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50
아카데미 담당 일진 50화
“으악!”
발차기를 날린 조교는 다른 조교들과는 약간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명찰에는 대니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름 옆에 ‘수습’이라고 쓰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아직 정식 조교는 아닌 것 같았다.
조교는 이번에는 돌려차기를 사용해 바로 앞에 있는 학생을 발로 찼다.
퍽- 소리와 함께 크리스가 자리에서 벌러덩 넘어졌다. 그가 들고 있는 주먹밥이 바닥에 부딪혀 산개했다.
조교는 땅에 떨어진 크리스의 주먹밥을 보더니 입가를 올리며 발로 으깨 버렸다.
“아, 아니!”
순간 울컥한 크리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수습 조교 대니를 노려본 그는 주먹을 꽉 쥔 채 부들부들 떨었다.
“대니 조교님,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뭐? 너 지금 한 말 다시 해봐.”
“네?”
“다시 말해보라고.”
“그, 그게 아니라…….”
홧김에 일어나 소리를 내질러 버린 크리스는 현실을 파악하고는 개미가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음식을 짓밟으신 건 너무한 것 같은데요…….”
“하, 이 새끼가. 상급자의 행동을 지적해? 그게 맞나?”
“…….”
대니가 조성하는 살벌한 분위기에 크리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크리스뿐만이 아니었다.
이곳에 있는 학생들은 전부 얼굴에 불만을 띠고 있었지만, 모두 입을 다문 채 열지 않았다.
대니가 물끄러미 학생들을 둘러보았다.
학생들은 아무 말도 안 하고 눈만 끔뻑일 뿐이었다.
이윽고 쯧쯧 혀를 찬 대니는 자신의 모자를 푹 눌러쓰더니 크리스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어디론가 끌고 갔다.
“저거 가서 말려야 되는 거 아니야?”
“아니, 무슨 밥 가지고 저래?”
“밥도 제대로 못 먹어?”
“반장, 가서 말려봐.”
“아미타불…….”
학생들의 눈빛을 받은 원진이 몸을 일으켰다. 크리스가 사라진 곳을 나지막이 쳐다보던 그는 이내 발걸음을 옮겼다.
원진이라고 상황이 껄끄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반장으로서, 소림의 제자로서 불의한 상황에 나서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런 원진의 어깨에 시선을 고정하던 남궁종수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에이 씨, 나도 갈래.”
아무리 크리스가 재수 없는 놈이라지만 이건 아니었다.
남궁종수가 일어나니 남사모의 인원들도 모조리 그 뒤를 따랐다. 그게 도화선이 되었을까, 특임반 인원들 대다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미동도 하지 않고 앉아 있는 백일진에게 천마검이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
백일진은 일어난 이들의 면면을 살폈다. 황보철수, 황보수정, 엘리아, 설하윤, 남궁종수에 하이린까지.
그들을 둘러보던 그는 벽곡단 하나를 주워 들고는 입에 던져 넣었다. 알싸한 향과 퍽퍽한 식감, 씁쓸한 뒷맛이 입안을 괴롭혔다.
‘더럽게 맛없네.’
표정을 잔뜩 찡그린 그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가야지.”
백일진은 천마검의 말에 대답한 것이었지만, 학생들은 그의 말을 듣고 용기가 생겼는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자!”
대니와 크리스는 건물 뒤편 창고에 있었다. 크리스의 안색은 흙빛으로 가라앉아 있었고, 안쓰러울 정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사, 살려주세요. 죄송합니다.”
대니가 다시 크리스의 정강이를 걷어차려고 발을 뒤로 뺐다.
그 순간.
“그만하시죠.”
대니가 모자챙을 살짝 들고는 고개를 들어 상대를 확인했다.
어느새 크리스를 자신의 등 뒤로 숨긴 원진이 두 손을 모아 공수 자세를 취한 채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특임반 전원이 모여 있었다.
“이 새끼들! 여기가 어디라고 찾아와!”
“아미타불, 조교님. 저희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그건 감히 훈련 중에 가, 간식을 꺼내 먹었기 때문이다!”
원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그것이 극기훈련장의 규율입니까.”
“마, 맞다!”
“저는 작년에도 왔었는데 그때는 이런 규율이 없었습니다. 교관님께 따로 여쭤보겠습니다. 아미타불.”
말을 마친 원진이 대니 방향으로 가볍게 묵례한 후 몸을 돌렸다.
“이 자식이! 규율이라면 규율인 줄 알 것이지. 교관님을 들먹여?!”
얼굴이 시뻘게진 대니가 뒤돌아선 원진의 어깻죽지를 끌어당겼다.
“거기, 무슨 일이야!”
대니의 고함을 듣고, 누군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쪽으로 다가왔다.
“……대니? 너, 거기서 학생들이랑 뭐 하냐.”
“훈봉!”
훈봉이라 불린 사람은 앞에 있는 대니처럼 ‘수습’이라고 쓰여 있는 명찰을 단 사내였는데, 앞에 삐쩍 마른 몸매인 대니와 달리 풍채가 거대했다.
“저 새끼들이 식사 시간인데 간식을 먹잖아.”
“응.”
“그것까진 좋은데 먹지도 않을 벽곡단을 막 버리더라고.”
“뭐?!”
“그래서 벽곡단을 버린 새끼를 교육하겠다는데, 이렇게 떼거리로 몰려 왔네?”
대니는 훈봉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물론 약간의 사실과 대부분의 거짓을 섞어서.
학생들은 기가 막혔다.
누가 벽곡단을 버렸단 말인가.
벽곡단을 받아온 것은 백일진 단 한 명밖에 없다. 하물며 그마저도 먹었다.
“훈봉, 이 새끼들 교육 좀 해야겠어. 도와줄 거지?”
