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23
123화
“비법은 알려줄 수 없다는 건가….”
자연스러운 연기가 어디서 나오냐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는데, 타츠키가 눈을 가늘 게 뜨고 스산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그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호텔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내 연기의 비결이 뭐라고 제대로 정리를 해본 적이 없기에 쉬이 답은 못 해줬다.
원하는 답은 못 해줬지만, 대신 한 가지 깨달았다.
타츠키가 지금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도 그렇고.
오디션 결과를 확인하자마자 내 오디션 영상을 요구해서 벌써 확인해본 것도 그렇고.
이 아이에게는 지금 오디션 준비를 위한 드럼 실력도, 연기 실력도 문제 되는 게 아니었다.
타츠키는 지금 다른 걸 다 떠나서 무엇보다 여유가 필요해 보였다.
나는 오디션을 마치고 난 후, 레인보우 랜드에도 가고 소중한 사람들과 숨을 돌렸다.
하지만, 타츠키는 이미 다 지난 오디션에 사로잡혀 오늘 하루를 날려버린 것이 아닌가.
이 일이 과연 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만큼 도움이 될 수 있겠는가?
혼자 분에 못 이겨 경쟁자의 오디션 영상을 찾아보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직접 내 앞에 찾아와 선전포고를 하지 않나, 이제는 비결을 알려달라 떼를 쓰고 있다.
아마 지금 타츠키의 머릿속에는 자신이 어디서 어떤 실수했는지.
어쩌면 그때 드럼을 그렇게 잘 치지 말았어야 한다는 후회 같은 생각이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그런 자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조급함에 사로잡혀 여유가 전혀 없어 보이는 아홉 살 남자아이.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생각난 말을 툭 내뱉었다.
“쉽게 생각해. 그렇게 아등바등할 필요 없어.”
“……뭐?”
내 말에 타츠키는 황당한 얼굴로 작게 되물었다.
어차피 우리는 몇 시간 전만 해도 라이벌이었다.
다정한 말이 오갈 사이는 아니지.
애초에 그가 원했던 종류의 답도 아니었을 거고.
“네가 그토록 드럼을 잘 치면, 세계 최고의 드러머 연기에 도전해보는 건 어때?”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가볍게 말했다.
농담처럼 뱉어진 말이지만 반은 진심이었다.
“…….”
내 말을 들은 타츠키는 잠시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는 그 얼굴을 잠시 보다가 시계를 보았다.
이런, 시간이 너무 늦어 버렸다.
어린애를 너무 오래 붙잡아 두면 안 되지, 안 돼.
“이만 돌아가 줄래? 나 짐을 마저 싸야 해서.”
“아, 응…….”
아직도 넋이 나간 듯 멍하니 반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타츠키.
아마 내 말 속의 뜻을 아직 다 해석하지는 못했을 거고, 그렇기에 제법 머리가 복잡할 거다.
그 복잡함이 묻어나는 타츠키의 등을 잠시 응시하다가 잠깐만, 이라고 말했다.
호텔룸 안에 있는 메모지와 볼펜을 얼른 들고 나와 내 메일 주소와 핸드폰 번호를 휘갈겨 썼다.
그리고는 메모지를 죽 찢어서 타츠키에게 건넸다.
“이건 내 연락처야. 뭔가 또 묻고 싶은 게 있으면 연락해.”
안 받으려나? 싶었는데 의외로 타츠키는 순순히 내 메모를 받아들였다.
“……연락할게.”
“그래.”
왠지 안 할 거 같지만.
나는 얼른 가라고 손을 팔랑팔랑 흔들었다.
힘들다, 혼자만의 시간을 좀 가져야 할 것 같았다.
“시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복도 끝에서 빨간 단발머리 소녀가 달려왔다.
“아…… 아이린.”
한 명을 겨우 보내나 했더니, 다시 한 명이 왔네.
얼마나 힘차게 뛰어온 건지 아이린은 숨을 색색 몰아쉬면서 내 앞에 멈춰 섰다.
잠시 숨을 골라야 할 것 같은 상태였지만, 아이린이 그럴 리 없지.
잔뜩 울상이 된 얼굴로 울먹거리며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시우…! 내일 뉴욕으로 떠난다며? 아이린 두고 가는 거야?”
“아, 으응. 우리 일정이 그렇게 계획되어 있었거든.”
내가 뉴욕 가는 건 또 어떻게 안 거야.
……아마 루카스가 이야기해주었겠지.
