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42
142화
아이린과 루카스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이제 미국에서의 본격적인 합동 연습이 일주일 뒤로 다가왔다.
“하나, 두울, 세엣! 턴! 시우, 팔 동작이 점점 작아지고 있어!”
“네!”
나는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비비안과 연습에 연습을 거듭했다.
춤과 노래를 다니엘에게 한번 인정을 받았다고 할지라도, 이제 정말 영화 촬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타미 역인 나는 조연이나 단역도 아니고 주연.
독무도 많고, 혼자 노래를 부르거나 드럼을 치면서 연기하는 장면도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모든 부분을 자연스럽게 소화해내기 위해서는 연습만이 살길이었다.
열흘 동안 미국에 다녀온 뒤로는 계속해서 학교에도 나가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 연습 시간으로 쓸 수 있는 시간은 예전보다 더욱 적었다.
“시우, 그런데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너한테 먼저 번 아웃이 올 수 있어.”
그러던 중, 비비안으로부터 경고 아닌 경고를 받았다.
몸치였던 전생의 기억 탓일까.
노래나 연기보다 조금 더 강박적으로 춤 연습에 매진한 탓에 비비안이 나를 제지한 것이다.
“이제 매일 오는 건 금지야. 매일 지칠 때까지 연습하고 밤마다 대본 본다면서? 나는 아동 학대로 경찰서에 가고 싶지는 않거든.”
어떻게 알았을까.
그새 삼촌이 안 되는 영어로 비비안에게 이른 모양이다.
비비안은 쾌활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나의 레슨 시간을 강제적으로 줄여 버렸다.
덕분에 나는 대본을 보면서 타미를 연구할 시간이 늘어나 버렸다.
처음 며칠은 댄스 레슨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조금 조급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비비안의 말이 이해가 되면서 조금 더 조심하기로 했다.
이렇게 주어진 시간에 몸을 쓰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준비를 하면 되는 것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학교가 끝나고 레슨이 없는 날이면, 바다 엔터 연습실에 가서 혼자 연습하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자, 그럼 모두 조심히 돌아가고- 내일 봐요.”
담임 선생님의 종례 시간이 끝났다.
아이들은 모든 수업이 끝나자 해방감을 느끼며 벌떡 일어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소속사 연습실에 갈 준비를 했다.
“여어- 시우. 오늘도 연습하는 거야?”
그때, 목에 커다란 헤드폰을 걸친 한솔이 터벅터벅 걸어와 물었다.
“으음, 레슨은 없기는 해.”
“하겠다는 거네. 쉬는 날은 없어? 주말에는 뭐해.”
“……나도 나름 잘 쉰다고.”
라고 하지만, 사실 주말에도 비상철또 777에 가서 연습을 하거나 엔터에 가서 연습한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을 잘 보지 못한다.
노백찬을 찾는 것도 빈도가 확 줄었다.
가서도 요즘은 대본을 펼쳐두고 둘이서 타미에 대해 연구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지만.
문희성네 집에 간 지는 그보다도 더 오래되었다.
일단 그가 다른 작품 촬영 중이라서 너무 바쁘기도 하고, 전화를 해도 내가 연습 중인 경우가 태반이라 가끔 내가 밤늦게 전화를 하는 정도였다.
남연수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안 그래도 요즘 핸드폰을 확인하면, 남연수의 매니저인 김성후의 이름으로 온 문자가 30개씩 쌓여 있고는 했다.
“연습 벌레네. 벌레.”
“벌레를 묘하게 강조하는 느낌이 든다?”
“에이, 착각이겠지.”
한솔은 능글맞게 웃으며 정말 연습에 갈 거냐고 재차 물었다.
그 모습을 보아하니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모양인데.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얼른 말해.”
“히히. 사실 네가 미국에 가고 없는 사이에 아빠가 집에 새로운 장비를 들였거든.”
“그래?”
그건 뭐, 이제 놀랍지도 않은 이야기였다.
다만, 조금 궁금하긴 하다.
한솔네 집에 간 적이 실제로 오래되기도 했으니, 언제 한번 날을 빼볼까 생각하는데 한솔이 덧붙였다.
“너 또 미국에 가면 한참 동안 같이 못 놀 거 아니야. 우리 아빠도 요즘 너 안 보인다고 궁금해한다고.”
“그건 그렇지. 그럼 한번 갈까? …대신 아저씨 말 너무 많이 하시면 네가 막아줄 거지?”
“물론이지! 아싸, 오랜만에 고기반찬 먹는다.”
한솔은 또 신나 하며 그렇게 외쳤다.
