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17
17. 박철우
평행차원으로 넘어가기 전에 준비할 게 있다. 서정우는 경찰서 근처에 있는 슈퍼마켓에 들렀다.
“다시 봐도 놀랍다. 이 귀한 게 이렇게 쌓여 있다니.”
일단 슈퍼마켓에 쌓여 있는 과자와 빵, 스팸 등을 바구니에 쓸어담았다. 이건 주로 서소라가 먹을 것들이다.
“아. 철우 아저씨 선물도 있어야지.”
박철우가 전쟁터에서 합성 커피를 마시며 불평하던 게 생각났다.
마침 적당한 게 보였다. 그는 물에 타서 마시는 동결건조 방식 인스턴트커피를 한 병 샀다.
이것저것 담았더니 순식간에 바구니가 가득 찼다. 저쪽 세계에서 이 과자들을 남에게 보여줄 수는 없다. 그런데 그의 가방은 사무실에 있다.
“음. 이대로 넘어가면 곤란하겠다.”
슈퍼 옆에 저렴한 가방을 쌓아놓고 파는 매대가 보였다. 그는 그곳에서 싸고 큰 가방을 하나 사서, 방금 산 과자 등을 모두 집어넣었다.
이제 저쪽으로 넘어갈 준비는 끝났다.
이번에는 장소가 문제가 됐다. 짐이 없다면 화장실을 이용해서 넘어가면 되는데, 큰 가방을 메고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나오는 모습을 남이 보면 좋을 게 없다.
그는 일단 집으로 돌아갔다. 이쪽 세계의 집은 경찰서에서 가까웠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스킬 재사용 대기 시간은 이미 다 채웠다.
“가자.”
그가 평행차원 텔레포트 스킬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었다.
그가 나타난 곳은 지난번에 이빨 개구리를 잡은 바로 그곳이다.
이 주변에 멀쩡히 서 있는 집은 거의 없었다. 대신에 무너진 잔해와 풀이 많았다. 그래도 이 근처만 포병의 포격에 날아가서 폐허가 되었기 때문에, 200미터쯤 떨어진 곳부터는 멀쩡한 집이 많았다.
그가 이쪽 세계에 나타날 때는 남들의 눈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텔레포트 스킬이 희귀 능력이기는 하지만, 대신에 워낙 유명한 스킬이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면 부러워했지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평행차원으로 넘어왔으니 이제 최소한 24시간은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돌아가도 저쪽 세계는 아직 점심시간이다.
“일단 집에 가자.”
집에 가는 버스에서 박철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서소라가 눈을 반짝이며 가방에서 물건들을 꺼냈다.
“와. 되게 많아요.”
서정우가 그중에서 커다란 과자 봉지를 집어 내밀었다.
“감자로 만들었다는데, 맛있어 보여서 사 왔다.”
서소라가 과자 봉지를 들었다.
“와. 과자가 엄청 커요!”
서소라가 잔뜩 기대하며 봉지를 뜯었다.
먼저 질소가 빠져나왔다.
그녀가 봉투 안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들어 서정우를 보며 말했다.
“이거 불량품인가 봐요. 봉투는 되게 큰데 과자는 엄청 조금 들어 있어요.”
서정우도 당황했다.
“내가 하필 골라도 불량품을 골랐네. 내일은 꽉 찬 놈으로 사 올게.”
서소라가 과자를 집어 먹었다. 짭조름하면서도 고소했다.
“양은 조금이지만 맛있어요!”
“저쪽 세계가 다른 건 몰라도 음식 맛 하나는 확실하지. 거긴 뭐든 다 맛있어.”
“가보고 싶어요.”
“데려갈 수 있으면 데려가고 싶다.”
저쪽 세계는 이쪽 세계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전하다. 저쪽에도 서소라의 신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활동이 겹치지만 않으면 두 명이 같은 신분으로 살 수도 있다.
“데려갈 방법이 없어서 그렇지.”
