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reincarnated genius wants to be an actor RAW novel - Chapter 71
71화
탁, 탁.
자리를 잡은 내 옆으로 의자 두 개가 붙었다.
남연수와 강수정의 의자였다.
요즘 현장에 오면 이 두 사람이 내게 딱 달라붙어서 끝도 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아주 일상이 되었다.
“시우야, 나 어제 ‘여시와 여우’ 봤다? 아빠가 바쁘셔서 마침 집에 안 계셨거든. 시우 너도 봤어?”
가까이 다가온 남연수가 초롱초롱한 눈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
오, 저번에 본 적 있냐고 물었던 걸 기억한 모양이었다.
요즘 남연수는 부쩍 TV를 보고 현장에 와서 내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남연수의 아버지는 엄한 사람이지만, 일이 꽤나 바쁜지 집에 없을 때가 많은 것 같았다.
원래는 아빠를 무서워하는 남연수이기에 TV를 틀 생각도 못 하곤 했지만, 내가 연기를 위해서는 TV를 봐야 된다고 했던 게 꽤 크게 다가왔는지 요즘은 몰래몰래 보는 모양이었다.
햐, 또 어제 에서 명장면이 나왔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얼른 입을 열었다.
“웅, 어제 민혜가 범인인 걸로 밝혀졌잖아.”
“헉. 맞아. 나 그때 진짜 깜짝 놀라서 리모컨 떨어뜨렸어.”
“그래? 나는 저번 주부터 예상하고 있었는데. 차에 난 흠집이 딱 민혜가 가지고 있는 차 색깔로 나 있었잖아.”
그걸 보고 어머니에게 말했더니 그럴듯하다고 해주셨지.
어제 내 추리가 맞다는 게 판명되고 나서 대단하다고 칭찬도 듬뿍 들었다.
“우와……. 시우야 너는 그런 것도 다 생각하면서 보는 거야?”
“몰입하면 저절로 보이는 거야. 더 몰입해서 봐봐.”
“나도 열심히 해볼게.”
내 말에 남연수는 혼자 주먹을 불끈 쥐면서 힘내보겠다고 했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는데 옆에 있던 강수정이 불쑥 끼어들었다.
원래 현장에서 나를 독차지하고 있던 강수정은 남연수 덕에 이야기할 시간이 줄었다고 생각했는지 그를 보는 시선이 그리 곱지 않았다.
“연수도 요즘 드라마에 빠져 사는 거야? 대본은 이제 별로 안 보고?”
“아, 네……. 시우가 이 드라마 재밌다고 해서요.”
“흐응. 하긴 너희 둘 다 대본은 잘 외우긴 하지.”
요즘 아역들 무섭다, 무서워.
그렇게 중얼거린 강수정은 남연수가 우물쭈물 고개를 숙인 틈을 타 내 곁으로 바짝 붙었다.
“그보다 시우야. 이 씬 말이야. 내가 어제 생각을 해봤는데…….”
“네에…….”
벌써부터 피곤했다.
생각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나는 요즘 강수정이 저 말을 꺼낼 때마다 노이로제가 걸리는 기분이었다.
연기에 대한 강수정의 생각은 너무 다채롭고 폭이 넓어서 들을 때마다 어질어질했다.
물론, 하나의 장면을 다각도로 생각하고 상대 배우와 그걸 맞춰볼 수 있다면 당연히 좋았다.
기꺼이 강수정이 생각한 대로 시도를 해주는 배우인 나도 있었고.
문제는 거의 모든 장면을 그렇게 연구해온다는 것이었다.
내가 극 중에서 강수정이 맡은 한지혜의 아들로 나오기에 우리 두 사람이 찍는 장면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덕분에 그때마다 수많은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래서 나는 강수정과 촬영을 할 때면 약간 녹초가 되곤 했다.
설마 나보다 더욱 대본 연구에 열정적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처음에 강수정이 다른 배우들과 말할 시간이 없었던 게 알고 보니 이런 궁리를 혼자 속으로 하고 있어서였나 보다.
근데 그걸 이제 나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같이 하려고 하니…….
어린아이의 체력이 강수정의 열정을 따라가질 못했다.
아아, 친우여.
자네가 살아있었다면 세상에서 제일 좋아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극본이 나오면 배우들과 끝없는 토론을 하길 좋아하던 셰익스피어를 잠깐 떠올렸다.
