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31
31화
노릇하고 고소한 냄새.
손때가 타 반질반질한 나무 테이블.
약간 어두운 듯한 조명이 은은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는 이곳.
나는 팔짱을 척 끼고 아버지 치킨집에서 가장 큰 테이블 상석에 앉아 있었다.
음, 좋아.
이제 슬슬 아버지께 부탁한 치킨이 다 나오겠군.
“우와아아.”
“많이들 먹어라? 우리 시우 친, 아니, 아니지. 동료분들이니까 아저씨가 특별히 서비스!”
달그락.
아버지에게 부탁한 치킨 다섯 마리가 드디어 다 나왔다.
고운 노란 빛이 도는 튀김옷을 입은 치킨은 막 튀겨져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났다.
바로 옆에는 달큰한 냄새가 전해지는 양념을 입은 양념치킨도 하나 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화룡점정.
아버지 특제 가루 소스가 뿌려진 얇게 썬 감자튀김도 이제 막 기름에서 건져낸 터라 따끈따끈한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내 양옆에 앉은 아역 배우들 10명은 이 광경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중 몇 명은 이제 곧이라도 침을 뚝뚝 흘릴 것만 같았다.
“이제 머글까?”
나는 그들에게 준비, 땅! 신호라도 주는 것처럼 말했다.
아이들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아버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잘 먹겠습니다!”
한목소리로 외친 아이들의 포크는 치킨한테 거의 달려들다시피 돌진했다.
몇몇은 뜨겁지도 않은지 아예 덥석 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방긋 웃으면서 덧붙였다.
“요구르트는 무한리필이니까 마음껏 먹어, 형아 누나들.”
“우물우물, 고마어, 시우야.”
“와, 진짜 맛있다······. 시우야 너는 이거 맨날 먹어?”
“우웅, 맨날은 아닌데 먹고 시프면 아빠가 해줘.”
“짱이다.”
“너무 좋겠다.”
역시 애들은 애들이었다.
먹는 것에 이렇게 약할 수가 없었다.
나는 치킨집 아들내미라는 것을 십분 활용했다.
어제 연습이 끝날 즈음에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에 가서 딱 한 마디를 던졌다.
우리 집에 가서 치킨 먹자고.
“요기 우리 집.”
나는 ‘기쁨을 드리는 빛나는 치킨!’이라고 적힌 희희치킨의 전단지를 척 내밀며 말했다.
거기에는 물론 맛깔스럽게 찍힌 후라이드 치킨이 나와 있었고 말이다.
놀랍게도 내 말에 아역 배우의 엄마들이 애들의 등을 떠밀어주었다.
물론 치킨이라는 말에 아이들은 이미 혹해 있었고.
엄마의 눈치를 보던 아이들은 가보라는 엄마의 말에 다들 내 뒤를 따라나섰다.
“흐, 흥! 치킨이나 감자튀김 같은 거 나도 많이 먹어봤다고!”
그리고 의외였던 것은 성지훈 역시 순순히 따라왔다는 것이었다.
따라와서 먹지는 않고 괜히 심술을 부리고 있다는 게 조금 꼴 보기 싫기는 했지만.
물론, 내가 준비한 것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맛있니, 얘들아?”
“네! 엄청 맛있어요!”
“제가 먹은 치킨 중 최고예요!”
“감사합니다!”
“하하, 고맙다.”
아버지는 어린아이들의 칭찬에 정말 기뻐하시며 활짝 웃었다.
그제 내가 친구들, 아니 동료들을 데려온다고 할 때부터 걱정하시더니 이제 마음이 놓이신 모양이었다.
“고마어요, 아빠.”
“많이 먹고, 필요하면 더 말하고.”
“우웅!”
나는 다정하게 말하는 아버지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따끈따끈한 치킨을 한 조각 폭 찍어서 가져와 야무지게 발라먹었다.
날 때부터 치킨집 아들이었기 때문에 치킨을 발라먹는 것에는 도가 텄다.
그냥 손에 기름을 다 묻히고 먹는 애들과 달리, 포크를 가지고 유려하게 한 조각을 뚝딱 해치운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엄마, 엄마. 그거 어디써?”
“아, 그거. 여기다가 뒀지.”
어머니는 내 말에 가게 구석에서 커다란 쇼핑백을 꺼내주셨다.
후우, 이걸 사느라 내가 지금까지 받은 출연료에서 큰돈을 썼다 이거지.
사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말하지 않고 저 돈을 모아 사려고 마음먹은 것이 따로 있었다.
무려 문희성네 집 거실에 있는 커다란 TV!
아버지한테 사달라고 하기에는 너무 비쌀 것 같아 내가 번 돈으로 사려고 벼르고 있었는데, 제대로 주연이 되기 위해 TV를 사는 건 뒤로 미루기로 했다.
“자! 모두 이것두 받아요.”
나는 아역 배우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을 한 바퀴 주욱 돌면서 선물을 나눠주었다.
어제 어머니의 손을 잡고 간 마트에서 직접 사 온 것들이었다.