보면 은근 고기에 목숨을 거는 경향이 있다.
나는 웃으면서 물었다.
“진짜로 내가 가야 고기반찬 먹을 수 있다는 듯이 말하더라 너는.”
“한시우. 잘 들어. 나 농담 아니야. 네가 와야지만 고기반찬을 먹을 수 있다고.”
그러자 돌아온 것은 엄숙한 한솔의 대꾸.
나는 설마 진짜인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때는 안 해주셔?”
“……아빠가 한마디도 안 한다고 약속하면, 그때 엄마가 해 주셔.”
나는 조용히 한솔의 부친을 떠올렸다.
한시라도 말을 못 하면 입에 가시가 돋을 것 같은 분이었지.
나는 한솔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잘… 못 먹겠구나.”
“응…… 그렇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고 있는 한솔을 안쓰럽게 쳐다보다가 말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친구야, 오늘은 내가 연습 대신 다른 게 있단다.
“그런데 오늘은 진짜로 내가 약속이 있어서 안 돼.”
“아, 그래? 흐음. 아쉽네. 어쩔 수 없지. 다음에 와 그럼.”
응? 근데 내 대답에도 한솔은 별로 아쉬운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당황할 정도였다.
나 놀러 오라고 먼저 꼬신 놈 맞아?
“고기반찬은?”
“오늘 그래서 나 제육볶음 두 번 받아 먹었잖아.”
어깨를 으쓱하며 태연한 척 말하는 한솔이다.
“뭐야……. 이번 주 주말에 간다.”
“오, 좋아! 갈비 해달라고 해야지.”
그 모습을 보니, 오히려 내가 괜히 미안해져서 주말에 가겠다고 말해버렸다.
그러자, 한솔의 얼굴이 환해졌다.
바로 엄마에게 말할 거라며 취소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이고 당부하는 한솔.
나는 꼭 갈 거라고 열 번 넘게 답해주고 나서야 한솔과 함께 교실을 벗어날 수 있었다.
한솔과 친해지면 친해질수록 느낄 수 있다.
한솔은 내가 연기해야 하는 타미랑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참 많이 다른 아이였다.
아니, 어쩌면 타미도 내가 한솔에게 그랬던 것처럼 먼저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렇게 밝았을지도 모르겠네.
오늘 이거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봐야겠다.
“그럼 내일 봐!”
“어어, 잘 가.”
한솔은 교문에서 나에게 휙휙 손을 흔들더니 주저하지 않고 뒤를 돌아 떠났다.
쟤도 참 특이한 놈이다.
한 번쯤은 아쉬워할 법도 한데 말이지.
***
한솔의 유혹을 뿌리친 한시우가 도착한 곳.
“할아버지. 저 왔어요.”
다름 아닌 오랜만에 방문한 노백찬의 집이었다.
“그래. 얼굴에 금칠한 놈 왔구나.”
“또 그러신다. 제가 전화도 자주 드렸잖아요.”
아이를 위한 찻상을 준비하며 노백찬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냈다.
이제 곧 7월이라 밖이 꽤나 더운지 한시우는 짧은 반팔, 반바지 차림이었다.
“이리로 앉거라. 내 특별히 중국에서 사 온 귀한 차를 꺼냈으니.”
“오오, 정말요? 그 전에 저 냉수 한 잔만 주세요.”
아니나 다를까, 약간 상기된 얼굴을 한 한시우는 차가운 물을 찾았다.
그 모습을 보고 혀를 끌끌 찬 노백찬이 찬물은 몸에 안 좋다고 타박하면서도 일하는 사람을 호출했다.
냉수 한 잔을 부탁한 노백찬이 서재에서 내다보이는 정원을 바라보며 아이에게 물었다.
“밖이 그렇게 더우냐? 그러니까 왜 보내준 차를 안 타고.”
오늘도 분명 집에 오겠다고 한 아이를 위해 청염 초등학교로 차 한 대를 보낸 참이었다.
하지만 한시우는 왜인지 그 차를 타는 것을 거부했다고 기사가 전해왔다.
“아,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생각 정리 좀 하고 싶어서요. 미리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요즘 연습이며, 뭐며 맨날 차를 타서 좀 걷고 싶었다고 말하는 한시우.
요리 보고 저리 봐도 초등학교 1학년이 할 대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한시우가 뱉기에는 왜인지 어울리긴 했지만 말이다.
“어린놈이 무슨 생각을 그리한다고…….”
그 깊은 속내가 내심 궁금하고 기특하면서도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이제 국내에서는 제법 유명해진 한시우다.
