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st Life Returner RAW novel - Chapter 307
24 화
질리언은 깜짝 놀라며 눈을 깜박거 렸다. 제시카도 마찬가지 였다.
우르르릉 하는 굉음이 하늘 멀리에 서부터 울려왔기 때문이었다.
악신 둠 카오스가 그것의 눈깔로 세 상을 내려다보았던 엊그제를 연상케 하는 소리가 또다시 지상을 때렸다. 고대 바이킹들이 천둥소리를 토르의
망치질 소리로 믿었듯이,그 소리는 어떤 자연 현상이 아니라 인외(乂外) 의 영역에서 시작된 것처럼 공포스럽 게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정황상 그리 추 정하는 것이야말로 합리적인 판단일 것이다.
바야흐로 신들의 전쟁이 펼쳐진 시 대가 아니던가. 그게 진실이다.
질리언은 황급히 머리를 쓸어 넘겼 다.
제시카가 그의 떨리는 손이나 감정 을 다스리 려는 노력을 발견하며 말했 다.
“우리, 바로 전까지만 해도 집무실에 있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리언에게선 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제시카는 질리언이 그 어느 때보다 두려움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 깨달았 다.
야외 주변에는 그들처럼 하늘을 올 려다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바깥에서 작업 중이던 직원들이자, 클럽 회원들이 대동해 온 일행들이었 다.
그러나 단연코 남편 질리언만큼 겁 에 질려 있는 이는 없는 것이었다.
제시카는 질리언의 손을 잡으며 말 했다.
질리언의 손은 계속 떨리고 있었다.
“당신,뭘 감추고 있는 거죠. 제게 들 려주지 않은 게 뭐예요?”
제시카의 질문은 예리했다.
질리언이 입술을 더듬거리며 뭔가를 말하려 할 때였다.
하늘에 괴현상이 나타났다.
질리언의 입은 그것으로 인해 닫히 고 말았다.
저 위로 보이는 것들.
그러니까 구름이며 태양 그리고 빈 공간의 푸른 하늘 전부가 일렁거렸다
가 원상태로 돌아오는 기묘한 현상이 었다.
“나만본게 아니지?”
질리언이 물었다.
“저도 봤어요.”
그 대답에 질리언은 사색이 된 얼굴 로 뛰어나갔다.
“회원들을 소집해 주게! 지금 바로!” 제시카는 허둥대는 질리언의 뒷모습 을 보면서 본인까지 그의 두려움에 전 염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어쩐지 소름 돋는 팔을 쓰다 듬었다.
그런 후 클럽 회원들에게 일괄적으
로 메시지를 보냈다.
믹을 따로 찾은 건 그다음이 었다.
먹,클럽에서 청소부 조직을 운용하 는자.
그러나 그의 조직이 맡은 임무는 클 럽 바깥의 문제를 물리적으로 해결하 는 것 외에 협회 회의의 보안을 지키 는 데도 있었다.
제시카가 협회 본부로 들어온 날에 제일 먼저 불러들인 게 그였다.
“메시지 받았습니다.”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한국 정 부예요. 지금은 계엄 사령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협회 본부는 한국 정부에 공여받은 한반도의 서쪽 해안 한 도시에 세워졌 다.
그리고 전 세계의 권력자들이 여기 세계 각성자 협회 본부에 모여 있었 다.
인류가 한뜻으로 각성자들의 승리를 염원해야 하는 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 을 것이나,최악을 가정해 두고 대비 해 둬야 하는 것도 사실.
그러나 최악. 그분과 각성자들이 패 배하여 말세(末世)가 도래하고 만다 면 당장 직면해야 할 적은 악신 둠 카 오스가 아니다.
한국의 계엄군들이 될 공산이 높다.
클럽의 진짜 이름을 모르지만 적어 도 세계의 권력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는 걸 두고 보지는 않을 거란 말이 다. 정말이지.
“최악의 경우,회원들을 볼모로 잡아 이용하려 들 수도 있겠죠. 최대한 본 인들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요. 그것 이 평화적인 방법이든지 아니든지 간 에,”
먹도 제시카처럼 그녀의 귓가로 속 삭이듯 대답했다.