항상 그의 말 상대는 나였는데, 설마 이번 생에서도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될 줄이야.
“아니, 그 부분은 오늘 현장 보고 감독님하고도 상의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아, 확실히. 그럼 조금 이따가 들어가기 전에 물어보자.”
“우웅, 좋아요…….”
대충 마지막 촬영분의 대본 논의가 끝났다.
그러자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남연수가 냅다 입을 열었다.
“맞다, 시우야. 그거 봤어? 우리 형제한테 되게 귀여운 별명 붙었던데. 내가 오늘 아침 기사에서…….”
“잠깐, 시우 너. 메이킹에서 내 이야기는 쏙 빼놓고 했더라? 아무리 그래도 엄마인데 이건 너무한 거 아니니?”
조잘조잘.
조잘조잘조잘.
두 사람이 말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일일이 대꾸도 다 못 해주고 잠시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 영혼이 다 털려갈 즈음, 차일남이 두 사람을 불렀다.
지해성과 한지혜 두 사람이 찍는 장면이 있는 탓이었다.
감독님의 부름에 조금 이따가 또 이야기하자며 두 사람이 서둘러 저쪽으로 향했다.
“하아…….”
나는 이제야 귀가 쉬는 느낌에 의자에 푸욱 기대앉았다.
너무 말이 없어서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귀가 아플 지경이었다.
중간은 없는 것인가.
그래도 오늘로 이런 복작복작함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다가왔다.
“왜 이렇게 지쳐 보이니?”
“아조씨!”
문희성이었다.
극 중 내 새아빠인 지현우의 형으로 나오는 문희성은 이미 모든 촬영을 마친 상태였지만, 오늘은 마지막 촬영의 응원차 현장에 방문해있었다.
나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마지막 촬영이라 그런가? 체력이 다 떨어진 건가……. 첫 드라마라 조금 힘들지?”
어딘가 해쓱한 내 얼굴을 보고 문희성이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나는 아니라고 고개를 휙휙 저었다.
방금까지 저 두 사람한테 기력을 뺏겨서 그런 것뿐이었다.
촬영을 마치고 내일이 되면 다시 쌩쌩해질 것이 뻔했다.
“그보다 아저씨. 들으셨어요? 저 광고 찍기로 했어요.”
나는 누가 들을세라 일부러 소곤소곤 문희성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자랑할 일인 것은 맞지만, 김상철이 그랬다.
요즘 드라마에서 어떻게 보면 내가 가장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고.
내가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고는 해도, 드라마 촬영은 이번이 처음.
선배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내게 광고 제의가 들어왔고, 광고를 찍게 되었다는 말을 크게 해서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았다.
촬영 현장만큼 눈도 많고 귀도 많은 곳은 없었으니 말이다.
드라마 촬영은 처음이지만, 사람들의 이런 생리는 잘 알고 있다.
“아아, 그래. 상철이 형한테 들었다. 축하해. 시리얼이라고 했던가?”
“네! 드라마 끝나고 촬영할 거 같아요.”
“하하, 이거 또 내가 응원을 가야 하나?”
“거기 사람들 다 놀라서 뒤집어져요. 나중에 TV로 보세요. 커다란 TV.”
“그래, 알았어.”
문희성은 잘 되었다며 내 머리를 살살 쓸어주었다.
나는 햇볕을 받는 고양이처럼 얼굴이 풀어져 가만히 그 손길을 받고 있었다.
“그거 말고도 시나리오도 엄청 많이 들어왔어요.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마음에 차는 건 있었니?”
“으응, 다 초반에 잠깐 나오는 아역 역할이라 고민이에요.”
“하하, 이번 작품처럼 비중이 큰 건 아마 찾기 어려울 거다.”
“그러니까요.”
나는 한숨을 쉬며 차기작 걱정에 대해서도 털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던 문희성이 한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쉬지 않고 계속 일했으니 조금 마음을 편히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아무 생각 없이 있다 보면 좋은 작품이 짠 하고 들어올 수 있을 거야. 조급해하지 말고.”
“우웅, 그래야겠어요.”
이게 바로 대선배님의 조언인 건가.
문희성에게는 매일매일 더 엄청난 수의 제안서가 도착할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잘 새겨들었다.
“그래도 시우 너를 찾는 사람이 많으니 아주 다행이네.”
“그건 맞아요. 저 인기 엄청 많아졌대요.”
