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55
55화
“안녕하세요!”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분주한 스텝들을 비집고 허름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의 첫 촬영일이었다.
첫 장면은 극 중 지현성(문희성)과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극 중에서 내가 맡게 된 강우주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이 장면은 아니었지만, 여러 이유 때문에 이 장면을 처음으로 촬영한다고 전해왔었다.
“어어, 시우 왔니?”
이 현장의 총책임자 차일남은 이제 나를 편하게 부르기 시작했다.
지난 한 달간 미팅이다, 대본 리딩이다 해서 하도 봤더니 꽤나 가까워졌다.
어른들 사이에서 일하는 데 괜찮을까, 걱정하는 어머니는 당연히 따라왔다.
거기다 오늘은 한 명이 더 있었다.
현장은 자신이 더 잘 안다며 삼촌도 따라붙은 것이다.
극단에 들어가기 전에는 이런 드라마 현장에 자주 왔단다.
단역 엑스트라로 오기도 하고, 아무거나 시켜도 상관없는 스태프 알바를 하러 오기도 했다고.
원래는 김상철이 스태프들에게 인사도 할 겸 함께 오려고 했는데 극단 스케줄 때문에 삼촌을 대신 보냈다.
“제가 한시우 삼촌인데요, 뭐 시키실 거 있으시면 편하게 부려 먹으세요!”
“아, 예.”
대타로 온 삼촌은 귀찮아하기는커녕, 이번 드라마 현장에 따라와서 무척이나 신나 보였다.
오히려 스태프들이 삼촌을 이상하게 쳐다볼 정도였다.
오늘의 촬영 장소는 신촌이라는 동네의 아주 오래되어 보이는 국밥집.
허름한 외관과 간판하고는 다르게 내부는 꽤나 깔끔했다.
주방과 홀도 새로 수리를 하신 건지 겉에서 본 것과는 딴판인 곳이었다.
TV로 볼때는 몰랐는데, 드라마 현장에는 스태프가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지금까지 내가 방송국에 가서 만난 건 정말 새 발의 피일 정도로 많은 인파가 가게 안팎에 모여 있었다.
낯이 익은 사람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 정도였다.
정신없는 현장에서 내 자리라며 깔아준 간이 의자에 앉아 현장을 구경했다.
이리저리 무슨 장비를 옮기는 사람에서부터 밖에 나가 차량을 통제하는 사람들.
온갖 장비를 설치하고 그걸 테스트하는 사람들로 좁은 가게 바깥에도 사람이 엄청 많았다.
어마무시하군.
어제 자기 전에 삼촌이 드라마 현장에 가서 놀라지 말라고 했는데, 무슨 뜻으로 한 말이었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때, 문희성과 그의 매니저가 현장에 도착했다.
나는 아직 모르는 스태프들과도 문희성은 안면이 있는지 그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며 내가 있는 가게 안쪽으로 들어왔다.
차일남에게 인사를 한 문희성은 곧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시우야, 잘 잤니?”
“안녕하세요.”
“네!”
“제가 샵에 들렀다 오느라고 늦었네요. 오래 기다렸니?”
“우웅. 저희도 이제 왔어요.”
어쩐지 샵에 갔다 와서 그런지 문희성은 오늘따라 훨씬 더 빛을 발하는 미모를 자랑했다.
요즘 자주 봐서 무던해졌던 어머니도 어느새 소녀가 되어서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문희성의 얼굴을 구경했다.
“처, 처음 뵙겠습니다! 저, 저는…!”
“아, 지동욱 씨 맞죠? 시우한테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문희성입니다.”
“허억, 영광입니다.”
문희성과는 처음 만나는 삼촌은 두 손을 바지에 벅벅 문질러 닦고는 문희성이 내민 손을 덥석 쥐었다.
삼촌은 말로만 듣던 문희성과의 만남에 잔뜩 긴장해서는 제대로 말도 못 했다.
“이거 하나씩 드시고 하세요. 오늘 볕이 뜨겁네요.”
그 사이, 문희성의 매니저가 스태프들 사이를 누비며 시원한 음료수를 돌리고 있었다.
이제 6월에 접어든 만큼 슬슬 더워지고 있었기에, 스태프들은 반가워하며 음료수를 받았다.
그 배우의 그 매니저라고 했던가.
문희성의 매니저 역시 서글서글하니 인상이 아주 좋았다.
“와……. 짱이다. 톱배우들은 매니저들도 엄청 뻐긴다던데. 저분은 성격 되게 좋아 보이신다.”
삼촌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내 옆으로 와서 중얼거리는 삼촌의 말에 내가 흥미를 갖고 물었다.
“진짜? 막 개싸가지야?”
