그만큼 중요하다.
촬영을 하면서 감독, 작가와 친해지면 그 세계를 이해한 만큼 여러 작품을 함께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강수정은 이제껏 그런 법이 없었다.
작품이 끝나면 끝이다.
깔끔하게 연기를 잘해서 좋긴 하지만, 벽이 느껴지는 배우.
그러니 연기를 잘해도 쉽게 강수정을 찾는 사람이 없었다.
나이도 많지 않은데 까칠하지 않나.
어쩌면 지니고 있는 외모 연기력에 비해 지금까지 화제가 덜된 것은 이런 이유도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선인장을 찍으며 지금까지의 한계를 넘어 단연 톱스타가 되었다.
처음에는 작품을 워낙 잘 만나고 배우들의 합이 좋았을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유가 따로 있었던 모양이다.
한시우와 함께 있는 걸 보니 알 수 있었다.
저 배우의 안에 무언가 변했구나, 싶었다.
“감독님, 준비 다 됐습니다.”
“그래요. 그럼 시작해볼까요?”
장진홍은 어둑한 실내에서 스태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말에 조연출이 두 배우에게 다가가 스탠바이를 부탁했다.
별궁은 평소보다 배는 어두운 조명으로 어둡고 차분한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모두가 배우가 감정 잡는 것을 돕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구석에서는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차분하지만 어딘가 구슬픈 선율의 음악.
사극풍으로 잔잔한 전통악기 느낌이 나는 음악이었다.
한시우와 강수정은 서로 시선을 맞추고 준비가 된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한시우는 별궁 바깥으로 나가 대기한다.
“레디!”
음악이 그치고, 세트장에 장진홍 감독의 외침이 울렸다.
***
스르륵.
소리가 거의 나지 않게끔 등 뒤의 문이 닫힌다.
야심한 밤.
대신들은 어린 왕이 자신의 모후를 찾아가는 걸 원치 않았다.
이제 이권, 아니 그 몸속에 들어가 있는 강창은 안다.
어린 왕의 모후의 생각은 정확히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대비에게 어린 왕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신하들이 막고 있다는 것을.
대비가 별궁으로 쫓겨난 것은 대신들의 모략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것을 바로 며칠 전에 들었다.
그리고 이 어린 왕의 모후가 지금 어떤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지까지.
강창은 약간의 눈물 연기를 섞어 대비전으로 쓰이고 있는 별궁에 도달하는 것에 성공한다.
자신을 진정으로 따르는 충신들과 호위무사들의 도움으로 가능한 일이었다.
별궁의 몇 없는 상궁들도 모두 물린 상태.
지금 이 문밖에서 자신들의 호위무사와 함께 별궁을 지키고 있을 것이다.
강창은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모후가 기거하고 있는 별궁의 깊은 내실로 향한다.
지금 어린 왕의 몸에 강창이 있다는 비밀은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비밀이다.
하지만, 그는 오늘 모후에게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고자 한다.
전쟁통에 아버지를 잃고 시름에 잠긴 어머니를 부양하던 지난 나날.
악몽 같은 하루하루 속에서 강창이 소리로 구원받았던 것처럼.
자신도 어린 왕의 모후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럼, 혹여나 어린 왕이 이 몸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 같아서.
그리고 강창 자신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연민이 해소될 것 같아서 말이다.
결국 자신의 어미는 강창을 낳아놓고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상처만 남기고 떠났다.
하지만, 대비는 조금 다르다.
자신이 움직이면 아들에게 더 피해를 줄까 저어되어 스스로 별궁에 갇힌 상태이지 않은가.
세상을 등진 여인을 위해 강창은 그녀에게 노래 한 곡조를 뽑아내기로 한다.
비단신이 거의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굳게 닫힌 내실 앞에 도착했다.
어린 왕의 모습을 한 강창이 조심히 고개를 들어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본다.
늦은 밤인데도 잠 못 든 대비의 마음을 대변하기로 하듯.
저 너머에 작은 촛불이 일렁이는 것이 보인다.
아마 저기 어디쯤 어린 왕의 모후가 잠 못 드는 밤을 지새우고 있을 것이다.
과거를 곱씹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면서.
강창은 굳게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런 상태에 빠진 이가 얼마나 손쉽게 나쁜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까득.
