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gression RAW novel - Chapter (156)
절대회귀-156화(156/424)
제156회 개꿈일지 예지몽일지.
진하령은 누군가에게 쫓기고 있었다.
뒤쫓는 자를 도저히 떨쳐낼 수가 없었기에 결국 경공으로 나무 위로 올라갔다. 그녀는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숨긴 채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뒤쫓던 추격자가 나무를 지나서 달려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
마치, 냄새를 맡은 맹수처럼 추격자가 천천히 돌아서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쳐다보았다. 남자의 얼굴은 마치 괴물처럼 텅 비어 있었다.
악! 하고 비명을 내질렀지만, 목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몸을 날려서 달아났다.
점점 거리가 좁혀지던 그때, 앞에서 누군가 달려오더니 뒤따라오던 남자의 얼굴을 사정없이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얼굴 없는 추적자가 데구루루 구르더니 사라졌다.
자신을 도운 사람은 치렁치렁 내려온 머리카락에 얼굴에는 수염이 가득했다. 이 남자를 어디서 봤더라?
다음 순간, 그녀가 소리쳤다.
“당신은 그 시종?”
객잔에서 만났던 그 남자임을 자각하는 순간, 진하령은 눈을 번쩍 뜨며 꿈에서 깨어났다. 마지막 말은 깨어나면서 실제로 내뱉었다.
평소 꿈을 잘 안 꾸는 그녀였는데. 이렇게 이상한 꿈은 처음이었다.
밤새 쫓겨 다녔는지 그녀는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쫓기는 꿈은 그렇다 치고, 왜 하필이면 그 남자가 나와서 자신을 구해준 걸까? 그날 시종이 주인이라 착각했던 것이 마음에 남아서였을까?
그녀는 털보 시종의 얼굴을 떠올렸다. 한 번 본 얼굴인데,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꿈에서 본 그 얼굴이다. 원래 사람 얼굴 잘 기억하지 못하는 그녀였기에, 그의 얼굴이 이렇게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신선한 경험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밖에서 호위무인 추호(秋護)의 목소리가 들렸다.
“괜찮아. 악몽을 꿨어.”
“소룡전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서 그러실 겁니다.”
“그렇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가씨를 이길 자는 없습니다.”
“나 더 쉴 테니까 오늘은 방해하지 마.”
“네.”
하지만 잠시 후, 추호 몰래 거처를 나온 그녀는 국수를 먹었던 객잔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가 객잔에 들어섰을 때, 내부는 손님들로 자리가 가득 차 있었다. 이번 대회 때문에 어디를 가도 사람들로 북적대었다.
그녀 눈에 구석에서 술을 마시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꿈에 나왔던 그 시종이었다. 어쩌면 여기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 거였는데, 정말 있었다.
오늘은 국수 때문에 온 것이 아니다. 저 시종을 한번 만나보고 싶었다. 정말 꿈에 나올만한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고개를 내저으며 실소했다.
꿈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촌구석 문파의 시종을 만나러 왔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녀가 돌아서서 나오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불렀다.
“국수 드시러 오셨습니까?”
돌아보니 시종이 일어나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바람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집중되었다. 자신을 알아본 몇몇 이가 깜짝 놀랐다. 이대로 돌아서 나가 버리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거란 생각에 그녀는 태연하게 시종의 자리로 걸어가서 마주 앉았다.
그녀가 시종 앞에 마주 앉은 후 국수와 술을 시켰다.
“저와 합석하지 않으실 줄 알았습니다.”
“왜죠?”
“지난번에 제 신분이 시종인 것을 알았으니까요.”
“귀한 몸이라 시종과는 겸상하지 않을 거다? 이런 말인가요?”
“아닙니까?”
대놓고 아니냐고 묻는 모습에 진하령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맞아요.”
그럴 줄 알았다는 남자의 표정이 얄미워서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한데 그 이유가 상대가 시종이라서가 아니라, 상대가 불편해해서예요. 제가 앞에 있으니 밥을 잘 못 먹더라고요.”
“아, 그럼 다행입니다. 저는 전혀 불편해하지 않을 겁니다.”
무림맹주 손녀 앞에서 이렇게 당당한 시종이라니?
‘지금쯤이면 내가 누군지 알았을 텐데.’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본 적이 없는 유형이었다. 정말 몰라도 너무 모른다. 명문정파 후계자들도 그녀 앞에서는 정말 조심스럽게 행동하는데. 이런 민감한 질문은 생각조차 못 하는데.
“항상 혼자 다니시는군요.”
사실 그녀는 상대가 시종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았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이렇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조차 좋아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런 자신이 이곳까지 온 것도 낯설다.
어쩌면 이 남자에게 자신의 무의식이 감지한 어떤 특별함이 있어서 그런 꿈을 꾸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왔다.
그녀가 힐끗 남자를 쳐다보았다. 머리는 정리되지 않았고, 수염은 지저분하게 자라서 정말 볼 거라곤 없었다.
‘개꿈이야, 개꿈.’
그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는 편안하게 그녀를 대했다.