텔레포트는 개인형 스킬이다. 무기를 가득 채운 커다란 가방도 들 수만 있으면 옮길 수 있지만, 사람은 고사하고 강아지나 고양이 한 마리도 못 옮긴다는 건 상식이다.
“다른 사람을 이동시키는 건 같은 3차원 좌표계의 텔레포트에서도 안 되는데, 평행차원으로 같이 텔레포트 하는 건 당연히 불가능하잖아.”
서소라는 과자를 부지런히 먹으며 대답했다.
“알아요.”
서정우가 물었다.
“박철우. 그 아저씨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 전화해도 연결이 안 되는 걸 보면 또 어디서 싸우고 있나 본데.”
“알아볼게요.”
서소라가 손가락에 묻은 과자 가루까지 알뜰하게 먹은 후에 전화를 몇 군데 걸었다. 현재 위치를 알아내는 건 쉬웠다.
“경기도 북부 적성 게이트에 있어요.”
“하필 거기냐. 정말 몬스터가 많은 곳만 골라서 간다니까.”
“그런데 박철우 씨는 왜요?”
“저쪽 세계의 서소라가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을 부를 거야. 그거 그 아저씨가 만든 노래잖아.”
이쪽 세계의 서소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평행차원 저쪽에서요?”
“어. 신기하지? 내가 몰랐는데, 너한테 가수의 재능이 있더라. 자기 말로는 실력파 가수가 목표라네? 아직 가수가 된 건 아니지만, 이 노래로 데뷔할 거야. 재능은 똑같을 테니까 너도 여기서 가수에 한 번 도전해 볼래?”
“웅…….”
서소라는 잠깐 고민했다. 답은 바로 나왔다.
“저쪽에서 성공하는지 보고요. 그게 효율적이에요.”
“둘이 되게 비슷하면서도 이럴 땐 또 다르단 말이야.”
“네?”
“저쪽 서소라는 일단 저지르고 보거든.”
“비효율적이네요.”
* * *
경기도 북부 적성 게이트 근처에서 헌터 박철우가 자동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철갑탄이 음속을 돌파하며 날아가 칼날 사마귀의 갑각을 때렸다. 얇은 철판 정도는 뚫어버리는 철갑탄이지만, 그 갑각을 관통하지는 못했다.
곤충형 몬스터는 갑각이 워낙 단단해서 소총탄이 뚫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는 건 아니다. 철갑탄이 갑각을 뚫지는 못했지만, 맞은 부분이 깨져나갔다.
박철우가 방아쇠를 계속 당겼다. 철갑탄이 연발로 발사되며 총구가 위로 튀었다.
그는 자동소총의 수직 손잡이를 꽉 잡고 아래로 내려 반동을 억눌렀다. 강한 반동 때문에 몸 전체가 덜덜 떨렸다.
탄창에 들어 있던 50발의 철갑탄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키에엑!”
사람보다 비슷한 크기의 칼날 사마귀가 소리를 지르며 박철우에게 달려들려 했다. 하지만 철갑탄에 계속 얻어맞는 바람에 거리를 좁히지는 못했다. 그저 칼날처럼 날카로운 앞발만 휘휘 저으며 총탄에 두들겨 맞았다.
아무리 곤충형 몬스터의 갑각이 단단해도 철벽은 아니다. 사람과 비슷한 크기의 칼날 사마귀는 갑각의 두께가 그리 두껍지 않다.
박철우는 전투 경험이 많은 헌터다. 거리도 가까웠다. 연발로 갈겨대는데도 빗나가는 탄은 적었다. 칼날 사마귀의 갑각이 퍽퍽 깨져나가고 그 속으로 다시 철갑탄이 파고들었다.
갑자기 탄창이 텅 비었다. 거의 동시에 칼날 사마귀도 체액을 뿌리며 나자빠졌다.
박철우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후욱. 후욱. 이놈이 나온다는 말은 없었는데.”
칼날 사마귀에게는 자동소총용 철갑탄보다는 40mm 유탄이 잘 먹힌다.
