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orb only the power of the wicked and become the strongest on Earth RAW novel - Chapter (216)
제216화. 배수의 진
[괜찮겠어?]다소 충격받은 얼굴로 듣고 있던 박도준에게 김진성이 불쑥 질문을 던졌다.
[…뭐가?] [지금 내 말을 듣고도 나를 끝까지 따를 수 있겠냐고.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루면, 그 순간 너도 실업자가 되는 거야.] [……!]박도준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다시 말하지만, 던전도 없고 몬스터도 없어지면, 그때부턴 ‘정보상’이라는 직업 자체가 필요 없어질지도 몰라.그런데도 나를 끝까지 도울 수 있겠어? ‘최고의 한국인 정보상’이라는 타이틀로 돈을 쓸어 모으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선뜻 바로 대답을 못 하는 박도준의 두 눈동자를 바라보며 김진성은 말을 이었다.
[너야말로 잘 선택해. 내가 택한 ‘이상’의 길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지금과 다를 바 없는 ‘현실’의 길을 택할 것인지.물론, 현실을 택한다면 네가 원하는 ‘반정부 집단’의 세상은 실현되지 않을 거야.] […왜지?] [나 없이 현재 센터 구역에 자리 잡은 클랜들을 밀어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 * *
그 말에 박도준은 이후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맞는 말이야. 지금까지 김진성이 해낸 위업이 그걸 증명해 주고 있어.’
셀세청과 팔라딘 관청, 그리고 비밀리에 운용되던 수송 지하철 폭파.
셀세청장 핀레이와 팔라딘 청장 그레이엄 살해.
김진성은 그걸 모두 혼자 해냈다. 반정부 집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현 반정부 집단은 김진성이라는 인물이 중심이 되어 집결되어 있어.’
이른바 자타공인 반정부 집단의 중심축이라는 소리다. 지금 상황에서 김진성이 사라지거나 빠진다면….
그럼 하나로 뭉친 반정부 집단도 순식간에 와해할 수도 있었다. 중심이 무너진 집단은 유지될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한배를 탄 이상 우리는 김진성을 따를 수밖에 없어.’
이건 김진성의 최종 목표가 박도준의 목표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사실 전 세계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김진성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하지만 반대로 현재 신대륙에 제대로 자리를 잡은 박도준 등의 인물들에게는 그리 마음에 드는 일이 아니었다.
김진성의 말이 현실이 되는 순간, 김도준과 같은 헌터들은 그야말로 애물단지 신세가 되어버릴 것이다.
‘…정말 대단하군, 김진성. 본인의 이상이 실현될지도 미지수인데, 그 이후까지 내다보고 있었다니.’
새삼 김진성의 혜안에 다시금 감탄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박도준.
현재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는 ‘이상’에 홀로 도전하겠다는 마인드도 놀라운 판에, 함께하는 동료의 이후 상황도 생각해 주고 있었다니.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더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다.’
박도준은 곧바로 폰을 몇 번 터치해 번호를 검색한 후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귀에 가져가자마자 바로 연결음이 끊기고 상대방의 통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일어났나?
바로 김진성의 목소리였다.
“네가 어제 말한 명단을 조사해 왔다.”
– 신대륙에 진출을 노리는 클랜 말인가?
“어. 이미 21개 클랜이 4대 항구에 몰래 잠입해 있더군. 그중 한국 클랜도 하나 있다.”
– 어디지?
“지금 바로 그곳의 위치를 너한테 알려주겠다. 다른 곳은 몰라도, 여기는 네가 직접 만나봐야 할 것 같다.
전화 끊자마자 문자로 보내주겠다. 그럼.”
말을 마친 박도준이 전화를 끊기 위해 폰을 귀에서 막 떼려고 할 그때였다.
– 마음은 정했나 보지?
바로 들려오는 김진성의 질문에, 박도준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정하고 말고 할 것도 없어. 이미 ‘반정부’라는 배를 함께 탄 지 너무 오래 지났다. 내리기엔 벌써 급물살에 접어들었어.”
사실 박도준은 온전히 순수한 마음으로 김진성을 따르려는 것은 아니었다.
‘이상이 실현된 이후도 사실 걱정할 필요가 없어. 벌써 그때 이후의 내 걱정을 하는 걸 보면, 나중에 최소한 나한테 한자리 정도는 줄 게 확실해.’