“어, 특히 자기가 맡은 배우가 잘나갈수록 그렇, 아니. 잠깐. 너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냐?”
“테레비.”
나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
그 말에 삼촌은 어이가 없는지 입을 떡하니 벌렸다.
“너, 너 이씨…! 누나한테 이른다?”
“일러라? 나 TV 보는 거 이제 공부하는 거야!”
“야, 너. 그런 말 일부러 내 앞에서만 쓰지. 내가 그거 모를 줄 알아?”
와, 생각보다 눈치가 빨랐다.
몇 년 뒤에나 알 줄 알았는데.
내가 한국어를 하게 되고 삼촌 앞에서만 편하게 말했는데 그걸 이제야 깨닫다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삼촌을 쳐다봐주었다.
“…됐다. 너랑 말을 말아야지.”
“우웅. 좋은 생각이야.”
“아, 혈압 올라.”
삼촌이랑 간간이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지나가는 스태프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까 현장에 들어오면서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고개를 돌리면 새로운 사람이 있고, 또 고개를 돌리면 새로운 사람이 보였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 도착해서 인사만 삼십 분가량 한 것 같았다.
“우리 배우님들. 컨디션은 다들 어떠신가요?”
“좋아요!”
“괜찮습니다.”
“오케이. 그럼 조금만 대기할게요. 곧 스탠바이 들어갈 테니까.”
그 말에 조금 지치려던 몸이 다시 가뿐해졌다.
곧, 내 인생 첫 드라마 촬영이다.
***
내 의자에 앉아 이미 수십 번 본 대본을 가볍게 들여다봤다.
길고 긴 인사를 다 하고 온 문희성이 내 옆에 의자를 펼치고 앉아서 그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촬영할 때는 대본 안 본다더니 진짜인가 보다.
나는 너무나 집요한 시선에 결국 대본을 탁, 하고 덮었다.
“휴, 왜 그러세요 아조씨?”
“아니, 그냥. 오늘은 아무 말도 없나 해서.”
응? 대본 잘 보고 있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 기울이자 문희성이 웃으며 말해주었다.
“촬영 스케줄 말이야. 오늘 찍는 장면은 우주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아니잖아. 나야 첫 촬영을 시우 너랑 해서 좋지만. 당연히 이건 짜깁기잖아요! 이럴 줄 알았는데.”
“아.”
그 소리구나.
처음 영상 연기가 어떤 것인 줄 알았을 때, 성질이 나서 했던 말을 문희성이 기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때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 연기를 너무나도 함부로 생각하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났었지.
한 장면을 여러 번 나눠서 찍는 것도 그렇고, 극본 순서대로 흘러가지 않는 촬영 스케줄.
나는 그 부분을 콕 짚어서 이게 제대로 된 공연이 맞느냐고 물었었다.
“이제 괜찮은 거냐?”
잠시 눈을 굴리며 생각하던 나는 쌈박하게 대답했다.
“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니?”
내 대답보다 술술 흘러나온 말이 더 놀라운지 문희성은 혀를 내둘렀다.
“유명한 속담이잖아요.”
뭘 놀라냐는 듯이 어깨를 한번 으쓱이며 대답했다.
“하하, 거참. 널 보다 보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촬영의 호흡조차 모르던 애가 맞는지 모르겠다.”
“애들은 빨리 크잖아요.”
“스스로가 애인 건 아는 거지?”
문희성은 피식 웃으면서 흐트러진 내 머리칼을 살살 정돈해주었다.
여섯 살이기에 큰 분장은 하지 않고 강우주에게 맞는 의상과 머리 세팅만 간단하게 한 정도였다.
오늘 의상은 위아래 샛노란 트레이닝복이었다.
대기가 길어져서 머리가 조금 흐트러진 모양이었다.
나는 히히 웃고 말았다.
아무리 그렇게 말해봤자 속에는 아저씨가 들어있는 걸 어쩌란 말인가.
드라마 대본을 받아들고 출연을 확정했을 때 마음먹었다.
이 시대에 적응해보겠노라고.
연기를 하기 위해서라면 새로운 도전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 분! 스탠바이 하실게요.”
“네!”
스탠바이.
이제 촬영이 시작되니 준비하라는 소리였다.
나는 그린룸, 아니 백스테이지로 향하는 배우처럼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기대감에 활짝 웃었다.
***
스태프의 지시에 따라 한 테이블에 앉아서 대기했다.
문희성은 가게 밖으로 나가 대기했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강우주와 지현성이 될 준비를 마쳤다.
“그럼 씬 넘버 6! 지현성과 강우주의 첫 만남. 큐!”
차일남의 신호에 맞춰서 슬레이트 소리가 경쾌하게 울렸다.
