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4
14화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맞춰본 간단한 리허설이 끝났다.
“휴.”
나는 손등으로 이마를 훔치며 지정석에 앉았다.
어느새 한쪽 무대에 놓인 철제 의자는 내 지정석이 되었다.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부터 앉던 의자인데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에서 연습하게 되면서 내가 삼촌에게 옮겨달라고 부탁했다.
객석에 앉으면 앉은키가 낮아 제대로 무대가 보이질 않고.
백스테이지에서 내다보자니 배우들 옆얼굴이나 뒤통수만 볼 수 있었다.
그래서 낑낑거리며 의자를 끌고 있으려니 삼촌이 옮겨주었다.
제법 눈치가 생기고 있었다.
아주 좋은 징조다.
······!
김선우의 파이팅 넘치는 마지막 장면.
마지막 대사가 끝나자 객석에 앉아 있던 강용휘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오케이! 오늘 마지막 공연이라 그런가? 선우 너 힘이 더 실렸는데?”
“와, 김선우. 우리랑 헤어지는 게 좋으냐?”
강용휘의 말에 다른 배우들도 옳다구나 하고 달려든다.
“하하, 그럴 리가요. 제가 이 공연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시우도 있고.”
응? 나?
가만히 앉아서 리허설 구경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호출에 두 눈을 껌뻑였다.
“아, 그건 그렇지.”
“저희 이제 시우랑 헤어지는 거예요, 감독님?”
“어린아이 배역이 그리 많지는 않지······.”
곳곳에서 튀어나오는 아쉬운 소리에 나는 방긋 웃었다.
하하, 이거 참.
관객들의 사랑만 받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현재 다섯 살이라는 내 나이에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많지 않다는 것은, 아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다만, 내가 계속 이곳에 발을 붙이고 있을 거라는 걸 보여줄 생각이다.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얻는 법 아니겠는가.
“우웅? 시우 여기 꼐속 올 건데?”
배우들한테 걱정말라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바로 사르르 표정이 풀어진 배우들이 내게 다가왔다.
“그래그래, 시우 무대 안 서도 계속 놀러와야 돼?”
“우웅!”
“아유, 귀여워. 우리 복덩이. 아무래도 시우 네 덕에 우리 작품 더 잘 된 거 같다니까!”
“익! 푸하!”
아니, 그런데 한국인들은 귀여워할 때 왜 이렇게 머리를 비벼대는지 모르겠다.
오늘도 역시나 배우들이 엉망으로 헤집어 놓은 머리를 슥슥 정리하는데 강용휘가 배우들을 불렀다.
“자자, 그만들 하고. 오늘 드디어 우리 마지막 공연이다!”
“네에!”
“한 달 동안 다들 수고들 했고. 오늘 공연도 무사히 마치자 엉?”
“넵!”
배우들은 힘차게 대답한 뒤 각자 흩어졌다.
개인적으로 연습을 이어나가는 배우들도 있었고, 공연 전에 요기를 하러 나가는 배우들도 있었다.
나는 삼촌이 화장실에 가기 위해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다시 내 지정석에 앉았다.
돌아오면 같이 도시락이나 먹어야지.
남는 시간이 있다면 당연히 연습이다.
작은 무릎 위에 여기저기 구겨진 대본을 펼쳤다.
그래봤자 내게 할당된 대사는 겨우 4페이지 남짓.
안 그러려고 해도 입이 비죽 튀어나온다.
무대에 오르면 오를수록 내 비중이 너무 적은 것 같아 아쉽기만 했다.
극단에 출근해도 내가 연습하는 시간보다 남들 연습을 지켜보는 시간이 훨씬 길다니.
뭐, 그렇다고 그 시간이 지루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두 달간 배우들의 연습을 지켜보니 다들 실력이 많이 는 것이 보였다.
연습도 연습이지만 직접 무대 위에 오르는 것이 아무래도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혼자서 다시 처음부터 대본을 읽어나가는데 대본 위로 그림자가 졌다.
“우웅?”
누가 이렇게 어둡게 하느냐?
봤더니 강용휘다.
“감동님.”
“어쭈. 시우 너 이제 앉아 있는 포스가 달라졌다.”
“포쯔?”
“인기 좀 생겼다 이거냐?”
“아, 에헤.”
휴, 안 그래도 이따가 삼촌이랑 도시락 먹고 요 앞 공원에 산책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그때쯤이면 공연을 보러온 더 많은 팬들이 비상철또 777 앞을 지키고 서 있을 것이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꼭 한 바퀴 둘러 봐주는 것이 요즘 내 루틴이었다.
“요즘 나한테 시우 너랑 연결해달라는 배우들이 한 트럭이다. 한 트럭?”
“덩말료?”
“그래. 대학로에서 요새 한시우 모르면 간첩이지. 이렇게 짧은 시간에 유명해진 건 아마 너밖에 없을 거다.”
“히힛.”
