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62
162화
“나카모토 쇼타를 맡게 된 배우 성지훈입니다……!”
내 소개 다음에 줄줄이 이어진 배우들의 소개.
마지막으로 나와 함께 주연을 맡게 된 성지훈의 소개가 끝나고 우리는 곧바로 대본 리딩에 들어갔다.
“강기동과 나카모토 쇼타가 처음 만나게 되는 장면부터 해볼까. 준비되면 시작합시다.”
우리는 대형 연습실 마룻바닥에 둘러앉아 대본을 펴들었다.
강용휘의 신호로 나와 성지훈이 잠시 눈을 마주쳤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우리는 대사를 시작했다.
……엄격한 아버지 몰래 집을 빠져나왔다가 뚝방길에 떨어진 일본인 남자아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떨어지면서 다리를 다치기까지 했다.
“어쩌지…….”
일본어로 곤란하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나카모토.
어쩔 줄 몰라 하는 나카모토 앞에 강기동이 나타난다.
“야, 너 뭐하냐?”
“어, 어?”
“뭐야. 너 말 할 줄 몰라?”
“…….”
나카모토는 갑자기 나타난 또래 한국 아이의 모습에 가만히 입을 다문다.
낯선 이국 땅에 와서 마주친 외국인이 전혀 모르는 언어로 말을 걸자, 더럭 겁을 집어먹게 된 것이다.
“왜 저래.”
강기동은 길을 가다 말고 쪼그려 앉아 있는 나카모토를 이리저리 둘러본다.
그러다가 소중하게 무릎 한쪽을 부여잡고 있는 걸 보고 알아챈다.
저 아이, 아무래도 다친 모양이다.
“넌 어디서 그렇게 자빠져서 일어나지도 못하냐. 읏쌰.”
강기동은 사납게 쏘아붙인 다음에 뚝방길 아래로 훌쩍 가볍게 뛰어내린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국인 아이.
당연히 나카모토는 강기동이 뭐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는다.
“물러서! 다가오지 마!”
“뭐라는 거야.”
겁에 질려 일본어로 다가오지 말라며 나카모토가 소리치지만 강기동도 나카모토의 말을 못 알아듣기는 매한가지였다.
강기동은 개의치 않으며 훌쩍 나카모토 옆으로 와서 감싸 쥐고 있는 다리를 살피려 한다.
“어차피 못 알아들으니까 가만히 있어라잉? 보자, 다리를 다친 건가?”
“히익! 물러서라니까!”
“아잇, 거참. 목청은. 가만히 좀 있으라고! 정신 사납게스리.”
나카모토는 히익 소리를 내며 기겁하기 바쁘고, 강기동은 가만히 있으라고 재차 반복한다.
그때, 이리저리 강기동의 손길을 피하던 나카모토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뭐야, 너 배고프냐? 가지가지하네……. 일본인인 거 같은데, 굶고 다니냐.”
“……저리 가라.”
“뭐라는지 모른다고. 한국에 와 있으면 한국말 정도는 배워와야 되는 거 아니냐. 읏쌰, 자.”
강기동은 그런 나카모토에게 감자를 건넨다.
품 안에 있던 삶은 감자다.
딱히 어디에 잘 포장되어있던 건 아니라서, 이리저리 얇은 껍질이 까져 지저분해 보인다.
“……됐다. 그런 거 안 먹는다.”
“뭐하냐. 안 받냐?”
“안 먹는다, 치우라고 말했다!”
나카모토는 계속 강기동을 경계하며 안 먹는다고 도리질을 친다.
“얘 지금 이거 안 먹는다는 건가……?”
강기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감자와 나카모토를 번갈아 쳐다본다.
배가 고파서 꼬르륵거리는 마당에 왜 먹는 걸 마다한단 말인가.
그러다가 재차 자신 쪽으로 감자를 내미는 강기동의 행동에 나카모토가 감자를 든 강기동의 손을 팍 치며 말한다.
“이따위 더러운 걸 어떻게 먹냐! 내가 거지새끼인 줄 알아?”
나카모토의 행동에 강기동의 손에 들려 있던 감자가 툭 떨어져 데구르르 굴러간다.
그 모습을 보고 강기동이 나카모토를 향해 벌컥 화를 낸다.
“이 미친놈이! 야, 너 이 감자가 어떤 감자인 줄 알아? 아느냐고! 왜 먹는 걸 버려!”