“그들을 주시하고 있겠습니다. 하지 만 아실 겁니다. 처형 명령은 최고위
의 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은 당 신의 남편이지요,제시카.”
“이것부터 확실히 하죠. 인가가 떨어 지면 해낼 수는 있습니까? 여긴 그들 의 안방이에요.”
“문제없습니다.”
“그럼 만반의 준비를 갖춰 두세요. 그런 일이 없으면 하지만……
클럽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기 때문에라도 인류가 최후의 항전을 갖 추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작업. 외부의 개입을 사전에 차단하고 회 원들끼리 단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국 계엄군 사령탑들의
모가지부터 끊어 놓고 시작하자는 제 안을 쉽게 승낙할 남편이 아니기에, 제시카는 마음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되었을 때. 제시카는 그러했던 각오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 었는지 깨달았다.
비상시국 그리고 이백여 명의 회원 들이 전부 운집한 상황이 었다. 그런데도 회의장은 이상하리만큼 정 숙한분위기였다.
제시카는 그 원인을 남편의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서 발견했다.
그 남자는 누가 보더라도 각성자였 다.
‘남아 있는 각성자가 있었어?’
“제자리를 찾아 앉아 주십시오. 권좌 의 명령입니다.”
고압적인 목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 렸다.
하나뿐인 출입문을 지키고 서 있는 또 다른 남자가 하는 말이 었다.
실내로 들어오기 전에는 벽에 가려 져 볼 수 없었는데,들어서고 나자 남 자의 손에 쥐어진 칼을 볼 수 있었다.
남편의 바로 옆에서 호위하듯이 서
있는 남자의 손에도 칼이 보란 듯이 들려 있었다.
금방이라도 칼부림이 일어날 것 같 은 분위기가 바로 정숙의 원인이었다.
제시카는 이제 중간까지 밀려난 자 신의 자리를 찾아 앉았다.
이어 소란스럽게 들어오던 다른 회 원들도 입을 다물어 버리며 자리에 앉 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두가 모였을 때였다.
권좌에서 질리언이 일어났다.
“묵념.”
그분께 바치는 묵념이자 회의의 시 작을 알리는 개회사.
회원 일동은 엄숙한 가운데 고개를 숙였다.
“그만.”
이윽고 질리언이 자리에 앉자마자 말했다.
“천공에서 일어난 현상들은 전 세계 에서 공통적으로 보인 것이었소.”
그때도 굉음이 우르릉거리며 울렸 다.
시작된 이후부터 조금의 쉼도 없었 다.
“그러니 거두절미하고 말하리다. 우 리 남은 인류도 자체적으로 전비를 갖 춰야겠소. 세 단계로 나눠 1차로 현재
군 소속의 모든 군인들을 무장시 킬 계 획이오.”
그제야 제시카는 질리언이 겁을 먹 었던 원인을 깨달았다.
정말로 남편의 목소리는 떨리면서 나왔다.
본인의 입으로 전 인류의 군인화를 지시하는 심정이 어떨지,상상은 할 수 있을지언정 공감의 영역은 아니었 다.
솔직히 제시카는 질리언이 스스로 그런 결단을 내렸다는 게 믿기지 않았 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남편이…….
가능성 높은 가정은 남편이 전대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다는 것인데.
그 가정에서도 남편은 전 인류를 불 길 속에 내던져 버리는 지시를 이행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분명 했다.
남편 또한 전 인류를 군인화시키는 데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며,지금껏 자신은 남편을 잘못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제시카는 남편이 속으로 어떻게 울 고 있을지 빤히 보였다.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어 들어가 는건 그때문이었다.
장내가 술렁였다.
서슬 퍼런 칼이 앞과 뒤에서 회원들 을 위협하고 있어도 질리언의 언사는 회원들을 혼란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어,어떤 무장을 갖춘단 말입니까. 우리의 무엇도 통하지……
“각성제를 비축해 두었소. 전 인류를 무장시키고도 남을 양으로. 명심하시 오. 불복은 용납하지 않소. 그분의 질 서하에서 특혜를 받아 온 여러분들은 물론이거니와 보호를 받아 왔던 전 인 류 역시 클럽과 운명을 함께하게 될 것이오.”
