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ility from Parallel Dimensions RAW novel - Chapter 69
69. 정기훈 박사
여성 듀오 레몬플라워의 윤미소가 설명했다.
“그래서 ES 엔터 분들을 만나서 디멘션의 곡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하는 게 가능한지 물어보려고 찾아온 거예요.”
최수아가 설명을 마저 했다.
“그런데 저희가 오늘 ES 엔터 분들이 어디 있는지 주변에 물어본 걸 그놈들에게 들켜서, 조 실장 놈이 어디서 양아치들까지 데리고 쫓아왔어요.”
드라마 남자 주인공 강서준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야아. 이거 듣고 보니 그럴싸한데? 나도 ES 엔터로 옮기면 디멘션이 곡 주나? 나도 갈까?”
권경철이 물었다.
“너 계약 얼마나 남았냐?”
“얼마 안 남았어.”
“근데 네가 ES 엔터로 가면 거기서 널 제대로 지원해줄 수 있겠냐?”
“하긴. 디멘션은 작곡가고 ES 엔터 사장님도 가수 출신이라 드라마나 영화 쪽은 약하지.”
“전에도 ES 엔터에서 배우 몇 명 영입했는데 결국 다 떠났다더라. 그 회사에 빵빵한 후원자라도 붙으면 모를까 무리라고 본다. 지금 ES 엔터 상태로는 널 감당 못 해.”
이선화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생각했다.
‘난 못 가. 계약이 1년이나 남았잖아. 무리해서 간다 해도 ES 엔터는 하도 작아서 내 백업을 제대로 못 해줄 거고. 그리고 ES 엔터가 정우 씨 회사도 아닌데 내가 거길 왜 가?’
그녀가 서소라를 힐끗 보았다.
‘난 ES 엔터가 아니라 쟤를 공략해야지.’
윤미소가 말했다.
“그런데 일이 이렇게까지 됐으니까 이제 조용히 만나서 물어볼 필요도 없겠어요. 오동철 선배님께 연락드리고 직접 회사로 찾아가서 여쭤볼래요. ES 엔터와 계약하면 디멘션의 곡을 받을 수 있는지.”
최수아가 두 손을 맞잡았다.
“꼭 받았으면 좋겠다.”
서정우가 말했다.
“아. 예. 열심히 해요.”
돌아오는 길에 서소라가 물었다.
“오빠. 어쩔 거야?”
“뭘?”
“레몬플라워. 곡 줄 거야?”
다른 세 명도 눈을 반짝거리며 서정우의 대답을 기다렸다.
“글쎄.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저쪽 세계에서 레몬플라워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 * *
서정우는 이튿날 경찰서로 출근했다. 그의 책상 위에 카페에서 파는 아메리카노 커피가 놓여 있었다.
백성민이 그걸 보고 불평했다.
“와. 21세기에 이런 차별이. 난 지금까지 출근했을 때 책상 위에 자판기 커피조차 있었던 적이 없는데. 너무하네. 민석아. 안 그러냐?”
조민석이 대답했다.
“전 자판기 커피는 얻어 마셔봤는데.”
“네가 지금 정우와 같은 과가 되고 싶어서 그러냐? 넌 내 과인데?”
“저도 연애도 하고 장가도 가고 해야죠. 그러니까 그건 좀…….”
“내가 호랑이 새끼를 키웠구나!”
서정우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역시 이쪽 세계의 커피는 맛있어.’
잠시 후에 강력팀장 권병철이 나타나서 서류철을 흔들었다.
“정우야. 너 어디 가야겠다.”
“어디로요?”
백성민이 벌떡 일어나서 항의했다.
“아니. 팀장님! 정우를 보내면 우리는 어쩌라고요!”
“우리가 왜?”
“정우 오고 나서 꿀 빨고 있잖아요! 꿀 더 많이 빨아야 하는데 보내긴 어딜 보내요? 도대체 어떤 놈이 정우를 보내달랍니까?”
“네가 꿀을 빤 걸 알기는 아는구나?”
“그게 숨긴다고 숨겨지는 건 아니니까요. 팀장님도 같이 빠셨으면서.”
권병철이 손을 흔들었다.
“꿀은 어디 우리만 빠냐? 과장님하고 서장님도 빠시지. 이미 정우를 자기네 쪽으로 보내달라는 데가 많지만, 서장님이 온몸으로 막고 계시다. 정우를 우리 서에서 빼내고 싶으면 먼저 서장님 목부터 치라고 외치고 다니신다.”
백성민은 당황했다.
“예? 정우를 보낸다면서요?”
“다른 데로 보내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만 다른 곳에 경호 지원을 가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아아. 난 또. 당일치기구나. 아니. 그래도 그런 거 함부로 보내면 안 되죠. 당일치기가 이틀 되고 이틀이 사흘 되고 그러다 정신 차리고 보면 계속 출장 중이고. 일 잘한다고 일을 더 시키면 누가 일 열심히 하고 싶겠습니까?”
“우리나라에서는 원래 잘하면 더 시키잖아.”
