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312
313. 소멸
다시 일주일이 지난 후에 새로운 균열이 발견됐다.
서울에는 사이렌이 울리진 않았다. 이번에 균열이 발견된 곳은 충청남도 천안 인근이었다.
서정우는 택시를 타고 의정부의 비상대책 상황실로 갔다.
오정화 행정관이 먼저 와서 대형 스크린을 보다가 서정우를 돌아보았다.
“서 형사! 진짜 잘 왔어요.”
“오늘따라 더 반가워하는 것 같은데요?”
“균열 소멸장치를 실험하려는 때에 딱 맞춰서 서 형사가 왔으니까요.”
그 장치가 만들어졌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균열 소멸장치 프로토타입을 만든 곳이 BH 테크인데, BH 테크에 그걸 만들라고 조언한 사람이 바로 서정우다.
오정화가 스크린을 가리키며 상황을 설명했다.
“운이 좋았죠. BH 테크에서 실험용 장치를 만든 날 경보가 울렸으니까요. 즉시 헬기에 실험용 장치를 싣고 새로 발견된 균열로 날아갔어요.”
대형 스크린에 조립하다 만 것 같은 장치가 보였다.
연구원들은 헬멧과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다. 반자동권총도 보였다.
서정우는 문득 저쪽 세계가 생각났다. 저쪽은 현장에서 뛰는 과학자뿐만이 아니라 고등학생들도 권총을 차고 다닌다.
‘그런 세상이 되지 않게 해야지.’
현장에 파견된 오퍼레이터가 외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들렸다.
– 균열 소멸장치의 카운트다운을 시작합니다. 십! 구!
서정우는 양쪽 세계의 차이를 새삼 실감했다.
‘저쪽 세계의 게이트라면 저 정도 거리의 전자장비는 다 고장 났겠지.’
이쪽 세계의 정밀 전자장비는 멀쩡하게 동작했다.
– 팔! 칠! 육!
‘대신에 저쪽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전자기 교란 몬스터가 이쪽에서는 흔하게 나타나지. 다른 게 많아.’
– 오! 사!
그래서 내심 조금 불안했다.
‘저쪽 세계 양방향 게이트에서 얻어온 데이터가 의미가 있어야 할 텐데.’
균열이 게이트가 되기 전에 도로 닫을 방법만 찾아내면 몬스터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다. 서정우가 저쪽 세계에서 양방향 게이트를 넘은 건 바로 그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 삼! 이! 일! 균열 소멸장치가 작동합니다!
연구원이 장비를 작동시키고 뒤로 뛰어 도망쳤다. 여러 대의 카메라와 각종 계측장비가 균열을 비추었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상황실의 모든 요원이 침묵했다. 몇 사람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일 분쯤 지난 후에, 갑자기 오퍼레이터가 악을 썼다.
– 균열 크기! 감소합니다!
상황실에서 대책본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몇 프로나 줄어들었나!”
– 분당 1퍼센트입니다! 균열 예상 소멸 시간 앞으로 1시간 39분!
오정화가 서정우를 확 껴안으며 소리를 질렀다.
“꺄악! 성공이에요!”
서정우가 오정화를 슬쩍 밀어내며 말했다.
“다행입니다.”
“기쁘죠? 그쵸? 서 형사가 데이터 구해오려고 미친 짓 했을 때는 때려주고 싶었는데! 멋지게 성공했어요!”
* * *
두 시간 뒤에 오정화가 게이트 대책본부 회의실에서 실험 결과를 보고했다.
“균열 단계에서만 관측되는 특정 파장과 입자가 몇 가지 있습니다. 그동안은 그 파장과 입자의 의미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서 형사가.”
사람들이 모두 서정우를 돌아보았다.
오정화가 계속 설명했다.
“서 형사가 균열 생성 초기에 저쪽 세계를 조사하는 데 성공한 덕분에, 그중 한 종류의 입자가 이쪽에서 검출되는 이유를 알아냈습니다. 저쪽에서 균열이 열릴 때 사용된 입자 중 극소량이 이쪽으로 넘어와 탐지되는 겁니다.”