질리언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문가에 서 있던 각성자는 아예 출입 문 중앙으로 걸음을 옮겨 버티고 섰 다.
쿵!
각성자의 발걸음 소리가 굉음을 뚫 고나왔다.
실제로 각성자가 실력 행사로 바닥 을 찍어 버린 칼끝에서나 발자국에선 큰 소리가 울렸다. 주변으로는 거미줄 같은 균열을 만들어 냈다.
질리언은 테이블 밑에서 가방을 끌 어올렸다.
그는 거기에서 서류를 한 움큼 꺼내
집었다.
그러고는 권좌에서 내려와 특정된 회원들에게 서류를 건네기 시작했다.
서류에는 각 나라에 있는 창고의 위 치와 각성제 수량이 적혀 있었다.
그걸 본 회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 었다
“……우리 전 인류는 마지막 한 사람 까지 싸우다가 죽을 것이오.”
비장한 발언이 었으나.
악신이 그 거대한 신형으로 전 세상 을 짓밟기 시작하면 각성제로 무장한 들 무슨 소용이 란 말인가.
회원들의 눈동자 속에는 인류의 끝
이 제멋대로 그려졌다.
“여러분들은 이제야 어떤 보호를 받 아 왔는지 실감하는 모양이오.”
질리언은 냉소를 지을 힘조차 없었 다. 회원들에게 하는 말이자 자신 스 스로에게도 하는 말이기에,그의 눈동 자에서도 공포스럽고 고통스럽기만 할 광경이 펼쳐지는 중이었다.
“그럼 지금 바로 여러분들이 앉은 그 자리에서 준비시키오.”
제자리로 돌아온 질리언은 무너지듯 이 앉았다.
대신 그의 눈빛을 전해 받은 각성자 가 단상에서 내려와 미 대통령 앞에
서 그를 노려보았다.
미 대통령이 핸드폰을 꺼내 들 즈음 에 질리언의 당부사항이 이어졌다.
“또한 성년인 모든 국민들을 징집할 수 있도록 조치해 둬야 할 거요. 남녀 할 것 없이 성년이 된 인류는 전 부..w
그때 였다.
출입문이 부서질 듯 열리며 묵직한 소리가 난입해 들어왔다.
거기를 지키고 있던 각성자는 즉각 반격에 나서려다가,난입자의 정체를 확인하고는 황급히 물러섰다.
“한 사람의 강력한 의지는 세상을 천
국으로 만들 수 있지만,그에게는 지 옥이 될 수 있다. 지금 오딘이 치르는 싸음이 그러한 것이다.”
염마왕 조나단이 었다.
둠 카소를 처치한 순간에 이룩한 가 공할 성장 때문이 아니더라도. 원래부터 그의 눈빛에는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대상을 굴복시키는 무시 무시함이 깃들어 있었다.
가뜩이나 비장함까지 얽혀 있었다. 그에게 질문을 하기는커녕 눈을 마
주칠 수 있는 이조차 없었다.
“최후의 장은 너희들이 인지하지 못 한 사이에 말엽으로 치달았다. 나는 거기서 돌아왔다.”
질리언이 황급히 권좌에서 일어섰으 나 조나단은 거기에 앉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질리언을 스쳐 지나가 창가에 섰다.
“여기에선안 보이는군.”
그가 회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둠 카오스와 썬의 싸움을 육안으로 쫓고 있는 한편,그의 머릿속에선 직 전에 들은 마리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
“모든 빛기둥을 파괴해야 하는 건 아닐 거야. 틀림없이 힘의 우위가 나눠지는 기 점이 있을 테고 난 우리가 그 순간을 지나 왔다고 생각해. 그러니까 부탁해. 본토에 서 선후를 기다려 줘‘ 선후에겐 네가 필요 할 거야. 너도 선후가 이기리라 믿고 있잖 아. 나머진 우리에게 맡기고. ”
오버로드 구간에 진입한 순간, 어렴 풋이 느낄 수 있었던 초월자들의 세상 은 보다 선명해졌다.
그를 두렵게 만든 점은 그러한 깨달 음에서 왔다.
빛기둥이 수없이 파괴되는 동안에도 이어져 온 썬과 둠 카오스의 전쟁.
