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lute Sword Sense RAW novel - Chapter 9
7화 육혈곡(育血谷) (3)
“거래? 하!”
혈랑 대주 노성구가 어처구니가 없어 했다.
하긴 주도권을 쥔 쪽은 자신이었는데, 내가 뜬금없이 거래를 하자고 하니 같잖게 보일 수도 있었다.
“네놈이 정신이 나갔구나.”
“제정신입니다.”
사실 반쯤 정신이 나갔다.
여기서 노성구의 손에 조금만 힘이 들어가면 내 목은 뎅강 하고 몸통과 안녕이었다.
그럴 바에 뭔들 말 하지 못할까.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다.”
-팍!
“컥!”
노성구가 내 가슴을 발로 밟았다.
누가 혈교 출신이 아니랄까봐 정말 가차 없었다.
얼마나 세게 밟았는지 목구멍으로 비릿한 맛이 올라온다.
“네놈 따위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러시겠죠.”
“조금이라도 목숨을 연명하고 싶다면 무슨 목적으로 본 대주의 부친을 팔아가면서 본교에 접근했는지 밝혀야 할 거다.”
-꽈악!
노성구의 발에 힘이 들어갔다.
더 세게 밟으면 가슴이 아작 날 것 같았다.
내가 다급히 소리쳤다.
“노세화.”
“…..뭐?”
가슴을 억누르던 노성구의 발에 힘이 빠졌다.
노성구가 굳어진 얼굴로 말했다.
“네놈이……그 이름을 어찌 아는 것이냐?”
그가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노세화는 노성구의 누이다.
정확히는 십오 년 전쯤에 행방불명된 누이였다.
“말해라! 네가 그 이름을 어찌 아는 것이더냐!”
노성구가 나를 다그쳤다.
두렵기는 하나 패를 여기서 전부 드러낼 수야 있나.
“……계속 이렇게 밟고 계실 겁니까? 아니면 저와 거래를 하실 겁니까?”
“이놈!”
나를 노려보던 노성구가 가슴에 올려놓았던 발을 뗐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도는 내 목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네놈 따위와 거래를 할 것 같으냐?”
“적어도 한 번 뱉었던 말에는 끝까지 책임을 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혈랑 대주 노성구는 다른 혈교인들과 달리 자신의 수하들에게 너그럽고 신의가 넘치는 사내였다.
그리고 한 번 뱉었던 말을 번복하지 않는 남자이기도 했다.
-목소리가 많이 떨리는데.
‘애타게 찾고 있는 누이거든.’
원래라면 적이라고 판단한 자에게는 가차 없는 노성구다.
하지만 오매불망 찾아 헤매던 유일한 혈육의 이름을 내가 거론하니, 그 철심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나올 겁니까? 혈랑 대주.’
내가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이윽고 노성구가 입을 열었다.
“뭘 원하느냐? 이대로 내가 네놈에 대해 입을 닫기를 원하는 게냐?”
당연히 그걸 원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 하나만 원하기에는 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듯 했다.
“그러기에는 제가 밑지는 장사 같군요.”
“목숨이 전혀 아깝지 않나 보구나.”
“그럼 평생 대주님은 누이 분을 찾지 못하시겠죠.”
물론 이것은 거짓말이다.
노성구는 용케도 자신의 누이를 찾게 된다.
그것이 그의 인생에 있어서 불행의 시발점이 되겠지만 말이다.
-으득!
노성구가 이를 갈면서 물었다.
“무엇을 더 원하는 것이냐?”
“제가 필요할 때 제 힘이 되어주십쇼.”
“하! 나더러 네놈의 수하라도 되라는 소리더냐? 아주 죽고 싶어…”
“그게 아닙니다. 그저 제가 혹 어려움에 처해진다면 대주께서 힘이 닿는 선에서 도움을 달라는 겁니다.”
노성구는 머지않아 절정의 고수가 될 자였다.
그런 그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가 아니었다.
“허튼 소리! 본교의 해악이 될 수도 있는 네놈을 눈감아주는 것도 모자라서 도움을 달라고? 하마터면 네놈에게 현혹이 될 뻔….”
“부친의 목숨 빚을 갚기 위해 일하시는 분이 혈교에 충성을 논하실 건 아니시겠죠?”
“아니. 그걸 어찌?”
노성구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 사실을 아는 자는 혈교의 윗선 밖에 없었다.
대부분의 혈교인들은 그가 부친의 뒤를 따라 혈랑 대주를 이었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돌아가신 노조만 전 대주의 흉수를 찾아주는 대가로 혈랑대를 맡으시지 않았습니까.”
