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63
163화
“후…….”
성지훈이 나카모토의 이름을 내뱉고 난 후, 심호흡을 하며 연기를 마쳤다.
옆에서 단원들이 눈을 끔뻑이며 이제 끝난 거냐고 속닥거렸다.
그 속닥거림 속에 나는 오로지 성지훈의 생각이 궁금했다.
“지훈이 형. 방금 건 어땠어?”
“어, 어?”
“아니, 형이 처음 들어보는 대사인데, 어떻게 받아친 거야?”
나는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고개까지 옆으로 갸웃 기울이며 물었다.
성지훈은 아…… 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야, 네 표정과 목소리 톤, 그리고 감정이 강기동이었잖아. 화내는 거 같았어.”
기다리고 있었던 대답에 내가 씨익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치? 대사가 달라도 역시 같은 의미로 전달되지? 형은 지금 영어로 내 말을 알아듣고 대답한 게 아니야.”
뿌듯한 마음에 웃으면서 말하자, 성지훈이 무언가를 깨달은 듯이 눈이 커다래졌다.
방금 전, 일본어로 대사를 하는 데 관객들에게 하나도 전달이 안 되면 어떡하냐고 물었던 우려.
그 고민에 대한 대답이 방금 자신의 입에서 흘러나왔으니 말이다.
대사를 못 알아들었음에도, 강기동의 의미가 나카모토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성지훈의 연기도, 일본어를 모르는 관객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 감정, 표정, 목소리로 그 의미를 전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연기니까.
나는 말로 설명하는 게 아니라, 성지훈이 직접 느낄 수 있게끔 연기로 알려준 것이다.
말로 백날 들어봤자 직접 경험해본 것만큼 절절하게 다가오지 않을 테니까.
다행히 성지훈은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한 번에 잘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렇구나, 그랬어.”
성지훈은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리다가 이내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왜 이래.
나는 당황해서 살살 손을 빼려고 했는데, 흥분한 성지훈의 힘은 아주 대단해서 뺄 수가 없었다.
“너, 너…! 진짜 대단해. 대단하다, 시우야!”
깨달음을 얻은 성지훈이 한껏 상기된 목소리로 나에게 마구 말을 던졌다.
처음 연습실에 들어왔을 때와는 묘하게 톤이 달라졌다.
“솔직히 내가 말이야, 어? 시우 네가 극본을 쓴다고 했을 때 가지가지 한다고 조금 생각했거든? 그런데 극본 내용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진짜…… 넌 천재인 거 같아!”
칭찬이야, 욕이야.
하나만 하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성지훈에게 꼭 잡힌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는 잔뜩 흥분한 성지훈의 손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멍하니 있었다.
이제야 정말 모든 의문이 풀렸다는 듯 시원하다는 말투.
거기에 동경이 한 스푼 정도 포함된 어투였다.
“나, 열심히 할게! 나카모토 표정하고, 몸짓도 더 연습할게. 그러면 관객들이 더 나카모토가 어떤 아이인지 알 수 있겠지! 시우야, 알겠지? 마구마구 알려줘야 해?”
“……어, 어.”
순간적으로 남연수를 뽑을 걸 그랬나, 1초 정도 고민되었다.
이거 엄청 귀찮은 인재를 들인 것 같은데…….
내가 회의감을 느낄 무렵, 강용휘가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어이, 어이. 꼬맹이들. 연출은 나거든?”
역시 어른은 다르다.
성지훈의 엄청난 손아귀 힘으로부터 강용휘가 나를 구해주었다.
나는 얼른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성지훈, 마음에 드는 태도다. 그런 거라면 나한테 말했어야지. 세상 누구보다 혹독하게 굴려줄 테니 걱정하지 마. ”
“에…… 네?”
좋아, 믿는다. 강 감독!
나는 강용휘만 믿겠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빙긋 웃는 강용휘의 미소에 어째 사악한 기운이 감돌았다.
***
“시우야, 여기 두 사람의 다툼 톤은 어느 정도로 생각하고 썼어?”
“여기 음식은 어느 정도로 더러울까?”
