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104
아카데미 담당 일진 104화
“노스 윈드?
백일진의 물음에 황보철수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응, 저번에 그 동아리 있잖아.”
백일진의 뇌리에 몇 개월 전 중앙 파벌을 노리고 일어난 동아리 간의 전쟁이 떠올랐다. 지태경의 치아를 모조리 박살 냈던 그 날이었다.
“아, 그 노스 윈드?”
“맞아, 그 노스 윈드가 이번 대동제를 기점으로 활동을 재개하려나 봐. 선도부 측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을 한 부분이야.”
“음, 그럼 그때처럼 전쟁을 벌이려고 하는 건가.”
황보철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저번 사건 때문에 더 이상 그런 식의 전쟁은 할 수 없어.”
“그럼?”
“잠깐만. 내가 설명하는 것보다 이걸 보는 게 더 빠를 거야.”
황보철수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태블릿을 꺼내서 백일진에게 내보였다.
[동아리 간의 파벌은 그대로 존속시키되, 무고한 피해자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 앞으로 비공식적인 전쟁은 없다. 지금부터 파벌 간의 세력 다툼은 공식적인 비무로만 해결하도록 한다.]아카데미에서 공개한 교수들의 회의록 내용이었다.
“비무라…….”
“아마 노스 윈드에서는 공식 동아리전을 펼치려고 할 거야.”
“공식 동아리전?”
“응, 동아리마다 몇 명을 선출해서 단체 비무를 하는 방식이야.”
단체 비무란 일정한 장소를 정해놓고 각 동아리 파벌의 인물들이 나와서 비무를 펼치는 것을 말한다.
원래 공식 동아리전은 같은 파벌 내의 동아리끼리 다툼이 일어났을 때 사용하던 방책이지, 이렇게 타 파벌과의 전쟁 때 사용되는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아카데미 측에서 전쟁을 금지함으로 인해 공식 동아리전이 전쟁 대신 쓰이게 된 것.
“거절할 방법은?”
“거절이야 할 수 있지.”
“그럼 거절하면 되는 것 아닌가?”
황보철수는 입을 오므리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거절하면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는 것과 똑같아. 한마디로 중앙 파벌을 넘겨줘야 해.”
“이상하군. 그러면 중앙 파벌에 너무 불리한 것 아닌가?”
“아니, 저번 같은 전쟁을 막아준 것만 해도 아카데미 측에서는 많이 배려했다고 생각할 거야.”
“흠…….”
하기야, 그러고 보니 회의록 내용에 적힌 ‘동아리 간의 파벌은 존속시키되’라는 문장을 보아하니 아카데미 측에서는 파벌을 나쁘게 보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것이 가장 쉽게 경쟁의식을 함양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지.
‘경쟁의식 함양?’
-정파라는 놈들이 모였지만 하는 짓은 마교와 비슷하군.
‘그게 무슨 뜻이지?’
-아카데미에서는 동아리인지 뭔지에 한해서는 강자존을 채택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기에는 전쟁을 막아주지 않았나.’
-그것이 정파의 위선이다. 무고한 피해자 어쩌고 쓰여 있는 것을 보니, 아마 학생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전쟁도 막지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아카데미 측에서는 무고한 학생을 보호한다는 명분(전쟁 금지)은 취하면서도 강자존(동아리전)은 놔둔다는 의미였다.
천마검은 그것을 위선이라 표현한 것.
‘흠, 난 잘 모르겠는데.’
-동아리라는 것이 생긴 것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닐 텐데, 이때까지는 왜 전쟁을 막지 않았지? 아카데미 내에서만큼은 교수들의 권한이 무한한데 말이야.
‘그렇군.’
천마검의 말을 이해한 백일진이 고개를 주억이고는 황보철수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노스 윈드가 동아리전을 걸어올까 봐 걱정이라는 말이군.”
“사실, 이미 걸어왔어. 그리고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야.”
“또 다른 문제가 있나.”
황보철수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노스 윈드가 동아리전을 시작하면 동쪽의 혈사자회, 서쪽의 마법연구동아리도 참전하겠다고 할 거야.”
“정무단은?”
“아 정무단은 이런 파벌 싸움에는 크게 관여하지 않는 편이라 출전하지는 않을 거야. 굳이 파벌 싸움을 할 필요도 없을 거고.”
유력 동아리들이 파벌을 키우려는 이유는 단 하나. 파벌 소속 동아리에서 회비를 걷을 수 있었기 때문. 한마디로 돈이었다.