“아무리 이쪽 판이 좁다지만 시우 넌 정말······. 그 나이에 이렇게 연기 잘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넌 참······.”
“우웅?”
이것 봐라.
시선이 불경하다.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저러는 건지 불안하게 쳐다보는데 강용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팬서비스가 끝내주지.”
“움?”
“누나 팬들한테 네가 그렇게 잘해준다며?”
“아! 누나들 조아. 시우 이쁘다, 이쁘다 해조요.”
“그래······. 그렇겠지.”
강용휘는 허탈하다는 듯이 웃었다.
안 그래도 요즘 한시우 퇴근길이 화제란다.
불과 어제 받은 사진이라며 강용휘가 핸드폰을 내밀어 보여주었다.
“이거 말야, 이거. 공연 끝나고 맨날 이러고 있다며?”
“우웅. 이게 왜요?”
“현직 배우 중에서도 이렇게 팬 챙기는 사람이 없을 거다. 시우야, 안 피곤해? 집에 가기만 하면 잔다던대.”
강용휘가 보여준 사진에는 공연이 끝나고 삼촌에게 안겨 있는 내가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 주변에 팬들이 겹겹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이랄까.
아니, 매번 공연 끝나고 나가면 나 보겠다고 서 있는 사람들인데.
이걸 외면할 수 있겠는가?
한 번 방긋 웃어주면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 이··· 냉혈한 같으니.
물론 그러고 나서 받는 선물은 보너스다.
“웅, 괜차나요. 재미써.”
“아, 그러냐. 진짜 천상 배우다, 시우 너는.”
“감쨔합니다.”
“······칭찬 아냐 인마.”
강용휘와 시우의 대화에 배우들 몇몇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 역시 내 퇴근길을 봐서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추가 증언을 해주었다.
“시우 인기 많죠. 시우만 보러 오는 팬들도 많대요.”
“와, 진짜? 나는 언제 그렇게 되냐.”
“인터넷 카페 같은 데 보면 시우 관련 게시물도 엄청 많아요.”
인터넷이란 신문물에 대해 아직 잘 알지는 못하지만, 지금 대화에서 중요한 내용이 뭔지는 알겠다.
그러니까 이 몸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거지?
나는 어깨가 솟아나는 걸 느끼며 겸허히 대답했다.
“우웅, 잘 모르게쪄요.”
무릇 극단 생활이란 겸손이 미덕이다.
아무리 한 배우가 잘나간다고 해서 그 배우가 거들먹거리고 다니면 그 극단의 팀워크가 어찌 되겠는가?
휴, 이 나의 깊고 넓은 마음을 이들이 제대로 알아야 할 텐데 큰일이다.
“하하, 시우 너 진짜 귀엽다. 이래서 애를 낳나.”
“감독님 애는 시우만큼 안 귀엽지 않을까요.”
“어이, 감독님 울어.”
“······둘 다 저리 가라.”
연극은 2주 전부터 종일 매진이었다.
현장 취소 표라도 얻으려는 관객 덕분에 며칠 전부터는 비상철또 777 앞에 줄이 생길 정도였다.
강용휘의 대본도 평판이 대단했다.
을 본 팬들에게서 들었다.
이번에도 강용휘가 강용휘한 대본이라고.
대본을 보자마자 느끼긴 했지만, 새삼 훌륭한 극단에 속한 것 같은 기분이다.
***
무대 전 배부름은 금물이다.
어머니가 싸준 도시락을 간단하게 먹고 오늘도 극단 앞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왔다.
극장에 들어와 분장까지 마치니 이제 공연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라니 제법 씁쓸······.
“최이섭 배우님!”
백스테이지라 목소리를 낮춘 극단 직원이, 급한 모양새로 들어왔다.
최이섭?
그건 내 극 중 아버지 배역을 맡은 배우 이름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내 지정석에서 내려와 졸랑졸랑 그 직원 옆으로 향했다.
소란에 이미 분장을 마친 배우들도 몇몇 모여들었다.
“네, 저 여기 있습니다만······?”
본인까지 등장했다.
아직 분장이 다 끝나지 않았는지, 분칠을 한 얼굴에 가발을 착용하기 전 쓰는 망사 같은 걸 머리에 뒤집어쓴 꼴이었다.
“그, 그! 전화 받으세요. 급한 전홥니다. 배우님 전화기가 꺼져 있어서 극단으로 전화 주신 거 같아요.”
“예? 예에······.”
최이섭은 얼결에 분장을 하다말고 전화를 받았다.
“예, 전화 바꿨습니다. 네, 제가 최이섭입니다만. 네, 네. 네?! 뭐라고요?”
무슨 일이지.
나는 백스테이지에서 큰 소리를 내버린 최이섭을 놀란 눈으로 바라봤다.
아직 관객들이 입장을 안 했다지만 이곳에서는 자칫 잘못하면 바깥으로 소리가 다 들려버린다.