갑자기 사납게 돌변해서 악을 쓰는 강기동의 모습에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나카모토가 움찔한다.
한국어를 못 알아듣는 건 물론이고, 만일 알아듣는다고 해도 가난한 조선의 남자아이에게 감자 하나의 의미가 어떤지 총독부의 자제인 나카모토가 알 리가 없다.
***
“오케이. 됐어! 여기까지.”
첫 장면을 비롯해 그 뒤의 대본 리딩도 순조롭게 흘러갔다.
강용휘의 기분 좋은 사인과 함께 1차 대본 리딩이 끝나고 모두 흥분해서 나와 성지훈의 연기를 칭찬했다.
“와, 진짜 실감 나는데?”
“그냥 읽기만 했는데도 나는 순간 연극 한 편 본 줄 알았어.”
그만큼 두 사람의 연기가 주변을 압도했다.
동료배우들은 나와 성지훈 곁에 몰려들어 엄지를 치켜세웠다.
“나도나도. 솔직히 극본만 봤을 때는 주연 두 사람이 전부 어린아이여서 괜찮을까 싶었는데… 두 사람 연기 너무 잘한다.”
“역시 한시우인가 봐.”
“지훈이도 진짜 잘한다.”
어린 배우들이 이토록 실감 나게 연기를 하니, 극이 전하고자 하는 느낌이 더 잘 와닿을 것 같다며, 동료배우들은 벌써부터 이번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나타냈다.
뒤이어 강용휘의 평이 이어졌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잘했다는 칭찬이 주를 이뤘다.
“시우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가 쓴 거라서 그런지 그냥 강기동 그 자체네.”
“저 이렇게 안 사나워요.”
나는 강용휘의 말에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한 번도 안 해본 역할을 해보고 싶기도 했고, 강기동이 이번 공연에서 해내야 하는 역할이 역할이다 보니 사나워진 것뿐이다.
내가 불퉁하게 대답하자, 강용휘가 큭큭거리며 내 머리를 헝클어트렸다.
아, 이것도 오랜만이네.
이것만큼은 별로 그립지 않았다.
다른 사람하고 다르게 강용휘는 정말 사정없이 머리를 헝클어트리니 말이다.
“크큭, 아. 지훈이 너도 연기 아주 자연스러웠다. 일본어 발음도 제법인데? 오디션 때보다 훨씬 자연스러워. 연습 열심히 했구나?”
강용휘도 놀랍다며 성지훈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안 그래도 나 역시 대본 리딩을 하며 성지훈의 일본어가 크게 늘어서 깜짝 놀랐다.
발음도 발음이고, 대사톤도 훨씬 안정되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 것이다.
“역시 애들은 뇌가 말랑말랑해서 다른 건가, 오디션 본 지 우리 얼마 안 되지 않았나? 정말 순식간에 더 좋아졌네.”
역시 젊은 게 좋은 거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강용휘한테 배우들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비상철또 777에 있던 배우들이라 그런지 강용휘와 아주 친근했다.
“감독님, 그게 나이 때문일까요?”
“뭐? 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으하하하!”
그 두 명이 나서서 분위기를 풀어주자 다른 배우들도 강용휘를 편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연습실 분위기가 흘러가는데, 성지훈의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왜 그래? 뭐 문제 있어?”
나는 슬쩍 성지훈의 곁으로 가서 물었다.
그러자 대본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던 성지훈이 조심스럽게 입을 떼었다.
“근데 내가 일본어로 대사를 하는데 이게 관객들에게 전달이 될까?”
“아, 그건…….”
성지훈의 말에 나는 강용휘를 바라보았다.
생각해보니 아직 단원들에게 그걸 공지 안 한 게 생각이 난 것이다.
“아아, 여러분. 내가 이걸 말 안 했네. 잠시만 주목!”
내 눈빛을 받고 강용휘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카모토를 비롯해서 우리 연극에 일본어 대사가 꽤 나오는 편이잖아? 본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비상철또 777 건물이 이번에 새로 지어져서 극장 설비가 잘 갖춰졌어요. 아주 훌륭하다고. 그래서 이번 공연에서는 무대 양옆에 설치된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자막이 뜰 예정이다.”
“오오-”
“대박, 영화 같네요?”
배우들은 처음 접해보는 형식의 공연이라 흥분해서 들뜬 마음을 나타냈다.
성지훈 역시 놀라서 강용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런 식으로 처리할 거구나.”
“응. 마침 비상철또 777 극장이 새로 지어져서 다행이지 뭐야.”