“…….”
우주는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국밥 두 개를 멀거니 바라본다.
이제 막 나온 듯한 뚝배기에는 청국장이 먹음직스럽게 담겨 있었다.
한 그릇은 우주의 앞에.
다른 한 그릇은 텅 빈 앞자리에 놓여 있다.
드륵.
가게 문이 열리고 키가 훌쩍 커다란 남자가 한 명 들어온다.
“사장님, 여기 김치찌개 하나 주세요.”
들어오면서 주문을 마친 남자는 구석진 테이블로 휘적거리며 들어간다.
그 뒤에다 대고 우주는 작게 중얼거렸다.
“…여기는 김치찌개보다 청국장 맛집인데.”
“엉?”
안으로 들어가던 남자는 그 작은 소리를 듣고 잠시 작은 아이, 우주를 바라본다.
“사장님! 저 청국장으로 바꿔주세요!”
주방에서 네-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남자는 우주가 앉은 테이블에게 한 칸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앉는다.
아이는 자신의 말을 들어준 남자를 몰래 힐긋 쳐다본다.
곧 청국장이 빠르게 나오고 두 사람은 조용히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한다.
“후후- 후룩.”
많이 배가 고팠는지 뜨거운 찌개를 훌훌 퍼먹는 남자와는 다르게 우주는 먹는 둥 마는 둥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거린다.
한창 열심히 밥을 먹던 남자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는지 잠시 우주를 빤히 바라본다.
조그만 가게.
둘밖에 없는 손님.
그런데 저 아이는 왜 혼자 와서 뚝배기를 두 개나 시키고 이런 허름한 가게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을까?
고개를 치켜든 호기심에 남자가 아이에게 말을 건다.
“혼자 왔냐?”
“……남이사.”
우주는 남자, 지현성의 말에 퉁명스럽게 대꾸하고는 계속 밥을 먹는다.
하지만 고사리 같은 손으로 야무지게 숟가락을 쥔 것과는 반대로 입안에 들어가는 밥 양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아이고, 원래 엄마랑 같이 왔지. 여길 이렇게 어린 애가 혼자서 어떻게 와.”
그 사이, 아이가 좋아할 계란 프라이를 부쳐서 가져다준 식당 주인이 말을 붙인다.
“근데 애 엄마는요.”
“얘 엄마가 의사야. 같이 와서 시켰는데 바빠서 얼른 갔어. 긴급호출이라나? 단골이라 내가 애 봐주고 있으면 엄마가 와서 데려갈 거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우주의 모습을 지켜보던 지현성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러더니 자신의 뚝배기와 밥공기를 들고 아이가 있는 테이블로 옮겨간다.
“뭐, 뭐예요?”
“이거, 내가 먹어도 되지?”
지현성은 아이의 엄마 몫으로 나온 뚝배기를 가리킨다.
그리고 아이가 미처 대답할 새도 없이 그 청국장도 푹 퍼서 먹어버린다.
갑자기 두 뚝배기를 앞에 두고 식사하기 시작한 지현성.
그 모습을 보고 아이는 당황해서 잠시 말을 잃는다.
“아빠는.”
“……이혼했대요, 엄마랑.”
“아, 그러냐.”
아빠는 이혼해서 옆에 없고, 엄마는 매일매일 바빠서 옆에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항상 엄마가 앉는 자리에 낯선 사내가 앉아 있다.
해를 등지고 앉은 터라 그의 떡 벌어진 어깨 너머로 약간의 후광이 비춰든다.
“청국장 맛있다. 안 먹어?”
“먹고 있어요.”
우주는 왠지 지기 싫은 마음에 아까보다 크게 밥을 퍼서 입에 넣어본다.
그 모습을 보고 지현성이 웃으면서 반찬을 집어다가 아이의 밥공기에 올려준다.
“팍팍 좀 먹어. 팍팍. 애 얼굴에 무슨 근심이 그렇게 많냐.”
“아저씨도 많거든요. 근심.”
“크크. 너 친구 없지?”
“……있거든요?”
“거짓말 마. 앞으로 아저씨가 너 밥 친구 해줄게. 또 혼자 먹을 때 불러.”
지현성은 순식간에 뚝배기 두 개를 비우고 식당 휴지를 뽑아다가 자신의 번호를 휘갈겨 적는다.
그걸 아이 손에 쥐여준 지현성은 아이 몫의 계산까지 마치고 식당을 나갔다.
“…….”
밥 친구.
처음 들어보는 생소한 어감의 단어지만 나쁘지 않다.
놀랍고도 반가운 감정.
갑자기 받은 선물처럼 주체 되지 않는 감정이 어린 배우의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게 두 남자의 첫 만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