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5
15화
“시우야, 정말 고맙다······.”
“우웅. 진짜 괜차나요.”
우여곡절 끝에 마지막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
무대 아래 내려온 최이섭이 몇 번이나 고맙다, 미안하다라는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무사히 끝냈으니 됐지. 어머니 기다리실라. 얼른 가봐라.”
“네, 넷! 사과는 다녀와서 충분히, 정식으로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이섭은 벌게진 눈으로 서둘러 짐가방을 메고 나왔다.
가기 전, 그는 백스테이지에 있는 나와 강용휘, 단원들에게 연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 서둘러 지상으로 올라갔다.
다행이다.
아직 최이섭의 개인적인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기에 다행이란 말이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실수를 한 것에 대한 그의 무거운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어진 것 같아 그 점만은 다행이었다.
급하게 사라지는 그 등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인생을 살다 면 때로는 이런 일이 생기곤 한다.
배우로 무대에 서는 곳보다 우선순위에 둬야 할 것이 나타날 때.
최이섭은 무대를 택했다.
결국 무대를 망칠 뻔하긴 했지만, 그는 무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무대를 지키기 위해 힘을 보탤 수 있어서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시우야, 이제 갈까? 위에서 팬들이 기다려.”
삼촌이 사념에 빠져 있는 내게 말했다.
마지막 공연인 만큼, 평소보다도 많은 팬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웅! 얼른 가쟈!”
뽀짝뽀짝.
나는 삼촌이 내민 손을 꼬옥 쥐고 빠른 걸음으로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밟았다.
우선 지금은 마지막 공연을 무사히 마친 기념을 해야 할 때였다.
***
백스테이지에 홀로 남은 강용휘는 무대로 향했다.
낮은 조도의 조명만이 켜진 무대에 올라 어두컴컴한 객석을 바라보았다.
텅빈 객석.
‘어떻게, 잘 끝났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라지만, 오늘 일은 놀라웠다.
강용휘는 최이섭이 대사를 잊고 멈칫한 순간, 사고가 터질 것이라 직감했다.
보통의 경우라면 오늘만큼 마음 졸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이브 무대 특성상 배우가 대사를 까먹는 것보다 더한 돌발상황도 겪은 그였으니까.
오늘은 달랐다.
무대 직전 안 좋은 소식을 들은 배우, 그리고 그런 배우의 상대는 이제 고작 다섯 살이 된 아이.
이 모든 상황이 강용휘로 하여금 이 사태를 진정시킬 그 어느 것도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그렇게나 당황한 자신과 다르게, 그 다섯 살짜리 아이는 보란 듯이 돌발상황을 완벽하게 대처해냈다.
“진짜 물건이네, 물건······.”
강용휘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고 작은 웃음을 뱉어냈다.
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이 한시우의 나이에 대한 편견이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편견이라 부르기 모호할 정도로 당연한 불안감이지만, 비로소 오늘 그 모든 것을 털어내게 됐다.
오늘 그와 배우들 여럿을 구한 것은 작은 꼬마 아이였다.
처음에는 호기심 반, 진심 반으로 캐스팅한 다섯 살 난 아이.
아무리 잘한다 한들, 고작 다섯 살이다.
무사히 공연을 올리는 것만 해도 다행이고 감사하기까지 한 어린아이.
그런데 오늘 은 그 작은 아이 덕분에 살았다.
하필 오늘 정신이 불안정한 최이섭과 맞붙는 것이 한시우, 그 아이였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해줄 말이 없었다.
다른 배우였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잘, 넘어가 달라고 했을지도.
애드립 좀 준비하고 올라가야 할 것 같다고 미리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시우에게는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다섯 살인데.
프로에는 나이가 없다지만, 다섯 살에게 이 정도를 요구하는 사람은 단언컨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한시우가 홀로 해냈다.
그것도 어느 베테랑보다도 더 훌륭하게.
거기다 더 좋은 그림을 만들어내면서 말이다.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상황을 바꾸지도 않았다.
최이섭의 실제 감정을 이용하면서, 동시에 다음 내용에 지장을 주지도 않았던 훌륭한 애드립이었다.
“하하, 진짜······ 골때리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웃음만 나오면 애드립이다.
저 아이가 오늘 이 무대에서 애드립을 했다는 걸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강용휘는 텅 빈 객석을 휘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 위대한 순간을 기억하는 게 우리 몇 명밖에 없다는 게 못내 아쉬울 지경이었다.
그 몇 초의 기적을.
더 많은 이가 알았으면 기함을 했을 텐데.
이런 천재를 발견한 짜릿함에 당장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강용휘는 조용히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아까 그 사람 말이야. 혹시······.”
강용휘는 가운데 블록 뒤에서 두 번째 통로 자리를 응시했다.
지금은 텅 비어 있는 자리.
그런데 아까 이 자리에 앉아 있던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그의 눈에 이 자리에 있을 리 없는 한 사람이 보였던 것이다.
게다가 조용히 미소 짓고 무대의 한시우를 응시하고 있더랬다.
그 짧은 다리로 이 넓은 무대를 휘젓고 다니는 우리 비상철또 777의 반짝 스타님을.