장난감 판매대에 있는 아저씨가 요즘 애들이라면 환장한다는 것으로 골라준 선물들이었다.
엄마가 사주겠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내가 직접 결제해야 이 선물에 담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떤 아역 배우에게는 최신 유행하는 만화에 등장한 변신 로봇.
또 어떤 아역 배우에게는 직접 요리를 하면서 놀 수 있는 주방 놀이세트를 선물했다.
아이들의 취향을 미리 파악해 아주 제대로 저격했으니, 마음에 들지 않을 리는 없을 거다.
치킨을 먹던 아이들은 내가 무언가 꾸러미를 하나씩 주고 돌아다니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성격 급한 몇몇이 기름이 묻은 손으로 포장지를 벅벅 찢어서 벗겨냈다.
나는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려는 걸 참아냈다.
선물을 준 사람 앞에서 저렇게 예의 없는 행동이라니.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않고 무식하게 포장지를 벗겨내는 건 예의에 어긋나도 한참 어긋나는 짓이었다.
아마 저 모습을 과거, 바텐베르크 성에서 나에게 예절 수업을 가르쳐주던 크리스틴 선생이 봤더라면 정신을 잃고 쓰러졌을 것이 분명했다.
참자, 저 아이들은 귀족가 아이들이 아니고.
여기는 400년 후고.
한국이고.
아직 어리니까.
“우와!! 디아노변신로봇이다! 이거 나 갖고 싶었는데!!”
저 모습을 보고 남몰래 쌓여가던 불만은 큰 소리로 터져 나온 만족스러운 감탄사에 조금 풀어졌다.
“흐, 흠! 요즘 그게 제일 유명하다길래 내가 준비해봤어, 형아! 마음에 들어요?”
“어, 어엉!! 당연하지. 나 이거 진짜 갖고 싶었는데 엄마가 절대 안 사줬거든. 시우야 진짜 고마워.”
변신 로봇이 든 상자를 꼭 껴안은 한 아이는 거의 울 것처럼 울먹거리며 말했다.
좀, 귀엽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완전히 풀어져서 웃으며 물었다.
“히히, 덩말?”
“정말정말! 아, 시우야. 말 편하게 해. 우리 같이 공연하는 친구잖아.”
적극적인 아이의 모습에 하나둘 자신의 선물을 풀어보았다.
여자 아역 배우들도 마찬가지로 요즘 TV 선전에 나오는 장난감이라며 나에게 고마워했다.
“시우야, 우리 치킨 다 먹고 여기서 이거 같이해볼까?”
“우웅! 아빠, 괜차나요?”
“그럼. 아직 오픈하려면 시간 좀 남았으니까 놀고 가렴.”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고 해서 오늘은 원래 오픈 시간보다 일찍 열어준 거였다.
아버지는 흔쾌히 웃으며 허락하셨다.
그 말에 아이들은 신나서 장난감을 한쪽 구석에 잘 놔두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와 치킨을 뜯어먹기 시작했다.
“시우야, 너도 목 좋아해? 나는 이거 좋아하는데.”
“야, 날개 먹으면 바람 피우는 거야. 너는 그것도 모르냐? 다리가 짱이지!”
“날개 먹는다고 다 바람 피우는 거 아니거든? 시우야, 이것도 먹을 거지?”
그런데 아까와는 완전히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들은 치킨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알게 모르게 성지훈의 눈치를 보느라 나에게 말을 잘 붙이지 못했다.
이게 웬걸, 아까와 똑같은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나에게 조잘조잘 말을 거느라 바빴다.
장난감의 효과는 실로 대단했다.
딱 봐도 성지훈이 시켜서 나에게 못되게 굴던 애들인데, 내 눈이 정확했다.
역시 어린아이들이어서일까.
먹을 것과 선물 공세에 금방 풀어진 아이들은 나에게 친근하게 다가와 줬다.
이제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은 오히려 성지훈이었다.
내 쪽에 몰려서 시끌시끌한 아이들은 성지훈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아이씨, 이게 아닌데.
내 목표는 모두에게 인정받는 주연이 되는 거였다.
거기에는 나와 같은 배역에 캐스팅된 성지훈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하나 머리를 굴리는데 한 아이가 성지훈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지훈아, 너는 저거 안 풀어봐?”
“나는 저런 거 안 받아. 야, 니들 뭐냐? 이런 거 뇌물이라고 하는 거야. 막 받으면 안 돼!”
어디서 들은 건 있어 가지고.
성지훈은 얼굴이 벌게져서 바락 소리를 질렀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성지훈의 눈치를 슬며시 보면서 성지훈의 선물을 가리켰다.
“근데 네 건 좀 더 큰데······? 진짜 안 받을 거야?”
“어, 어?”
“그럼 뭔지만 보고 내 거랑 바꿔도 돼?”
어린아이다운 순진무구한 말.
그 말에 당황한 성지훈은 그건 안 된다며 결국 선물을 풀어봤다.
“우와······.”