“나카모토 집은 얼마나 으리으리해? 강기동 동네에서 어디쯤 있을까?”
“…….”
짧은 쉬는 시간이 끝나고, 대본 리딩과 미팅이 이어졌다.
나카모토 팀의 연습 시간이 길어질수록 성지훈이 내게 심각하게 충성심을 보였다.
이러다 곧 꼬리라도 흔들 기세네.
“하아…….”
하지만, 어쩌랴.
결국 내 손으로 뽑은 인재인데.
나는 내가 대답할 건 대답하고, 대충 연출가에게 가서 물어보라고 강용휘에게 성지훈을 등 떠밀었다.
뭔가 전에 봤을 때보다 성지훈이 묘하게 들떠 있는 것 같긴 했다.
생각해 보면 나카모토 역에 남연수가 떨어지고 자신이 붙은 것 자체도 큰 플러스 요인일 것이다.
원래부터 성지훈은 남연수를 엄청난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던 아이였으니.
하지만…… 오늘 연습을 하기 전까지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시우야!”
“…….”
귀소본능이라도 있는 것처럼 성지훈이 내게 돌아왔다.
겨우 강용휘에게 보내놨더니…….
강기동을 맡는 배우의 의견이 궁금하다나?
“시우야, 이건 어때? 흠흠, 우리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 줄은 알아?!”
다짜고짜 나카모토의 대사를 뱉은 성지훈이 무언가를 원하는 부담스러운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
뭘 원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내가 가만히 있으려니 성지훈이 나서서 신나게 물어왔다.
“방금 이 톤은 어때? 그리고, 이 장면에서 내가 동선을 생각해봤는데, 나카모토랑 강기동이 나란히 앉기 전, 이런 식으로 움직이면 어떨 것 같아?”
“……어어.”
대본을 얼마나 열심히 읽은 건지, 거의 달달 외운 수준이었다.
오늘 겨우 연습 첫날인데 생각해 온 건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마치 남자 강수정을 보는 듯하다.
약간 귀찮은 한편, 새삼 감회가 새롭기도 했다.
RUN 한국 공연에서 만났을 때, 내 어깨를 밀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렇게 사람이 딴판이 되다니.
역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배우는 연기로 다루는 게 맞나 보다.
“거기서는 이런 식으로 손동작을 곁들이는 게 좋지 않을까? 대사를 보면…….”
“오오! 좋은 거 같아. 잠시만, 나 메모 좀 해놓을게.”
나와 성지훈이 머리를 맞대고 앉아서 상의를 하고 있자, 다른 단원들도 각자 생각해온 캐릭터 분석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이 순사1이 전형적인 일본 사상에 물든 사람 같은데, 어때? 이다음 장면을 보면 그게 더 확실히 드러나는 것 같단 말이지.”
“맞아. 그렇게 보는 게 좋은 것 같아. 여기서 이 순사2는 순사1을 말리는 장면에서 조금의 죄책감을 가지고, 인간성을 드러내는 인물이라 대비될 수 있을 것 같고.”
그리고 강용휘는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단원들의 모든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취합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금 해석 좋은 것 같네. 순사2는 인간성을 가진 사람이라고 상정하면, 같은 ‘순사’라는 조연이라도 다양한 캐릭터가 부여되니까.”
“맞아요. 그럼 관객들도 재밌을 것 같아요.”
신기하다.
내 머릿속에서만 살아 숨 쉬던 스토리인데.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내 극본을 보고, 분석하고,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니.
적극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단원들을 보며 뿌듯하게 웃었다.
강용휘는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머리를 한번 헝클어주더니 말했다.
“끝나고 얘기 좀 하시죠, 작가님.”
“넵. 강 감독님.”
***
“으음, 오늘 연습을 보면서 느낀 건데요. 이 극이 아무리 한국에서 공연되는 거라지만, 너무 편파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조금 우려돼요.”
나는 대본 리딩이 한 차례 끝나고 나서, 강용휘와 둘이 연습실에 남았다.
이제부터 나는 강기동 역할을 맡은 배우가 아니었다.