이상이 실현된 이후의 동료 처지까지 벌써부터 걱정하는 게 김진성이었다.
그렇다면 모든 일이 끝난 이후에도 김진성은 자신에게 한몫 챙겨줄 게 분명했다.
‘그리고 전 세계의 영웅으로 거듭난 김진성이 이후 어떻게 지낼지도 궁금하고 말이지.’
다른 건 몰라도, 전 세계를 구해낸 후 영웅이 된 김진성이 이후 평범하게 살 일은 없을 것이다. 설사 본인이 원하더라도, 전 세계가 그렇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그런 영웅을 가장 가까이서 도운 핵심 동료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고 말이다.
‘…물론 그것도 김진성의 목표가 전부 실현된 이후의 일이지만.’
사실 지금까지 한 가정은 모두 뜬구름 잡는 이야기에 가깝다.
이상은 둘째 치고, 당장 센터 구역의 메이저 클랜들을 몰아내는 것도 힘든 마당이다.
‘일단은 항구 쪽에 진출한 메이저 클랜들을 잘 구슬리는 게 우선이야.’
속으로 생각하면서 박도준은 김진성에게 해당 클랜의 대표 이름과 전화번호를 문자로 적은 뒤 전송 버튼을 눌렀다.
* * *
“늦어서 죄송해요.”
B-15 구역의 번화가 중심에 세워진 호텔.
“제시간에 도착은 했는데, 호텔 입구 근처에서 작은 소란이 생겨서….”
미안한 표정으로 말하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는 검은 정장 차림의 아름다운 미녀.
대한민국 4대 클랜 중 하나인 백두 클랜의 현 마스터, 홍현진이었다.
“…소란?”
먼저 와서 기다리던 김진성의 짧은 반문에, 홍현진이 대답했다.
“불순한 목적으로 접근한 놈들이랑 시비가 붙어서요. 잠깐 손 좀 봐주고 왔죠.”
“손만 봤다고?”
“네, 뭐. 일부는 중상을 입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서 병원에 갈 정도는….”
“그냥 죽였어야지.”
“…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뜬 홍현진.
“B구역에서 헌터들 사정 봐주다간 본인이 죽어요. 여긴 한 번 원한을 사면 죽을 때까지 쫓아다니는 미친놈들로 가득한 곳이거든.”
“그래도 만나자마자 살인은 좀…. 저도 B구역에 대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지만, 제 위치가 항상 바람 잘 날 없는 위치라서요.”
“그거야 대한민국이나 그렇지, 여긴 아닙니다.”
김진성은 차가우리만큼 냉정하게 대답해 주었다.
“여기서 당신은 침 흘리는 짐승들에게 표적이 되기 좋은 평범한 여성일 뿐입니다.”
“……!”
“백두 클랜은, 신대륙 시민들 입장에서는 B구역의 흔한 클랜들보다 명성이 떨어집니다.”
홍현진이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지만, 김진성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그게 당신의 현재 위치입니다. 제 주제를 자각하고 있어야 센터 구역에 자리 잡은 클랜들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습니다.”
홍현진은 잠시 굳어졌던 표정을 순식간에 바로잡았다.
그리고는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다시금 얼굴에 그렸다.
“진심 어린 조언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사람 몇 명 죽이는 건 사고에도 끼지 않습니다.”
김진성은 몇 가지 정보를 더 알려주기 시작했다.
“현재 팔라딘들은 기껏해야 그린 구역 정도까지만 치안 관리에 집중하고 있고, 그 외 지역은 사실상 손을 놓은 수준이에요.
시티에서 외곽 중의 외곽인 B구역은 말할 필요도 없겠죠.”
현재 팔라딘들은 B구역에 대한 관리를 공식적으로 포기 선언을 한 상태였다.
그러나 B구역은 이전과 크게 달라진 점이 없었다.
왜냐면 원래부터 B구역은 무법지대였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이 근처에서 시비 붙으면 일단 다 죽이고 봐요.”
“…알겠어요. 노력해 볼게요.”
“노력 안 해도 됩니다. 좀만 더 지내다 보면 알아서 이 도시가 어떤 곳인지 깨닫게 될 테니까.”