그러니 썬의 승리가 가까워진 것은 이제 믿음이 아니라 합리적인 추론이 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에서 썬이 겪어 왔을 영원한 세월은?
그 친구의 모든 기억을 앗아가 버리 고 말 일!
자신이 누구며 왜 그러한 전쟁을 감 당해 왔었는지까지 전부를.
전 우주를 주관하는 유일 신격의 탄 생은 가히 상상을 지극히 뛰어넘어 버 리는 일이지만,그렇기 때문에라도 두
려운일이었다.
그 신격의 눈에 이 작은 차원 따위가 어떻게 비칠까. 그보다 조나단은 썬을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기가 힘들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
‘인류가 멸망한 슬픔보다 더 큰 슬픔 이겠지. 고통이겠지.’
조나단은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아려 왔다.
그는 이를 악물며 회원들에게로 몸 을 돌리며 말했다.
“다른 지역에선 포착된 게 있을 것이 다.”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지요?” “오딘과 악신.”
북미 대륙의 한 이용자가 업데이트 한 영상에는 하늘의 괴현상이 담겨 있 었다.
그것에는 타 이용자들의 영상과 차 별된 부분이 있었는데, 흑금(黑金)의 서로 다른 빛을 방출하는 뭔가가 엉켜 있다가 사라지는 새로운 현상이 포착 된 점이었다.
그 영상을 시작으로 육 대륙 각지에
서 비슷한 영상이 업데이트되고 있었 다.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범위 전체가 그러한 두 가지 색채로 물들어 있었으 며,그러한 새로운 기현상은 동시간 대에 세계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세계 전체를 타격한 공포에.
마루카 일족의 군주라 알려진 존재 의 끊임없었던 목소리도 힘을 잃어 가 던 시각.
“오딘은 우리 모두에게 공포였다. 너희 들은 그러한 존재의 보호하에 있다.”
항상 그 마루카 일족만을 비췄던 전 광판이며 모니터들 전부가 백색으로 지워지더니 모두에게 친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그때 흘러나오기 시작한 목소리가 대중들을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집 안 가족을 부둥켜안은 채,또 누군가는 멸망을 대비하여 생 필품을 구하러 다니는 중에,또 누군 가는 계엄군에 소집된 채로
“혹빛의 발광체는 눈깔의 주인이다. 우 리들에게는 악신(惡神) 둠 카오스라 불렸 던 악마.
그리고 이에 대적하는 금빛의 발광체가 우리들의 영도자 오딘이시다.
최후의 장과 오딘께서 벌이시는 싸움 역 시 끝이 머지않았으며 그 끝에는 그들의 승리가 있으리라 확실시되고 있다.
그러니 왜 우는가. 어째서 싸우는가. 무 엇을 두려 워하는가.”
조나단의 목소리는 하루가 넘도록 전 세계에 울려 퍼졌다.
그 무렵.
세계 곳곳에서 동시간 대에 발견되 었던 괴현상이 한 지역으로 고정되는 일이 일어났다. 조나단은 그 지역에 있었다.
시민들과 그들의 틈바구니 속에 끼 어 있는 취재진들은 물론,그분의 싸 움을 두 눈으로 담겠다는 클럽 회원들 까지도.
조나단은 그때 몰려드는 사람들을 막지 않았다.
사람들이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하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는 눈빛만큼은 남녀노소 신분의 구 별 없이 한 마음으로 동일한 것이었 다.
제발.
시작을 알 수 없는 영원한 전장. 거기에서 놈은 천상을,나는 지상을 장악했었던 시절이 있었다.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때 놈이 어떻 게든 결단을 내렸다면,최소한 공멸을 도모할 수 있었을 테지만 놈은 그러질 않았다.
태생부터 우리의 존재 이유는 그렇
게 달랐다.
놈을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은 절대 오 지 않을 일.
놈을 향한 이 강력한 증오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비밀로 남고 말 일.
그리하여 언젠가는 그 모든 것조차 잊어버린,완전무결(完全無缺)한 존 재가될 터.
솨•솨식•-!
비산시킨 권능 중 하나가 놈에게 작 렬했을 때 그 길이 보였다.