“누가 그러던.”
자랑스럽게 말하는 내게 퍽 귀여웠는지 문희성이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극단장님이요!”
“하하, 그럼 아주 신뢰할 만하구나. 그런데 오늘은 왜 이렇게 피곤해 보이니? 진짜 마지막 촬영일이라 그런가. 어제 잠을 설치기라도 했어?”
“휴……. 아니에요. 어제 되게 잘 잤어요. 일은 괜찮아요. 사람이 힘들어서 그래요.”
“사람?”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문희성이 고개를 기울였다.
평소에 스태프들과 감독님들, 다른 배우들과도 잘 지내는 내 모습을 봐왔기에 의아한가 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줘야 하나 생각하는데, 마침 내가 피곤한 원흉인 두 사람이 바쁘게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으윽, 두 사람 다 연기는 또 잘해서 촬영을 엄청 빨리 끝낸 모양이다.
“시우야!”
“어, 희성 씨도 있네요?”
“네. 응원 왔습니다.”
“네에. 그보다 시우야.”
문희성에게 재빠르게 인사하고 이리로 온 남연수와 조금 흥미를 가지나 싶다가도 바로 나에게 돌아서는 강수정.
나는 눈꼬리를 추욱 늘어뜨리고 두 사람을 맞이했다.
“엄청 빨리 오케이를 받으셨네요. 둘 다.”
나름 시무룩하게 말했는데, 두 사람은 전혀 눈치를 못 챘다.
“응! 시우랑 얼른 더 이야기하고 싶어서.”
“확실히 너랑 이야기하고 나서는 연기도 더 잘되는 거 같다니까?”
신이 난 두 사람을 보면서 한숨을 쉰 나는 마지막 희망이라는 듯이 문희성을 올려다보았다.
그런데, 문희성은 그 광경을 보고는 재밌다는 듯이 쿡쿡거리고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하, 이거 원. 저는 다른 데로 가볼게요. 인기인을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수가 없네요.”
“아, 네. 수고하셨어요.”
“뒤풀이 때 뵈어요~”
남연수와 강수정은 문희성에게 재빠르게 인사를 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 문희성은 내게 입 모양으로 고생하라고 한 뒤, 한번 싱긋 웃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경악했다.
아니! 어디가! 나 구해줘야지!
“시우야! 저기 고양이가 있던 데 나랑 같이 보러 가자.”
“뭐? 시우는 아까 촬영 마치면 나랑 대본 연습하기로 했어, 얘.”
내가 언제.
뻔뻔스러운 강수정의 말에 내가 입을 뻐끔거리자 남연수는 그랬냐며 시무룩해진다.
두 사람 사이에 껴서 나는 툭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연기는 한 번도 안 했는데 급격하게 피곤해졌다.
***
“여기 오랜만이네.”
뒤늦게 현장에 합류한 최태우까지.
나와 남연수, 강수정, 최태우.
극 중 단란한 네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다.
극 중 1화에 나왔던 한 식당 앞.
내 인생 첫 드라마 촬영지이기도 한 그 식당이다.
마지막 장면은 드라마 속에서 강우주가 혼자서 청국장을 먹던 그 식당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빠는 여기 와본 적 없잖아요.”
여긴 나와 지현성이 만난 장소였다.
강수정과 나, 문희성은 이곳에 와서 촬영한 적이 있지만, 최태우는 아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최태우는 뜨끔한 얼굴로 말했다.
“아니… 드라마에서 봐서 꼭 와본 것 같다는 말이지. 그 뒤로 이 식당이 엄청 핫해졌다면서?”
“와, 진짜요? 저도 여기 청국장 먹어보고 싶었어요.”
최태우의 말에 남연수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아차, 혹시 오늘 촬영 끝나고 남연수가 여기를 오면 큰일인데.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때,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강수정이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그거 아세요? 원래 이 식당 청국장은 안 파는 곳이래요.”
“진짜?!”
“정말요?”
두 사람은 정말 충격이라는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놀랐다.
그걸 그렇게 말해버리다니.
나는 충격 먹은 두 사람과 강수정을 번갈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사실이잖아.”
“그래도요. 어차피 곧 알게 되었을 텐데.”
“나도 처음에 충격이었어.”
그 뒤로도 우리 네 사람은 큐 사인이 떨어지기 전까지 투닥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정말 가족이라도 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