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Return RAW novel - Chapter (301)
보게 되고. 심지어 인간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까지 지니게 되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런 경험이 좋기만 한 일이겠느냐?” 회귀 전, 나는 많은 일을 겪었다. 그래, 그 덕분에 강해졌고 살아남았다. 그래서? 호위무인이라는 길만 묵묵히 걸어온 이안보다 내 인생이 더 나은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 어딘가에 내던져졌을 때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클지는 몰라도 그게 더 나은 인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길을 걸으며 묵묵히 살아온 네 인생을 너무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경험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온갖 잡다한 상처와 아픔을 굳이 안 가져도 된다. 없어도 싸울 수 있고, 없어도 이길 수 있다. 나는 믿는다. 노력하며 살아온 너의 그 인생이 다른 어떤 경험보다 강력하게 너를 지켜주는 순간이 올 거라고.” 내가 손을 뻗자 꽂혀 있던 시화집 한 권이 뽑혀 나왔다. 허공으로 둥둥 날아간 시화집이 그녀에게 전해졌다. “그러니 읽고 싶은 것도 함께 읽어.” 그녀가 두 번이나 그 책에 시선을 준 것을 보았다. 이안이 슬금슬금 내게 다가와서 날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 혈통이란 것이 있나 봐요.” 나는 그 말에 어울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자 괜히 부끄러웠는지 이안은 내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다. “침상 정말 넓고 좋아요. 푹신하죠?” “궁금하면 누워봐.” “소교주님 침상에 감히 어떻게 누워요! 라고 할 줄 알았죠?” 그녀가 침상으로 몸을 던졌다. 하지만 그녀의 신형이 침상 위에 둥둥 떴다. “밖에서 입던 옷으로 안 돼! 도마 어르신이 왜 못 눕게 하셨는지 이제 이해가 가네.” 둥둥 띄워서 그녀를 다시 원래 자리에 데려다 뒀다. 침대 끝에 걸터앉은 그녀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얼마 전에 귀영대에 다섯 명을 뽑았어요. 인성도 보고, 실력도 보고. 말씀하신 대로 숫자보단 정예화된 조직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잘하고 있다.” “참, 그리고 저 내일 청면님과 수하들 데리고 출교할 거예요. 귀영대에 합류시킬 사람들 찾으러 갑니다. 진작 나갔어야 했는데 황천각주 부임식 보고 나가려고 출교를 미뤘었어요. 나간 김에 고 군사님과 풍천교주님도 뵙고 올게요.” 그녀가 본격적으로 강호에 발을 내디디고 있다. 내 시선에 걱정이 담겼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제겐 꼬리가 아홉 개나 있잖아요?” “강해져서 돌아와라!”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포권하며 말했다. “네, 소교주님!” * * * 나는 무공수련에 열중했다. 회귀 전후를 통틀어 요즘이 가장 열심히 무공수련하는 시기였다. 내가 무공 삼매경 중임을 아셨는지, 아버지는 교내의 여러 행사를 모두 미루셨다. 구화마공과 시천비술. 열실히 하지 않을 수 없는 무공이기도 하다. 우선 시천비술은 수련하면 할수록 시공이환술 외부와 내부 사이의 시간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은 그 차이가 미세해서 시천비술을 이용해 실제 수련을 할 단계는 아니었다. 시공이환술을 쓰고 다시 시천비술을 쓴 후, 그곳에서 다시 무공수련. 내공이 세 번이나 중복해서 들어간다. 그에 비해 외부와 내부의 시간 차이는 아직 의미 있는 차이가 아니기에 내공을 회복하는 시간이 더 드는 상황이었다. 마음은 급하지만 서두르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이룰 무공도 아니었고, 수련은 꾸준함이 생명이다. 반복하고 또 반복하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다음 단계에 올라서 있으리라. 다음으로 구화마공. 구화마공의 심법이 익숙해지자 이제 본격적으로 제일초식부터 수련에 돌입했다. 난해하면서도 심오한 무공이었지만, 나는 차분히 구결을 분석하면서 조금씩 나아갔다. 오늘 처음으로 제일초식을 발휘할 생각이다. 구화마공 제일초식 인멸식(人滅式) 첫 초식부터 그냥 인멸이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죽는다는 의미. 