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183
183화
“안녕하세요.”
무더운 8월 중순의 어느 날.
나와 삼촌은 CML 복도에서 땀을 식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 임수호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전보다 훨씬 밝은 표정의 임수호를 보니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수호 형! 오늘 너무 덥지 않아요?”
“오는데 안 힘드셨어요?”
나와 삼촌의 환대에 임수호가 쑥스럽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철이 시원해서요. CML 건물은 역에서 가까워서 좋네요.”
“그렇죠? 이래서 역세권이죠.”
“선우는 조금 이따가 따로 온다고 합니다. 저희 먼저 미팅룸으로 갈까요?”
삼촌의 말에 우리 둘은 그러자고 하며, 엘리베이터 홀로 향했다.
결국 임수호의 영화에 김선우의 합류까지 정식으로 결정되었다.
이 소식을 임수호에게 처음 알렸을 때, 그는 전화상으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심하게 떨면서 나에게 재차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는 김선우의 합류가 마치 꿈만 같다고 했다.
내가 주인공을 맡겠다고 했을 때도 그랬는데, 자신에게 과분한 배우를 둘이나 찍을 수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김선우에게 이 시나리오를 보여주면 그가 당연히 하겠다고 할 줄 알았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사는 집이나, 몸에 걸치는 게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김선우라는 사람이 달라질 리는 없으니까.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성격.
비상철또 777 에서부터 느꼈지만, 김선우는 그런 사람이었다.
좋게 말하면 도전 의식, 다르게 보자면 반골 기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뭐, 어쨌든 마냥 순리에 따르는 사람은 아니란 의미였다.
그렇기에 내가 한국에서 특히나 흥행하기 어렵다는 잘 쓰인 판타지 장르를 자신 있게 내밀 수 있던 거고 말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시나리오에, 그것도 나랑 같이하자고 하면 좋다고 할 줄 알았다.
“시우야!”
“응? 오, 연수 형.”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내가 뒤를 돌아 아는 체를 했다.
옆에서 헉,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 남연수다…….”
임수호는 신기하다는 듯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남연수를 바라보았다.
이제 막 이쪽으로 달려온 남연수는 나를 보며 활짝 웃었다.
“우와, 시우 너는 여기 어쩐 일이야? 오디션 안 본다고 해서 내가 얼마나 놀랐는데!”
“아, 공 감독님 오디션도 여기구나. 잘 봤어?”
내 질문에 남연수는 환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대답했다.
“으응, 그럭저럭?”
“표정은 엄청 좋은데, 뭘.”
마침 오늘은 내가 원래 보려던 공승조 감독의 신작 영화 오디션 날이었다.
남연수도 이곳에서 오디션을 본 모양이었다.
“히히, 사실 나 자신 있어. 좀 잘 본 거 같아.”
“나 없으면 당연히 형이 되겠지.”
“우와, 한시우 자신감 봐. 하긴, 근데 나도 시우 네가 안 본다는 소식 듣고 조금 안심하긴 했는데… 히히, 그래도 이번 역할은 시우 네가 왔어도 내가 이겼을걸?”
“오호. 준비 열심히 했나 보네.”
남연수는 평소보다 더 쾌활하고 자신감 넘쳐 보였다.
아빠가 한 달 쉬게 해준 게 컸나?
컨디션이 유독 좋아 보인다.
어쩌면 정말 이번에 남연수와 내가 붙었으면 내가 안 됐을 수도…….
“응! 아, 동욱 삼촌 안녕하세요.”
“응, 연수도 안녕.”
“그리고, 어…… 안녕하세요.”
남연수는 임수호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공손히 인사를 했다.
“아, 이쪽은 임수호 감독님이라고. 이번에 나랑 작품 함께하실 분이야.”
사실 나는 임수호가 작가 지망생이라는 말을 하는 걸 듣고, 그가 극본가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독립 영화를 한 편 촬영한 적이 있는 조연출 출신이었다.
나는 잘 모르는 감독이지만, 한 감독 밑에서 군대 가기 전후에 조연출로 있으면서 영화를 배웠다고 한다.
