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irman Kang the newcomer RAW novel - Chapter 200
제신입사원 강 회장 200화화
마지막 퍼즐(5)
“아버님, 정말 오해십니다. 이 일은 저도 모르는 일입니다.”
안색은 창백했지만 목소리는 떨리지 않는 사위를 보며 최진혁이 말했다.
“기사 올린 기자는 삼일 그룹에서 소스 받았다고 하는데, 자네는 모른다?”
“사실입니다. 전 그런 기사를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럼 사돈댁에서 했다는 건가?”
최진혁은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하는 사위를 재촉했다.
“삼일이 아니라는 말은 하지 마! 기자가 직접 말했다고. 내 앞에서.”
붉게 충혈된 장인의 눈동자를 보니 분노의 수위가 얼마나 되는지 알 것 같았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구차하지만 변명이라도 말이다.
“제가 중공업 합병으로 삼일이 찬밥 신세로 떨어지는 것 같아 제 아버지께 불평을 좀 늘어놨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그 일 때문에…….”
“화가 나서 우리 집안을 들쑤셨다? 그러면 합병은 무산될 것 같아서?”
“아무래도 그런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숙였던 고개를 들자 달라진 장인의 표정이 보였다. 분노에서 실망이다.
“자식의 허물을 부모가 대신 뒤집어쓰는 건 천륜이니 그렇다 치고…… 그런데 차 서방.”
“네, 아버님.”
“자기 허물을 부모에게 뒤집어씌우는 건 좀 비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 아버님…….”
“합병 막으려 했다면 그냥 ST 그룹 해외 비자금 정도만 해도 충분해. 그런데 그 기사엔 황 서방 이름이 계속 나와. 이건 누가 보더라도 황 서방 저격 기사야. 내 선친이나 내 딸 이름이 나온 건 좀 더 자극적으로 보이려는 기자의 의도였겠지. 자네 부친이 황 서방을 저격해? 자넨 이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고? 그걸 지금 해명이라고 하나?”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위에게 최진혁은 마지막 비수를 꽂았다.
“자네가 황 서방을 공격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 앞서 달리는 경쟁자를 따라잡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발목 잡아 쓰러뜨리는 것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내 부모와 자식을 건드리는 건 어떤 변명으로도 용서가 안 돼.”
차종만의 머릿속은 하얀 백지장이었다. 그 백지장에는 딱 하나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바로 아내인 최은경이다.
* * *
잔뜩 긴장한 아내와 함께 장인의 집에 도착했을 때, 거실에서 담소를 나누는 동서 부부를 보자 도망치고 싶었다. 하필이면…….
차종만은 가장 먼저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
“형님, 처형,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용서해 달라는 말 꺼내기도 부끄럽습니다.”
허리 숙인 차종만을 향해 강 회장이 웃었다.
“괜찮아. 기사는 금방 내려갔으니까 아무 일도 없었던 거야.”
최석경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가족 간에 이 정도 가벼운 싸움이야 어디서든 있죠. 큰 사고로 번지지 않고 해프닝으로 끝났으니 그냥 웃어넘기자고요.”
이주 큰 아량을 보이지만, 말뿐이라는 걸 안다. 이번 일은 두고두고 발목 잡을 것이다.
최은경도 눈치 빠르게 아빠 곁에 앉아 기분을 풀어 주려 아양을 떨었지만 굳어진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다.
“좋지 않은 일 때문이지만, 이렇게 모였으니 내 생각과 결심을 미리 말하겠다. 이 결심은 이번 헤프닝 때문에 한 게 아니다. 내가 회장이 되기 전부터 쭉 생각한 것이니 바뀌지 않을 거다.”
차종만은 앞으로 장인의 입에서 나올 말이 자신에게는 결코 유리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집안은 기생충이다.”
“네?”
두 딸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고 강 회장은 장인의 뜻을 이해했다.
“우리 가족은 ST 그룹이라는 숙주에서 영양분을 빨아먹으며 산다. 그 덕에 부족함도 없고, 넘치는 사치를 부릴 수 있고, 세상 눈치도 보지 않을 만큼 권력도 누린다. 이게 다 그룹이라는 든든한 방패가 있기 때문이야. 하지만 동시에 책임도 져야 한다.”
최진혁은 둘째 사위를 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숙주인 그룹을 더 크고 튼튼하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철옹성으로 키우고 지켜야 한다. 그게 우리 의무야. 세상에 대한 의무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의무다. 난 이 의무를 성실히 수행할 사람이 필요하다.”