나는 정면에 세워둔 나무 인형을 응시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몸과 마음의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되었을 때, 흑마검이 뽑혀 나왔다. 사아아악. 단번에 인형의 목이 떨어져 나갔다. 비천검법의 쾌검식인 창천식보다 더 빠른 검식이었다. 그래서 제일초식 성공이냐고? 실패였다. 천천히 다가가서 목이 떨어진 나무 인형을 살폈다. 등에 희미하게 검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좌측과 우측에는 아무런 흔적도 없었다. 인멸식은 초식을 발출하는 순간, 상대의 전방과 후방, 좌측과 우측에서 네 개의 검기가 동시에 날아드는 초식이었다. 생각해보라. 번쩍하는 순간 한 군데도 아니고 네 군데서 동시에 검기가 날아든다면? 그것도 같은 곳을 노리는 검기가 아니었다. 각기 다른 곳을 노리며 네 방향에서 날아든다. 정면의 검기가 목을, 뒤에서는 등을, 좌측 검기가 허리를, 우측 검기는 다리를 향해 날아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정면에서만 제대로 검기가 날아들고, 나머지 세 방향의 검기는 제대로 날아들지 못했다. 잠시 눈을 감은 채 구결을 떠올렸다. 구결을 정리한 후 새로운 나무 인형을 향해 검기를 발출했다. 다시 나무 인형을 살폈다. 이번에는 등이 잘려 나갔고 목은 그대로 있었다. 반복하고 반복했지만, 제일초식은 뜻대로 펼쳐지지 않았다. 뭔가를 빠뜨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해석한 구화마공을 보고 싶다고 하셨다. 이래서야 어디 내 구화마공이 아버지의 것을 능가할 수 있을까? 믿을 것은 천무지체인데, 과연 아버지를 능가하는 구화마공을 구사할 수 있을지 나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매며 고심하던 중에 문득 깨달았다. 아버지보다 더 강한 구화마공을 익히겠다는 욕심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고 있음을. 그 욕심에는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까지 더해져 더욱 무겁게 내 발목을 잡아끌고 있음을. 이건 내 방식이 아니지. 나는 곧장 수련장을 나섰다. * * * 천마전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뒷짐을 진 채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리 올라오너라.” “네.” 피의 길을 걷고 계단을 올라가서 아버지 옆에 나란히 섰다. 아버지와 여기서 나란히 교내 정경을 바라보면 항상 기분이 좋았는데 이제 소교주가 되어 나란히 섰다. “천독림에서 독 제조 양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왜 그런 답니까?” 모른 척 묻자 아버지가 나를 쳐다보았다. 근래 독왕과 왕래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번 결정에 내가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짐작하고 계실 것이다. 아버지의 시선이 다시 창밖을 향했다. 잠시 침묵하던 아버지가 나직이 말했다. “독왕을 자극하지 마라. 그는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전쟁을 끝낼 수도 있다는 의미. 무인들은 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평생의 수련이 단 한 번의 하독으로 끝장나 버릴 수도 있기에.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늘은 왜 왔느냐?” “아버지께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 찾아뵈었습니다.” “무슨 부탁?” “인멸식을 제게 써주십시오.” 생각지 못한 말에 아버지가 흠칫 놀랐다. “기껏 후계자가 되더니 죽고 싶은 거냐?” “그럴 리가요.” 나는 가슴을 풀어헤쳤다. “극품천잠사에 귀호의까지 입었습니다. 저 죽지 않을 정도로만 발휘해 주십사 부탁드리는 겁니다.” “이유는?” “직접 경험해서 감을 잡고 싶습니다.” 원래라면 아버지에게 더 많은 것을 배웠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가 해석한 구화마공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최소한의 해석만 해주신 상태니, 들어주실만한 부탁이었다. “좋다.”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나는 뒤로 물러나서 거리를 벌렸다. 준비됐느냐, 간다. 이런 말들은 다 생략되었다. 아버지의 손에서 곧장 천마검이 뽑혀 나왔다. 쉭. 정말 짧고 가벼운 바람 소리. 