우리가 어디에서부터 시작됐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이제 하나는 분명해진
것이다.
비로소 놈을 속박할 수 있겠구나!
나를 움직이고 있는 유일한 원동력, 놈을 향한 그 살의가 내 권능에도 깃 들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어느 때보다 무정 한 눈을 띠고 태어났다.
병사들이 날개를 곤두세웠을 때,놈 을 속박할 수 있는 무기들이 각각의 손아귀에 쥐어졌다. 그러고는 곧장 놈 을 향해 날아갔다.
수천 쌍의 날개가 일제히 육안상의 범위를 뒤덮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새로 검은
날개 하나 보이는 게 없다.
놈이 동일한 권능으로 내게 대적해 오기란 힘이 부족한 상태.
그때부터 틈틈이 놈의 눈동자가 직 접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병사가 놈에 의해 증발되 고 말았을 때는 놈의 전신마저 드러났 다.
그리고 마침내 병사들이 모조리 도 륙된 순간.
그제야 놈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내게 솟구쳐 오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때는 늦은 것이었다.
병사들이 죽어 남긴 창들이 꿈틀거 렸다.
놈 주변 가득히 잔존하며 부유하던 그것들이 일제히 놈을 향해 창끝을 틀 며 공간을 꿰뚫어 나갔다.
그중 하나가 놈의 가슴에 적중한 순 간에서 였다.
팟!
나 역시 놈 앞으로 공간을 도약하여 놈의 가슴에 맞닿은 창대를 움켜쥐었 다.
일그러진 놈의 얼굴 하며 속박당하 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확연히 보였다. 반사적으로 창대를 움켜쥐어 온 놈의
두 주먹에서도 저항의 힘이 강력하게 전해져 온다.
본인의 상처를 보듬지 못하고 흘려 내는 기운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검게 짙었다.
혈관이 툭툭 터지듯 놈의 상처가 개 방되는데,그때에도 놈은 창이 본인의 가슴을 꿰뚫지 못하게끔 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놈이 흘려 낸 기운은 기생충처럼 움 직였다.
창대를 타고 올라온다.
그렇게 내 주먹을 쥐어뜯으며 내가 창을 놓길 바라지만 사전에 터트려 놓
은 힘이 구붓한 궤적을 그리며 놈의 등에서 터진 게,바로 그때였다.
악.
놈의 입이 벌어졌다.
쉐아아-!
놈이 아래 결계를 향해 곤두박질치 며 거기로 충돌할 때였다.
창 촉이 놈의 피부를 뚫고 들어가는 감각이 먼저, 다음으로 외마디의 비명 이 딸려 왔다.
비로소 창 촉은 놈의 육신 안에 파묻 힌 상태로 속박의 힘을 완성시켰다.
놈은 전신이 크게 튕겨 오르는 듯하 다가 금세 늘어 졌다.
하지만 기뻐하긴 아직 이른 것이었 다.
놈을 오갈 데 없이 묶어 둔 것이지, 놈의 숨통을 끊어 놓은 게 아니란 말 이다.
놈을 힘으로 짓눌러 신성을 봉인해 야한다.
그것만이 불멸의 존재를 죽일 수 있 는 유일한 방법이자 영원했던 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 아니더냐.
스르르.
놈과 내 몸에선 동시에 기운이 뿜어 져 나왔다.
흑금(黑金)의 신성이.
왔다.
놈의 힘이 부쩍 미약해졌다는 걸 느 낄 수 있었을 때 나는 내 자신을 주체 할 수 없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시작된 멸림 이 외부로까지 영향을 끼쳤다.
온몸이 떨렸다.
시야도 온통 떨리며 놈의 일그러진 얼굴을 담았다.
놈의 신격을 봉인할 저주는 그러한 떨림 속에서 시작됐다.
놈은 비명을 지르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눈빛을 했다.
그러나 강렬한 일념 따위론 어림없 다. 상황을 역전시킬 수가 없는 것이 다.
한없이 길었던 영원의 싸움.
고작 날 노려보는 것으로 그 세월들 을 반전시킬 수 있을쏘냐.
저주는 금세 놈이 뒤집어쓰고 있는 신격의 허물을 벗겨 냈다.
