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ame a mythical shepherd slave RAW novel - Chapter 492
마지막으로, 반대편을 바라보니.
누군가 꼼지락거리며 내 손을 잡는다.
“긴장해도 괜찮아. 내가··· 같이 있어줄게.”
내 귓가에 산들바람 같은 속삭임을 불어넣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신화 속에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던 그 누군가다.
나는 케브렌의 딸 오이노네의 손을 깍지끼며 천천히 배에서 내렸다.
그러자 수만의 군중이 내게 무릎 꿇었다.
트로이아.
아카이아.
크레타.
하투샤.
가나안.
아이깁토스.
바빌로니아.
문명이 존재하는 모든 땅에서 모여든 이들이 트로이아 만에 양떼처럼 모여 나를 향해 경배를 올린다.
그 무겁고도, 거룩한 침묵.
나조차도 숨을 멈추고서 그들 사이로 걸어나간다. 마치 썰물이 빠져나가듯 내가 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길을 내어주며 뭔가를 읊조린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민다.
나는 그 손들을 하나하나 잡아주며 나아간다.
익숙한 언덕을 넘는다. 눈에 익은 거리를 걷는다. 내가 지은 건물들 사이로 지나쳐간다. 그 모든 곳에서 사람들은 내게 침묵의 기도를 올리며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맙소사 창칼로 범할 수 없다는 아킬레우스다. 그 옆은 용맹한 파트로클로스겠고.”
“저기··· 그 흑사자···! 위대한 왕자!!”
“옆에 있는 건 창으로 비를 내린다는 아이네이아스인가? 간교한 오디세우스는 어딨지?”
“그 옆에는 아마존의 여왕이겠지? 디오메데스가 그 뒤쪽에 있는 사람이고?”
그 사이로 오가는 작은 속삭임들. 마치 잔잔한 호수의 수면에 일어나는 잔물결처럼 내 뒤로 따라오는 이들을 향한 우러름의 눈빛과 수런거림이 침묵을 얕게 흔든다.
“···옆에, ‘그분’의 양옆에 있는 건 누구지?”
“쉿··· ‘여왕’과 ‘근위대장’이다.”
“케브렌의 딸 오이노네? 그리고 트로이아의 테오?”
그 사이에서··· 나는 내가 바뀐 역사 위에서 찬사받게 된 이들의 이름을 듣는다. 내가 작게 웃자 테오가 고개를 젓고 이노가 얼굴을 붉히며 혀를 내민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궁전 앞 광장에 닿았을 때.
“···오라버니.”
나는 기다리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이제껏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군중이 광장 앞에 모여 있었다.
그 수만 개의 눈이, 우리를 향해 있다.
그리고 광장 한가운데 놓인 불꽃을 향해서.
그 불꽃은 나를 똑 닮았다. 내가 손짓하자 불길이 흩어지고 재가루는 하늘로 날아간다. 나는 타다 남은 장작을 넘어 카산드라를 마주보았다.
[···카산드라.]내가 부르자.
“인류의 수호자시여.
나의 알렉산드로스시여.”
카산드라가 무릎 꿇는다.
동시에 마치 파도처럼 주위의 군중들이 일제히 무릎 꿇는다. 마치 온 세상이 내려앉는 듯한 광경이었다.
거기서 느껴지는 압도감에 잠시 넋을 놓고 있자니, 카산드라가 조심스럽게 읊조리듯 말한다. 노래하듯이, 마치 신관의 무녀들이 흔히 그러하듯 거룩하게.
“이미 아시는 바이겠으나, 당신의 첫 번째 무녀가 감히 당신께 아뢰옵나이다.”
그래.
내가 잠시나마 신이 되었을 때, 이미 알아버렸다. 신의 시선이란 유기물로 된 안구와 시신경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나는 심호흡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뜬다. 그리고 카산드라가 입을 열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버린다.
“···그래.
아버지의 유언을 들으러 가지.”
***
도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다.
