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word priest reincarnated as a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47)
검공가에 환생한 검제 (147)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레너드는 아직 해가 떠오르지도 않은 시간부터 일어나 짐을 꾸리고 있었다. 지난번처럼 데미안이 알아서 다 해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 철저하게 만전을 기해야했다.
다행스럽게도 직접 발품을 팔아야할 일은 없었다.
“보급품(補給品)이라.”
백룡기사단의 창고에서 온 지원물자를 살펴본 레너드가 그 호사스러움에 혀를 내둘렀다.
사실 초월경을 돌파하고 난 후에는 방어구에 소홀해지는 게 당연했다. 공방(攻防)의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검과 마법을 구분하지 않고, 마스터급이 내는 공격력은 마스터급이 지닌 방어력을 압도적으로 상회한다.
수비(守備)와는 또 다른 개념이었다.
검강의 힘을 검강으로 받아낸다면 그 소모는 비슷하겠지만, 호신강기로 막으려고 한다면 몇 배에서 몇십 배나 비효율적인 소모를 감당해야한다. 막거나 피하거나 맞받아쳐야지, 깡으로 받아내려고 하면 안 되는 것이다.
‘방어구의 경우에도 크게 다르지 않지. 특수금속의 대표격인 미스릴, 아다만티움, 오리하르콘이 함유된 방어구라도 강기를 온전하게 막진 못하니까.’
마나를 증폭시키는 기능이 있는 미스릴과 오리하르콘은 그 특성으로 호신강기를 강화할 수라도 있지, 순수하게 내구력만 높은 아다만티움은 큰 쓸모도 없었다.
그럼에도 검기 수준에서는 절대로 못 뚫는다니, 외력경에선 무적이라도 된 것처럼 날뛸 수 있겠지만.
그런데.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다는 거군.”
보급품으로 온 흉갑을 장비해본 레너드가 시험삼아서 기를 운용하자, 아다만티움으로 된 내갑(內甲)을 넘어서 오리하르콘 외갑(外甲)에 도달하더니 즉시 호신강기가 형성된다.
장비하지 않은 상태보다 몇 배나 빠르고 효율적이었다.
물론 그 원리는 간단했다.
안에는 아다만티움, 바깥에는 오리하르콘으로 장점 두 개를 모조리 챙기겠다는 것. 단순무식한 해답이었지만, 아무도 그걸 실행하지 못한 이유가 괜한 게 아니었다.
‘아다만티움을 이렇게 얇게 편 것부터가 세간의 상식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기술력이다.’
아틀란티스에서 제 버릇을 못 버리고 지식들을 습득했기에, 특수금속에 관련된 상식들도 알고 있었다.
상대적으로 가공하기 쉬운 미스릴은 그렇다쳐도, 옛 시대엔 장인종족 드워프들만 손댈 수 있었다는 금속이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이었다. 아쿠아마린, 모비딕 같은 함선들이 재현할 수 없는 마스터피스가 된 것도 특수금속의 제련법과 마법진을 새기는 방법이 실전되었기 때문이다.
“[프로텍트].”
레너드가 짧게 중얼거리자, 오리하르콘 흉갑 위로 마법진이 한 번 명멸하면서 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실전되었다는 기술이 아무렇지도 않게 펼쳐졌다.
옛 시대의 유물이라면 할 말이라도 없겠는데, 흠집 하나도 없이 반들거리는 광택이 누가 보더라도 신품이었다.
‘움직임에 방해가 될 일도 없어보이고…사용하지 않는 쪽이 더 이상하겠구나.’
무림인들도 드물게 천잠보의(天蠶寶衣) 같은 기물을 착용한 자가 있었지만, 연무혁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어색하기까지 한 완전무장이 끝나고 거울을 본 레너드는 제 모습에 위화감마저 느껴졌다. 무림인으로서 살 때는 물론이고, 다시 태어나고 난 후에도 방어구와는 인연이 없었으니.
“오.”
다음 상자에서 나타난 물품은 바로 한손검이었다.
레너드가 요청사항까지 보낸 탓인지, 한 자루도 아니고 열 자루나 들어있었다. 아홉 자루는 아공간주머니에 넣어버리고, 한 자루만 남겨서 질을 확인해본 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순수하기까지 한 검객의 미소였다.