놈의 얼굴에서 기포가 툭툭 터졌다. 거기서 생긴 악물이 놈의 피부를 녹여 낸다.
놈은 신성이 봉인되어지는 과정에
그저 노출되어 있을 뿐,오래전부터 속박이 가해진 상태라 발버둥조차 치 질 못했다.
그러던 갑자기 였다.
파아아아앙!
공기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놈 이 아래로 쑥 꺼지는 게 아닌가.
그렇지 않아도 아래 결계는 언제 파 괴될지 모를 상태였는데, 직전에 폭발 한 저주의 힘까진 버틸 수 없었던 것 이다.
하지만 어차피 놈은 다 죽은 몸이다. 게다가 결계 아래에는 거슬리는 것들 이 몇 개 있긴 해도,나를 방해할 수
있는 수준은 되지 못했다.
과연 놈은 미동도 없는 모습으로 날 맞이했다.
신성이 봉인된 놈의 몰골은 처참했 다.
놈을 관통하고 있는 창 또한 지상에 틀어박힌 채 놈에게 여전한 속박을 가 하고 있는데,어디 속박뿐이랴.
놈이 신성으로 존재할 때에는 속박 으로 그칠 일이다만.
신성이 봉인된 지금,거기에서 발산 되는 뇌력을 버틸 능력이 없을 것이 다.
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영역에서 존
재할 수 없기 때문에라도 놈은 고통에 부릅떠진 얼굴로 멈춰 있는 게 전부였 다.
감각을 몇 단계나 짓눌렀다. 한시라 도 빨리 놈의 죽음을 보고 싶다는 충 동에 의해서였다.
시간이 평범하게 돌아간 흐름이 시 작된 그 즉시.
펑!
눈앞에서 핏물이 튀었다.
그마저도 내 얼굴로 닿기도 전에 뻘 건 가루들로 변해 산산이 흩어졌다.
영원의 끝에는 내가 남았다. 죽어라.
비로소 나는 놈의 영혼을 소멸시키 며 놈을 비웃어 줄 수 있었다.
고개가 자연스럽 게 들려졌다.
몸 안에 스며들어 온 힘에 의해서였 다. 한 호흡,한 호흡마다 내게 고스란 히 동조해 오는 그 충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충만함이 바로, 놈이 그리도 갈망 했던 힘이자 나를 유일하게 만들어 주 는 힘이다.
내 피조물들에게 영혼과 자아를 심어 주어 각 차원들을 관리케 할 것이고.
내 신격에 도전할 수 있는 새로운 탄 생들을 주시하며.
사라져야 할 것과 있어야 할 것을 구 분하게 되리라.
하지만 그때까지도 떨림이 진정되지 않은 까닭은 여전했다. 놈을 죽이고 흡수하여 유일 신성을 획득했기 때문 이 아니었다.
놈은 터져 죽어,피며 육신이며 그 무엇도 남기 지 못했다.
완전한 소멸 !
놈이 지상에 충돌하며 남긴 빈 구덩 이만이 내 유일한 기쁨인 것이다.
우려와는 달리 허무함 따윈 없었다. 놈과는 끝을 보았지만 끓어오른 전율 에는 끝이 도래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순간의 전율은 놈과 싸워 왔던 영 원보다 더 영원하리라.
놈을 죽였다.
내 위치를 찾아 돌아가기 전에 남겨 진 일이 있었다.
남아 있어서는 안 될 것들.
즉,사라져야 할 것들.
마침 그것 중 하나가 알아서 거리를 좁혀 오는 중이었다.
멀리서 이러한 외침과 함께 불길을 치솟아올리며.
“누구도 접근하지 마라! 그러한 시도 가 조금이라도 엿보인다면 모조리 다 죽여 버리겠다!”
남자는 그 자체로 보면 보잘것없었 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부활을 기다 리고 있는 자와 동류.
그러나 그 역시 우주적 깨달음을 얻
는다면 본연의 힘을 확장시켜 내게 도 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 였다.
잊혀진 나의 피조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게 도전할 수 있는 그 가능 성을 좌시할 순 없는 것이다.