오면서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어서 차를 보낸 것인데, 그걸 마다하고 용케 별 탈 없이 이곳에 왔구나 싶다.
“어어? 할아버지 들려드릴 말 생각한 건데, 저 하지 마요?”
“누가 말을 말라고 그랬느냐? 옜다, 차 좀 마시고 한숨 돌리고 얘기하자.”
하지만, 노백찬은 이 작은 아이를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이야기보따리를 정리하느라 그랬다는 한시우의 말에 노백찬은 서둘러 잘 우러난 차를 따라 아이 앞에 놓아주었다.
이건, 말하자면 이야기 값인 셈이다.
“그래서, 미국은 바다며 들판이며 한국하고는 스케일 자체가 다르더라고요. 탁 트여 있으니까 도로도 한산하고…….”
“허허, 나도 가봐서 알지. 가본 지가 오래돼서 시우 너랑 본 풍경이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한시우의 미국 경험담이었다.
노백찬은 이 아이의 미국 여행기를 들으면서 감탄도 하고, 자신이 가봤던 미국을 새삼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서 미국 도시 풍경을 보고서 생각난 시놉시스가 있는데…….”
“으음, 그래.”
이어지는 것은 무엇보다 노백찬이 기다리던 한시우의 팔딱팔딱거리는 날것의 영감 이야기.
아이가 자신의 집에 올 때면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하는 노백찬의 마음을 백 퍼센트 충족시키고도 남았다.
잠시 눈을 감고 한시우가 읊어주는 스토리를 음미하던 노백찬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것도 재밌구나. 신선해, 스토리가.”
“이국 풍경을 보고 와서 그런가 봐요. 확실히 국내에 있을 때보다 뭐가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그것도 아무나 하는 건 아니지.”
신나서 이야기하는 한시우를 건너보던 노백찬이 천천히 차를 들이켰다.
그러고서 한 모금 남짓한 차가 남은 찻잔을 쥐고 있던 노백찬.
그 잔을 딸그락, 내려놓음과 동시에 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그래……. 공모전 이야기는 좀 생각해보았느냐?”
“할아버지…… 또 이야기예요?”
“그럼, 이놈아. 내일모레면 벌써 7월이다. 12월에 작품을 내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아직도 고민 중인 거냐?”
“음…… 솔직히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어요.”
쉽게 하겠다는 대답이 안 나올 것 같은 한시우의 모습에 마음이 급해진 것은 노백찬 쪽이었다.
“시우야, 얘야. 내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그치들이 인맥으로 뽑아서 개차반인 극본을 또 지켜봐야겠냐? 당선작이 그 모양이니 사람들이 더욱 관심을 가지지 않지. 관심을 안 가지니 화제가 되지 않고. 악순환이다. 악순환. 나는 이 부조리한 상황을 좀 타개하고 싶다.”
“흐음…….”
노백찬의 간절한 말에 한시우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할아버지.”
“오냐.”
“그럼 불후의 거장이신 노 감독님이 직접 하시는 건 어때요?”
“뭐?”
“할아버지 말씀처럼 진짜 공모전이 관심을 받고 판도를 바꾸는 게 목적이라면……. 노백찬이라는 이름 세 글자가 가장 크게 작용할 텐데, 굳이 저를 끌어들이시려는 이유가…….”
아이는 열심히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지 않느냐고 피력했다.
하지만, 노백찬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네놈의 이야기가 재밌으니 그렇지.”
단호하게 떨어진 노백찬의 말에 한시우의 얼굴이 곤란함으로 어두워졌다.
“할아버지…… 제가 지금 당장 이걸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이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연기에 몰입하고 싶다는 것도 아시고…….”
“그래. 그러니 늙은이의 바람이지. 그리고…….”
“네?”
“인정하기 싫지만, 현실은 현실이지. 나는 늙었다, 시우야. 이게 그냥 한탄처럼 들릴지 몰라도 사실이다. 그냥 한 말이 아니다. 살 날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게야.”
“…….”
이런 말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세월이… 노백찬을 급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이런 내가 언제까지 연극판의 아이들을 책임질 수 있겠나. 그리고, 이미 고일 대로 고인 물에 나 같은 늙은이가 들어가서 얼마나 진탕을 칠 수 있겠느냐. 그럴 체력이 없는 늙은이는 이제 빠져야지. 대신, 이제 시작하는 젊은 사람들이 판을 바꿔주어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고, 지속될 수 있지 않겠느냐.”
한시우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굳은 얼굴로 아까부터 노백찬의 말에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리고…….”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백찬이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 공모전은 입상작품 3개를 실제 연극화시켜준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쓴 극본으로 올리는 연극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