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rb only the power of the wicked and become the strongest on Earth RAW novel - Chapter (124)
제124화. 수도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이유
“이미 늦었어.”
김진성이 카렌의 말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말투로 대답했다.
“만약 파블로, 그놈이 트리운포 클랜과 연관된 인물이라면 벌써 트리운포 관계자와 연락했을 거야. 이미 그러고도 남을 만큼 시간이 흘렀어.”
“음….”
“이미 트리운포 쪽에 소문이 퍼졌다면, 파블로 하나 잡아봤자 달라질 건 없어. 오히려 우리를 잡기 위한 함정을 파놨을 수도 있고.”
카렌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일리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빨리 셀레포 시티에 가기나 하자고. 정말 재수 없어 봐야 중간에 습격밖에 더 당하겠어?”
“…굉장히 긍정적이군.”
“부정적으로 살아봤자 좋을 게 없더라고.”
김진성은 눈앞에 보이는 거래소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를 카렌이 불렀다.
“어디 가는 거요?”
“차비 벌러.”
김진성이 등 뒤에 멘 가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배낭에는 프랑코 일행과 죽은 리오 등 파티원들이 소지하고 있던 물품 중에서 값이 나갈 만한 것들만 추려서 넣어놓은 상태였다.
김진성 눈앞의 거래소에 들러 배낭 안 물품들을 모두 처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카렌은 생각이 조금 다른 것 같았다.
“거래는 항구 근처의 거래소에서 하는 게 아니오.”
카렌이 김진성의 등에 대고 계속해서 말했다.
“근처 거래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 헌터들 등쳐먹으려는 사기꾼들이 대부분이거든.”
그 말에 김진성이 우뚝 멈춰 섰다.
“여기서 거래하면 시티에서 팔았을 때보다 수익이 반값도 안 될 거요. 그러니 시티까지 갖고 가서 파는 게 훨씬 낫소.”
“…그럼 차비는?”
고개를 돌려 물어보는 김진성.
“입국 당일은 모든 대중교통 이용료가 공짜요. 걱정 말고 따라오시오.”
카렌이 바로 오른쪽에 보이는 버스 정류장 간판을 엄지손가락으로 까딱 손짓했다.
김진성이 잠시 물끄러미 카렌을 보더니, 이내 몸을 돌려 카렌을 뒤따라갔다.
그러더니 조금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카렌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렌이 약간은 무안한 얼굴로 넌지시 입을 열었다.
“…뭐 묻었소?”
“아니.”
그러자 김진성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생각보다 꽤 친절해서.”
사실 반강제로 안내해야 하는 처지인 카렌에게 그다지 많은 걸 기대하지 않던 김진성이었다.
그런데 물어보지도 않은 정보를 먼저 알려주면서 도와줄 줄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카렌이 태연한 얼굴로 대답했다.
“내 쓸모를 증명해야 날 죽이지 않을 것 아니오?”
그 말에 김진성이 피식 웃었다.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건가 싶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긴 하지.’
정말 카렌과 같이 다니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면, 굳이 그를 죽일 이유는 없었다.
“이곳이오.”
카렌의 말에 김진성이 앞을 바라보았다.
드넓은 주차장에 다수의 버스가 진열되어 있었다.
“…장갑차인데?”
버스를 본 김진성의 첫인상이었다.
차체가 전부 강철로 뒤덮여 있는 게 확실히 눈에 띄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김진성을 향해 카렌이 말했다.
“저래도 몬스터들의 단체 습격을 받으면 박살 나기 일쑤요. 바로 탑시다.”
잠시 후, 둘이 탄 장갑차 수준의 버스가 정류장을 떠나 대륙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퍽!
“컥…!”
파블로가 얻어맞은 복부를 부여잡고 앞으로 쓰러졌다.
무릎을 꿇은 채 배를 움켜잡은 그의 입에서 핏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
너무 많이 얻어맞아 심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콜록, 콜록…!”
“파블로.”
쏟아내듯 기침하던 파블로에게 낮게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힘겹게 고개를 들자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담배를 입에 물고서 의자에 앉아 있는 30대 후반의 남성.
트리운포 클랜 소속 간부이자 엘나콘 시티의 지부장인 티아고였다.
“네가 일하는 곳에서 내 부하들이 죽었으면, 당연히 바로 우리한테 연락하는 게 맞지 않아?”
“…….”
뻑!
티아고가 말이 없는 파블로의 턱을 걷어찼다.
파블로가 그대로 엎어져 꿈틀거리자, 티아고가 싸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사람이 물었으면 대답을 해야지. 그게 예의잖아, 파블로?”
“마, 맞습니다!”
파블로가 억지로 몸에 힘을 주어 비틀거리며 일어나 대답했다.
“근데 왜 얘기를 안 했어?”
얼굴 곳곳에 피멍이 든 그를 쳐다보며 티아고가 물었다.
“게다가 병가를 내서 몰랐다고 거짓말까지 했다며?”
“그, 그게….”