제아무리 나의 안배로 태어난 피조 물일지 라도.
그를 정 리하려 던 순간.
-썬. 나다,조나단.
그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조나단.
무엇이냐!
그 세 음절이 왜 이리도 선명하게 박 혀 들어오는 것이냐!
다시 보아도 보잘것없는 능력이 허 락되 었을 뿐.
그런데도 언령(言令)과 흡사한 힘을 내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 는 일이었다.
정리하려던 힘을 거둬들였다. 이자 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조나단.
그자를 기다리며 혼자서 생각했을 때에도 날 자극시키는 뭔가가 진동해 왔는데.
조나단.
직접 그 세 음절의 이름을 불러보았 을 때에는 확실해졌다.
내 안의 깊숙한 곳에서 뭔가가 각인 되어 스스로 움직이는 것만 같았다.
깊숙한. 깊숙한. 깊숙한…… 한?
놀라서 미간이 찌푸려질 무렵 본인 을 조나단이라고 말했던 자가 앞으로 착지했다.
무정하며 사나운 이목구비를 가진 이 남자에게 무엇이 눈물을 자아냈는 지,남자의 동공에 어른거린 그것은
금방에라도 방울져 떨어질 것처럼 보 였다.
자아냈는지. 자아냈는지. 자아냈는 지……아?
“날 기억 못 해도 네 여자는 기억할 것이다. 마리,아니 넌 그녀를 우연희 라고 불렀지. 기억하나? 네 여자,우 연희를.”
우연희.
조나단이라는 이름을 입에 담아 봤 던 직 전과 동일한 자극이 었다.
“그래! 우연희 말이다.”
나를 이토록 자극시키는 그 이름의 주인이 사라져야 될 남은 하나일 수 있었다.
일 수 있었다. 일 수 있었다. 일수 있 었다…… 일?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만들어 냈던 불길 너머,여기 문명의 지성체들이 운집해 있는 광경 더 너머,어떤 특별 한구조물이 있다.
그곳에는 여기 문명에 동화되지 않 은 피조물이 좌리를 틀고 있는데 그 안으로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자가 있 다.
그쪽 방향을 특정해 물었다.
“저기에 있는 자가 우연희인 것이 냐?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자를 묻는 것이다.”
“아니. 그는 조슈아다.”
조슈아.
세 음절로 이뤄진 그 이름 또한 내 미간을 굳게 만들었다.
일은 누구냐.
남자는 당장 무엇을 묻는지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그러다 이내 한 이름이 흘러나오며, 나를 또다시 혼란으로 빠트렸다. 남자가 부쩍 힘을 준 움직임만큼이 나 강하게 부딪쳐 오는 혼란이었다. 움직임,움직임, 움직임…… 임?
“권성일!”
남자는 대뜸 소리를 높이며 기뻐하 는 기색이 역력했다.
대뜸. 대뜸. 대뜸…… 대?
또 남은 어떤 음절들이 있는지를 떠 올리다가 한 이름이 확정된 순간! 머릿속에서 다섯 개의 종소리가 울 리는 듯이 그들의 이름이 날아다녔다. 그때 불어닥친 충격은 유일했던 내
존재 이유를 달성했을 때 얻었던 희열 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그 이름들은 나를 나로 만들어 주는 마법의 주문이 었다.
완전해진 신성 안으로 그러한 이름 들이 쏟아지던 그때야말로.
내 눈은 새롭게 떠졌다.
정말로 그들의 목소리가 먼 기억을 뚫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조나단.
“공략 준비완료.”
우연희.
“준비됐어,선후야.” 조슈아.
“예. 마스터.”
권성일.
“아따,맡겨만 주쇼!”
임대한.
“위대한 오딘을 뵙습니다.”
그렇게 다섯.
“조나단. 우연희. 조슈아. 권성일. 임 대한…… 아니 이태한이었군.”
둠 카오스의 남은 힘을 거둬들이며 완전해진 신성이 무의식 저변에 깔려 있던 걸 모조리 끄집어내고 있었다.
나는 많은 이름들로 불렸다.
기억상의 시간들이 뒤죽박죽이며 현 실 세계와 정신세계에서 있었던 일에 도 구분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던 것도 제대로 짜맞춰 지더니 한순간에 완성되었다.