균열 소멸 실험에 성공한 소식은 회의 참석자들도 들었다. 마음이 급해진 과기부 장관이 물었다.
“학술적인 이야기는 좀 미루고, 결과부터 이야기해봐요. 성공했다면서?”
“네! 바로 오늘, 천안 인근에서 새로운 균열이 발견됐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BH 테크가 테스트용으로 만든 장비를 사용해, 그 입자와 반응해 소멸시키는 중화 입자를 대량으로 균열 너머로 쏘았습니다. 그 결과.”
그녀가 대형 화면에 현장 사진을 띄웠다. 현장에는 헬리콥터로 실어나른 균열 소멸장치 프로토타입만 있었다. 균열은 보이지 않았다.
“이십 분 전에, 천안 인근에 발생한 균열이 완전히 소멸했습니다.”
과기부 장관이 활짝 웃으며 박수를 쳤다.
“이거 아주 엄청난 일을 했어! 잘했어!”
다른 사람들도 박수를 쳤다.
오정화가 단서를 달았다.
“모든 위험이 사라진 건 아닙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균열이 게이트가 되면 그곳에서 몬스터가 튀어나올 겁니다. 균열 관측 시스템을 전국에 설치해야 합니다.”
그래야 한다는 건 서정우가 이미 대통령이 참석한 자리에서 이야기했다.
“당연히 그래야지. 하하. 사실 내가 요즘 걱정이 많았거든. 이러다 세계가 망하는 건 아닌가 하고. 하하하.”
서정우는 마음이 편해졌다.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는 게이트의 종류가 좀 다르다.
‘그래도 균열 생성 단계에서 틀어막는 방법은 비슷하겠지.’
회의가 끝난 후에 오정화가 서정우를 따로 만나 물었다.
“진짜 어떻게 한 거예요?”
“뭐가요?”
“회의실에서는 대충 보고하고 넘긴 거 알죠?”
“모릅니다.”
“모르는 척은. 서 형사가 균열이 열릴 때 장비를 집어넣고 측정했다고 말했잖아요.”
“그랬죠.”
“그럼 균열 탐지기가 포착하기도 전에 그 균열을 발견했다는 건데, 그게 말이 돼요?”
“운이 좋았습니다. 거기 그냥 놀러 갔는데 하필 그게 내 눈에 뜨여서.”
“서 형사. 도대체 뭘 숨기고 있는 거죠?”
서정우는 오정화가 어디까지 눈치챘는지 궁금했다.
“뭘 숨긴다고 생각합니까?”
“우리 대책본부보다 더 빨리 균열을 탐지할 수 있는 장비를 만든 건가요? 아니면 균열이 열릴 위치를 예측할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요? 중령? 지구자기? 태양풍? 뭘 근거로 계산한 거죠?”
서정우가 피식 웃었다. 오정화의 생각은 상식을 벗어나지 않았다.
“인상 펴요. 나한테 그런 장비는 없으니까. 균열을 지금보다 빨리 예측할 수 있는 장비는 과학자들이 만들어야죠.”
“그런 걸 만들 수 있을까요?”
서정우는 저쪽 세계의 주술 몬스터가 균열을 만들기 위해 한 작업을 떠올렸다.
‘주술사 몬스터가 두 시간 동안 돌을 깔면서 뭔가 하니까 균열이 생겼지.’
서정우는 저쪽 세계에서 게이트 감지 레이더보다 빨리 돌발 게이트를 발견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그런 일이 있었다.
‘주술 몬스터가 그 작업을 하면, 균열이 눈에 보이기 전부터 뭔가가 미리 새어 나오니까 내가 감지할 수 있는 거겠지.’
서정우가 말했다.
“난 균열이 생기기 한두 시간 전부터 전조증상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 전조증상을 측정할 수 있으면, 방어할 시간도 그만큼 늘어날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걸 측정할 수 있는지는 나도 모릅니다.”