하지만 외부에서 지원을 많이 받는 정무단은 굳이 파벌 싸움에 참여하지 않아도 크게 아쉬울 것이 없었다.
“그렇군.”
“응, 그래서 말인데……,”
“……?”
“음, 어,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하지……?”
백일진은 입을 움찔거린 채 우물쭈물하고 있는 황보철수를 보고 턱을 까딱였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그, 그게…….”
차마 동아리전에 참전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가 어려웠던 황보철수는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을 끌었다.
“음, 우리 중앙에서는 이번에 동아리전에 나갈 인원이 조금 모자랄 것 같아서…….”
“싸워달라고?”
백일진의 말에 황보철수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뭐? 진짜?!”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런데 내가 출전하면 정무단도 나서지 않겠나.”
“정무단? 왜?”
“술집.”
“아!”
황보철수의 뇌리에 백일진과 정무단의 진철 사이에 있었던 사건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 일진이가 진철 선배 얼굴을 눌러앉을 때까지 때렸었지.’
백일진의 생각대로 그가 동아리전에 출전한다는 사실을 알면 아무리 파벌 싸움에 관심이 없는 정무단이라 할지라도 참전할 것이었다.
‘정무단 형들은 일진이한테 안 좋은 감정을 품은 사람들이 많으니까.’
친하지는 않지만 정무단의 회원 중 몇몇과는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자신이 아는 그들의 성격이라면 아마 백일진을 보고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을 것이다.
‘하긴 그때 일진이가 심하긴 했으니까.’
당시의 생각이 떠오른 황보철수의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때의 백일진은 자신조차 당혹스럽다는 감정을 느낄 정도로 두려웠으니.
그래도 백일진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어차피 일진이가 도와주지 않으면 정무단은커녕 다른 동아리를 막을 수 없어.’
그리고 이미 4대 동아리 중 3개가 출전하는 상황에 하나가 더 추가된다고 하더라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생각을 마친 황보철수가 멋쩍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알았다. 그러면 그렇게 하자.”
* * *
노스 윈드의 동아리실.
프레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옆에 앉아 있는 알베르토에게 물었다.
“알베르토, 얘 태경이 맞냐?”
“아니? 내가 봐도 이상한데?”
앙상하다시피 보일 정도로 마른 몸매에 뱀같이 쭉 찢어진 눈, 그 눈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무테안경까지. 생긴 것은 지태경이 맞았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단 말이야.”
달라도 뭔가 달랐다.
항상 날이 선 듯한 인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오히려 부드럽고 선한 느낌이 그 빈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지태경은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 보듯이 구경하는 프레이와 알베르토에게 중지를 추켜 올렸다.
“뭘 봐, 씨X럼들아.”
“지태경 맞네.”
“확실하네.”
지태경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는 프레이가 내민 커피를 홀짝였다.
“근데 태경아, 참교육은 했어?”
“참교육? 무슨 참교육.”
“그 있잖아. 특임반 임무를 공동에서 하니까 참교육 무조건 한다며.”
“닥쳐.”
날 선 반응을 본 알베르토가 지태경의 얼굴을 힐끔 훔쳐봤다. 지태경의 눈두덩이에는 희미하게 멍이 들어 있었다.
‘참교육은커녕 두들겨 맞았나 보군.’
특임반이 공동에서 돌아온 지가 일주일이 넘었는데도 멍 자국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보아 처음 다쳤을 때의 부상 정도를 알 수 있었다.
‘와……. 처음에는 아예 눈탱이가 밤탱이가 됐었겠는데?’
프레이도 알베르토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눈을 감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힘내라. 이번에는 꼭 우리가 도와줄게.”
지태경은 그렇게 말하는 그들을 보고는 고개를 저으며 커피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필요 없어.”
“뭐?”
“필요 없다고. 이제 백일진한테 신경 쓰지 마.”
술에 취해서 백일진에게 비무 신청을 한 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얻어맞기만 했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게도 가지고 있던 악감정이 전부 사라졌다.
하지만 프레이는 그 말이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졌는지 등받이에서 등을 떼고는 미간을 좁혔다.
“뭐? 너 우리 동아리 탈퇴하겠다는 거야?”
“뭐? 말이 어떻게 그렇게 돼.”
백일진한테 신경 쓰지 말라는 게 어떻게 동아리를 나가겠다는 것으로 들린단 말인가.
평소 지태경의 행실에 대한 평가가 여실히 보이는 부분이었다.
“안 나간다. 그냥 이제 별로 관심 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라고 한 거야.”