몰래 빼내 온 비단 부채가 손아귀 아래에서 불안한 소리를 낸다.
지금 자신이 하고자 하는 행동은 악수(惡手)일 수 있었다.
이건 어쩌면 모험이다.
자신의 목숨줄을 스스로 틀어쥐는 질 나쁜 모험.
가만히 시키는 것만 따르고서 다시 강창의 몸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게 목숨을 부지하는 길일 수 있었다.
어찌 궁에서만 한평생 자란 어린 왕이 광대들이나 하는 짓거리를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하루아침에 말이다.
안 그래도 가까운 최측근들과 좌의정, 우의정은 자신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눈치챈 기색이다.
심약하기만 했던 어린 왕이 대거리를 하기 시작했으니.
며칠 전, 편전에서는 좌의정이 과거의 일화를 끄집어내 기억나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마치, 지금 어린 왕의 몸속을 누가 점거하고 있는지 시험이라도 하는 듯이.
그 앞에서 겁을 잔뜩 집어먹은 연기를 하며 겨우 넘어가긴 했지만.
매일매일이 줄타기를 하듯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때로는 머리보단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게 속 편할 때가 있다.
특히나, 지금 어린 왕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강창이란 사람은 원체 그렇게 살아온 인간이 아니던가.
산 넘고, 강 넘어.
발 닿는 대로 마음대로 살던 남자다.
그러니, 이번에도 그냥 스스로가 하고 싶은 대로 살자고 마음먹었다.
금은보화가 넘쳐난다는 구중궁궐이지만, 현재 대비의 마음속은 누구보다 가난할 것이다.
곧 찢어질 것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겠지.
가진 것 없이도 풍족할 수 있는 삶.
가난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던 곡조를 오늘 어린 왕의 모후에게도 들려주고 싶다.
촤륵.
이권이 부챗살이 제법 두꺼운 비단 부채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구슬픈 곡조가 뽑아져 나왔다.
“새야 새야….”
완벽한 소리는 아니었다.
어린 왕은 한 번도 소리를 내기 위한 훈련을 받은 적이 없고, 하물며 이런 서민들이나 흥얼거리는 가락을 들어본 적도 없는 몸뚱아리이니.
다만, 완벽한 소리는 아니지만.
체통을 위해 한 번도 큰 소리를 내본 적 없는 어린아이가 내는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훌륭한 곡조가 뽑혀 나오고 있다.
“새야 새야, 날개가 꺾여 조선 바닥을 거니는 새야-! 하늘이 좋더냐 한양이 좋더냐-”
북 하나 없이도.
멋들어진 곡조를 보좌해주는 악기 하나 없이 막힘없이 완창을 향해 달려가는 소리.
아무도 보지 않는 데도 이런저런 몸짓을 섞어가면서.
손에 든 부채로 흔들흔들 박자를 맞추며 강약을 조절해 나간다.
곡이 거의 끝날 때 즈음.
굳게 닫혀있던 장지문이 스륵 열린다.
그리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신의 어린 아들을 쳐다보는 여인의 고운 얼굴이 나타난다.
그 얼굴에는 여전히 지친 기색이 만연했다.
피로해 보이고, 우울함이 덧씌워져 있었지만 강창의 노래를 들으면서 그런 기색은 걷어진다.
그리고 오로지 놀라움만이 가득 찬다.
강창은 그런 여인의 표정을 보면서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에 집중한다.
지금 자신은 소리꾼이다.
무사히 이 공연을 마쳐야 한다.
“날아올라라 날개를 펼치고 자유로이 날아가거라…….”
“…….”
대비는 아무런 말 없이 구슬픈 곡조를 노래하는 어린 아들을 내려다 보았다.
오랜 기간 동안 만나지 못한 모자 관계.
반가움보다 그녀의 눈빛에는 체념의 기색이 더 깃들어 있다.
그 모습을 보고 강창은 안쓰러운 마음에 더욱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더 쭉쭉 뽑아져 나가도록.
모후에게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말을 걸듯이.
파르르 떨리던 대비의 눈이 살며시 감긴다.
그리고 그 주변에 강창의 소리가 넘실거린다.
별궁 밖, 캄캄한 밤하늘에 선명하게 떠올라 있는 달까지.
그 먼 곳까지 어린 왕의 청아한 곡조가 넘실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