“너랑 프랑코 크루가 입국희망자들 털어먹고 있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았어? 어?!”
티아고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파블로를 쳐다보는 눈빛에도 점점 분노가 차오르는 모습이었다.
파블로가 움찔하며 곧바로 넙죽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두 번 다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제발 한 번만…!”
파블로가 두 손을 싹싹 빌며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담배 연기를 뿜어낸 티아고는 옆에 서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애들 죽인 놈들은 누군지 확인했어?”
“네, 신상이랑 몽타주까지 모두 따놨습니다.”
“모든 하청 클랜들에게 싹 다 보내. 두 놈을 먼저 잡은 클랜은 특별히 좋게 봐주겠다는 말도 덧붙이고.”
트리운포 클랜에게 붙어서 기생하고 있는 하청 클랜의 숫자는 꽤 많다.
자연스럽게 하청 클랜끼리 경쟁 관계가 형성된 상태.
그런 그들에 있어 트리운포 클랜 간부들에게 긍정적인 눈도장이 찍히는 것만큼 좋은 혜택도 없었다.
트리운포 본사에서 더 수익성이 높은 하청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지금 티아고는 그러한 하청 업체들의 경쟁 관계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본사 쪽에는 따로 연락하지 마. 고작 잔챙이 두 명 가지고 연락하는 것도 없어 보이니까.”
“알겠습니다.”
티아고가 담배를 구석으로 집어던지며 일어났다.
출구로 걸어가는 티아고에게 부하 중 하나가 물었다.
“이 새끼는 어떻게 할까요?”
방문을 열면서 티아고는 대답했다.
“‘도축장’으로 보내.”
그 말에 파블로의 얼굴색이 하얗게 변색되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한 번만…!”
푹!
“끄아아악!!”
방을 나선 티아고의 귀에 처절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에이, 씨…. 얼마짜리 셔츠인데….”
티아고가 소매에 묻은 핏자국 때문에 투덜거리면서 복도를 따라 걸어 나갔다.
그가 사라진 뒤에도, 방에서는 한동안 계속해서 파블로의 비명이 들려왔다.
* * *
김진성과 카렌이 탄 버스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서쪽으로 달렸다.
가끔 길 중간에 있는 마을에 정차해서 쉴 때를 제외하면, 둘은 계속 버스 안에만 있었다. 자연스럽게 잠도 버스 안에서 해결했다.
버스의 창문으로 해가 떠오를 무렵 운전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아. 승객 여러분. 잠시 후 버스가 정차역인 셀레포 시티 B15 구역에 도착합니다.]김진성이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았다.
지금까진 오직 풀뿐인 평야만 보였는데, 드디어 대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끄응~! 드디어 도착인가….”
기지개를 켜며 눈을 뜬 옆 좌석의 카렌을 향해 김진성이 질문했다.
“B 구역이 무슨 약자야?”
“블랙 에어리어.”
대강 대답했다가 자세한 설명을 원하는 김진성의 눈빛을 보고는 그는 계속 설명을 이었다.
“셀레포 시티 중심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외곽 구역이오. 도시 내에서 치안이 가장 안 좋은 구역임과 동시에 물가가 가장 싼 구역이기도 하지.”
“치안이 안 좋다고?”
“보통 치안을 담당하는 팔라딘은 시티 중심부 쪽에 많이 몰려 있소. 셀레포 시티의 권력자들이 중심부 쪽에 많이 살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지.
도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B 구역은 팔라딘 구경하는 것도 힘든 수준이오.”
“팔라딘?”
“신대륙에만 존재하는 특수 경찰이라 생각하면 되오.”
카렌이 몸을 일으키더니 올려놨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번 역에서 내릴 거요. 당신도 짐 챙기시오.”
“이곳에?”
‘왜 치안이 안 좋은 B 구역에 내리는 거지?’ 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김진성의 질문에,
“트리운포 놈들을 잊었소?”
카렌이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트리운포는 이 시티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강한 클랜, 즉 ‘메이저’로 분류되오. 본사 역시 중심부인 ‘센터 구역’에 자리 잡고 있고.
당연히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그놈들을 마주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소?”
김진성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난 트리운포뿐만 아니라 대한 클랜도 조심해야 하는 처지였지.’
대한 클랜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셀레포 내 메이저로 자리 잡은 클랜이었다.
항상 그 점을 강조하며 홍보했던 것이다.
즉, 김진성은 무려 두 개의 메이저 클랜에게 쫓기고 있는 입장이었다.
그들의 감시망에서 벗어나려면 카렌의 말대로 가장 먼 지역에 자리 잡는 게 최선이었다.
김진성이 카렌을 힐긋 쳐다보며 그를 따라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 * *
버스에서 내린 김진성은 주변을 슥 둘러보았다.
높은 빌딩들과 화려한 네온사인들. 그리고 언뜻 보이는 유흥업소들과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수많은 인파까지.
충분히 번화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여기가 서쪽에 있는 B 구역 중 가장 번화가요.”
뒤이어 내린 카렌이 주변을 구경하는 김진성에게 설명했다.