누가 본다면 좀 어처구니가 없을지도 모른다.
미스릴 재질로 된 한손검은 충분히 좋은 물건이었지만, 그 값어치만 따지면 갑옷이 수십 배 높았으니까.
‘소모품의 질도 터무니없다. 임무를 나갈 때마다 이 정도가 기본이라니, 재정 상태를 모르고 있었다면 카르데나스 가문이 파산할지도 모른다고 염려했겠는데?’
장구류를 다 확인하고 남은 상자에는 포션류와 스크롤 같은 소모품들이 쌓여있었다. 그 목록을 확인하고, 아공간주머니에 집어넣으니 레너드의 방은 이전과 같이 말끔해졌다.
어느새 창문 너머에서 스며들어온 여명이 빈자리를 채웠다.
“다녀와야겠군.”
허신 [카스토르]를 토벌하러갈 시간이다.
* * *
사전에 약속한대로 [검의 숲] 초입부에서 만난 레너드와 네 명의 백룡기사가 서로를 맞이했다. 보급품으로 전신을 무장한 행색 자체는 비슷했으나, 제 피부처럼 익숙해보이는 단원들과 달리 레너드는 좀 뻣뻣해보였다.
그 부분을 알아본 그레디가 키득거리면서 말을 걸어왔다.
“갑옷이 많이 불편하지? 7대 기사단에 입단하기 전에는 다 그래. 어지간한 수준의 방어구로는 별 도움이 안 되고, 도움이 될 정도의 방어구가 필요해지는 상황은 드무니까.”
“반대로 말하자면, 7대 기사단의 임무수행은 이런 방어구가 보급품이 될 정도로 위험하다는 거군요.”
레너드가 한 말에 백룡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피식 웃어보였다. 그걸 모르거나, 두려워하는 자들은 7대 기사단에 남아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적재(適材), 아니 적재적소(適財適所)라고 할 만하군.’
아다만티움과 오리하르콘의 합금으로 된 갑옷이 비싸다지만 초월경급 무인보다 값진 건 아니다.
카르데나스 가문은 한 명의 구성원이라도 더 살려내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산을 소모한 것이다. 돈 따위는 얼마든지 벌 수 있는 입장이기도 했으니, 그 내부에서 최대한 가치있게 쓰는 것만이 최선이기도 했다.
아이작이 말했다.
“[카스토르]처럼 특화속성도 없고, 특수능력도 변변치 않은 허신의 보급품은 이번과 같이 지급되네. 하지만 [키르케]라면 달랐겠지. 마법무효화 계열의 아티팩트, 스크롤 등이 지급되고 반마법 무기가 제공되었을걸세.”
“과연.”
그의 설명에 납득한 레너드와 일행이 걷기 시작했다.
“공간마법사와 만나기로 한 지점에 거의 다 온 것 같은데…아, 저쪽에 있군. 이보게!”
[검의 숲]을 벗어나자마자 마법사를 찾아낸 아이작이 손을 흔들자, 그 인물은 지팡이로 땅을 끼적거리던 것을 멈추고서 레너드 일행을 돌아보았다.그리고 레너드와 두 눈을 마주치더니 이내 반갑다는 얼굴로 아는 척하기 시작했다.
“오! 당신이군요. 나를 기억하고 있나요?”
“…데미안 단장님과 저를 옮겨주셨던 분이지요.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공교롭게도 그가 이전에 [티르]의 토벌을 견학했던 날에 본 위클라인의 마법사였다.
로브의 후드 부분을 삐져나온 귀가 쫑긋거리는 게 보였다.
레너드에게 오른손을 뻗은 대마법사가 자칭했다.
“저는 칼란타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레너드입니다.”
통성명과 함께 악수를 한 대마법사는 다시 지면에 마법진을 그리는 작업에 착수했다. 아무래도 다섯 명을 운송할 준비가 다 끝나지 않았나보다.
위클라인의 대마법사, 칼란타는 7위계 마법을 준비하면서도 레너드와 잡담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질문하시죠. 특별히 대답해드립니다.”
