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68
168화
“저번에 광고주랑 한 미팅은 어땠나?”
“네, 저희가 가져간 계약 조건을 보고 괜찮다고 하더라고요. 정리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 영화 오디션 잡히기 전에 촬영하면 좋을 것 같은데. 이미지가 바뀔 수도 있으니까.”
“제가 일정 조정해보겠습니다.”
넓고 휑한 남연수 네 집.
원목으로 만들어진 식탁에 놓인 고급스러운 식기.
남연수와 남연수의 부친 남진용, 그리고 남연수의 매니저 김성후는 함께 그의 집에서 저녁 식사 중이었다.
식사를 하면서 김성후와 남진용은 남연수의 스케줄 조정을 위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남진용은 말없이 국을 떠먹었다.
그 옆에서 남연수는 오늘따라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밥을 깨작거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평소 그가 좋아하는 달달하게 볶아진 멸치볶음과 삼삼하게 간을 한 불고기가 있었지만, 남연수는 웬일인지 반찬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있었다.
“다음은 영화를 염두에 두고 계시죠? 제가 소속사 측과 상의해서 섭외 들어온 시나리오 리스트 정리해서 올리겠습니다.”
“그래. 그럼 그렇게 하고.”
남진용은 김성후의 보고에 알겠다는 듯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한 식탁의 눈치를 보던 김성후가 남진용을 향해 엄지를 척 치켜들었다.
“하하, 역시 피디님 요리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니까요. 오늘도 참 맛있습니다.”
“애 입맛에 맞춰서 먹을 게 없지는 않은가 모르겠군.”
별 악의 없이 덤덤하게 나온 말에 남연수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국조차도 간이 세지 않고 매운맛이 들어가지 않은 식단이었다.
평소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깥 음식을 많이 먹는 남연수를 알기에 남진용은 항상 집밥은 간을 삼삼하게 하는 편이기도 했다.
김성후는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었다.
“아아니, 그럴 리가요. 너무 맛있습니다. 밖에서 사 먹는 음식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하하, 하하하.”
“크흠, 그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맛있으면 더 먹고 가기나 하게.”
계속되는 김성후의 칭찬에 남진용은 남부끄러워졌는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딴청을 피웠다.
김성후는 반찬을 집어 먹으면서 남연수에게 눈짓을 했다.
‘지금이 기회야, 연수야! 말 걸어봐!’
남연수 역시 김성후가 지금 뭐라고 하는지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우물쭈물하며 깨작거리던 남연수는 슬쩍 남진용을 쳐다보았다.
하긴, 둘만 있을 때보다 김성후가 있는 지금 말을 꺼내는 것이 백배 천배 나을 것이 분명했다.
“저, 아빠…….”
“왜.”
남진용은 식사를 계속하며 옆에 앉은 아들은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 모습에 남연수는 절로 수그러드는 고개 탓에 국그릇에 얼굴을 박고 웅얼거렸다.
“호, 혹시 내일 시간 있으시면…….”
“남연수.”
“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배우가 왜 그렇게 발음을 웅얼거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아니나 다를까 엄한 불호령이 떨어졌다.
김성후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남연수와 남진용을 쳐다보았다.
입을 딱 다문 남연수는 김성후를 한번 흘깃 쳐다보고는 다시 남진용을 보았다.
이왕 말 꺼낸 거 지금 해버리는 게 나았다.
“그, 내일! 저랑 같이 시우 연극 보러 가실래요?”
“……뭐?”
남진용은 뜬금없이 튀어나온 아들의 말에 잠시 멈춰서 말이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남연수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제 부친을 쳐다보았다.
“너…… 방금 김 매니저랑 나랑 스케줄 정리하는 걸 듣고도 그런 말이 나와?! 어디서 놀 생각만 가득해서는!”
“……윽.”
“헛소리하지 말고 밥이나 먹거라. 다 먹으면 얼른 방에 들어가서 오디션 준비나 해.”
“……네.”
이럴 줄은 알았지만, 역시나였다.
남진용에게 거절당한 남연수는 하릴없이 밥을 깨작거리다가 조심히 식탁에서 먼저 일어났다.
“……먼저 일어날게요. 잘 먹었습니다.”