전부 그에게 직접 들은 말이었다.
“…….대체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나라도 궁금할 것 같다.
그렇다고 ‘저는 십 년 후의 미래에서 회귀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관심사를 돌려야 했다.
“이렇게 하시죠. 대주님의 누이 행방뿐만이 아니라, 부친을 살해한 흉수와 대주님의 눈을 그렇게 만든 자까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놈……”
파격적인 조건에 흔들리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훗날 노성구 본인에게 들은 말이어서 딱히 손해 볼 게 없었다.
오직 그에게만 써먹을 수 있는 정보였으니 말이다.
“네놈이 이 상황을 당장 모면하기 위해 거짓을 고하는 건지 내가 어찌 아느냐?”
“혈고도 있고 만약 거짓이라면 언제든지 대주께서 저를 죽이실 수 있지 않습니까?”
내 말에 수긍이 갔는지 노성구의 표정이 한결 수그러들었다.
어차피 혈고가 있는데 내가 무슨 수로 도망가겠는가.
한참을 망설이던 노성구가 결국 마음을 정했다.
-슥!
그가 내 목에서 도를 거뒀다.
“하아…..”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찌 될지 모를 도박이 겨우 통하게 되었다.
“거짓이면 죽는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내 부친을 죽인 흉수가 누구지?”
누이 행방보다 그게 더 궁금했던 모양이다.
이걸 알고 나면 그가 보일 반응을 짐작할 수 있기에 잠시 망설여졌다.
하지만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혈성입니다.”
내 입에서 나온 뜻밖의 이름에 노성구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이때의 그는 여태껏 부친을 죽이고 누이를 납치한 자가 무림 연맹의 사람들이라고만 여겼었다.
그랬기에 절치부심으로 복수를 다짐하며 혈교에 들어왔다.
한데 내가 혈교의 최고위 간부 중 한 사람인 일혈성을 흉수로 지목하자 쉽게 납득할 수 없어했다.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것이더냐?”
“가지고 놀다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정하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일혈성의 지시를 받은 호월 단주가 저질렀지요. 부친을 죽일 때 정파의 검법으로 상흔을 남기….”
-팍!
“억!”
노성구가 거칠게 내 가슴을 발로 밟았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인상이 무섭게 변하고 붉게 달아오른 것이 제대로 흔들렸다.
고통스러웠지만 나는 쇄기를 박았다.
“누, 누이 분에게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않습니까.”
“누이에게?”
“대주님의 누이께서도 진상을 알고 있습니다.”
“…..내 누이가 그걸 알고 있다고?”
“누이 분은 절강성 금해현에 있는 화월 상단의 지부에 있습니다. 직접 움직이시면 누이 분이 살인멸구를 당하실 수 있으니 믿을 수 있는 분을 보내시죠.”
화월 상단은 일혈성이 관리하고 있는 상단이었다.
전생에 노성구는 죽어가는 누이를 만나고서 진상을 듣게 되었다.
그는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일혈성을 찾아가게 되었고, 그 후 혈랑대는 해체되어 대원들이 전부 편입되고 말았다.
“너…..대체……”
노성구가 나를 쳐다보면서 할 말을 잃었는지 입만 벌리고 있었다.
-엄청 놀랐나 보네.
‘그렇겠지?’
그렇게 알고 싶어 하던 것들을 한 번에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다만 전생처럼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는 혈교인이었지만 타고난 성품이 여느 정파인들보다도 나았기에 존경했었다.
유일한 혈육인 누이만 죽지 않는다면 아무리 부친을 죽인 범인이 일혈성이어도 자제력을 잃고서 도전하는 우를 범하진 않을 것이다.
“……..”
한참을 나를 쳐다보던 혈랑 대주 노성구가 진정을 되찾았다.
그러더니 가슴에서 발을 떼고서 손을 내밀었다.
붙잡으라는 표시인 듯 했다.
-꽉!
손을 잡자 그가 나를 잡아 당겨 일으켜 세워줬다.
노성구가 굳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네놈 말을 한 번 믿어보겠다.”
“아!”
“마음 놓고 있지 말거라. 만약 이 말이 거짓이라면 혈고가 아니라 본 대주가 직접 네 목을 벨 것이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나 사실이라면……네놈을 평생의 은인으로 삼겠다.”
“……그 말 번복하시지 않으시겠죠?”
“나는 네놈을 믿었는데, 네놈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이냐?”