그리고 마냥 를 창작한 극본가로 존재해서도 안 되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드라마 트루기로서 강용휘와 방금 전 있었던 대본 리딩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이 공연의 작가이기도 하지만, 드라마 트루기로 함께 하겠다고 했으니 맡은 바 소임을 다해야 했다.
내 극본은 더 이상 공모전만을 문을 꽉 닫고 써내려가기만 한 글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완벽한 공연이 되기 위해서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연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대본부터 조선인의 비극에 너무 초점을 맞춰서 그런가. 배우들 톤도 지나치게 편파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 시대의 비극을 안 떠올리고 연습에 임하기는 힘들지.”
강용휘 역시 비슷한 느낌을 받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 혼자서 극본을 쓸 때는 강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막상 배우들의 해석과 그들이 연기하는 걸 짧게나마 직접 보니 든 생각이었다.
“너무 그 비극에만 초점을 맞추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와전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내가 연출적인 측면에서 균형을 잘 잡아보지. 최대한 덜어내고 디렉팅도 그런 쪽으로…….”
연출로 뭘 할 수 있을지 궁리하는 강용휘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얼른 덧붙였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세요. 대본을 수정하는 게 좋을 것 같으면 같이 수정해봐요.”
“그래. 알았다. 시우 네 말을 듣고 보니 약자였던 국가가 만드는 극인 만큼 오히려 덤덤하게 전하는 것이 더 큰 비극으로 다가올 것 같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정확하고 빠르게 캐치한 강용휘가 극본 한 귀퉁이에 메모를 했다.
그 역시 그렇게 느꼈다니 다행이었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주억거리고 있는데, 메모를 마친 강용휘가 신기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다.
“그런데 너는…… 네가 쓴 극인데도 그런 생각이 드냐?”
“헤헤, 좋은 공연을 만들고 싶어서 그런가 봐요.”
“참…… 대단하네. 나는 오히려 내가 써서 그런가? 라는 의심이 자꾸 들어서 빠른 판단을 내리지 못할 때가 더 많아.”
“아, 그거 뭔지 알아요.”
“아는 놈이 이렇게 똘똘하게 연습 첫날에 말하냐? 거참, 신기한 놈일세.”
강용휘 역시 직접 극을 쓰고 올리는 같은 처지에서 내 말에 공감해 주었다.
나 역시 그럴 때가 있었지.
그러나 아마 나는 전생에 혼자 쓰고 혼자 몇 번이고 수정했던 그 습관이 남아서 가능한 것일 테다.
이토록 내 극본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비결이라면 그것뿐이 없으니.
전생에 탑에 갇혀 극본을 쓰던 나는 혼자 쓰고, 또 다른 ‘노아’가 되어 그 극을 고치곤 했으니까.
그렇지 않았더라면 정말 미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모든 경험은 다 피가 되고 살이 된다더니.
좋았으면 추억이고, 나빴으면 경험이라는 말이 절로 실감이 났다.
“너 공모전 처음 낸다는 거 거짓말이지.”
“에이. 감독님. 제 나이를 생각하세요.”
“아, 그것도 그러네. 너 아직 초등학교 1학년이지……. 너랑 알고 지낸 지도 이제 제법 되어서 가끔 네 나이를 잊는다.”
“이제 곧 2학년이라고요! 나이는 이미 9살이고! 그리고 뭐, 이번에 공모전 내기 직전까지도 혼자 많이 고쳐봐서 그런 거예요.”
“흐음…… 그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다.”
희한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강용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400년 전에 10년 동안 혼자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차마, 이렇게 곧이곧대로 말할 수는 없기에 웃으면서 둘러대었다.
“제가 신기한 게 하루 이틀이에요?”
“그건 그렇긴 하다만……. 그런 말을 스스로 하는 것도 너밖에 없을 거다.”
고개를 끄덕이던 강용휘가 멈칫하더니 나를 흐린 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모습에 나는 아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이렇게 편하게 미팅을 한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어떤 식으로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어주는 강용휘가 있어서 참 편하기도 했다.
건물이 새로 세워지고 함께하는 단원들이 바뀌어도, 이곳이 비상철또 777이어서 그런가.
마치 고향에라도 돌아온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