그런 것 치고는 자신감이 좀 많이 없는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의 독립영화를 보니 영상미가 제법 마음에 들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걸 촬영한 게 벌써 4년도 지난 일이었으니 지금은 실력이 더 늘었을 거라는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임수호의 독립영화를 본 CML 측에서도 그가 감독을 맡는 것에 별 반기를 들지 않았다.
솔직히, 그 시점에서는 나와 김선우의 합류까지 CML이 알게 되어서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말이다.
“와, 그렇구나. 그럼 지금 그 영화 얘기하러 가는 거야?”
“응, 맞아.”
남연수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오늘은 임수호와 함께 CML에서 영화 투자 미팅이 있는 날이었다.
지금까지 따로따로 이야기가 오가기는 했지만, 감독과 주연 배우를 모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바다 엔터 측에서 중재를 해주려고 했지만, 나와 김선우가 직접 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부탁해 오늘 함께 가게 되었다.
“헤에, 재밌겠다. 무슨 스토리인지는 아직 못 알려주는 거지?”
“촬영 들어가면 조금 알려줄게.”
“조금?! 치사해!”
내가 검지와 엄지 손가락을 살짝 띄우면서 말하자, 남연수가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그러는 자기도 촬영 중인 드라마 뒷이야기 절대 먼저 말 안 해주면서 그런다.
“형도 그럴 거잖아. 개봉하면 봐.”
“으음…… 알았어. 그럼 무슨 영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우 너도 파이팅이야!”
“응. 형도 좋은 결과 있을 거야.”
해맑게 응원하고 떠나는 남연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엘리베이터를 타러 갔다.
“둘이 엄청 친한가 봐……?”
임수호는 남연수가 사라지고 내게 소곤소곤 물었다.
근데…… 묘하게 들떠 보인다.
“네, 저희 같이 드라마 찍었잖아요.”
“와, 맞다. 선인장…! 형제로 나왔지. 그때부터 계속 친한 거야? 따로 연락하고 만나기도 해?”
이럴 때 보면 임수호는 그냥 배우와 영화를 사랑하는 팬 같단 말이지.
그 뒤로도 이것저것 물어오는 임수호에게 대답하며 우리는 미팅룸으로 향했다.
***
한편, CML의 기획사무실.
이곳에서 CML 기획팀의 실세, 오재훈 팀장과 공승조 감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제 막 오디션을 다 마친 공승조가 오재훈과 잠시 이야기를 하러 이곳에 들른 것이다.
공승조 감독은 오래전부터 CML의 투자를 받아 영화를 제작한 터라 두 사람은 사이가 제법 돈독했다.
“오늘 아역 오디션은 어때요? 괜찮은 애들 좀 있던가요?”
“네. 좋았어요.”
공승조는 오재훈이 내준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며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마음에 드는 애 있으셨나 보네. 표정이 아주 밝아.”
“하하, 아시면서 그런다.”
공승조는 오재훈이 다 알면서 떠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맞았는지 오재훈은 누구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역시, 그런가요?”
“보니까 더 잘 알겠더라고요. 화면보다 실제로 연기하는 거 보니 차원이 달라서 안 뽑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솔직히, 오디션장에 들어온 남연수의 연기력은 생각 외로 훌륭했다.
또래 중에서는 더 이상 따라올 배우가 없을 거라고 생각될 정도로.
“흐음, 그럴 만도 하죠.”
오재훈은 공승조가 누구를 말하는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였다.
“아아, 한 명 더 궁금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직전에 불참한다고 밝혀서요. 아주 아쉬웠어요.”
“어? 그거 혹시 한시우 배우 맞습니까?”
오재훈이 기민하게 공승조의 속내를 알아채고 물었다.
그러자 공승조가 놀랍다는 듯이 눈이 둥그렇게 뜨고 반응했다.
“네, 맞아요. 역시 현재 아역 배우의 양대 산맥이라서 그런가. 이름이 바로 나오네.”
“그런 것도 있고……. 우연인가? 마침 이다음 미팅 때 한시우가 나오는 영화 투자 관련된 게 잡혀 있거든요.”
라고 말하면서도 오재훈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한시우가 그 영화에 출연한다는 것을 밝힐 때만 해도 놀랍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공승조 감독의 작품에 출연할 기회를 차버리면서까지 원하고 있을 줄이야.