잠시만 밖에 물양동이를 내놔도 얼어터지는 순간이 왔을 때, 사람도 안전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동상에 걸렸다. 잿가루가 날려 도시민들의 눈을 가렸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과 아폴론 신전에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또 그만큼 많은 이들의 혼이 하데스의 왕국으로 떠났다. 그들을 매장할 땔감이 부족해 곳곳에 대강 만든 울룩불룩한 봉분이 가득했었다.
그때 프리아모스는 말했다.
살아있는 병자들은 왕궁으로 불러 치료하고, 죽어버린 자들은 광장으로 모아 자신이 쓸 기름과 땔감으로 화장하겠노라고.
그의 조치가 수많은 이들의 몸과 영혼을 살렸다.
손발이 얼었던 어린아이는 손가락을 잃는 대신 팔을 자르다 죽지 않을 수 있었고, 심장이 멈춘 듯하던 어느 노파 역시 숨을 되찾았다. 그밖에 수백 명의 죽은 백성들이 저승의 변두리에서 떠돌 뻔하던 것을 프리아모스의 덕으로 구해낼 수 있었다.
그러나 프리아모스는 자기 자신을 구해내지는 못했다. 트로이아의 왕, 물푸레나무 창의 현명한 프리아모스는···
“···스스로를, 희생하셨군요.”
나는 그의 주름투성이 손을 만지며 말했다. 그 말에 헥토르가 내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헥토르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내가 미리 언질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년을 고되게 살아온 노인은 추위를 뚫고 다니며 생자(生者)와 사자(死者)를 보살폈다. 그들이 그의 백성이기에.
그리고 세상은 그 대가로 그에게 죽음을 주려 하고 있다.
카산드라, 데이포보스, 크레우사, 헬레노스, 폴릭세네··· 그 밖의 수많은 아들딸들이 그의 침대 곁을 둘러쌌다. 그밖의 사위와 며느리와 여러 친족들 역시도.
내가 손을 놓자 그 손을 헤카베가 대신 쥐며 노왕의 이마에 맺힌 땀을 닦는다.
“희생이··· 아니었다.”
그가 무어라 목소리를 쥐어짠다. 놀랍게도 프리아모스는 이 상황에서 웃음지어 보였다.
“늙으면··· 자기가 죽을 때를 알게 된다고도 하지···. 나는 때를 알고, 거기에 맞춰서 행했을 뿐이다···. 신들께서 내게 꿈에서 속삭여주신 게야···.”
안키세스가 조용히 다가와 프리아모스의 콧잔등에 흐르는 땀을 닦는다. 안키세스의 얼굴에서 나는 한 점의 웃음기도 찾아보지 못했다.
“···감사할 일이지. 그렇잖은가, 사촌이여?”
“···.”
“나를··· 생의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즐겁게 해주게. 헤카베, 그대도 웃어주···.”
프리아모스의 미소가 깨진다. 가슴에서부터 통증이 올라오는 듯 프리아모스가 움찔거리자 안키세스가 그의 양어깨를 붙들고는 말한다.
“친애하는 주군··· 슬프게도 제가 진중한 성정을 가진지라 주군을 웃게 만들 수는 없을 듯합니다.”
안키세스와 프리아모스의 얼굴에 슬픈 미소가 일순간 교차한다. 안키세스의 눈길이 나와 헥토르를 향한다.
“대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자식들에게 그 기회를 양보해주어야겠습니다. 자, 파리스, 헥토르.”
뒤로 물러선 그는 나와 헥토르의 어깨를 감싸쥐며 침대 가까이로 데려왔다. 마치 내가 신이 된 것을 모르는 것처럼 스스럼 없었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다운 청년들이여, 나는 빠져줄 테니 그대들의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지. 나머지도 모두들 자리를 비켜주는 게 좋겠군. 그렇지 않습니까?”
···나머지도 모두들? 자식과 부인까지?
나와 헥토르가 당황하는 와중에, 프리아모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방에 있던 모두가 문 밖으로 빠져나간다. 내가 급히 카산드라의 손목을 쥐자, 그녀는 쓰게 웃으며 내 손을 놓을 뿐이었다.