“예, 예에······. 동의합니다. 저, 수술 시간은 얼마나······? 아, 다섯 시간. 아, 네. 그, 제가 지금 당장 갈 수는 없습니다만, 최대한 빨리 가보겠습니다. 앞으로 두 시간, 아니 세 시간 정도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네, 네. 네, 죄송합니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최이섭은 수화기 너머의 상대에게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수술? 수술이라면······.
TV에서 본 적이 있다.
의학 드라마였는데.
이 시대에는 의술이 아주 좋아져서 병든 사람을 그 수술이라는 걸로 살려낸다고 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정리된 나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막 전화를 끊은 최이섭을 바라보았다.
“저, 괜찮아요? 배우님?”
“수술이라니······. 이게 무슨 소립니까.”
무대 아래에서의 최이섭은 항상 서글서글한 미소를 짓고 있는 기분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엔 그런 서글한 인상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어, 어머니가 갑자기 응급실에 실려왔는데···. 가족이 저밖에 없어서 수술 동의하냐고 묻네요···.”
최이섭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괜찮을까?
나는 힐긋 최이섭을 올려다보았다.
“일단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까···. 이섭아 괜찮냐 너?”
조심스레 묻는 다른 배우들 역시 안색이 안 좋아졌다.
“하아.”
최이섭이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아무도 어떤 말도 쉬이 하지 못하는 상황.
최이섭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침묵을 깼다.
“할게요. 공연은 하고 갈게요.”
누구의 대답도 듣기 전에, 최이섭은 빠른 걸음으로 분장실로 향했다.
어쩌면 이 잔인한 답은 정해져 있었을지도 모른다.
일인다역인 배역도 있는 작은 극단에, 이런 상황을 대비해 대기하고 있는 배우가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다 최이섭의 배역은 김선우와 비견될 정도로 비중이 꽤 크다.
공연을 취소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그가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다.
무대에 서는 배우에게는 다양한 변수가 뒤따른다지만, 하필 오늘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현장극에서 배우의 멘탈은 공연의 퀄리티와 직결된다.
백스테이지의 분위기가 암울하지만, 관객은 이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무대의 불은, 다시 들어온다.
***
“압빠! 가디마.”
극은 생각보다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최이섭이 등장하는 거의 마지막 장면.
영수인 내가 아버지인 최이섭에게 시위에 나가지 말라고 붙잡는 장면이다.
울먹이는 나를 발견한 최이섭이 뒤를 돌아 몸을 낮춘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서 무언가 말하려 입을 뗀다.
…분명 떼야 하는데.
이런.
우려했던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최이섭의 말문이 막혔다.
대사를 잊은 것이다.
굳어버린 최이섭의 얼굴 표정은 패닉 그 자체였다.
순간 백스테이지에 있을 배우들의 긴장이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내가 제일 먼저 깨달았고, 이제 무대 뒤 배우들도 알았을 것이다.
최이섭이 대사를 못 뱉고 있다는 것을.
이제 관객들이 알아차리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이해는 할 수 있다.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변고.
그 소식을 듣고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배우는 몇 되지 않으리라.
최이섭의 표정을 보아하니 터지기 직전이다.
아직 우는 장면이 아닌데도 눈시울이 붉어질 대로 붉어졌다.
어쩌지? 여기서 최이섭이 대사를 치기 전에 울어버리면 이 장면을 망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이 장면을 만들 수 있을까?
잠시 머리를 굴리다가 지체없이 입을 열었다.
1초, 단 1초라도 빠르게.
그 짧은 시간이 지금 이 순간이 사고인지 아닌지를 결정지을 테니까.
“할모니가 그래써.”
“어······?”
다행히 최이섭은 내 말에 반응한다.
당황한 건지, 정신이 돌아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반응한다는 걸 확인한 나는 울먹이며 대사를 이어갔다.
“압빠는 거짓말··· 못하는 사람이라고.”
지금 내 입에서 나가는 대사는, 원래 대본에는 없는 대사였다.
“우리 차칸 아들은···. 자기가 한 말은 꼭 지키는 머싰는 사람이라구.”
“여, 영수야. 아···아빠는···.”
뱉던 대사를 도로 먹으며 최이섭이 이를 앙다문다.
여러 복잡한 감정과 함께 울컥한 얼굴이다.
어머니에 대한 죄송함.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
작품 속 영수 아버지로서의 감정과, 지금 최이섭 개인의 감정이 뒤섞인 상태.
하지만, 아직 울어서는 안 된다.
“그로니까··· 돌아올꺼디 아빠?”
눈물 고인 눈빛으로 최이섭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제, 최이섭이 진심을 담아 마음껏 울어도 되는 타이밍이 완성됐다.
“흐윽. 끄윽.”
결국, 최이섭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기 시작한다.
“응? 돌아오는 거 마찌?”
마지막 내 질문에, 온 얼굴이 눈물로 덮인 최이섭이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잇지 못할 정도로 큰 울음을 왈칵 터트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