“그러니까 법을 수호하는 우리라도 안 그래야죠! 그거 착취입니다! 착취!”
“너 오늘따라 말 잘하네. 하여간 성민이 넌 아쉬워야 열심히 하는 놈이라니까.”
“제가 가서 멱살이라도 잡고 따질 테니까 어떤 새끼가 정우 보내라고 했는지나 말씀해 보시죠!”
“저 위 높은 곳에서 온 임무라서 안 보낼 수가 없어.”
“얼마나 높은 곳인데요!”
“청장님.”
백성민은 멈칫했다.
“아. 그럼 가야지요.”
“청장님도 다른 부처 장관님의 부탁을 받으신 거라더라.”
“그럼 꼭 가야겠네요. 아니 무슨 장관님이 일개 순경 이름을 다 아시나.”
투덜대던 백성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수사가 아니라 경호 지원이요? 정우를요? 왜요? 쟤는 살인마 잘 잡기로 유명한데?”
“난들 아냐. 장소는 삼성동인데 닥치고 보내란다. 경호 대상이 누군지도 안 가르쳐주더라.”
강력팀장 권병철이 서정우에게 물었다.
“너 경호 임무는 해본 적 있냐? 위에서 너를 콕 집어서 보내라고 해서 보내기는 한다만.”
서정우는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특정 인물을 지킨 경험이 많다. 그런데 그건 사람을 상대로 한 경호가 아니라 몬스터로부터 사람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서정우는 저쪽 세계에서 몬스터가 점령한 지역에 들어가 생존자를 구출하는 일을 정말 많이 했다. 그가 도착했을 때까지 살아만 있으면 모두 구출해서 데리고 나왔다. 그러려면 적진을 돌파하는 동안 생존자를 몬스터의 습격으로부터 지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감지 스킬과 사격 스킬은 그런 임무에서도 큰 위력을 발휘한다.
서정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커피를 마저 마시고 컵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래서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그는 컵 바닥에 적힌 여자 글씨의 전화번호를 보지 못했다. 그런 건 원래 감지 스킬에 안 걸린다.
권병철이 서류를 넘겨주었다.
“여기로 와달라더라. 담당자 연락처도 그 안에 같이 있다.”
* * *
서정우가 도착한 곳은 삼성동에 있는 호텔이었다. 그곳에서 오늘 국제 학술 세미나가 열릴 예정이었다.
서정우는 서류를 보고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정부 중앙부처에서 나온 공무원이 서정우를 찾아왔다.
“서정우 형사님? 이야. 직접 보니 정말 반갑습니다.”
“아. 예. 일단 무슨 상황인지 알고 싶습니다만. 경호 대상이 누구인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어떤 위협이 있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공무원이 손을 흔들며 웃었다.
“아아. 경호. 무슨 위험한 일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예우 차원에서 하는 겁니다. 아무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예?”
그가 사진을 한 장 보여주었다.
“이 분이 경호 대상이기는 한데, 실제로는 조금 복잡한 상황이…….”
사진에 나온 인물은 서정우가 아는 사람이다.
“정 박사님?”
공무원은 당황했다.
“어? 서 형사님이 정기훈 박사님을 어떻게 아십니까?”
정기훈은 저쪽 세계에서 유명한 무기 개발자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2000년에 게이트가 열리고 몬스터와 전쟁이 벌어지자 한국으로 돌아와 무기를 개발했다. 서정우가 쓰는 무기 중에도 정기훈이 개발한 것이 몇 개 있다. 이선화가 쓰는 핑크색 소형 무탄피 권총도 서정우가 정기훈에게 개인적으로 부탁해 개조하고 강화한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이쪽 세계의 공무원에게 할 이유는 없다. 그는 일단 둘러댔다.
“인터넷에서 기사를 봤습니다.”
“학계나 그쪽 분야 분들이 아니면 잘 모르는 분인데.”
“정 박사님에 대한 기사를 우연히 봤습니다. 제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이라서요. 그래야 범인을 잘 잡으니까. 그런데 기사에서 본 것 외에는 모릅니다. 어떤 분인지 설명을 좀 해주시죠.”
서정우는 이쪽 세계의 정기훈이 어떤 인생을 사는지 모른다. 그는 그 정보를 원했다.
“정기훈 박사님은 미국에서 연구활동을 하는 기계공학자입니다. 물리학자이기도 하고요. 두 분야 모두 학계에서 명성이 높은 대단한 분이지요. 아. 국적은 미국입니다. 한국계 미국인이지요.”
서정우가 생각했다.
‘이 아저씨는 이쪽 세계에서는 계속 미국에 사나 보네.’
공무원이 계속 설명했다.
“우리 국방과학 연구에도 자문을 많이 해주고 계십니다. 이번에 국제 학술 세미나에 참석하러 국내에 들어오셨는데, 그동안 신세 진 게 있는 우리 정부에서 대접을 소홀히 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고 대놓고 돈을 드리는 건 미국 정부 눈치가 보여서 어렵습니다. 괜히 스카우트하려는 것처럼 보이면 서로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래서 생각한 게 예우라도 확실히 해드리는 겁니다. 경호 지원도 그 예우의 하나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하필 저를?”