어두운 극장.
뒷자리 구석에 모자를 쓰고 얼굴을 가리고 있었지만, 강용휘는 그 사람을 알아봤다.
그리고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에이,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는가. 저 사람이 이 작은 극장까지?
이런 질문도 잠시, 다른 질문이 떠올랐다.
과연 방금 한시우의 애드립을 저 사람은 알아챘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강용휘의 입매가 길쭉한 호선을 그렸다.
알아챘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죽일 놈의 호기심이 솔솔 피어올랐다.
***
“엉, 어어. 나도 봤어. 그래. 잘 끝났으니 다행이지. 에이, 괜찮아. 별문제 있었던 것도 아니고. ······이섭아. 계속 그렇게 사과하면 나 섭하다? 우리가 일이 년 같이한 사이야? 그래. 다음에 얼굴 보고 이야기하자. 가서 어머니 잘 챙겨드리고. 응, 그래. 으응.”
김상철은 최이섭과의 전화를 끊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마지막 공연을 지켜봤다.
최이섭에게 안 좋은 일이 있었다는 것은 강용휘에게 공연이 끝나고 전해 들었다.
극단장실에 올라온 자신에게 인사를 못 하고 간 것이 못내 걸렸는지, 방금 최이섭 본인에게 직접 전화가 온 참이었다.
그는 급하게 택시를 잡아타고 어머니가 수술 중인 병원에 가고 있는 중이라 했다.
공연에 문제가 있던 것도 아니기에, 김상철은 심란해하고 있을 그를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후우······. 다행이긴 한데.”
김상철은 극단장실 소파 상석에 앉아 팔걸이를 툭, 툭하고 두드렸다.
당장 한시우를 불러서 무슨 생각이었냐고 묻고 싶은 심정이었다.
은 강용휘가 대본을 쓸 때부터 봐왔고, 같은 공연을 연습 때부터 여러 번 본 김상철이기에 한시우의 오늘 대사가 애드립이라는 걸 알았다.
그런데 아주 기가 막히고 절묘하더란 말이지.
설마 그 대사들이 다섯 살 난 한시우 머릿속에서 나온 것은 아닐 테고, 김상철은 빠르게 핸드폰을 들어 강용휘를 호출했다.
“···뭐?! 그게 네가 언질한 게 아니라고?”
“당연하지, 형. 다섯 살 애한테 즉석으로 애드립하라고 대사를 줬겠어? 나 그런 또라이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냐, 라는 눈으로 잠시 강용휘를 흘겨보던 김상철이 정신을 차리고 이어 말했다.
“자, 잠깐. 그러면 그게 정말 시우가 스스로 생각해서 뱉은 애드립이라고?”
“그렇다니까요. 딱 들어맞았지?”
“그렇더라······ 근데,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다섯 살 맞아?”
“등본 봤잖아요, 그새 잊었어요?”
“본 것도 잊게 생겼단 말이다. 너무 충격받아서.”
김상철이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그렇잖아? 다섯 살이라고, 다섯 살. 나는 당연히 강용휘 네가 적어도 팁이라도 준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거지?”
재차 확인하는 김상철의 물음에 강용휘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시우는 타고났죠. 난 정말 아-무 것도 미리 알려준 게 없어. 나도 최이섭이가 대사 까먹었을 때 같이 머릿속이 새하얘지더라고요. 이를 어쩌지, 하고.”
“허어······.”
허심탄회하게 툭 터놓고 인정하는 강용휘의 모습에 김상철은 입을 떡 벌렸다.
“평소 또라이 소리 심심찮게 듣지만, 돌파구가 전혀 안 떠오르더라니까? 오늘 시우 없었으면 진짜 우리 끝장이었어요, 끝장! 그 장면이 워낙 중요해야지.”
“허참, 허허, 허참······.”
김상철은 할 말이 없어 팔짱을 끼고 허공을 향해 헛웃음만 내뱉었다.
“하여간 그래. 이제 알겠수? 내가 그랬잖아. 시우 걔 천재라니까요?”
“알았다, 알았어! 나가봐!”
“뭐야, 같이 안 가요? 다들 오늘 극단장님 카드로 소고기 먹는다고 벼르고 있는데.”
“이럴 때만 극단장님이지. 알았어. 조금 이따 갈 거야. 먼저 애들 데리고 가 있어.”
그 말에 강용휘가 눈을 휘번뜩하게 뜨고 김상철을 쳐다보았다.
“아! 쫌! 먼저 가 있으라면 먼저 가 있어라.”
“아니 그게 아니라, 카드는 주시고 보내쇼. 극.단.장.님.”
“이, 이 또라이 자식 이거······.”
결국 강용휘는 김상철에게 까만 카드를 받고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야! 오늘 돈 아끼면 죽는다!”
“예이.”
김상철은 단장실을 나가는 강용휘의 뒷모습에 소리친 뒤, 한숨을 깊게 쉬며 소파에 깊숙이 몸을 기댔다.
강용휘와 입씨름을 하고 나면 힘이 너무 빠진다.
혼자 남은 김상철은 이곳에서 만났던 한시우와 그의 부모님을 떠올렸다.