남연수의 밥공기에는 밥이 반이나 남아 있었다.
“그래. 오디션 곧 잡힐 테니까. 내가 어제 내준 과제를 중점적으로 한다고 생각해라.”
“……네.”
남연수는 평소처럼 돌아온 남진용의 말에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여기서 더 말을 못 꺼내는 이유도 있었다.
이러다가 혹여, 자신이 최근에 한 오디션을 봤다가 떨어진 걸 알면 어떤 불호령이 떨어질지 몰랐다.
꼬리가 밟힐세라 남연수는 후다다닥 방으로 들어갔다.
탁.
풀이 죽어 방으로 돌아간 남연수를 지켜본 김성후는 남연수의 방문이 닫히자 할 말이 있는 듯 조심스레 남진용을 불렀다.
“저, PD님.”
“왜 그런가.”
원래 김성후는 남연수의 매니저 일을 하면서 남진용을 알게 된 것이 아니었다.
한 예능 프로그램의 막내로 방송국에 들어갔던 김성후는 거기서 남진용을 만났다.
거기서 타고난 재능은 없지만 성실함이 눈에 띄어 남연수의 매니저를 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매니저는 잘 알고 있었다.
남진용이 처음부터 이런 사람은 아니었다는 것을.
모든 방송국 후배들이 존경하고 따르던 남 PD가 변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바로, 남연수의 엄마가 떠난 날.
그때부터 남진용은 어딘가 이상해졌다.
원래도 엄하긴 엄하고, 살가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속은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요즘의 남진용을 보다 보면 과거의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이 이런 것일까.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독처럼.
늘 무언가를 갈망하고,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의 공허한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싶지만…….
그렇다고 매번 모른 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대로는 어른의 사정을 제대로 모른 채 휘둘리기만 하는 남연수가 너무 가엽기도 하고 말이다.
김성후는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었다.
이게 너무 섣부른 참견은 아닐까.
하지만, 한시우의 연극을 보고 딱 굳어버린 남연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거기에 꼭 아버지와 함께 이 공연을 보러 오라고 했다던 한시우의 말도.
어린아이들이 만든 기회였다.
여기서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손만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김성후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서 입을 뗐다.
“곧 있으면, 사모님 기일이지 않습니까…….”
김성후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진용이 손이 멈췄다.
꺼내면 안 되는 이야기인 것을 알지만, 아이의 마음을 후빌바에야 어른의 상처를 조금 들추는 것이 낫다고 생각됐다.
비상철또 777 극장에서 박수도 치지 못하고 얼어있던 남연수의 모습을 또 볼 바에야, 이게 나았다.
“…….”
“한번…… 같이 가보시죠. 연수도 이때쯤 우울해하니까 부자간에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겠습니까.”
“……으음.”
원래 여리고 다정했던 남진용이다.
남연수의 옆에 오래 있던 자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리는 없을 것이다.
남진용 역시 자신이 오래도록 존경했던 피디님.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지금은 남연수가 김성후에게는 더 아픈 손가락이다.
“연수가 이 계절이 되면 더 시무룩해 합니다. 아무래도 빈자리를 크게 느끼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럴 때 아버지이신 PD님이 조금 더 신경 써주시는 게…….”
“……그런 건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네.”
김성후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남진용이 선을 그었다.
하지만 김성후의 눈에는 보였다.
숟가락을 쥔 채 멈춰있는 그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
오늘은 마지막 공연날이다.
마지막이니만큼 비상철또 777 극장의 입구에는 기자들과 리포터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표를 구하지 못해 연극을 관람할 수는 없다고 해도 이번 연극제는 달랐다.
극장 앞에만 서 있어도 유명한 인사들이 총출동을 하고 있었으니.
요즘 기자들의 분야를 막론하고 비상철또 777 앞에 진을 치지 못해 안달이었다.
항간의 소문에 의하면 한시우의 공연 최종 리허설에는 무려 문희성과 강수정이 참석했단다.
그걸 놓친 것만 해도 이토록 분한데, 마지막 공연에 과연 누가 참석할지 초유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시우의 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은 이들은 하나같이 엄청났다.