화악!
이 친구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무엇 때문에 눈을 글썽거리고 있는 지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다 끝났다. 이제 무엇도 우리에게 위협이 될 수 없다,조나단.”
그 역시 내 어깨에 손을 얹어 왔다.
“썬.”
그의 목소리로부터도,어깨를 두툼 하게 눌러 오는 무게감으로부터도 울 컥하는 뭔가가 순간 치밀어 오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눈시울이 뜨거워졌을지언정, 그에게서나 내게서나 눈물로 방울져 버리는 일은 없었다.
최후의 승리.
그 마지막에서 우리는 이렇게나 건 재했다.
누구 하나 잃지 않았는데 울긴 왜 운 단 말인가.
나는 손바닥의 도톰한 부위로 왼 눈
주위를 문지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조나단이 펼쳐 둔 화염옥 너머로 군 중들이 몰려 있었다.
조나단은 이 와중에서도 내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저런 장치를 준비해 둔 것이었다.
그때 간신히 형태만 남아 있는 그의 무장 상태가 눈에 들어왔다.
조나단뿐만이 아닐 것이다.
연희도 성일도 이태한도 모두 다.
수 없는 사경을 극복하며 나와 함께 이 거룩한 승리를 만들어 온 것이다.
스스로를 불살라 버린 조슈아의 희 생까지.
조나단이 물었다.
“무엇을 고민하고 있지? 최후의 전 쟁에서 승리를 거둔 지금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날로 시 간을 되돌린다면 정말로 아무 일도 일 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세계는 평범해 질 수 있다.
하지만 조나단의 말마따나 최후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건 어디까지나 이들의 숭고한 싸움이 있 어 왔기 때문이다.
최후의 장이 있기 전에서부터 지금 까지…….
그러니 이들의 싸움은 영원히 기억
되어야 할 일!
그런데 어떤 긴 세월 중에도 망각되 지 않도록,이들을 그렇게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건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둠 카오스는 유일해지겠다는 일념을 죽을 때까지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나만큼은,지금껏 고수 해 왔던 일념을 그만 손에서 놓아야 할 때였다.
내 욕심만 채울 수는 없다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두 분께
서도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조나단이 펼친 화염옥은 내가 발산 한 힘에 의해 자연히 증발되었다.
초열의 불기둥들이 증발되어 버리고 나자 군중들이 운집해 있는 광경이 고 스란히 드러났다.
그중에서도 방송용 카메라를 든 자 들과 기자들이 무리 지어 있는 곳을 특정했다.
그 앞이 내가 있을 자리였다.
저벅. 저벅.
그곳을 향해 걸음을 옮길 때마다 길 이 벌어진다.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챈 소리들.
어떤 이에게선 호흡을 삼키는 소리 로 나왔고 실제로 누군가에게선 내 또 하나의 이름인 오딘이 신음 소리처럼 흘러나와 뒤쪽으로 멀어져 갔다.
–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거냐?
– 충분히. 내 곁에 함께 서 줬으면 하는군.
그렇게 대답하며 카메라 앞에 멈춰 섰다. 카메라맨은 지금까지 스쳐 댄 군중들과 똑같은 표정으로 황급히 카 메라를 내리려 했다.
다른 카메 라들도 마찬가지 였다.
개중에는 내 이름을 중얼거리며 무 릎을 꿇으려는 이도 있었다. 그러던 것도 곧장 정 리되었다.
카메라를 내 쪽으로 고정시키며 여 기자 한 명을 특정 지었다.
여기자는 고개를 끄덕여 보인 신호 가 어떤 것인지 눈치챘다. 그러며 기 특하게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 고 싶어 했다.
“다, 당신은 누구 십니까?”
숨소리 하나 나지 않는 적막이 내려 앉은 가운데 그녀의 질문이 나왔다.
지금을 기점으로 위대한 승리의 주
역들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수천,수만,수십만 년.
인류가 지속되는 한 그 세월의 끝자 락까지 말이다.
나로부터. 나와 함께.
나는 그 말로 서두를 시작했다.
“오딘. 내가 너희들의 오딘이다.”
(21권끝)(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