“서 형사가 준 데이터는 우리 연구진이 최선을 다해 분석하고 있어요. 우리 외에도 많은 연구소에서 과학자들이 연구 중이에요. 만약 전조증상이 있다면 언젠가는 알아내겠죠.”
“꼭 그랬으면 좋겠군요.”
그 연구 결과는 저쪽 세계에서도 유용하게 쓸 수 있다.
“그런데 서 형사는 균열이 생성되기 한두 시간 전에 전조증상이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어요?”
“모릅니다. 합리적인 추측을 했을 뿐입니다.”
“되게 수상한 거 알죠?”
서정우가 미소를 지었다.
“다 잘 됐잖아요. 피해 본 사람도 없고. 오 행정관님 덕분에 세계평화와 인류생존이 가능해졌어요. 이런 분한테 노벨상 줘야 하는데.”
오정화도 서정우가 음모를 꾸민다고 의심하는 건 아니다.
‘서 형사가 세상을 위해 일하는 건 알아. 나에게 말해주지 못하는 이유가 있겠지.’
그건 이해하지만, 좀 서운해서 그냥 투정을 부린 것뿐이다.
“서 형사. 노벨상을 정말 준다면 설마 내가 받겠어요? 난 그냥 중간에서 데이터만 받아서 넘겨준 건데. 상은 서 형사가 받아야겠죠.”
“난 상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그럼 게이트 대책본부가 받으면 되겠네요.”
오정화가 서정우를 가만히 보았다.
‘서 형사가 디나인이라는 것만 밝히고 연구 내용도 공개하면 노벨상을 탈 수 있을 텐데.’
“서 형사는 참… 신기한 사람이에요.”
“그냥 세계평화와 인류생존을 바라는 보통 사람입니다.”
그녀가 주변을 슬쩍 보았다. 엿듣는 사람은 없었다.
“서 형사가 디나인이라는 거, 이미 몇 나라가 눈치챘잖아요. 언젠가는 모두 알게 될 거예요. 영원히 비밀로 할 수는 없어요.”
“그거야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죠. 오늘 실험 분석 결과나 복사 좀 해줘요. 중화 입자를 쐈더니 균열이 어떤 변화를 보이며 소멸했는지 같은 거요. 나도 좀 연구해보게.”
오정화가 한숨을 내쉬었다.
“달라고 할 거 같아서 가져왔어요. 자요.”
* * *
서정우는 BH 테크 이병훈을 만나 균열 소멸장치와 관련된 자료를 따로 받았다.
이쪽 세계의 장비 설계도를 저쪽 세계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다. 양쪽 세계는 사용하는 장비와 기술이 좀 다르다.
그가 이병훈에게 받은 건 어느 회사의 무슨 부품을 쓰라는 게 아니라, 기반기술에 관한 것이다.
이병훈이 자료를 넘긴 후에 말했다.
“우리가 균열 소멸장치 값으로 얼마를 부르든 전 세계 모든 국가가 그 돈을 내고 살 겁니다. 이 기술을 독점하면 우린 부자가 될 겁니다.”
“이미 부자시잖아요.”
“그야 그렇지만….”
서정우의 각성 이론대로라면, 이쪽 세계에는 각성자가 생길 수 없다.
저쪽 세계는 각성자들이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크게 활약한다.
이쪽 세계는 각성자가 없는 대신에 강력한 무기를 대량으로 만들 수 있는 산업생산 능력이 있다.
그런데 이쪽 세계에서 초기 대응에 실패해 산업생산 시설이 날아가면, 몬스터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가 없다.
“이 사장님. 게이트 사태를 초반에 못 막으면 다 죽어요. 어른이나 아이를 가리지 않고 인류 전체가 죽습니다. 세상이 망하면 돈이 있어 봤자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병훈은 그런 미래에 대해 듣자마자 바로 사과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게이트 사태는 반드시 초기에 막아야 합니다. 균열 소멸장치를 느긋하게 생산할 시간이 없으니까, 만드는 방법을 공개하시죠.”
