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61
61화
속초에서의 첫 촬영이 끝나고 다 같이 저녁을 먹으러 왔다.
차일남의 주도로 속초에 오면 이걸 먹어봐야 한다면서 오징어순대에 물회가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우아아.”
나는 난생처음 보는 음식에 침을 꼴깍 삼켰다.
통통한 오징어 속에 맛있어 보이는 소를 가득 채워서 찐 오징어순대.
방금 찜기에서 나와서 그런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아주 맛있어 보였다.
“시우 이거 먹어볼래?”
“우웅!”
당연한 거 아닌가!
나는 얌전히 삼촌이 오징어순대를 가위로 잘라주는 걸 기다렸다.
“그나저나 오늘 시우 애드립 진짜 장난 아니지 않았어요?”
반주가 빠질 수 없다며 술을 마시기 시작한 테이블에서 내 칭찬이 튀어나왔다.
나는 삼촌의 가위질을 빤히 보다가 그쪽으로 귀를 쫑긋 세웠다.
“감독님도 깜짝 놀라셨죠.”
입안 가득 물회를 밀어 넣던 차일남은 말은 못 하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훗, 역시 차일남은 보는 눈이 있다.
“한 작가님은 괜찮으세요? 시우가 대사 막 바꿨는데.”
“저도 시우가 바꾼 대사가 더 좋더라고요. 보면서 감동했잖아요.”
“오오, 작가님마저 설득시키다니. 천재 아역 배우의 등장인가.”
크으, 이거지.
이 맛에 애드립 한다.
스태프들의 환호에 나는 에헤헤 하고 웃었다.
“물회는 안 먹니? 어제 보니까 회 잘 먹던데.”
“우웅? 먹을 거예요. 저거 먼저 먹고.”
그러던 중 강수정이 내 앞으로 스윽 와서 앉으며 말을 붙였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 정말 놀라운 발전이었다.
내가 어제 회 먹는 건 또 언제 봤대.
얼른 대답했더니 마침 삼촌이 내 앞접시에 오징어순대를 먹기 좋게 잘라서 놓아주었다.
그걸 한입 와앙 먹었더니…….
너무 맛있다.
나는 감동을 받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강수정과 삼촌이 귀엽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게 맛있어?”
“웅! 더 조!”
입에 오징어순대를 가득 물고 대답했다.
“아직 접시에 남았잖아, 시우야. 그거 다 먹고 더 줄게.”
“오징어순대 처음 먹어봐?”
“네. 선배님도 먹어요.”
나는 바쁘게 내 앞접시에 있는 오징어순대를 집어 먹으면서 말했다.
강수정은 내 말에도 젓가락질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오늘 촬영하면서 이것저것 많이 물어보던데 아직도 남았나 보다.
이렇게 말이 많은 사람이 지금까지 어떻게 참고 살았나 모르겠다.
“어? 헉, 시우야! 제시카한테 전화 왔어.”
그때, 내 휴대폰도 함께 가지고 있던 삼촌이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불렀다.
제시카가 웬일이지?
“받을래.”
“어어, 그래야지. 여기.”
나는 꿀떡 입 안에 있던 오징어순대를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Hello? Jessica! How’s it going?”
나는 바로 전화를 받아 유창하게 영어로 대답했다.
반가운 마음에 좀 크게 말했나 보다.
순간 식당 안에 있던 선인장 팀 사람들이 나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뭐야? 지, 지금 시우가 말한 거야?”
“원어민이야 뭐야.”
“제시카? 제시카라면…… 그 브로드웨이 연출가 제시카 브라운?!”
스태프들은 놀라움에 나를 보고 술렁거렸다.
“와…….”
앞에 앉아 있던 강수정 역시 놀라움에 입을 작게 벌렸다.
그러더니 아까보다 더욱 흥미로운 눈을 하고서 나를 쳐다본다.
“하, 하하…. 저희 조카가 영어를 좀 합니다. 어릴 때부터 외국영화를 너무 많이 봤더니. 하하하.”
삼촌은 너무 집중된 시선이 민망한지 애써 내 변호 아닌 변호를 해주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슬쩍 돌아앉아 제시카와의 전화 통화를 이어나갔다.
물론 영어로.
“이 번호는 뭐예요?”