‘만약 그때 그 아이를 실수로 놓치기라도 했더라면?’
순간 오싹해진 느낌에 김상철은 자신의 두 팔을 부여잡고 부르르 떨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절묘했던 애드립.
강용휘의 말대로, 그건 타고났다는 말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그뿐만이 아니다.
애초에 이번 극이 이토록 흥행할 수 있었던 것에도, 한시우의 몫이 컸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이대로 두기는 아깝단 말이지.’
타고난 스타성.
어린 나이란 게 믿기지 않는 실력과 순발력.
지난 수십 년, 배우로서 연예계에 오랜 시간 몸담은 그였기에 직감할 수 있었다.
한시우는, 이대로 두면 안 된다.
그 누구보다 높은 곳에 오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 어떤 배우보다 암담한 미래를 맞이할 수도 있다.
김상철은 한시우를 위한 게 어떤 일일까, 그 아이를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가 궁리했다.
똑똑-
그때였다.
한창 김상철이 누워서 숨을 돌리고 있는데 정중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어, 어어! 들어와!”
“안녕하셨습니까.”
“와, 이게 누구야. 이 누추한 곳에 설마 네가 올 줄은 몰랐다. 하하! 얼른 들어와, 얼른.”
오늘 김상철이 바로 고깃집으로 달려가지 못하게 한 장본인이 얼굴을 드러냈다.
그를 맞이한 김상철의 입꼬리는 하늘 높이 올라가 내려올 줄을 몰랐다.
***
“꺄아아악.”
“너무 귀여워!”
삼촌이 열어준 극장 뒷문으로 나가자마자 엄청난 함성이 들려왔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그들 앞에 섰다.
뽀짝뽀짝.
“안냐세요. 한시우입니다.”
“꺄아악!”
요즘 내가 퇴근할 때면 항상 하는 일이었다.
바로 나를 기다리는 팬들에게 인사하기.
원래 뒷문으로 나와서 인사하고, 선물 좀 받아주고, 귀여움 좀 받고, 가끔 내키면 안기기도 하고······. 그랬는데!
오늘은 달랐다.
무려 마지막 공연이 아닌가.
황금 가면이 아닌, 얼굴을 드러낸 한시우를 찾아와준 팬들이다.
뭔가 특별한 이벤트가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 어머니가 좋은 의견을 주셨다.
“오눌 누나들이랑 같이 사진 찍어요!”
“시우야······. 아아, 세상에.”
“꺄악! 너무 좋아악!”
사진 찍히는 데에는 또 일가견이 있지.
나는 자지러지는 팬들 앞에서 방긋 웃어줬다.
응?
그런데, 누나 팬 중 한 명이 지금껏 못 보던 물건 하나를 들고 흔들고 있다.
“누나. 이거 모에요···?”
내 손바닥 다섯 개 만한 크기의 까만 종이에 형광 노란색으로 한 시 우 ♡ 라고 적혀 있는 물건.
어찌 눈이 안 갈 수 있겠는가!
“이건 플래카드라는 거야. 누나가 시우 응원하려고 직접 만들어왔지!”
“우아··· 정말료?”
플래카드라.
참으로 좋은 물건이구나.
내 이름을 걸고, 내 얼굴을 걸고 한 첫 작품.
마치 그걸 상징하는 듯한 플래카드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다.
저 기묘한 형광색이 어찌 이리 아름답게 느껴지는지.
“자. 이거 시우 가져.”
“네? 누나가 만든곤데 내가 가져도 대요?”
“그러엄. 시우 주려고 가져온 거야.”
참으로 고마운 팬이로다.
나는 누나 팬이 건넨 플래카드라는 걸 양손으로 꼭 쥐었다.
“이고랑 가치 찍을래요!”
“그래, 그래! 아유, 귀여워. 시우야, 누나가 안아줘도 될까?”
“우웅!”
이런 선물을 줬는데 그쯤이야.
나는 누나에게 안겨 높이 들어올려졌다.
“자, 하나 둘!”
오늘 일일 사진 기사가 된 삼촌이 우리 두 사람을 찍어주었다.
플래카드를 준 누나는 사르르 풀린 표정으로 핸드폰을 받아갔다.
“누나, 시우 이고 평생 간딕할 거에요.”
“시, 시우야. 정말? 허어어.”
나에게 선물을 준 누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다음 팬.
그다음, 또 그다음.
열댓 명이 조금 넘는 팬들과 차례차례 사진 촬영을 마쳤다.
팬들은 모두 발그레진 얼굴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시우야, 누나가 시우 다음 작품도 꼭 보러 올게!”
“우웅! 꼭이에요!”
붕붕.
마지막 팬은 어찌나 힘이 좋은지 작달 만한 내 손을 맞잡고 악수를 하는데 붕붕 소리가 났다.
나는 팔이 떨어질 것 같은 악수에도 활짝 웃어주었다.
무려 다음 작품도 보러 와준다고 하질 않나!
아주 좋은 이였다.
“따음 작품도 기대해주세요!”
내 마지막 멘트에 팬들 몇몇이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조만간 새 작품 준비해서 나타나야겠지, 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