내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믿습니다.”
한 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번복하지 않는 신의가 넘치는 사내이다.
믿지 못할 리가 없었다.
다만 내가 전생에 뒤통수를 하도 많이 맞아서 버릇처럼 물어본 것뿐이다.
짐승은 믿을 지언정 사람은 믿기 힘들다.
“그럼 거래는 성사되었습니다.”
내 말에 노성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겨우 위기에서 넘어간 것 같아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좋아하고 있는 내게 노성구가 말했다.
“한데 네놈이 똑똑한 건지 아니면 어설픈 건지 알 수가 없구나.”
“네?”
“네 외조부의 이름을 밝힌 적도 없으면서 한 번 강하게 떠보니까. 주절주절 다 이야기하는군.”
‘!?’
그 말을 들은 나는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노성구의 말대로 나는 외조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 단지 저들이 조사할 거라고 짐작한 나머지 지레 겁먹고 넘어간 것이었다.
-네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내가 뭘!’
소담검, 이 녀석은 내가 곤란해 하는 것을 아주 즐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별 수가 없긴 했다.
외조부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다고 해도 만약 노성구가 작정하고 물어본다면, 전 대원의 이름을 아는 그를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건 제가 당했군요.”
그의 자존심도 살려줄 겸 인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자 노성구도 한결 기분이 나아졌는지 인상이 풀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호패를 받는 일뿐이다.
“거래도 잘 체결되었으니, 제가 원하는 호패를 받아가도 될까요?”
못해도 중(中)이나 상(上)을 원했다.
하지만 상은 정말 뛰어난 자질을 지녀야 가능하므로, 단전이 손상되어 내공조차 모을 수 없는 내가 받으면 의심만 받을 것이다.
그런데 노성구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네?”
“입을 다물어주는 거야 그렇다 쳐도 아직 누이의 행방을 확인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벌써부터 많은 걸 바라는 구나.”
“아니. 이 정도는 그냥 해주셔도.”
“웃기는 소리. 받고 싶으면 네 자질을 증명해라.”
“하아…..”
돌아버리겠다.
왠지 제 자리 걸음을 한 기분이다.
-키키킥. 너도 당했네.
저 사람 수하로 지낼 때는 잔머리 하나 굴리지 않는 우직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내가 모든 면을 본 건 아닌가 보다.
“…..어떻게 증명하라는 겁니까?”
이건 대주들 마다 방법이 달라서 물어봐야 했다.
노성구가 내게 손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들어보니 주화입마로 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지. 나도 똑같이 내공 없이 맨손으로 상대해주마.”
오! 의외로 공평하게 치른다.
노성구가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이십니까?”
“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도 격차가 없다고 착각하진 않겠지? 내게 한 번이라도 맞출 수 있다면 네가 원하는 패를 주마.”
그의 말이 맞다.
일류고수만 되어도 외공도 보통이 아니다.
일단 육체적으로도 단련이 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하지만,
“혹시 단검 사용해도 됩니까?”
“마음대로 하거라. 무공도 모르는 네가 그깟 단검을 쓴다고 달라질 성 싶으냐?”
그 말에 내 입 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들었지?’
소담검이 전의가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깟 단검? 야! 빨리 안 꺼내고 뭐 하냐?
* * *
동굴의 반대편.
단 한 사람을 제외한 모든 수련 생도들이 상중하 호패를 받았다.
다른 수련 생도들에 비해서 생각보다 오래 걸리자, 패혈 단주 구상웅의 표정이 점차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오 대주의 얼굴이 환희로 차오르고 있었다.
‘강하게 떠보라고 하더니, 제대로 걸려들었군. 네놈을 지켜본다고 했지. 후후후.’
무리해서 혈랑 대주 노성구를 불러들인 보람이 있었다.
굳이 율랑현까지 사람을 보내서 조사하는 것을 기다릴 바에 가까이에 있는 당사자를 불러서 떠보는 편이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다.
이제 슬 분위기를 몰아가 녀석을 처리하면 될 것 같았다.
“단주님. 아무래도 제 짐작이 맞는….”
그때 패혈 단주가 손을 들고서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왜 그러나 싶었는데 가운데 동굴 쪽에서 누군가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바로 소운휘였다.
‘엇?’
동굴에서 나온 소운휘가 당당하게 뭔가 들어 보이는데, 그것은 등급을 나눈 호패였다.
[중(中)]하도 아니고 중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는 오 대주의 얼굴이 똥을 씹은 것 마냥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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