수화기 너머에는 활기찬 제시카와 조이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도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양이었다.
“지금 일본이야. 이제 RUN을 일본에서 올릴 준비 하고 있거든.”
“제시카, 미국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요?”
일본이라는 말에 놀라서 물었다.
어쩐지, 처음 보는 국제전화 번호라고 했다.
“그렇게 됐어. 한국 현지화가 워낙 잘 돼서 본사에서 외국으로 라이센스를 수출하는 데 긍정적으로 변했거든.”
“잘됐네요.”
그만큼 제시카의 성공을 본사에서 인정해주었다는 말이었다.
나는 진심으로 그녀의 일본 진출을 축하했다.
“시우. 한국에서 드라마에 들어가게 됐다며? 드디어 브라운관 데뷔인 거네. 축하해! 나도 꼭 챙겨볼 거야. 아주 기대 중이라고.”
“고마워요.”
일본에서도 내 소식을 알 수 있나 보다.
이거 때문에 제시카가 전화를 했구나 싶어서 웃으면서 대답했다.
“이수가 매일 시우 네 기사를 열심히 번역해주고 있어.”
“이런, 정말요? 조연출님이 고생이 많네요. 고마워요, 두 분 다.”
“내가 궁금해서 가만있을 수가 있어야지. 그보다 이번에 같이 출연하는 아역 배우가 아주 유명하다던데? 연수? 연수 맞지? 그 배우는 어때.”
“네? 으음…….”
제시카의 물음에 나는 힐긋 옆 테이블에 있는 남연수를 쳐다봤다.
저녁을 먹으러 와서도 내일 촬영할 장면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남연수는 무릎 위에 대본을 펼쳐두고 읽는 중이었다.
“뭐, 좋아요.”
“Good? 그게 끝이야? 역시 한시우 답네.”
“제가 뭘요.”
“휴, 시우. 요즘 네가 아주 그리워. 일본은 한국보다 후보는 아주 많은데 너만 한 애는 없어. 한국에서 눈만 높아진 것 같다고.”
그 말에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조이수의 한국말이 들려왔다.
“시우야, 네가 제시카한테 말 좀 해줘. 눈 좀 낮춰서 얼른 타협해달라고. 일본에서도 시우 너만 한 애를 찾는데 찾을 수가 있겠냐. 요즘 내가 죽겠다, 죽겠어. 나 좀 살려줘.”
얼마나 다급한지 한국어로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의 말에 쿡쿡거리며 웃었다.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캐스팅 문제로 제시카가 조이수를 어지간히 괴롭히는 모양이었다.
“제시카, 나만 한 애는 없으니까 포기하고 눈 좀 낮추세요.”
“뭐? 이수가 뭐라고 한 거야 시우?”
“시우 말 들었죠, 제시카? 이제 타협하자고요.”
내 말에 두 사람은 유쾌한 듯이 웃으면서 뭐라 이야기를 나눴다.
둘이서 포기를 할 수 있다, 없다 입씨름을 하더니 나와 통화 중이라는 걸 상기하고 제시카가 돌아왔다.
“이런 안 되겠어 시우. 얼른 돌아가서 너랑 다시 무대를 해야지, 답답해서 이제 다른 곳에서는 못 하겠어.”
“언제든지요. 그럼 또 연락해요 제시카.”
나는 제시카와의 짧은 통화를 끝내고 웃으면서 도로 돌아앉았다.
그러자 내 눈앞에는 한층 더 궁금하다는 듯이 눈을 빛내고 있는 강수정이 있었다.
……나 밥 먹어야 하는데.
***
“시우야, 그래서 이 대사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거는요…….”
나는 약간 후회되었다.
솔직히 이렇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단 말이다.
하룻밤 자고 나온 촬영장.
오늘 촬영은 탁 트인 바닷가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촬영 준비를 하는 동안, 배우들은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해변에 조로록 앉아서 대기 중이었다.
그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강수정은 내 바로 옆에 의자를 펴고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어제부터 강수정이 내 곁에 딱 붙어서 쉬지 않고 질문 공세를 펼치는 덕분에 약간 피곤함을 느끼는 중이었다.
다른 배우들, 최태우나 문희성은 나를 어린아이로 대해주기 때문에 이것저것 챙겨주는 경향이 강했다.