루카스도 설마 어린 딸이 바로 나에게 달려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나도 뉴욕에 갈래. 시우랑 같이!”
“……아이린. 그건,”
이런 단순히 레인보우 랜드에 같이 가는 것과는 너무나 다른 문제였다.
같은 미국이라지만, LA와 뉴욕은 거리가 너무 멀다.
레인보우 랜드처럼 아이린을 데리고 갔다가 다시 데려다주기란 불가능했다.
그건 안 되겠다고 고개를 저으려는 찰나였다.
아이린은 내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해결책을 내놓았다.
“뉴욕에 우리 할머니가 사셔. 나는 할머니댁에 가면 돼. 그렇죠, 아빠?”
어느새 아이린의 뒤에는 재빠른 다람쥐 같은 자신의 딸을 좇아 온 루카스가 서 있었다.
여기에 오기 전에 얼마나 시달렸는지 알만한 몰골이었다.
피곤한 듯이 고개를 연신 저은 루카스가 몸을 굽혀 아이린의 시선을 맞추고서 말했다.
“아이린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넌 아직 여섯 살이야. 무슨 수로 그 먼 뉴욕에 혼자 간다는 거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 건 이제 그만둬라.”
“치…….”
아이린은 단호한 루카스의 태도에 자신의 원피스 자락을 구깃 잡으며 입을 비죽 내밀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번 일은 안 될 것 같았다.
옆 동네면 나도 데려가겠다고 말은 해보겠다만, 이건 뉴욕과 LA를 오가는 일정 아닌가.
무엇보다 나도 미국에서는 고작 일곱 살짜리 아이일 뿐이었다.
나 혼자 어린 아이린을 책임지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응? 이게 무슨 일이죠?”
그때, 삼촌 방에서 일정을 정리하고 돌아온 어머니가 루카스와 아이린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우선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죠.”
나는 타츠키도 그렇고 우리가 계속 호텔 복도를 전세 내고 있는 것 같아 제안했다.
내 말에 아이린은 신나서 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루카스는 곤란하다는 듯이 이마를 긁적이다가, 내가 재차 손짓하자 일단 룸으로 들어왔다.
“으음, 루카스만 괜찮다면 저희가 며칠 아이린을 데리고 있을게요.”
그런데 방 안으로 들어와 자초지종을 들은 어머니는 산뜻하게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와아! 감사해요, 아주머니. 역시 동양의 귀족 부인은 마음도 바다처럼 넓으세요.”
그 말에 아이린은 쾌재를 불렀다.
다만, 옆에 있던 루카스는 그건 안 될 말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오, 부인. 마음은 정말 감사하지만, 괜찮습니다. 오늘도 우리 딸애를 맡아 주셨는데 여기서 더 민폐를 끼칠 수는 없습니다.”
“음, 역시 그런가요…….”
아무리 어머니가 아이린의 편에 서도 보호자인 루카스가 이렇게 반대를 하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루카스의 말이 끝나자 아이린이 행동에 나섰다.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아이린이 벌떡 일어나더니 도도도도 달려와 내 곁에 찰싹 붙은 것이다.
“싫어! 아이린은 시우랑 안 떨어질 거야!”
“……하아, 아이린.”
으음, 나는 잠시 고민해보았다.
아이린이랑 뉴욕에 가면 어떨지.
레인보우 랜드에 갔을 때도 조금 피곤하진 하지만, 귀찮지는 않았다.
함께 있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잘거리기도 하고 말이지.
“아이린! 자꾸 그렇게 떼를 쓰면 안 돼. 시우네 가족들이 곤란해하잖니.”
“시우네 아주머니도 괜찮다고 했어! 그리고 시우도!”
나는 아직 괜찮다고 하진 않았는데…….
하지만 아이린은 말괄량이이긴 하지만 똑 부러지고 재미있는 아이다.
LA에 사는 아이이니 뉴욕의 가이드의 역할까지는 못 해도 처음 온 사람들보다야 낫지 않을까.
생각해보니 아이린이랑 여행을 가도 재밌을 것 같잖아?
“루카스.”
“너…! 어, 어. 그래, 시우.”
아이린과 말싸움을 이어나가던 루카스는 내 말에 정신을 차리고 신사로 돌아와 대답했다.
역시 부모는 자신의 아이 앞에서는 이런 면모도 보이는구나 싶고 말이다.
“브로드웨이에도 아는 사람 좀 있지 않아요?”