“아, 저희 도련님도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그에 대한 소문은 그녀도 들었다. 이변을 일으키면서 본선에 진출했다는 소식을 호위인 추호에게 들었다. 촌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무공수련만 했던 문파였으리라. 그러니까 본선에도 진출할 수 있었을 테고. 이 순박하리만치 세상 물정 모르는 남자만 봐도 그 문파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도련님이 소저와 붙게 될 수도 있겠군요. 아, 그거 아세요? 본선에서 죽는 사람도 있었답니다. 부디 우리 도련님 잘 부탁드립니다!”
“무인이 비무대에서 죽는 건 명예로운 죽음이겠죠.”
“명예로운 죽음이 아니라 억울한 죽음 아닙니까?”
“무슨 뜻이죠?”
“무인에게 비무대 위만큼 안전한 곳은 없잖아요? 정해진 규칙이 있고, 심판이 있고,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암습도 못하잖습니까? 그런데 이 비무대 위에서 죽는다고요? 그건 너무 억울한 죽음 아닙니까?”
그녀는 뭔가 궤변이란 생각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꼭 무인처럼 말하는군요.”
“저도 검술을 배우긴 했거든요.”
“좋은 주인을 만났군요. 시종에게 검술도 가르치고.”
“네, 정말 무서운 분에게 배웠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분일 겁니다.”
진하령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지금까지 몇 사람이나 만나봤다고 저런 말을 하는 것일까? 진짜 무서운 사람을 만나보기나 한 걸까? 하긴 그가 온 촌에서는 자기 주인이 제일 무서웠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시선이 시종의 허리에 찬 검으로 향했다.
“검집은 왜 천으로 감아뒀나요?”
흔히 구할 수 있는 무명으로 칭칭 감아두었다. 보통 이런 경우는 두 가지다. 험한 곳을 다니는 낭인들이 검집에 상처가 날까 봐 감아두거나, 귀한 검을 숨기려 할 때.
“멋있게 보이려고 그랬습니다.”
“그럼 멋진 비단으로 감아야 하지 않나?”
“비단이 아니라서 멋있죠. 꾸민 듯 안 꾸민 것이 핵심이거든요.”
어이없어하는 그녀를 보며 남자는 한술 더 떴다.
“이곳 무한에 동호(東湖)가 그렇게 아름답다던데, 다음에 구경 한 번 시켜주시겠습니까?”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다. 일개 시종 따위가 지금 누구에게 그딴 말이냐고 소리를 질러야 할 때다.
왜 그냥 있는 걸까?
꿈에 나왔다고? 아니다. 신분이 낮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싹수없는 년이 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일 거다. 할아버지는 자식들이나 손자들이 그런 구설에 오르는 것을 질색으로 여기셨으니까. 그래, 그래서일 것이다.
“그럼 제가 아는 다른 절경을 꼭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은 자신과 그런 순간이 올 거라고 믿는 걸까? 같이 합석 두 번 했다고 함께 유람이라도 떠날 기세다.
그녀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여기 온 자신이 잘못이다.
“당신 이름이 뭐죠?”
화가 나서 묻는 거다. 이 자식아, 너 이름 뭐야? 란 감정이 깔린 물음.
“그냥 시종아~ 라고 부르십시오.”
정말 이 자가 끝까지!
“그건 내가 너무 버릇없어 보이잖아요?”
“검연(劍煙)입니다. 인연 연자가 아니라 연기 연자입니다. 저는 이렇게 있다가 연기처럼 사라질 겁니다.”
그러면서 남자가 씩 웃었다. 진하령은 시종 주제에 참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왔다.
“하령.”
비슷한 또래의 그는 청룡단주의 아들인 송태군(宋泰君)이었다. 어려서부터 그녀와 함께 자란 유일한 친구였다. 그를 보는 순간 진하령은 내심 당황했다.
“국수 먹으러 왔구나.”
그녀가 여기 국수를 좋아하는 것을 송태군은 잘 알았다.
“나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고 왔어?”
“이 앞을 지나가는데 여기서 나온 손님들이 네가 있다고 이야기를 나누더라. 또 추 무인 피해서 도망쳐 나왔구나.”
송태군이 그녀와 함께 있는 남자를 보며 물었다.
“한데 누구신가?”
뭐라 소개를 해야 할지 몰라 진하령이 당황했다.
그때 남자가 그에게 포권하며 인사했다.
“감숙 서도파의 검연이라고 합니다. 제 사형이 이번에 본선에 진출한 상태입니다.”
“아! 서도파라면 사형 이름이 서룡이지 않소?”
“맞습니다.”
“이번 대회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들었소. 이렇게 대단한 문파의 제자분을 뵙게 되니 영광이외다.”
“제 사형이 대단하지요. 저야 비무대 밖에서 응원만 할 뿐입니다.”
“그대 사형보다 검 소협이 훨씬 더 대단해 보이시오.”
“무슨 말씀이신지요?”
“여기 이 친구와 함께 앉아 있지 않소?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아시오? 오랜 친구인 나도 힘든 일이오.”