“갑작스럽군요. 음, 그렇다면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레너드가 말했다.
“위클라인 가문은 〈신역〉이나 허신의 권능에 아주 흥미가 많아보이는데, 토벌에 직접적으로 협력하진 않습니까? 고위계 마법사라면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텐데요.”
“아아,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군요. 이해합니다. 간단하게 설명드리자면, 상성이 안 좋아요. 마법사들에게 세계의 법칙은 곧 자신들이 힘을 빌려쓰는 대상인데, 신의 권능은 그 기반을 왜곡시키니까요. 〈마경〉과는 좀 다른 의미의 천적이죠.”
“…그래서 카르데나스에 일임하고 있는 거군요. 자신들만의 특이점을 보유하고 다룰 수 있는 기사들이 허신을 상대하기에 더 적합하니까.”
맞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인 칼란타가 손짓했다.
준비가 끝난 모양이었다.
그를 포함해서 여섯이 다 마법진에 올라서자, 그는 지팡이 끄트머리로 진의 정중앙을 내리찍으면서 외쳤다.
“[멀티 텔레포트]!”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눈부신 빛이 그들을 감싸안았다.
파아아아아앗??!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떠보니, 레너드와 백룡기사들은 벌써 임무지역에 도달해있었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에 떨어진 일행 주변으로 나뭇잎이 잘게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역〉 제미니까지 수백 미터도 떨어져있지 않은 지점이었다.
칼란타는 제 역할을 끝마쳤다는 기색으로 적당한 그루터기 한 개를 찾아서 걸터앉았다. 산보라도 나온 것처럼 유유자적하기까지 한 태도가 퍽 얄미웠다.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백룡기사들은 여러모로 그와 데면데면한 사이인지, 몇 마디 인사만 나누고서 레너드에게 고갯짓했다.
칼란타를 그 지점에 남겨놓은 일행은 그대로 〈신역〉, 숲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제미니에 걸어들어갔다.
[티르]와 달리 [카스토르]는 숲 어디에 머무르는지 알 수가 없어서, 〈신역〉 내부를 돌아다니면서 놈의 위치를 파악해야할 필요성이 있었다. 침입자를 피해서 도망다니거나 하진 않으니 상대방의 이목을 끌어들이는 것도 방법이었다.“수풀이나 나뭇가지에 털이 걸려있습니다.”
조용히 숲을 가로지르다가 무언가를 움켜쥔 휴고가 제 손을 펼쳐보였다. 그건 사람의 체모라고 하기엔 좀 뻣뻣하고 짧은, 마굿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털이었다.
그걸 본 아이작이 예상했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켄타우로스(Centauros)인가. 그 부분은 예상대로군.”
하반신은 말이고, 상반신은 인간과 같았다는 신화생물. 아주 먼 옛날에 실존했다고 전해지는 종족이었다. 어떠한 부분에선 인간 이상의 잠재력을 보이는 지성체이기도 했다.
[카스토르]는 승마술의 신이자, 기병을 상징하는 신격이다.존재 자체가 기병이나 다름없는 켄타우로스를 봉사종족으로 둔 것은 이상할 게 없었다.
“켄타우로스 종족 중에도 허신이 한 명 존재하네.”
자네트가 그 답을 말했다.
“[케이론]! 맞죠?”
그녀의 말에 수긍한 아이작이 레너드에게 조언했다.
“제법 유명하지. 옛 시대의 영웅들과 신을 가르친 스승이자, ‘필중’의 권능을 지닌 궁신이기도 한 켄타우로스. 돌아가면 그 기록을 열람해보는 것을 권하겠네. 상당히 흥미롭거든.”
“명심하겠습니다.”
잠입임무였다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겠지만, 초월경 다섯 명이 나란히 전진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설령 [카스토르]가 튀어나오더라도 그들이 열세에 처하거나 할 리도 없었다. 이쪽에서 찾아가야할 수고를 덜게 되었으니 더 좋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꾸욱.
최선두에서 나아가던 아이작이 제 손을 들어서 주먹을 쥐어보이자, 네 사람은 정지하면서 몸을 낮췄다.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였다.