당연히 있을 거라는 대답을 예상한 말이었다.
제시카도 브로드웨이 인맥이 있는데, 루카스라고 없을까.
루카스도 레인보우 픽처스에서 이름 좀 날리는 사람인데.
“그야… 당연히 있지.”
그걸 왜 묻는 거냐며 의아한 표정을 짓는 루카스를 향해 나는 씨익 웃었다.
“저도 아이린과 함께 여행 다니는 거 좋아요. 아이린하고 같이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보고 싶은데…. 아이린의 감상평이 저한테 꽤나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거든요.”
“……그건,”
루카스가 난감하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자 나는 레인보우 랜드에서 아이린의 생생한 리액션이 어땠는지.
나와 함께 있는 아이린이 얼마나 신나 보였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라고.
루카스의 표정이 점차 풀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크큼, 그럼…… 아이린을 맡아 주시는 답례로 제가 좋은 공연 자리라도 알아봐 드려야겠군요.”
한발 물러선 루카스가 그렇게 말하자, 아이린이 만세를 외치더니 나를 와락 껴안았다.
윽, 말괄량이인 아이린은 힘도 아주 장사였다.
“루카스 덕에 좋은 자리에 앉을 수 있겠네요.”
“신난다!”
내가 능글맞게 그렇게 말하자, 아이린은 마냥 신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루카스는 미안함과 감사함을 담은 눈빛으로 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
“시우! 날씨가 진짜 좋아. 저기는 내가 예전에 가본 적이 있는 콘서트홀이야. 정말 작게 보이네!”
뉴욕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내 옆자리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이린이 차지했다.
창가에 앉고 싶다는 걸 온몸으로 티 내는 아이린의 모습에 나는 흔쾌히 아이린에게 창가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데 양보한 보람도 없게끔 아이린은 신나서 나를 끌어당기며 창가를 보여주지 못해 성화였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멀어져가는 LA의 땅을 내려다보며 자신이 아는 것을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아이린이다.
“정말 멋지네. 저 콘서트홀에서는 뭘 봤어?”
“……음. 무슨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클이었는데.”
이름이 생각 안 나나 보다.
세계 최대의 난제를 앞에 둔 사람처럼 인상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긴 아이린의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쿡쿡 숨죽여 웃었다.
한참 동안 좁은 자리를 방방 거리는 아이린은 호기심도 상당했다.
“시우!”
“시우, 저것 좀 봐! 솜사탕 같은 구름이야!”
“시우, 시우!”
하도 내 이름을 부르는 통에, 그리고 그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바람에 나는 아이린에게 목소리를 낮추지 않으면 대꾸를 해주지 않겠다는 협박을 여러 번 해야 했다.
“색, 새액-”
완전히 이륙한 뒤에 오렌지 주스까지 야무지게 받아먹은 아이린은 곧 수마에 몸을 맡겨버렸다.
이제야 왼쪽 귀가 조금 조용해진 기분이었다.
나는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쉰 뒤, 승무원을 불렀다.
“여기 담요 하나만 가져다주시겠어요?”
담요를 받아 아이린에게 덮어준 뒤, 나는 옆자리에 앉은 삼촌을 툭툭 쳐서 불렀다.
“삼촌.”
“어, 왜?”
내가 아이린에게 시달리는 동안 혼자서 편하게 한국의 예능프로를 보며 낄낄거리던 삼촌이 재빠르게 이어폰을 빼며 물었다.
“어제 부탁한 거 좀 줘봐.”
“아아, 엉. 잠시만.”
어제 타츠키가 그런 식으로 돌아간 뒤, 새삼 타츠키의 실력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부들부들 떠는 주먹으로 언젠가 나를 꼭 이길 거라고 했던 작은 아이.
그러고 보니 처음 호텔 로비에서 만났을 때, 개드먼이 타츠키의 실력에 자신만만하던 모습도 같이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조금 거만하네, 하고 넘겼는데 말이지.
그래서 어젯밤 어차피 늦게 자는 삼촌에게 타츠키가 출연한 작품 몇 개를 미리 좀 다운 받아달라고 부탁해놓은 참이었다.
“여기.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타츠키 출연작이야. 할리우드 영화에 진출했다는 작품은 맨 마지막이야.”
“고마워, 삼촌.”
나는 삼촌이 건네준 이어폰을 끼고 제일 아래 파일을 재생했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거대한 비행기가 떠오르는 장면을 시작으로, 타츠키의 작품에 빠져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