“그래?”
“이거 지태경 맞아?”
“이 씨X럼들이 진짜, 그냥 나가?”
“미안, 미안. 장난이야.”
짐짓 화가 난 표정을 짓고 있는 지태경에게 손을 들어 올린 알베르토가 몸을 일으켰다.
“뭐야, 어디 가.”
“어디 안 가. 이거 좀 봐.”
“그게 뭔데.”
알베르토는 뭔가가 빼곡히 적혀 있는 칠판을 가져왔다. 그러고는 지휘봉을 들더니 칠판을 가리켰다.
“이제 우리도 준비해야지.”
“무슨 준비.”
“동아리전.”
“뭐, 전쟁도 아니라며 준비할 게 뭐 있어. 그냥 공식 단체 비무 규칙대로 하는 거라며.”
알베르토는 지휘봉을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이게 오히려 전쟁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어.”
“왜? 정무단은 어차피 안 나올 거고. 혈사자회라고 해봐야 비그리 빼면 우리보다 수준이 낮을 거고, 마연동 놈들은 마법밖에 없는 녀석들이라 비무에 약할 텐데.”
알베르토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지태경을 보며 말했다.
“그게 잘못된 거야. 일단 마법사라고 해서 비무에 약하다? 그럼 작년 토너먼트 우승자인 비그리는?”
“걔는 좀 특이한 애잖아. 그랑프리–왕중왕전-에서도 선배와 비슷하게 겨루기도 할 정도니까.”
“그럼 프레이는?”
프레이까지 들먹이자 지태경은 인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건 그렇긴 하네.”
설득을 마친 알베르토는 칠판 정중앙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파티시에’라고 적혀 있었다.
“일단 태경, 네가 봤을 때, 백일진이 중앙을 도와주러 나올 것 같아?”
지태경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음…….”
여태껏 봐왔던 백일진 녀석은 보기보다 오지랖이 넓은 놈이다.
지가 먼저 나서려고는 안 하겠지만, 황보철수나 황보수정이 도움을 요청하면 반드시 나올 것이다.
“확실하진 않아도 아마, 나오겠지.”
“그래, 그러면 정무단도 나올 거야. 진하월이 이를 갈고 있거든.”
“정무단 회장 진하월? 그 진철 쌍둥이 누나 진하월?”
지태경은 눈알이 무테안경 테두리를 넘어갈 정도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그래, 그 진하월. 그래서 이번에도 전략을 잘 짜야 해.”
“근데 동아리전 룰이 정확하게 뭔데. 나 잘 몰라.”
“테이블에 규칙 있으니까 읽어봐.”
지태경은 앞에 놓여 있는 종이를 주워 들었다.
[공식 동아리전의 기본적인 명제는 ‘쓰러질 때까지 싸운다.’이다. 비무는 타인의 개입 없이 무조건 1:1로 결판을 지어야 한다.]‘이건 마음에 드네.’
[비무 방식은 승자 연전이다. 승자는 쓰러지지 않는 한 비무를 계속할지를 결정할 수 있고, 패배한 측에서는 다음 주자를 내보내서 싸워야 한다.]‘결과적으로 마지막 인원까지 쓰러뜨린 집단이 최종 승리하게 되는 거군.’
아주 간단한 규칙이었다.
“근데 백일진 한 명한테 전부 쓰러지면 어떻게 해?”
“전부? 푸하하하. 태경아 너는 뇌가 없냐?”
“뭐? 이 씨X럼이.”
알베르토는 프레이처럼 지태경의 말을 비웃지는 않았지만, 말도 안 된다는 태도는 프레이와 똑같았다.
“태경, 너를 무시하는 건 아닌데 백일진 녀석이 아무리 강해도 1학년이야. 그런데 차례로 나오는 상대 여러 명을 어떻게 이기냐.”
“저번에는 3:1로도 못 이겼잖아.”
지태경의 말마따나 전쟁 당시, 지태경과 노스 윈드의 간부 두 명이 동시에 상대했음에도 백일진을 잡을 수 없었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 1대 다수로 싸웠을 때는 가능성이 있어, 한 번 기세를 탔을 때, 한 방에 처리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렇게 차륜전 형식으로 경합을 하면 체력이 무한대가 아닌 이상 절대 이기는 게 불가능해.”
“그래?”
테이블 위에 있던 박하사탕을 하나 입에 집어넣은 지태경은 자신감에 가득 찬 표정을 한 프레이와 알베르토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너희도 계획이 있겠지. 두들겨 맞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