그의 시선이 이번엔 딸들에게 향했다.
“난 내 아버지와 달라. 다 큰 자식들을 앞에 두고 누구에게 힘을 실어 줄까 고민하며 줄다리기하는 게임엔 관심 없다. 오로지 그룹에 대한 의무를 다할 수 있는 사람에게 그룹 경영권을 넘겨줄 생각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바로 석경이다.”
“아빠!”
최은경이 다급히 소리쳤지만 최진혁은 그녀를 향해 매서운 눈길만 보냈다.
“한마디라도 더 하면 지금 쫓아낼 거다. 입 닫고 들어.”
이런 무서운 표정의 아버지는 처음이라 최은경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했다.
“난 ST를 온전히 석경이에게 물려줄 거고, 석경이는 황 서방과 함께 미래를 꾸려 나가야 한다. 승계 작업 역시 일찍 시작할 생각이다. 너희들 할아버지처럼 미루고 미루는 일은 없을 거야. 그리고 차 서방.”
“네, 아버님.”
“삼일중공업은 이번 중공업 그룹 개편에서 빠질걸세. 독립 법인으로 할 테니 자네가 대표이사를 맡아. 물론 ST중공업이라는 이름은 계속 유지할 테니 걱정 말고.”
차종만은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꺼내지 못했다. 한마디라도 꺼내면 쫓아낸다는 말이 아직도 생생하다.
“중공업을 더 키우고 다른 사업 영역으로 확장하는 것도 자네 힘과 의지에 달렸어.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단 내가 아니라 자네 처형이나 동서에게 말이야. 충분한 가능성과 가치가 있다면 두 사람은 당연히 도와줄 만큼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난 믿네.”
“네, 아버님.”
“그리고 은경아.”
“네, 아빠.”
“네게도 충분한 유산을 차근차근 물려줄 생각이다. 돈과 부동산 그리고 지분이 될 거다. 단 ST 그룹의 경영권과는 관계없는 지분이야. 대신 어마어마한 사치를 부려도 부족함 없이 부유한 생활을 향유할 수 있을 정도의 자산이니 쓸데없는 짓만 하지 않으면 돼.”
여기서 쓸데없는 짓이란 계열사 하나라도 가져 보겠다며 주식이나 사 모으는 의미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최진혁은 다시 장녀 부부를 보며 말했다.
“ST 그룹과 최성 그룹을 합쳐 SC 그룹으로 새 출발 해도 좋고, 나눠서 따로 관리해도 좋다. 난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다만 하나는 명심해야 할 거다. 내가 관여하지 않는 건 너희 둘을 믿어서다. 그러니 내 믿음이 잘못된 것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도록 해라. 나 최진혁이 가장 잘한 일은 가장 훌륭한 후계자에게 그룹을 물려줬다는 것, 그런 평가를 받고 싶다.”
강 회장은 아무 말 없이 일어서서 허리만 숙였다. 이렇게 빠른 결단을 내린 장인이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사위가 장인에게 칭찬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둘째 부부는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특히 차종만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강 회장의 눈빛을 받아 내기 힘들었다. 그 눈빛은 장인이 아니라 최기석 회장의 눈빛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렇게 허무하게 끝났다는 게 원통할 뿐이다.
* * *
새로운 중공업 그룹이 탄생하고 SC중공업 지주 회사의 회장으로 강 회장이 선출되자 최성 그룹 내에서 강 회장의 위상은 확연히 달라졌다.
여전히 그룹 본부장이라는 직책으로 회장 대리를 맡고 있지만 계열사 사장과 임직원 중 단 한 명이라도 그를 대리라고 생각하는 이가 없었다. 이상재 회장의 뒤를 이은 2대 회장이라는 인식이 그룹 전체에 확고하게 뿌리내렸다.
그 증거로 어느새 계열사 사장 모두가 극존대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제 강 회장에게 반말로 편히 말하는 사람은 이상재뿐이었다.
“ST도 이미 자네 와이프에게 승계 작업 시작했으니 다 가진 거네? 어때, 최성 그룹 회장 자리도 줄까? 아니…… 그럴 필요 없나? 이미 모두가 자네를 회장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니 말이야.”
2년 만에 귀국한 이상재는 회장실에 앉은 강 회장을 보며 환히 웃었다.
“정식으로 자리 주시려고 귀국하신 거 아닙니까? 그간 경과를 보면 처음엔 일 좀 하시다가 요즘엔 아예 일 안 하시고 관광만 하시는 거 같던데요?”