그는 단독으로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정찰 중이다. 어렵고 위험한 임무라 유탄 발사기 사수를 데려오진 못했다.
소총에 장착하는 단발 유탄발사기는 가져왔지만, 비상용으로 챙겨온 유탄 두 발은 이미 다른 몬스터에게 써버렸다. 지금은 무게를 줄이기 위해 단발 유탄발사기도 버린 상태다.
그는 빈 탄창을 제거하다가, 총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걸 깨달았다.
“아까부터 너무 쐈나.”
그가 쓰는 것은 이쪽 세계에서 개발한 무탄피 소총이다. 탄피가 없으면 총알의 무게가 가벼워진다. 그러면 더 많은 총알과 장비를 휴대할 수 있다.
이 무탄피 소총의 핵심은 약실의 열기를 빠르게 배출해주는 방열판이다. 그 약실과 방열판은 일반 금속으로는 만들 수 없다. 광물형 몬스터를 잡을 때 가끔 나오는 합금으로 만들어야 제 성능이 나온다. 그런데 그 합금은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굉장히 비싸다.
그래서 일반 병사에게는 기존의 탄피를 쓰는 소총이 보급된다. 무기를 직접 구매해서 싸우는 헌터 중에서도 일부만이 값비싼 무탄피 소총을 쓴다.
그런데 방열판이 한계에 도달했다. 이대로 새 탄창을 끼우면 오발 사고가 날 수 있다. 그렇다고 방열판이 제 기능을 할 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그는 오른손으로 방열판 분리 버튼을 눌렀다. 방열판이 철컥 소리를 내며 떨어져 나갔다. 그는 전술조끼의 주머니에서 예비 방열판을 꺼내며 말했다.
“역시 혼자서는 힘들…….”
갑자기 박철우가 옆으로 휙 돌아섰다. 옆쪽에 새로운 칼날 사마귀가 나타났다.
“젠장!”
아직 탄창을 교체하기 전이다. 게다가 이 무탄피 소총은 방열판이 없으면 철갑탄이 정상적으로 발사되지 않는다. 이 상태로는 새 탄창을 낀다 해도 칼날 사마귀를 잡을 수 없다.
칼날 사마귀가 박철우를 덮쳤다. 어차피 탄창을 갈아낄 시간은 없다.
그는 즉시 소총을 손에서 놓고 권총을 번개같이 뽑았다. 칼날 사마귀가 앞발을 휘두르기 전에 권총을 연발로 갈겼다.
권총은 소총만큼 잘 맞지 않는다. 연발로 갈기면 더 안 맞는다. 그래도 거리가 워낙 가까워 발사한 철갑탄의 절반 정도는 칼날 사마귀의 몸통에 박혔지만, 권총용 철갑탄으로 칼날 사마귀의 단단한 갑각을 부수는 건 어려웠다.
순식간에 20발짜리 탄창이 비었다. 칼날 사마귀가 뒤로 조금 밀려났다.
박철우가 빈 권총 탄창을 제거하고 새 탄창을 잡았다.
칼날 사마귀가 다시 달려들며 앞발을 높이 들었다. 칼날처럼 날카로운 앞발에 빛이 번뜩였다.
아직 탄창을 교체하기 전이다.
박철우는 깨달았다.
‘이건 못 피한다.’
갑자기 칼날 사마귀의 앞발에서 불꽃이 연달아 튀었다. 칼날이 옆으로 휙 젖혀졌다.
철갑탄이 계속 날아왔다. 처음 두 발이 칼날을 밀어내고, 다음 세 발이 칼날과 앞다리가 연결되는 관절부위에 꽂혔다.
칼날 사마귀의 관절은 상대적으로 얇은 갑각으로 보호되고 있다. 관절을 감싸는 갑각이 총에 맞을 때마다 퍽퍽 부서지다가, 겨우 세 발 만에 뚝 부러지며 앞발이 떨어져 나갔다.
“키에엑!”