그렇게 문이 닫히고.
나와 헥토르는 둘이서만 프리아모스를 마주하게 되었다.
프리아모스는 마른 기침을 몇 번 뱉으며 몸을 일으킨다. 침상이 흔들리고 그의 몸이 몇 번 요동치자 나와 헥토르가 양쪽에서 그의 상체를 부축했다.
프리아모스는 그러고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래. 파리스.”
“···예, 아버지.”
아버지.
그 말을 프리아모스에게 건네며, 이렇게 가슴 쓰라리던 적이 또 있던가.
그는 내 아버지가 맞았다.
또 다른 삶을 맞이한 내게 주어진 아버지.
원래 생의 아버지, 그리고 양치기 아겔라오스, 그리고··· 프리아모스.
그는 내 뺨을 잠시 쓰다듬더니 빙긋 웃었다.
“노인네가··· 치사한 생각이 드는구나.”
“···.”
“네가 뺨이 떨리는 걸 보니, 내가 네게··· 가족이 되었구나.”
“···.”
“걱정,,, 마라. 하데스의 왕국으로··· 떠난다 한들, 나는 기쁘다. 나는··· 커흡···.”
기침에 피가 배어 나온다.
나는 이노를 부르고 싶었다. 이노가 치료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니다.
죽음은 치료하지 못한다.
운명의 가위가 그의 실을 자르려 한다.
내 뺨을 한참 동안이나 쓰다듬고는, 이제 그는 헥토르를 바라본다.
“···내 맏아들.”
“아버···.”
“말을 이으려 애쓰지 말거라. 죽음이 자연스럽듯 슬픔도 자연스럽다. 저 불사신들조차도 눈물을 흘리는데 필멸자가 어떻게 슬픔을 피하겠느냐.”
“···.”
“파리스는 나의 아픔이자 사랑이었다면, 너는 내 자랑이었다. 너는 나였다.”
“···아버지. 저도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아버지를 제 몸처럼 여겼습니다.”
“나도 안다. 너는 나와 같으니까.”
“···.”
그리고.
프리아모스의 미소에 약간의 슬픔이 배어 나온다.
“그렇기에, 지금 네 마음에서 어떤 고뇌가 피어오를지도 알지.”
“···.”
나는 한발짝 물러서려 했다. 내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었다.
프리아모스, 그리고 그를 가장 많이 닮은 자식 헥토르.
그 두 사람의 대화였다. 마지막 대화였다.
나는 이 순간 외부자여야만 했다. 그런데···
“파리스··· 떠나지 말거라. 너는 우리의 말을··· 들어야 한다.”
프리아모스의 말이 나를 붙든다. 떠나지 못하도록.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내가 처음 보는 표정으로 눈물 흘리는 헥토르가 그곳에 있었다.
그런 헥토르의 얼굴을 두 손으로 끌어당기며 프리아모스는 말한다. 기침과 피를 토해가며 그는 말을 짜낸다.
“헥토르, 네 마음속 불안을 안다. 네 두려움을 안다. 내가 남길 것들, 앞으로 이어질 것들, 영영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네 미련을 안다.”
“···.”
“하지만, 헥토르.”
“예.”
“네가 옳다 여기는 것을 택하거라.”
“···.”
“왜냐하면, 그게 곧 내가 옳다 여기는 것이니까. 너는··· 나와 같으니까.
내가 네게 남긴 것을 짊어지거라. 그 밖에는 신경쓰지 말거라.”
거기까지 말한 뒤, 프리아모스는 상체를 다시 침대에 뉘였다. 그가 손짓하자 나는 문을 열었고, 다른 유족들··· 아니, ‘가족’들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프리아모스는 그들 모두를 보았다.
또한, 그들 가운데 선 나를 보았다.
그리고 그들 모두에게.
그러나, 분명히 시선을 내게 향한 채.
말했다.
“···사랑한다.”
그리고 문득 공기가 서늘해진다.
나는 ‘보았다’.