그에 비해 강수정은 말이 없던 시절처럼 여전히 나를 아이로 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더욱 거침이 없었다.
차일남과 대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보다 나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긴 것 같았다.
누나나 엄마라고 부르는 것도 싫어하더니, 이제는 모자 관계를 돈독히 해야 한다며 이것저것 잘도 물어봤다.
“아, 그리고 여기. 이 대사 말이야. 이때 우주는 어떤 생각일까? 나한테 뭘 바라고 있는 거라 생각해? 그걸 알면 내 톤도 조금 수정해야 싶어서.”
“엄마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그걸 내색하지 않으려고 하지 않을까요. 엄마한테 부담 지워주기 싫어서. 아무래도 나이가 어린 만큼 이걸 조리 있게 생각하진 않아도 본능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요.”
이미 다 외운 대본이기에 힐긋 보기만 해도 내가 생각해뒀던 해석이 술술 흘러나왔다.
내가 대답을 잘 해줘서 그런가.
강수정은 더 신이 나서 다음 페이지도, 그다음 장면도 물어봤다.
“여기는 자세하게 지문이 쓰여 있지는 않잖아. 너랑 내가 마주 보고 있는 거라고만 막연히 생각했는데…. 바다가 배경이기도 하겠다. 둘 다 저 멀리 보거나 다른 곳을 보면 어때? 장면이 더 다각도로 보일 것 같아서.”
“으응, 그것도 좋네요.”
너무, 너무 말이 많다.
설마 지금까지 혼자 대본을 보면서 이 많은 생각을 혼자 하고 있었던 걸까.
그렇다면 다른 사람은 신경도 안 쓰고 대본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이 납득이 됐다.
“…오늘도야.”
“그 날부터 맞지? 시우가 애드립으로 연기한 날.”
“응, 그날부터 강수정 배우가 시우 졸졸 따라다니잖아.”
“밥도 같이 먹더라, 야.”
“거참, 무슨 일이야. 촬영장에서 한마디도 안 하던 그 강수정 맞아?”
스태프들은 확 달라진 강수정의 모습에 적응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촬영 준비를 하면서도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본다.
“여어, 둘이 엄청 친해졌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촬영 이야기죠 뭐.”
그때, 같이 현장에 있던 최태우가 우리 곁으로 와서 말을 붙였다.
갑작스러운 최태우의 등장에 강수정은 큼, 목을 가다듬으며 평소 그랬던 것처럼 다소 쌀쌀맞게 대꾸했다.
그 반응에 무안해진 최태우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시선을 돌렸다.
“아, 하하. 그래? 시우야, 엄마랑 친해져서 좋겠네.”
“네…. 너무 좋아요.”
아차.
조금 지친 바람에 나도 모르게 조금 힘없이 대답하고 말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강수정의 눈치를 살폈다.
눈치채지 못한 건지 강수정은 괜히 귀 뒤로 넘기며 대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왜 저래.
최태우랑 이야기하기는 아직 어색해서 저러나?
하긴, 사람이 갑자기 바뀐 거나 마찬가지이니 본인 스스로도 적응하려면 시간이 조금 걸릴 것이다.
“음, 그래. 그럼 좀 이따 촬영 때 보자고.”
“네.”
“우웅, 그래요. 아빠.”
나는 최태우한테는 스스럼없이 아빠라고 부르는 편이었다.
현장에서만큼은 그는 정말 내 아빠였으니까.
그 호칭에 강수정이 힐끔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왜, 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강수정을 마주 쳐다봤다.
뭐라 입을 달싹이던 강수정은 도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더니 대본의 한 부분을 척 가리키며 물었다.
“여기, 우주랑 해성이랑 둘이 싸우는 장면 말이야. 이걸 한지혜가 어떻게 생각할까?”
또 시작된 건가.
최태우가 멀어지자 강수정은 다시 질문을 퍼부을 태세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니까.
흐음. 그나저나.
지금 강수정이 가리킨 장면은…….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사뭇 단호하게 말했다.
“선배님. 그 장면은 나중에, 선배님 오늘 촬영 끝나고 이야기하죠.”
“어, 어? 왜?”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일 때도 있으니까요?”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내 말에 강수정은 영문을 알 수 없는지 표정이 요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