“와…… 이 자식 뻔뻔한 거 좀 보게. 그래서? 내가 좀 노니까 아예 대놓고 달라는 거냐?”
“아니…… 주신다고 하셨으니 하는 말이죠. SDS 재단 이사장 자리만 남은 건데…… 원하시면 계속 이사장 하셔도 됩니다.”
“야! 내가 여기 사옥으로 들어오다가 마주친 계열사 사장이 몇 명 있는데 다들 반가워하기보다는 당황하더라. 딱 배신자의 표정이었어.”
“배신자까지는…… 심한 말 아닙니까?”
“아니긴! 충성은 너한테 하는데 갑자기 옛 보스가 등장하니 당황하는 거…… 딱 그 모습이더라니까. 내가 다시 회장 자리 앉겠다고 하면 전부 불편해할걸?”
“그래서 물러나겠다는 말씀이시죠?”
“보채지 마라. 그 자리가 보통 자리야? 다 특별한 절차가 있는 법이다.”
절차면 절차지, 특별한은 또 뭔가? 어리둥절한 강 회장의 표정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던 이상재가 벌떡 일어났다.
“가자. 특별한 절차 밟으러.”
* *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깨끗하게 관리된 봉분과 비석. 바로 자신의 육체가 묻힌 무덤 앞이니 말이 나오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상재 역시 말없이 소주 한 잔을 올렸다.
한참을 무덤만 바라보던 이상재가 조용히 입을 열었고, 그의 시선은 여전히 봉분을 향해 있었다.
“인생의 절반을 회장님을 모셨습니다.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못한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보람 있었고 즐겁기까지 했습니다. 살아 있다는 걸 느끼며 산 시간이었지요. 그리고 그 시간의 절반만큼은 회장님을 수족처럼 부리며 살았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강 회장은 입이 벌어지고 눈이 커졌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처음엔 믿을 수 없는 일이라 애써 부정했습니다. 그래도 고등 교육을 받았고 지성이라면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비과학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회…… 회장님, 지금…… 무슨 말씀…….”
강 회장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지만 이상재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손을 들어 입을 막았다.
“하지만 그런 믿을 수 없는 일을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그래야 모든 사실을 설명할 수 있었으니까요. 받아들이고 나니 편했습니다. 그러자 회장님 밑에서 보냈던 시간처럼 살아 있다고 느끼는 시간이 다시 시작됐지요. 어쩌면 더 생기 넘치는 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상재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더 즐거웠던 건 회장님을 형님처럼, 아버지처럼 모시다가 회장님을 동생처럼, 아들처럼 대하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느꼈습니다. 회장님께서 절 어떤 마음으로 대하셨는지 말입니다.”
비로소 시선을 옮긴 이상재가 강 회장을 보며 씩 웃고는 다시 무덤으로 시선을 옮겼다.
“회장님의 최성 그룹이 지금 어떻게 더 크게 자라났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직접 만드신 것이나 진배없으니까요. 전 여전히 회장님을 돕는 일만 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말이죠. 그러니 이제 형식적으로나마 돌려드리겠습니다. 단 한 번도 제가 가진 적이 없었으니 이건 단지 형식과 절차일 뿐입니다. 다만 저도 최성이라는 나무가 자라는 데 필요한 자양분 역할이었다는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합니다. 적어도 제가 태어나서 살아온 흔적을 새길 수 있어서 말입니다.”
갑자기 이상재가 돌아섰다. 그리고 강 회장을 정면에서 바라보며 말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도 그 수고를 계속하시겠지만 전 이만 쉬겠습니다. 단 한 번만 사는 사람은 늙어 버린 육체가 쉬라고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하니까요.”
천천히 허리까지 숙인 이상재는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강 회장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할 때 이상재는 허리를 펴고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됐다. 이게 내가 꼭 해야만 하는 특별한 절차였어. 속이 다 시원하다. 하하.”
큰 웃음을 터뜨린 이상재가 말했다.
“이제 남은 일을 처리해야지. 재단 이사장 자리와 그룹 회장 자리 넘기는 거 말이다.”
이상재는 여전히 멍하니 서 있는 강 회장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내려가자.”
강 회장은 천천히 옮기는 이상재의 발걸음에 맞춰 걷다가 천천히 팔을 들어 이상재의 어깨에 똑같이 올렸다.
“어깨동무는 친구끼리 하는 행동이죠.”
“그렇긴 한데, 어른들이 하기에는 좀 닭살 돋지 않냐?”
두 사람은 슬그머니 어깨를 풀었고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강용호 회장의 무덤 위를 맴돌았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