육신의 눈이 아니라 새로워진 영혼의 눈으로 그의 침대 곁에 다가오는 이방인을 보았다.
타나토스는 내게 천천히 고개 숙였다.
[알렉산드로스시여, 당신의 소중한 이를 데려가겠소.]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타나토스가 내 아버지의 몸에서 영혼을 불러낼 때까지.
그 영혼이 카산드라와 데이포보스와 헤카베와 헤시오네와 헬레노스에게.
헥토르에게.
내게.
뺨에 입맞춰줄 때까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가 멀리 서쪽으로 떠나간 후에야 나는 목메인 소리로 굳었던 입을 열어냈다.
“···아버지.”
아버지.
당신의 혼을 타나토스가 데려갔습니다.
머나먼 하데스의 왕국으로.
···.
안키세스가 무거운 침묵 속에서 입을 열었다.
“트로이아의 왕중왕께서, 먼 길을 떠나셨습니다.”
이건 우리에게만 하는 말이 아니었다.
프리아모스의 가장 지친했던 벗으로서, 그의 죽음을 시민 모두에게 공표하는 의식이었다.
그는 미리 약속했던 것처럼 헤카베에게 고개 숙이며 자리를 양보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헤카베가 입을 열었다.
“내 남편은··· 방금 남긴 유언 이외에 어떠한 유지도 남기지 않았음을 트로이아의 여왕으로서 보증하오.”
그리고 그 순간.
‘잠깐.’
나는 슬픔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고 충격에 빠진다.
그럴 리가 없다.
내 아버지, 프리아모스는 다정한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혈족이었다.
그리고 가족에게 다정했던 것만큼이나 훌륭한 트로이아의 왕이었다. 트로이아는 그의 삶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새로 생긴 제국에 대해 어떤 유언도 남기지 않았을 리가 없다.
당연히 프리아모스는 이 새로운 제국의 체제에 대해서, 안탄드로스의 생산력에 의지하는 불안정한 구조에 대해서 어떻게든 유고를 남겼어야만 했다.
그가 트로이아에 대한 책임을 방기했을 리가 없다.
내가 어안이 벙벙해져 있는 동안, 입을 연 것은 헤시오네였다.
“내 사랑하는 동생에게··· 애도를. 그리고, 나는 내 동생의 후계자에게 내 남은 삶 동안 충성을 맹세하겠소. 이 자리에 있는 다르다노스의 후예들, 그리고 그들의 친족들 모두가 그리 할 것이오.”
그녀의 말이 곧 가문의 총의였다. 안키세스와 헤카베가 눈물 속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헥토르에게 무릎 꿇었다.
“트로이아의 새로운 왕에게 경배를.”
이윽고 방 안의 모두가 무릎 꿇는다. 나 역시 헥토르에게 무릎 꿇는다.
“···파리스.”
그러자 헥토르가 무릎 꿇은 내 곁으로 다가온다.
“너는, 방금 아버지가 내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기억하겠지?””
“···예.”
-“헥토르, 네 마음속 불안을 안다. 네 두려움을 안다. 내가 남길 것들, 앞으로 이어질 것들, 영영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들에 대한 네 미련을 안다.”
-“네가 옳다 여기는 것을 택하거라.”
-“왜냐하면, 그게 곧 내가 옳다 여기는 것이니까. 너는··· 나와 같으니까.”
-“내가 네게 남긴 것을 짊어지거라. 그 밖에는 신경쓰지 말거라.”
모두 내게는 수수께끼 같은 말들이었다. 나는 지금 헥토르의 눈 속에서 고뇌를 읽었지만, 그것이 어떤 고뇌인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헥토르는 지금 프리아모스의 유언 집행자였다.
헥토르가 다시 내게 말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남긴 것 이외에 다른 것들은 신경쓰지 말라 하셨지?”
“···예.”
“그러니까.”
헥토르가 입을 굳게 닫는다. 그리고 침을 삼킨다.
무언가 결심을 굳힌 듯.
“이 도시 이외의 다른 것들은, 신경쓰지 말라고 하셨지.”
“···예?”