그러자 진하령이 그에게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가. 나중에 봐.”
더 있고 싶은 눈치였지만, 진하령이 차가운 기운을 풀풀 풍기는 바람에 송태군은 웃으며 작별을 고했다.
“다음에 술 한잔합시다.”
“그러시지요.”
송태군이 떠나자 진하령이 차갑게 추궁했다.
“왜 사제라고 거짓말했죠? 왜요? 내가 시종하고 한자리에 있는 걸 들키면 부끄러워할 거라고 여겼나요?”
솔직히 그녀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송태군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순간 당황했으니까. 시종이라 소개하기가 망설여졌으니까. 정곡을 찔렸고 그녀는 수치심을 느꼈다.
“엄밀히 따지면 거짓말 아닙니다. 제가 시종이기도 하지만, 한 문파에서 무공을 배웠으니 사제이기도 하잖아요?”
“궤변은 한 번이면 충분해요.”
진하령은 자리를 박차고 그곳을 나왔다.
그리고 그날 밤, 그녀는 또 악몽을 꿨다.
이번에는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는데 또 그 시종이 나타나서 손을 뻗어 자신을 구해주는 꿈이었다.
새벽에 잠에서 깬 진하령이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검연과 손을 잡았던 감촉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마치 예지몽(豫知夢)처럼 생생했다.
“미친년아, 너 자꾸 왜 이래?”
답은 그녀도 알고 있었다. 왜 그러긴. 평생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지.
그녀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하지만 쉽게 잠이 들지 않았다.
* * *
서대룡의 본선 첫 번째 상대는 복건(福建)에서 이름난 장평검가(張平劍家)의 후계자였다.
“나랑 연습 좀 할까?”
“각주님하고요?”
처음으로 연습하자는 말을 하자 서대룡은 깜짝 놀랐다.
“저야 영광이죠.”
“따라와.”
서대룡을 데리고 내가 수련하던 산속으로 데려갔다.
“연습하는 곳을 찾아도 확실히 저와는 다르시네요. 어떻게 이런 곳을 다 찾아내셨습니까?”
너른 공간에 사방이 막혀 있었고 들어올 수 있는 통로는 한 곳이었다. 한 곳만 신경을 쓰면 되니 무공수련을 하기에 제격인 곳이었다.
“앞으로 여기 와서 수련해.”
“아뇨. 저보다는 각주님이 수련하셔야죠. 수련의 질이 하늘과 땅 차이인데요.”
“과연 그럴까?”
“네?”
“자기 인생과 목숨을 걸고 비무대회에 도전하는 네 수련이 훨씬 가치 있는 수련이라 생각하는데? 네가 하늘이고 내가 땅이라면 인정하고.”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만, 그렇다고 천지가 바뀌지는 않죠. 설령 뒤집힌다 하더라도 그리 기분이 좋지도 않을 거고요.”
그래, 오른팔은 이런 사람을 두는 거다. 무공이 더 강하고 약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한마디를 주고받아도 기분 좋고, 지닌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해주는 이런 사람이 오른팔이 돼야 하는 거다. 적어도 오른팔만큼은.
“장평검가의 후계자가 비무하는 것 봤어?”
“네. 정말 잘 싸우던데요?”
“객관적인 전력으로는 네가 밀린다.”
“각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니 제가 확실히 지겠군요.”
나는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무공수련한 기간의 차이를 넘어설 수가 없다. 게다가 혈천도마의 무공을 완전히 전수받은 것도 아니었고 마기를 마음껏 드러낼 수도 없다. 이래저래 힘든 싸움이었다.
“자, 장평검가의 무공을 흉내 내서 펼칠 테니, 나를 비무 상대로 생각해라!”
“네!”
나는 장평검가 후계자의 검술을 흉내 내서 그가 싸우는 것처럼 서대룡을 상대했다.
서대룡은 지고 또 졌다. 나는 봐주지 않았고, 한판이 끝날 때마다 서대룡은 몸에 멍이 추가되었다. 목숨이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해주십시오.”
서대룡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시도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그는 온갖 방법을 다 시도했다.
나는 묵묵히 비무를 반복해주면서 그가 스스로 답을 찾아내기를 기다렸다. 이길 수 있는 해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설령 비무에 지는 한이 있더라도,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임무도 중요하지만, ‘무인 서대룡’의 인생에서 분기점이 되는 이 순간이 더 중요했으니까.
우린 밤을 새워가며 비무 연습을 했다. 서대룡은 녹초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눈빛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본선 비무 네 시진 전.
끝까지 수련하겠다는 서대룡을 억지로 재웠다.
신경이 곤두서서 잠이 안 올 거라던 서대룡은 눕자마자 코를 골았다.
비무를 반 시진 남기고 서대룡을 깨웠다.
“개운해?”
“네. 살 것 같습니다. 한데 어떡하죠?”
“왜?”
“비무에서 지는 꿈을 꿨습니다.”
울상을 짓는 서대룡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자, 그 꿈이 개꿈일지 예지몽일지 확인하러 가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