그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네 명의 악귀가 동시에 사방에서 공격을 가한 것이다. 아버지의 인멸식은 그냥 네 줄기의 검기가 날아드는 것이 아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얼어붙을 무시무시한 네 악귀의 환영이 동서남북 동시에 나타나서 검을 휘두르는 그런 검기였다. 카아앙! 카앙! 두 개는 막았고, 하나는 얕게, 다른 하나는 정통으로 내 몸에 적중했다. 팍! 파악! 검기가 호신강기와 충돌하자 난 붕 날아서 바닥을 뒹굴었다. “으으윽!” 정말 아팠다. 극품천잠사에 귀호갑에 호신강기까지 써서 막았는데, 정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아버지가 내공을 조절해 주셨기에 망정이지 극한으로 발휘하셨다면, 나는 이 한 수에 죽었을 수도 있었다. 죽지 않았더라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고. 구화마공의 무서움을 처음으로 느껴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 순간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었다. “혹시 제 구화마공의 경지가 올라가면 제 인멸식에도 이 악귀들이 발현하는 겁니까?”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하지만 다른 악귀가 나오겠지.” 비슷하지만 다른. 구화마공을 다르게 해석해서 무공을 완성해 나갈 것이기에 다른 악귀가 나온다는 말씀이신 거다.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천마혼을 보는 것은 아직도 멀고 먼일이니 인멸식에서라도 나의 작은 악귀들을 보고 싶었다. “이것으로 되었느냐?” “충분합니다.” 허리를 매만지며 인사하고 돌아서려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혹시 그 악귀들에게 이름 붙이셨습니까?” 아버지의 입가에 그 조소가 지어졌다. “독왕이 이름 붙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요즘 자주 어울렸더니, 저도 영향을 받았나 봅니다.” 정중히 아버지에게 인사한 후 돌아섰다. 내 무공의 성취는 비단 나만의 성취가 아니다. 아버지와 다른 인멸식이 나온다면, 아버지 역시 내 구화마공에서 어떤 감흥을 받게 될 것이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린 더 강해질 것이다. 피의 길 끝에서 아버지에게 말했다. “다시 찾아뵐 때는 친구 넷 데리고 오겠습니다.” 제258회 검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은. 천마전을 나선 후, 북천검가로 향했다. 검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있는데 혼자 끙끙거릴 필요 있겠는가? 그래, 이게 내 방식이다. 모르면 묻고, 딴 이야기 하다 깨닫고. 정 모르겠으면 에라 모르겠다 놀아버리고. 그동안 다른 마존들 때문에, 여러 사건으로 바빠서 일화검존에게 소홀했던 걸 이번에 만회할 작정이다. 집 나간 비무친구의 귀환이다. 그사이 내게도 변화가 있었듯 일화검존도 변화가 있었다. 북천검가의 일화검존 모옥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모옥이 바뀌어 있었다. 예전의 그 아담한 모옥은 이제 큰 저택으로 바뀌어 있었다. 마당도 넓어졌고, 그녀가 키우는 화원도 넓어졌다. 변하지 않는 건 여전히 나이를 거슬러 올라가는 일화검존의 고운 외모뿐이었다. 그녀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다. “소교주, 어서 오시게.”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언제나 똑같지.” “집이 달라졌습니다.” 일화검존도 나를 따라 주위를 돌아보며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 “분위기를 바꿔 봤네.” 예전의 모옥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집이었다. 나는 이렇게 세속의 욕망에서 벗어나 무의 길만을 걸어가는 고고한 사람이라고. 그리고 이제 그녀는 가식을 벗어 버리고 솔직한 욕망을 내보이고 있다. 왜 마음이 바뀐 것일까? “요즘 바쁘실 텐데, 어쩐 일이신가?” “검존님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잘 왔네, 어서 들어가세.” 일화검존을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 내부는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구경 좀 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