아니나다를까.
“…켄타우로스.”
레너드는 저 멀리서 내달리고 있는 신화생물, 말과 인간을 섞어놓은 것 같은 종족을 발견하고서 작게 중얼거렸다.
등에는 활이 걸려있고, 손아귀에는 긴 창이 들여있다.
어느 쪽이든지 기마병단의 주력병기였다.
날 때부터 인마일체(人馬一體)나 다름없는 종족이었으니, 그 숙련도는 인간의 기마병들을 압도적으로 넘어설 터다. 동일한 수의 병력으로 격돌한다면 일방적인 살육이 되겠지.
그러나.
“[카스토르]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고, 켄타우로스 중에서도 특수한 개체는 없어보이는군.”
아이작의 분석에 두 눈을 빛낸 그레디가 소곤거렸다.
“해치울까요?”
“허신과의 전투 이전에 좀 처리해놓는 것도 괜찮겠지.”
긍정이었다.
리더의 결정이 내려지기가 무섭게 다섯 명의 초월경은 즉시 그 자리에서 일어나, 켄타우로스들이 달려가고 있는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제아무리 말의 하반신이 달렸더라도 생물 자체를 넘어서기 시작한 초월경과는 비교할 수 없다.
몇 초만에 수백 미터의 간격이 사라지고, 뒤늦게 다섯 명의 존재감을 감지한 켄타우로스들이 급선회했다. 인간기병에게는 불가능한, 본인의 몸뚱이라서 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느려.’
그럼에도 다섯 명의 기습에 대응하는 건 불가능했다.
눈어림으로 센 숫자가 서른.
30여기의 켄타우로스가 뒤돌아서는 것과 동시에 마스터들이 그 진형을 뚫고 지나갔다. 번개처럼 뿜어져나온 검광이 십수 마리를 썩은 나무토막처럼 산산조각냈다.
“εχθρ??!”
“επ?θεση!”
패닉에 빠질 만한 상황인데도, 켄타우로스들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소통하면서 즉각적인 반격에 나섰다.
동료 절반이 순식간에 토막났는데도 그 전의가 사그라지지 않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협공이 되돌아온다. 레너드는 자신의 목, 심장, 미간을 노려오는 창을 바라보면서 과연 신화시대에 활동했던 종족이라고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력도 퍽 칭찬해줄 만했다.
‘신앙심이 아니라 호승심으로 맞섰다면 더 좋았을 텐데.’
레너드는 그들의 눈동자에서 일렁거리는 감정을 읽고, 조금 아쉬워하면서 칼날을 치켜세웠다.
청색 검강이 그 검극으로부터 나무뿌리처럼 뻗어나왔다.
오상류(五象流)
청룡십팔식(靑龍十八式)
뇌봉전별(雷逢電別)
도합 36갈래로 나누어진 강기가 켄타우로스들을 관통하자, 내달리던 기세 그대로 나동그라진 놈들이 흙먼지를 피웠다.
콰과곽! 콱! 콰곽!
몇 마리는 스스로의 죽음을 깨닫지도 못한 것인지, 두 눈을 부릅뜨고서 남아있는 힘으로 제 다리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뇌봉전별〉이 미간 정중앙을 꿰뚫어버린 탓이다.
정확하고 빠르게 뇌를 파괴당하면, 즉사하면서도 그 육체에 남긴 신호가 메아리처럼 몸을 움직이게 한다. 머리를 떼어낸 벌레들이 바르작거리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나머지 켄타우로스들의 운명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흐음.”
평온하기 그지없는 태세로 검을 납검하는 아이작 주변으로,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난 켄타우로스들이 하반신만 남아서 계속 달려가다가 픽 쓰러져버린다.
그레디에게 심장이나 뇌를 꿰뚫리거나, 자네트에게 몇 번을 토막난 것 정도는 평범했다.
휴고의 그레이트소드에 당한 놈들이 가장 처참했다.
꽈아아아아앙!
지축이 뒤흔들리는 굉음과 함께, 대여섯 기의 켄타우로스가 피곤죽으로 변해서 흩어졌다.
기습적으로 벌어진 전투의 끝을 선고하는 단말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