“경호 지원을 해드리겠다고 했더니, 콕 집어서 서정우 형사님을 원하더군요.”
서정우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왜? 날 어떻게 알고? 설마 정 박사님이 저쪽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낸 건가?’
서정우는 침을 꼴깍 삼켰다. 다른 사람이 저쪽 세계의 존재를 알아냈다면, 지금처럼 느긋하고 여유롭고 풍족한 생활은 끝이다. 그때부터는 누가 뭘 아는지 알아내러 다녀야 한다.
“왜 날…….”
“서정우 형사님이 이선화 씨 스토커를 잡는 영상 말입니다. 그 영상이 미국에서도 화제가 됐다더군요. 정기훈 박사님의 따님도 그 영상을 봤나 봅니다.”
“아아.”
이제야 이 상황이 이해가 됐다.
‘그러니까 내가 여기 불려온 건 제시카 때문이구나. 저쪽 세계의 존재를 알아서가 아니야. 하긴. 이쪽 세계 사람이 그걸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겠지.’
마음이 탁 놓였다.
저쪽 세계의 정기훈은 제시카 정이라는 딸이 있다. 그녀는 성인이다.
쌍둥이 박하연과 박다연의 나이부터는 같은 사람이 양쪽에 모두 존재한다. 제시카가 이쪽에도 있는 건 당연하다.
서정우는 삼성동 호텔에서 정기훈과 제시카를 만났다.
서정우가 먼저 인사했다.
“서정우입니다.”
“정기훈입니다. 이쪽은 제 딸 제시카고요.”
서정우는 저쪽 세계에서 그들의 목숨을 한 번 구해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하겠지. 여기서는 인연이 없었을 테니까.’
제시카가 서정우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우와. 당신이 정말로 영상에서 그 파파박 하던 그분이에요?”
저쪽 세계의 제시카는 한국말을 잘한다. 태어나기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어릴 때부터 한국에서 쭉 자랐으니 당연하다.
이쪽 세계의 제시카도 한국말을 잘하기는 하는데, 억양에서 조금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한국말을 동영상으로 배웠나?’
“아. 예.”
“우와! 그럼 나랑 한 번 붙어봐요!”
“붙다니 뭘…….”
“나도 태권도 검은 띠예요!”
“검도는 어쩌고?”
“우와! 나 검도 유단자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딱 보면 그게 보여요?”
보고 안 건 아니다.
저쪽 세계의 제시카는 검술 스킬을 각성했다.
“칼을 좋아할 것처럼 보이기는 합니다.”
제시카는 흥분했다.
“우와! 형사라더니 코난 같아!”
* * *
ES 엔터테인먼트 사장 오동철이 사무실에서 외쳤다.
“드디어 행사가 잡혔다!”
포캣츠 네 명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서소라가 두 팔을 번쩍 들었다.
“만세! 드디어 노트북 빚을 갚는구나! 심부름은 이제 끝이다!”
윤나나가 질문했다.
“어떤 행사예요?”
오동철이 활짝 웃으며 설명했다.
“원래는 다른 걸그룹이 잡은 행사인데, 스케줄에 문제가 생겨서 못 오게 됐다네? 그래서 우리가 대신 가기로 했어.”
윤나나는 살짝 실망했다.
“아. 땜빵이구나. 우리의 역사적인 첫 행사가 땜빵.”
쌍둥이가 항의했다.
“좋은 행사 잡아준다더니!”
“사장님이 포기하고 우리를 떨이로 판다!”
“이럴 거면 전에 그 게임대회 행사에 보내주지!”
“거기 우리 아빠 기억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오동철이 얼른 설명했다.
“야. 야. 이게 그냥 땜빵이 아니야. 삼성동에 있는 호텔에서 하는 큰 국제 학술 세미나인데, 중요한 행사라서 기업에서도 많이 참가한다더라. 그 세미나의 저녁 만찬장 공연을 잡았다. 그러니까 너희 첫 행사는 국내 행사가 아니라 국제 행사야! 행사 데뷔를 국제적으로 한다고! 얼마나 좋냐?”
쌍둥이가 당장 태도를 바꾸었다.
“우린 이제부터 땜빵 전문이다!”
“아싸아! 국제적인 땜빵이다!”
윤나나가 물었다.
“무슨 세미나인데요?”
“무슨 물리학이 어쩌고 기계공학이 저쩌고 하는데, 난 들어도 잘 모르겠더라.”
“행사 지원 업무는 없죠?”
“없지. 우리는 진짜 공연만 하면 돼. 아. 공연 끝나면 거기서 식사도 제공한대. 유명한 과학자들하고 기업 관계자들 사이에 섞여서 밥 먹고 오자.”
서소라가 걱정했다.
“그러다 공부만 하던 범생이 학자들이 내 매력에 빠져서 밥도 제대로 못 먹으면 어떡하지?”
오동철이 말했다.
“나나야. 약 남은 거 있으면 소라도 좀 나눠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