나는 순간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이해하기를 거부했다.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닌데.
당신의 것이어야 하는데.
나는 일리아스를 떠올린다. 파리스의 만행을 떠올린다. 헥토르의 슬픔과 고뇌를 떠올린다. 내가 이름 붙여준 헥토르의 아들을 떠올린다. 아스티아낙스. ‘도시의 왕’.
그건··· 그 자리는···.
“형님, 저···”
“파리스.”
그는 내 말을 막았다.
그리고 내게 고개 숙였다.
“트로이아의 새 왕이, 안탄드로스의 왕중왕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
···.
···.
나는 오랫동안 부정해왔다.
“···안키세스 님?”
“제게 존칭을 쓰지 마십시오. 누군가는 오해할 수 있습니다.”
“···.”
“다르다노스의 왕이, 안탄드로스의 왕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제 아들딸이, 그리고 그 아들딸의 아들딸까지도 당신께 충성할 것입니다.”
이런, 가능성을.
나는 원래의 파리스와 달라야 했다.
이기적인 남자. 질투심에 사로잡힌, 허영심 많고, 욕심투성이였던 남자. 나는 그런 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 모든 헌신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 이런 자리는 받아들일 수···”
“파리스.”
안키세스가 내 손목을 잡아쥔다.
그리고는 프리아모스의 몸 위에 놓여있던 왕홀을 들어 내 손에 억지로 쥐어준다.
“아마, 이번이 공공연한 자리에서 네게 마지막으로 하대하는 순간이 되겠지.”
“···.”
“내 사촌은 너를 택했다.
도망치지 말거라.”
“···.”
“···자, 가십시오. 필멸자의 아들로서 불사신 되신 분이시여, 세상이 당신을 기다리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며 안키세스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밖에는··· 수많은 장로들과 왕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왕홀을 쥔 채.
“···콜로나이의 왕이, 안탄드로스의 왕중왕에게 충성을 맹세합니다.”
“아마존의 왕이, 안탄드로스의 왕중왕에게 충성을 맹세하오.”
“이타카의 왕이, 안탄드로스의 왕중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겠소.”
“아르고스의 왕과 시민이, 안탄드로스의 왕중왕에게 충성을 서약하오.”
“하투샤의 시민들이 감히 당신께 무릎 꿇습니다.”
그러자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내게 무릎 꿇는다.
그들을 스쳐지나가며 나는 마침내 다시 광장에 나섰다.
수만의 시선이 나를 보았고.
···그때만큼 열렬한 함성을 나는 또 들어보지 못했다.
***
···
···
···
“파리스?”
언제나처럼 멍했던 내 정신을 깨운 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
내가 좋아하는 이가 부르는 내 이름.
“아, 응?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긴, 이제 어떻게 할 것 같아?”
“나?”
아주 짧은 고민.
“···고향에 가야지.”
“고향?”
“원래 사람은 출세하면 고향에 가야 해. 씁, 잠깐. 이 말 한 사람은 끝이 안 좋긴 했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무튼 고향 가면 뭐 하려고?”
“뭘 하긴? 부모님 만나야지. 장인어른도 뵙고.”
“그리고?”
“그 다음엔··· 마을 사람들 다 모아놓고 잔치라도 열어야 하나? 요정들도 오게 하자.”
“그리고 나서는?”
“그거야···.”
나는, 아겔라오스와 프리아모스의 아들 파리스는 너의, 케브렌의 딸 오이노네의 허리를 감싸안는다.
그리고 입맞추며 말한다.
“너랑 춤춰야지.”
통속적이지만.
나쁘지 않은 결말이었다.
***
***
안녕하세요, 간다왼쪽입니다. 이렇게 저희의 두 번째 소설을 완결짓게 되었습니다.
드리고 싶은 말씀도, 전하고 싶은 감사의 마음도 많이 남아있지만 아직 외전이 남아있으니 모든 것을 매듭지은 다음에 다시 후기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외전은 2024년 1월 22일 (월)에 돌아올 예정입니다! 지금까지 함께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