“우리가 기술을 공개해도 그 장비를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 열 곳이 안 됩니다. 우리 회사가 괜히 아틀라스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게 아닙니다.”
“그래도 열 곳은 있네요. 혼자 만드는 것보다 열 배 더 많이 만들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래도 무료 공개가 아니라 로열티는 챙기는 쪽이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챙겨야죠.”
“예? 아! 전 혹시 그것도 반대하시는 건 아닌지 걱정했습니다. 하하하.”
“거기다 세계평화를 위해 쓰라는 조건도 걸어야 합니다. 그러라고 기술을 공개하는 거니까.”
* * *
서정우는 게이트 대책본부와 BH 테크에서 받은 자료를 가지고 몬스터와 싸우는 세계로 넘어왔다.
게이트 탐사팀원들이 다시 모였다.
서정우가 말했다.
“분석 결과가 나왔어. 테스트도 끝냈어.”
사람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박철우가 물었다.
“결과는?”
서정우가 씩 웃었다.
“균열이 게이트로 변하기 전에 소멸시키는 데 성공했지.”
이선화가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와아!”
가족이 저쪽 세계에 있는 박철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윤현식 중령도 밝은 얼굴로 앞으로 있을 변화를 이야기했다.
“게이트가 열리기 전에 균열을 소멸시킬 수 있으면, 전투가 절반 이하로 줄어들 거야. 우리 전력이 두 배로 늘어난 거나 마찬가지 효과니까 숨통이 좀 트이겠네.”
과학자인 견습 성녀 윤지민도 방긋 웃었다.
“이제 대규모 공장도 지을 수 있겠네요. 공장 주변의 균열탐지만 확실히 하면 공장이 터져나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백성민은 활짝 웃었다.
“음하하하. 내가 없으면 못 하는 작전이었던 거 알지? 내가 이렇게 중요한 사람이야!”
서정우가 손가락 하나를 세워 좌우로 흔들었다.
“아직 우리 세계의 일반적인 균열에 시험해본 게 아니야. 좀 독특한, 특별한 균열에 테스트했어.”
저쪽 세계의 존재를 아는 두 명을 제외하고는 무슨 소리인지 몰라 서정우를 쳐다보았다.
“그런 균열이 있었어. 그래서 일반 균열을 대상으로도 확인해야 해.”
윤현식 중령이 큰소리쳤다.
“필요한 게 뭐냐? 군대 예산을 다 끌어쓰더라도 확인할 테니까 말만 해라.”
“이 기술은 어느 한 나라 정부가 독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한 나라가 독점하면 이 기술을 이용해서 세계를 지배하려고 들 수도 있어. 그래서 우리끼리만 균열에 들어간 거잖아.”
“아…. 정보의 가치를 생각하면 우리를 다 체포해서 입을 막을 수도 있겠다.”
“날 체포할 자신은 없을 테니까 나를 저격할지도 모르지.”
“넌 감지와 사격 스킬 레벨이 너무 높아서 저격이 불가능한데?”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바보는 항상 있으니까.”
사람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특히 백성민이 바짝 긴장했다.
“어…. 그럼 난 잡혀가는 거야? 야! 이야기가 다르잖아! 영웅이 된다며! 시청 광장에 동상 세워준다며!”
“영웅은 나중에 모든 사람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그때 되든가.”
“아. 맞다. 나중에 되라고 했지. 그런데 그러려면 지금 안 잡혀가야 하잖아.”
“우리가 직접 공개하지 않으면 잡혀갈 일 없어.”
“그럼 숨기자. 확실히 숨기자.”
윤지민이 물었다.
“실험은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하려고요?”
“디나인 계정으로 공개하려고요.”
그녀는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들었다.
“아! 유럽 사이트를 이용하려고요? 그럼 전 세계 연구소가 그 기록을 볼 거예요. 신약 개발의 천재인 디나인이 직접 공개하면, 각국 연구소는 예산이 얼마가 들던 앞다투어 실험을….”
그녀가 멈칫했다.
“잠깐. 디나인? 디나인이 누군지 정우 씨가 어떻게 알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