설명하던 김진성은 이내 피식 웃었다.
‘인제 보니 나도 신대륙 사람 다 되었군.’
지금 홍현진에게 해준 말들은, 사실 처음 신대륙에 도착했을 때 카렌에게 들었던 말들이었다.
그게 불과 몇 달 전인데, 벌써 찌들 정도로 신대륙에 익숙해진 김진성이었다.
“일단 하나 물어봅시다.”
김진성은 중앙에 놓인 테이블 앞 의자에 앉았다.
역시 따라 앉는 홍현진을 향해 김진성은 물었다.
“왜 신대륙에 진출하려는 거죠? 그 순간 대한 클랜과 척을 지게 되지 않습니까?”
한국의 다른 4대 클랜들이 신대륙이라는 꿀단지에 몇백 년 동안 한 번도 달려들지 않는 이유.
그것은 이미 신대륙에 자리를 잡은 대한 클랜 때문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대한 클랜과 틀어지면, 설사 4대 클랜이라 불리는 곳이라 할지라도 향후 활동이 매우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그 정도로 대한 클랜의 한국 내 영향력은 강했다. 아니, 절대적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정도였다.
지금 백두 클랜의 마스터 홍현진은, 그러한 리스크를 누구보다 잘 아는 상태에서도 대놓고 신대륙에 진출하려 하는 것이다.
“저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어요.”
곧바로 홍현진이 대답해 왔다.
“현재 신대륙과 국내 대부분 분야를 대한 클랜이 꽉 쥐고 있고, BK 클랜은 북미와 유럽 쪽 수출을 전담하다시피 하고 있죠. K3 클랜은 동남아와 일본 지분을 독차지하고 있고요.
그나마 저희 클랜이 독점하던 중국과 러시아 쪽도 BK와 K3 클랜이 지분을 조금씩 가져가고 있는 상태고요.”
“그 정도라면 백두 클랜의 능력 부족 아닙니까?”
날카로운 김진성의 질문에 홍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그래도 한 가지 변명은 해야겠어요.”
홍현진은 담담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만약 저희 아버지께서 갑자기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이 정도로 백두 클랜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 말에 김진성은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홍성흔이 갑자기 쓰러진 건 세계적으로도 화제가 될 정도였으니까.’
한국 공식 서열 2위, 홍성흔이 갑자기 쓰러질 거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100살이 넘는 나이에도 항상 정정한 모습을 보였던 그가, 설마 노환을 이기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병실에만 누워만 있는 신세로 전락할 줄이야.
당시 홍성흔이 쓰러지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건 당연히 백두 클랜이었다.
당시 후계자로 선정된 홍현진은, 후계자 수업을 받은 지 1년도 채 안 지난 풋내기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홍현진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임시 마스터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였지만, 그건 ‘임시’ 마스터일 때의 이야기였다.
그녀가 모든 클랜원이 인정하는 마스터 자리에 올라섰을 때는, 이미 경쟁 클랜인 K3와 BK가 백두 클랜이 독점하는 사업 쪽을 이미 많이 갉아먹은 상태였다.
“아무튼, 지금 백두 클랜은 사실상 4대 클랜에서 제외된 상태예요. 국내에서도 요즘은 백두 클랜을 제외한 3대 클랜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죠.
저는 어떻게든 다시 도약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연구했어요. 하지만 한 번 기울어진 기세를 다시 일으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때, 신대륙이 혼란에 빠졌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진출했다? 클랜을 위해.”
“맞아요.”
말을 잇는 홍현진의 눈빛에서는 굳은 의지가 느껴졌다.
“저를 비롯한 백두 클랜 모두는 이번 신대륙 진출에 모든 걸 건 상태예요. 이미 대한 클랜도 소식을 알고 있는 이상, 저희에게 이제 뒤는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대한 클랜을 비롯한 센터 구역의 메이저 클랜들의 천적인 ‘우코바치’ 출신이라는 소식도 최근에 알게 되었죠.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홍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김진성을 향해 공손히, 그리고 깊숙이 허리를 숙였다.
“저희와 함께해 주세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걸 도와드릴게요. 진심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진성은 바로 되물었다.
“모든 걸 다?”
그 말에, 홍현진이 고개를 들어 김진성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든지요.”
(다음 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