한시우의 초대를 받은 걸로 보이는 장진홍 감독을 비롯해, 이희준, 남태룡이 왔다 갔고.
어제는 식구들이 다녀갔다.
차기작을 준비 중이라는 한유주 작가, 차일남 피디가 다른 곳에는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데 이 극장에는 발걸음을 한 것이다.
흡사 영화제를 방불케 하는 관객 라인업이었다.
거기다가 한시우 응원차 기분 좋게 대학로에 방문한 배우들은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주기까지 하니, 기삿거리가 끊이질 않았다.
“표 구하느라 정말 애먹었습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공연이었습니다. 시우야, 정말 재밌게 봤다! 고생 많았어.”
“저는 제가 티켓팅해서 온 거예요. 이번에 초대권이 너무 모자랐다나? 엄청 기대 중입니다!”
항간에서는 한시우가 자신의 파워로 표를 독점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그의 지인 한 명 한 명이 워낙 유명하니 나온 말들이었다.
그런데 이 소문은 이희준과 최태우의 인터뷰로 불식되었다.
거기에다가 유명 연예인들까지 티켓팅을 하게 만든 공연이라는 말까지 퍼져 인기가 더 커졌다.
덕분에 사소한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으려고 입구에는 기자들이 판을 치고 있는 것이다.
“설마 오늘도 오려나?”
“에이, 오늘 저녁 공연이 막공인데 오겠지.”
“그럼 3일 내내 출석 도장 찍은 거잖아. 정말 굉장하다.”
그리고 그런 기자들이 가장 기다리는 사람은 따로 있었으니.
바로 며칠째 이 공연을 보고 있는 영화계의 거장 노백찬이다.
공식 석상은 물론, 지인들과 사적인 만남조차 가지지 않는다는 노백찬이 첫날 두 번째 공연을 시작으로, 공예창의 연극제를 3일 연속으로 오고 있었다.
이 이슈를 놓칠 기자가 있을 리 없었다.
“야야, 떴다!”
“헉, 진짜?”
대학로 거리에 노백찬의 모습이 나타나자 기자들이 기다렸다는 듯 그쪽으로 몰려갔다.
“노 감독님! 이번 공예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다른 공연은 한 번씩 보신 걸로 아는데, 왜 이 공연을 삼 일 내내 오는 건가요?”
“세간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한시우와 자주 사석에서 만나신다던데, 그 소문이 사실인가요?”
기자들은 먹이를 노리는 승냥이 떼처럼 마구잡이로 질문을 던져댔다.
“이런, 늙은이에 대한 배려가 너무 없는 거 아닙니까? 하나씩 질문하시죠, 하나씩.”
노백찬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인터뷰에 응할 모습을 보이자, 기자들의 표정이 환해졌다.
잠시 잠잠해진 사이, 한 기자가 먼저 외쳤다.
“그럼 이 공연에만 세 번 오시는 이유가 따로 있습니까?”
한시우와의 관계?
이 공연의 화제성?
거장 노백찬이 인정할 정도의 연극인가?
어떤 대답이든 좋았다.
뭐든 노백찬의 대답에 따라 특종이 될 테니까.
“허허, 세상이 이렇게 공예창으로 떠들썩한데 안 올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에… 는 작품도 훌륭하고, 배우들도 연기를 잘해서 봅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한 대답.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한시우 군이 직접 쓴 극으로 직접 연기를 하는 걸 또 언제 볼 수 있겠습니까. 허허.”
이어진 그의 대답에 기자들은 깜짝 놀랐다.
노백찬이 한시우와의 친분 관계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것이나 다름없는 대답이었기에.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누구와의 관계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적이 없는 그였기에 더욱 놀라웠다.
평소와 다른 노백찬의 태도 때문일까.
건강에 대한 염려나, 최근 심경의 변화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혹시 한시우 군과 어떤 관계가 있는 건가요?”
“정식으로 후계를 양성하시는 겁니까?”
“그동안의 노 선생님께서 취해오시던 방향과 달라진 것 같은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그 질문을 근엄한 미소와 함께 가만히 듣고 있던 노백찬이 기자들에게 나지막이 한마디만을 던지고 자리에서 떠났다.
“늙은이의 변덕이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변수이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