옆에서 구경하던 아이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
선물을 풀어본 성지훈도 굳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애들한테 똑같이 준 선물하고는 달리 성지훈에게 준 건 울트라이엑스디아노변신로봇 풀세트였으니까.
선물의 정체를 확인한 성지훈의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휴, 저거 사느라 큰돈 좀 썼다.
나는 성지훈의 표정을 보고 피식 웃었다.
중심에 있는 사람이 자신을 특별하게 챙기는데, 그걸 마다할 사람은 없었다.
다른 아이들 것보다 배는 큰 상자의 위엄에 남자아이들은 우르르 그쪽으로 몰려갔다.
“우와! 형아, 그거 내 거랑 바꾸면 안 돼?”
그 상자를 본 성지훈보다 어린 아역 배우 한 명이 슬그머니 물었다.
그러자 옆에서 성지훈이 안 가지겠다고 한 말을 들은 다른 아이가 제안했다.
“아니지, 지훈이 안 가진다고 했으니까 우리가 다 가지면 되는 거 아냐?”
“어? 그러네? 그럼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가져갈까?”
와글와글.
성지훈에게 준 어마어마한 선물을 확인한 아이들은 흥분해서 마구 말을 쏟아냈다.
나는 여유롭게 감자튀김을 집어 먹으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요구르트를 하나 까서 홀짝이려는데 큰 소리가 들려왔다.
“우씨! 안돼! 이게 왜 니들 거야? 내 거야! 내가 가져갈 거야!”
“아니 아까는······.”
“내 거라고! 싫다고!”
결국 폭발한 성지훈이 애들한테 안된다며 휙휙 손짓을 했다.
안 갖겠다고 소리를 지를 때는 언제고, 그 큰 상자를 꼬옥 안고 뺏기기라도 할 것처럼 다른 아이들을 경계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흐움, 지훈이 형아 그 로봇 마음에 들어?”
“어, 어? 어어······.”
“히히, 그럼 나한테 고마워- 안 해?”
“어?”
크게 당황한 성지훈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면서 쭈뼛거렸다.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이 이번에는 성지훈에게 다가가서 말을 보탰다.
“맞아, 시우가 네 건 특별히 더 큰 걸로 줬는데 얼른 고맙다고 해.”
“우리도 다 했어.”
“시우가 오늘 선물도 주고 치킨도 사줬잖아.”
아이들은 이미 선물과 치킨으로 완벽한 내 편이 되어 있었다.
우리의 협공에 성지훈은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조그맣게 내뱉었다.
“고, 고마워······.”
“우웅? 모라고?”
“고맙다고······!”
성질내듯이 바락 감사 인사를 전한 성지훈은 선물을 안고 털썩 앉아 치킨을 깨작깨작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몇 입 먹고 맛있었는지 제대로 자리를 잡고 치킨을 베어 물기 시작했다.
훗, 넘어왔군.
우리 아버지 양념치킨이 좀 기가 막히긴 하지.
가장 까다로울 거라 생각한 성지훈마저 백기를 든 상황.
나는 다시 테이블에 둘러앉아 치킨을 먹는 아이들을 한 바퀴 휘 둘러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킨이고, 선물이고, 결국 내 진짜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리고 이제 그 진짜 목적을 꺼낼 타이밍이었다.
“흐흠, 여러분. 다들 요구르트 한번 들어보까?”
한 손에 요구르트를 든 채 나는 싱긋 웃었다.
아이들은 영문을 모른 채로 마시고 있던 요구르트를 들어 올리고 나를 멀뚱히 쳐다봤다.
“연극은 개인의 연기도 중요하지만 결국 다 같이 하는고잖아. 전부 잘 어우러질 때 진짜 재밌는 공연이야. 구치?”
여기저기서 으응, 하는 미약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래서 나눈 연습 때도 그렇고, 무대에서도 그렇고. 재밌게 했으면 좋겠어. 그래야 우리를 보는 관객들도 재밌어하지 않을까?”
내 말에 아이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끄덕였다.
“우리들 이제 괜히 징징거리는 거 관둘 나이도 됐잖아? 우리가 애도 아니구.”
어린아이에게 ‘애도 아니고’란 말만큼 자극적인 말은 없더랬다.
실제로 나도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욱하고 뭔가 올라오는 걸 느꼈었으니까.
“앞으로 잘해보자구!”
연설을 끝내고 요구르트를 한 번에 쭈욱 들이켰다.
캬, 이 맛이지.
빈 요구르트병을 탕 테이블에 내려놓자 다들 나를 따라 요구르트를 들이켰다.
시원한 얼굴로 빈 병을 내려놓은 아이들이 환한 얼굴로 재잘거린다.
“그래!”
“맞아! 우리 이제 그럴 나이 아니지!”
“우리 광화문 센터에 서는 배우들이자나!”
“다들 친하게 지내는 게 제일 좋은 거라고 선생님이 그랬어!”
잘 알아들은 거 같지?
치킨집에 들어올 때와 다른 얼굴을 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거, 참. 주인공 노릇 하기 쉽지 않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내 모습을, 어머니 아버지 역시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