“그나마 이 주변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곳이오. 아마 팔라딘들이 상시 상주하는 곳은 서쪽의 B 구역 중 여기밖에 없을 거요.”
마침 저 멀리 팔라딘들이 순찰을 하듯 지나가고 있었다.
“…응?”
무심코 그들을 훑어보던 그의 눈이 커졌다.
팔라딘들이 카렌을 발견하고는 갑자기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왜 나한테 오지? …설마?’
혹시나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에 카렌의 두 눈동자가 급격히 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건 아니었다.
“팔라딘이다.”
근처까지 다가온 팔라딘들이 배지를 내밀면서 쳐다보는 이는 카렌이 아닌 김진성이기 때문이었다.
“신분증 보여줘라.”
팔라딘이 자연스럽게 반말을 내뱉었다.
김진성은 말없이 그를 살펴보다가 이내 그의 옷에 새겨진 문양을 발견했다.
‘PALADIN’이란 글씨가 적혀 있는 검은 갑옷의 왼쪽 가슴에, 대한 클랜을 상징하는 태극 마크가 그려져 있던 것이다.
‘대한 클랜 소속 헌터인데 특수 경찰 일까지 하고 있다고?’
“신분증 달라니까!”
황당해하는 김진성을 향해 팔라딘이 위압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카렌이 김진성을 향해 얘기했다.
“차고 있는 헌터 시계 보여주면 되오.”
김진성은 바로 왼쪽 손목을 내밀었다.
팔라딘은 측정기를 내밀어 시계에 대고 버튼을 눌렀다.
삑 소리와 함께 측정기 스크린에 여러 글자가 주르륵 떠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이진환? 한국인이네? 어디서 왔어?”
“아르헨티나요.”
김진성의 대답에 팔라딘의 눈썹이 꿈틀했다.
“아르헨티나? 한국이 아니라?”
“네. 노예 상인 때문에 팔려가서 거기서 자랐습니다.”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거야, 지금!”
여전히 고압적인 자세로 크게 외치는 팔라딘.
그런 그를 옆의 동료가 말렸다.
“그만해. 콜로세움 참가자 아니라고 밑에 떴잖아.”
그 말에 김진성을 노려보던 팔라딘이 다시 측정기 스크린을 살펴봤다.
[콜로세움 서바이벌 참가자가 아닙니다.]내용을 확인한 그가 여전히 미심쩍은 눈빛으로 김진성을 계속 쳐다보았다.
하지만 더는 추궁하지 못하고 이내 몸을 돌리더니 멀어졌다.
“휴….”
팔라딘들이 한참 멀어진 뒤에야 카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서 이동합시다.”
카렌이 김진성의 팔을 잡고선 팔라딘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최대한 팔라딘들과 떨어지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를 따라 걸어가면서 김진성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건데?”
“거래소.”
카렌이 바로 대답했다.
“내가 예전에 자주 찾던 거래소가 B16 구역에 있소. 그곳으로 이동할 거요.”
* * *
카렌은 구역의 남쪽으로 김진성을 안내했다.
번화가에서 벗어난 허름한 주택가 거리로 들어선 후, 길을 따라 걸으면서 둘은 계속 대화를 나누었다.
“클랜 소속 헌터가 특수 경찰 업무도 같이 겸업할 수 있다고?”
“팔라딘이오.”
“어쨌든.”
김진성을 향해 카렌이 대답했다.
“정확히는 메이저 클랜 소속 헌터만 팔라딘이 될 수 있소.”
카렌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보이는 김진성에게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젠 나름대로 익숙해진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메이저로 취급받는 클랜은 소속 헌터들 중 일부를 팔라딘으로 겸업시킬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소. 방금 만났던 대한 클랜 소속 팔라딘이 그런 케이스요.”
“그럼 클랜 소속이 아닌 일반 팔라딘은 없다는 말인가?”
“원래는 있었는데, 계속된 보복 테러와 암살 때문에 결국 없어졌다고 들었소. 이후 내가 방금 말한 메이저 클랜 소속 팔라딘들이 생겨났고.”
결국 팔라딘들은 전부 메이저 클랜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리였다.
김진성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카렌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었다.
“그때부터 팔라딘들을 향한 보복 행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하오. 보복하는 순간 메이저 클랜을 적으로 만들게 되는 셈이니까.
힘이 전부인 이 도시에서 강한 헌터들이 많이 소속된 메이저 클랜을 적으로 삼는 것만큼 무서운 일은 없거든.”
“딱 우리 얘기군.”
“풋…. 그렇지.”
피식 웃는 카렌.
그때였다.
“…음?”
갑자기 앞의 골목길에서 낯선 남자들이 튀어나온 것이다.
이후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성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날카로운 장검들이 들려 있었다.
“…설마 말이 씨가 된 건가?”
김진성이 그들을 보며 혼잣말을 하듯 중얼거리던 그때.
“죽여!”
“이야아!”
곧 리더로 보이는 남성의 외침에, 그들이 일제히 둘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