약간 밝아진 표정의 성지훈을 보고 나는 볼을 긁적이다가 강용휘를 불렀다.
“감독님. 마저 말해줘야죠.”
“이제 하려고 했어. 그리고! 하나 주의할 점이 있다. 일본어 대사가 나오는 장면에 자막이 달릴 거지만, 유일하게 강기동과 나카모토 쇼타가 처음 만나는 장면은 자막을 안 내보낼 생각이다. 관객들에게 조금 더 몰입감을 주기 위해서 말이지.”
“네?”
이어진 강용휘의 말에 성지훈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나는 어쩔까 하다가 성지훈이 펼쳐둔 대본을 바라보았다.
방금 우리 두 사람이 했던 첫 만남 장면이었다.
“Hey, Pick up the potato.”
“어……?”
나는 불시에 그 장면의 대사를 내뱉었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갑작스러운 내 말에 성지훈과 강용휘, 단원들이 놀라서 이쪽을 쳐다보았다.
“뭐야, 우리 팀 왜 이렇게 글로벌해.”
“갑자기 영어로 대사를 한다고……?”
주위 반응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강기동이 된 나는 눈썹을 들어 올리며 성지훈, 나카모토만을 바라보며 삐딱하게 영어로 말했다.
“뭐하냐, 감자 주우라고.”
“……어, 어?”
성지훈은 어떻게 할 줄 모르겠다는 듯이 나와 강용휘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찬가지로 당황한 강용휘가 나를 멀거니 보더니, 성지훈에게 눈짓했다.
“저거, 강기동 대사 같은데?”
“네, 그러네요….”
잠시 주저하던 성지훈이 이내 숨을 한번 내쉬더니 집중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는,
“뭐, 뭐라는 거냐…!”
금세 나카모토가 되어서 뭐라고 하는 거냐고 일본어로 되받아쳤다.
옳거니, 그거지.
나는 속으로 씨익 웃으며 대사를 내뱉었다.
여전히 영어로, 있는 대로 인상을 쓰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부모 욕만큼 나쁜 게 없는데 말이야. 넌 지금 네 부모 욕을 먹어도 싸다, 싸. 네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냐? 다른 사람이 힘들게 농사지은 감자를 바닥에 버리라고? 엉? 개호로잡놈의 새끼. 음식 버리는 놈들은 싹 다 지옥으로 가야 돼.”
한쪽 발을 쾅쾅 구르면서 쏟아지는 영어 대사에 성지훈, 아니 나카모토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말에, 영어로 된 대사.
내가 말도 빠르게 했으니, 성지훈이 알아들을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대충 이게 엄청나게 화를 내고 있는 대사라는 건 알 수 있을 것이다.
표정도, 대사 톤, 거기에 떨리는 목소리까지.
감정을 실컷 담았으니 성지훈에게도 그 감정이 닿았을 것이다.
“머, 먹으면 되잖아. 먹으면…….”
내가 쏟아내는 대사를 듣고 있던 성지훈이 여전히 나카모토의 모습으로 답했다.
오, 제법인데.
훌륭하게도 이 상황에 일본어로 받아치기까지 하다니.
대본에 없는 대사인데, 성지훈이 일본어를 정말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나카모토가 깨작깨작 감자를 먹는 시늉까지 완수했다.
그걸 보고 나도 만족해서 감자를 먹는 나카모토를 지켜봤다.
“맛있냐?”
“…….”
나는 감자를 먹는 나카모토를 멀뚱히 지켜보다가 말했다.
“내 이름은 강기동이다. 네 이름은 뭐냐?”
이건 대본에 있는 대사였다.
물론 영어로 바꿔서 뱉기는 했지만.
그래서 그런지 ‘강기동’이라는 단어만 알아들었을 성지훈이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야, 사람이 말을 하잖아. 내 이름은 강기동이라고. 강기동. 네놈 이름이 뭐냐고.”
“아…… 강기동…….”
그제야 이게 내 소개인 줄 알아들은 나카모토가 강기동, 강기동, 하면서 내 이름을 되뇐다.
그러다가 강기동의 눈치를 보며 감자를 한입 더 베어 문 나카모토가 슬며시 대답했다.
“쇼타다…… 나카모토 쇼타.”
아주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지만, 어쨌든 말은 통했다.
제대로 주눅이 든 연기를 하는 성지훈을 보며 나는 씨익 웃음 지었다.
이제 좀 느꼈겠지?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