칼날 사마귀가 다른 앞발을 들며 소리를 질렀다. 그 앞다리 관절에도 철갑탄이 연달아 박혔다. 관절부위의 얇은 갑각이 퍽퍽 깨져나가다가, 앞발이 그대로 뚝 떨어졌다.
강력한 칼날 두 개를 다 잃은 칼날 사마귀가 입을 크게 벌렸다. 날카로운 이빨이 드러났다.
“카아악!”
그 입안으로 철갑탄이 박혔다. 칼날 사마귀의 머리가 덜컥 젖혀지며 머리와 몸통의 연결부위가 드러났다. 그곳에도 철갑탄이 박혔다.
단 네 발 만에 갑각이 박살 나며 목이 부러졌다. 날카로운 이빨이 달린 머리가 몸통을 타고 데구르르 구르다가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몸뚱이는 부러진 앞다리를 허공에 휘젓다가 옆으로 넘어갔다.
박철우는 권총의 탄창을 마저 결합하며 주변을 경계했다.
‘사격 스킬 각성자다!’
보통 사람은 아무리 훈련해도 이렇게 정확하게 몬스터의 약점만 쏠 수 없다. 단발이라면 몰라도 연발로는 불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날아온 총알은 연발 상태에서 방아쇠를 짧게 당겨 끊어 쏜 것이다. 빗나간 건 단 한 발도 없었다. 그런 건 사격 스킬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그것도 높은 레벨의 사격 스킬이야.’
같은 스킬이라도 숙련도와 레벨에 따라 위력이 달라진다. 아무리 사격 스킬을 각성한다 해도 낮은 레벨의 초보는 이렇게 못 쏜다.
갑자기 옆쪽 숲에서 칼날 사마귀가 한 마리 더 튀어나왔다.
박철우가 권총의 총구를 그쪽으로 재빨리 돌렸다.
하지만 그가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연발로 날아온 철갑탄에 의해 칼날 사마귀의 앞발이 떨어져 나가고, 순식간에 머리까지 잘렸다.
‘숨어 있던 몬스터의 기습을 예상했구나! 감지 스킬까지 있나?’
스킬을 각성한 능력자가 흔한 건 아니다. 그중에서 사격 스킬이나 감지 스킬을 가진 사람은 더 적다.
세상에는 온갖 스킬이 있다. 짧은 시간 동안 힘이 조금 세지거나 눈이 조금 좋아지는 흔한 스킬부터, 텔레포트 같은 희귀 스킬도 있다. 사격이나 감지는 그 다양한 스킬 중에서 전투에 특화된 스킬이다.
그리고 박철우는 그 두 가지 전투 스킬을 다 가진 사람을 알고 있다.
“서정우?”
서정우가 숲을 헤치고 나타나 한소리 했다.
“아저씨. 자꾸 말하지만, 몸 좀 사리면서 싸우라니까.”
“역시 너구나.”
서정우가 씩 웃었다.
“이런 상황에서 날 만나니까 되게 반갑지?”
박철우는 권총을 권총집에 집어넣었다. 소총도 들어 방열판을 갈아 끼우고 50발짜리 철갑탄 탄창을 교체했다.
서정우는 박철우의 준비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탄창을 갈았다.
무기의 상태가 완전해진 후에, 박철우가 주먹을 내밀었다.
“반갑긴 더럽게 반갑지. 죽는 줄 알았다.”
서정우가 그 주먹을 툭 치며 말했다.
“아저씨라면 혼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았을 거 같은데? 팔 하나쯤은 잘릴지도 모르지만. 그런데 왜 혼자 이렇게 깊게 들어온 거야?”
박철우가 손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의 구름이 아지랑이처럼 흔들려 보였다.
“잘 보면 게이트의 공간 왜곡 영역이 이쪽으로 좀 튀어나왔지?”
서정우가 혀를 찼다.
“쯧. 놈들이 영역 확장을 시작했군.”
‘다시 만날 수 있다면’을 작곡한 헌터 박철우가 히죽 웃었다.
“누군가는 상황을 파악하러 들어와야지. 내가 자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