“그래요……? 어떤 작품입니까?”
아닌 척하고 있지만, 공승조의 상체가 슬그머니 앞으로 나왔다.
내걸 미루고 하는 게 뭔지, 궁금한 눈치였다.
이에 오재훈이 공승조에게 이거라며 시놉시스를 건넸다.
“하하, 원래는 안 되는데. 공 감독님이니까 보여드리죠. 어차피 이제 이야기도 마무리 단계라서 곧 공표될 예정이거든요.”
“저도 좀 보겠습니다.”
“그럼요. 흥미로운 얘기더라고요. 이런 작품을 CML 아니면 어디서 투자하겠습니까!”
껄껄 웃는 오재훈이 삼킨 말이 있다.
사실 CML도 이 시나리오를 받으면서 들은 이름이 한시우라서 읽어본 거라는 걸.
임수호는 예전에 이 시나리오를 CML에 낸 적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영화 제작사이자, 투자자인데 이곳의 문을 두드려 보지 않았을 리 없지 않은가.
단지, 그런 식으로 우후죽순 쏟아지는 시나리오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였다.
CML에서도 하루에 수십 개씩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다 검토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니 말이다.
자랑스러운 오재훈의 말을 들으면서 공승조가 진지하게 시놉시스를 읽어보았다.
몇 분 뒤, 공승조는 헛웃음을 치며 시놉시스를 내려놓았다.
“이거… 누가 쓴 거라고요?”
그의 입가에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띠어져 있었다.
이런 작품을 쓴 놈도, 하겠다는 놈도…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
아까와는 다른 회의실.
오재훈은 앞에 놓인 서류를 꼼꼼히 검토한 뒤, 그 아래에다가 서명을 했다.
“하하, 임 감독님. 그럼 앞으로 잘해봅시다.”
그리고는 서류를 세워서 탁탁 치며 정리하더니 앞에 앉아 있는 임수호에게 악수를 건넸다.
“네, 넷!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임수호는 급하게 손을 닦고 오재훈의 손을 덥썩 잡았다.
감사하다고 연신 말하는 임수호 옆에서 김선우도 말을 보탰다.
“이로써 제작 확정이네요. 정말 잘 됐다. 재밌겠어요.”
그에 질세라 나도 방긋 웃으며 말했다.
“정말 감사해요. CML 같은 제작사가 있어 한국 문화계가 살아날 겁니다.”
능청스럽게 굿 초이스! 라고 덧붙이자, 오재훈이 으하하 크게 웃었다.
“미팅하는 내내 아홉 살이라고는 믿기지 않기는 했다만, 시우 군의 배짱이 정말 대단한 것 같네요.”
“별말씀을요.”
그런 말은 하도 많이 들어서 멀쩡했다.
“맞다. 시우 군, 꼭 묻고 싶은 게 있는데, 괜찮나요?”
“네? 물론이죠.”
이제 슬슬 떠나려고 하는데, 오재훈이 나를 불러세우더니 물었다.
“혹시 이 작품 때문에 공승조 감독 작품을 안 하는 거예요?”
“네, 맞아요.”
내가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오재훈이 골 때린다는 듯이 이마를 치며 물었다.
“하하! 이것 참. 그럼… 우리 회사에서 공 감독 작품에도 투자하는 것도 압니까?”
“당연히 알죠. 그러고 보니… 공 감독님 작품이랑 저희랑 경쟁작이네요.”
그 정도는 오늘 미팅에 오기 전에 삼촌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안 건지는 모르지만, 삼촌은 은근 이런 업계 정보에 빠삭했다.
“허어…… 신인 감독과 공승조 감독의 작품을 라이벌로 생각하는 건 시우 군 정도밖에 없을 겁니다.”
“시우가 좀 그런 면이 있죠. 그런데 그건 왜 궁금하세요?”
김선우가 웃으면서 오재훈에게 물었다.
‘공감독이 그걸 알았나.’라며 중얼거리던 오재훈이 김선우의 말에 살짝 놀라서 목을 가다듬었다.
“크흠! 아, 별 건 아니고… 공 감독이 시우 군을 한번 만나고 싶어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