그 말을 들은 훈봉이 당황한 표정을 짓고 대니의 귀에 속삭였다.
“그 대사는 내 건데.”
“입 다물고 도울래? 안 도울래?”
“도, 도와주겠다!”
“그래, 인마. 친구 좋다는 게 뭐냐.”
남궁종수는 갑자기 만담을 나누는 훈봉과 대니를 보고는 기가 찬 나머지 코웃음을 터뜨렸다.
“하, 저 사람들 지금 뭐 하는 거냐?”
“그러게. 제대로 된 조교 맞아?”
“제정신 아닌 것 같아.”
조교라는 직책에 담긴 무게감이 저 둘로 인해 한없이 추락하는 느낌이었다.
“웃어?”
학생들이 입을 살짝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자 얼굴이 시뻘게진 훈봉이 입고 있던 검은색 반소매 티셔츠를 벗어 던져 버렸다.
“이 새끼들 지금 나 무식하다고 놀리는 거 맞지?”
대니가 고개를 끄덕여 수긍했다.
“맞아, 너같이 무식한 녀석들은 조교 할 자격도 없다고 그랬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훈봉은 가슴을 울룩불룩 튕겼다. 그러고는 원진에게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네가 대장이냐?”
“반장입니다.”
“너 소림사 땡중이구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평소 표정을 잘 드러내지 않던 원진이었지만, 땡중이라는 표현을 듣고는 마냥 웃어넘길 수 없었다.
“그만하시지요. 상황을 보니, 대니 조교님께서 저희에게 실수하신 것 같은데, 사과만 해주신다면 아무 일 없이 물러가겠습니다.”
원진은 최대한 예를 갖추며 말했지만, 대니는 사과는커녕 비웃음을 터뜨렸다.
“하, 이 새끼들 봐라? 정신 넋 빠진 놈이네.”
주먹을 쥐고 다가온 대니가 원진의 대흉근 상부를 퍽! 소리 나게 두들겼다. 기운을 담아서 때린 것은 아니었지만, 기분을 나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야! 야! 표정 안 풀어? 기분 나쁘냐?”
“…….”
보다 못한 모용석이 원진을 밀어내고 앞에 나섰다. 그의 얼굴에서 경멸이라는 기색이 드러났다.
눈을 부릅뜬 모용석은 바로 앞에 있는 대니만 들릴 정도로 나직이 속삭였다.
“그만해라. 이 씨X 새끼야.”
모용세가의 자제답게 항상 품행을 바르게 하고 몸가짐을 단정히 하며, 언행은 함부로 내뱉지 말자는 신조를 지닌 그였지만 지금만큼은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 주변이 조용해서일까.
이 공간에 있는 모든 학생이 그의 욕을 들었다. 그러나 그 욕설이 저급하다고 느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용석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나올 줄 몰랐던 황보철수가 입을 떡 벌렸다.
“용석이가 욕을……?”
이미 모용석에게 욕을 진탕 먹어본 경험이 있던 남궁종수가 퉁명스레 말했다.
“뭐래, 저놈 욕 많이 하는데…….”
대니는 모욕감에 치를 떨면서 반사적으로 모용석의 뺨을 후려갈겼다. 모용석은 맞은 뺨을 어루만지며 피식 웃었다.
모용석의 웃음을 보고 눈살을 잔뜩 찌푸린 대니가 말했다.
“재밌지?”
대니는 다시 한번 뺨을 올려붙이기 위해 손을 들었다. 모용석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발로 그의 명치 어름을 냅다 걷어찼다.
“으악-”
“재미없다. 새끼야.”
볼품없이 흙바닥을 뒹구는 대니를 멈춰준 훈봉이 모용석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내뻗었으나, 바로 옆에 있던 원진이 그의 손을 저지했다.
“아미타불.”
“이 땡중 새끼가.”
“말조심하시지요.”
원진이 중심축인 오른발을 뒤쪽으로 놓고 허리를 돌리며 오른 주먹을 뻗었다. 훈봉은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팔을 들었으나,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원진에 주먹이 훈봉의 턱주가리에 꽂혀 들어갔다. 훈봉은 몸의 균형을 잃고 자리에서 뒤뚱거리더니 대니 옆에 볼썽사납게 넘어졌다.
“뭐야, 조교 맞아? 왜 이렇게 허접해.”
“그러게.”
대니와 훈봉은 이익- 입술을 질끈 깨물며 다른 학생들을 노렸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너무 약한데? 크리스는 왜 맞고 있었던 거냐.”
“그러고 보니까, 크리스가 제일 불쌍하네.”
학생들은 돌아가며 훈봉과 대니를 두들겨 팼다. 뺨을 열 대나 맞았던 크리스는 가장 거칠게 대니를 짓밟았다.
그 순간.
누군가 땅을 밟았다.
쿵- 소리와 함께 흙먼지가 강하게 피어올랐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학생들은 소리가 발생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교, 교관님?”
학생들의 몸이 일순간 굳었다.
천둥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버럭 고함을 지른 조교는 학생들이 뭉쳐 있는 곳으로 몸을 틀었다.
생각지도 못한 교관의 등장에 특임반 학생들은 동작은 멈추고 뒤로 서너 걸음 물러섰다.
공간에는 숨 막히는 적막이 감돌았다.
교관의 기세를 느낀 천마검이 감탄을 내뱉었다.
-호오, 이 녀석은 꽤 뛰어난 인재인데? 아까 단상에서 나댈 때는 못 알아봤는데 말이야.
‘강한가?’
-아마 여기 있는 녀석들 전부가 달려들어도 승산은 1할이 채 안 될 게다.
‘그렇군.’
교관은 땅바닥을 뒹굴고 있는 대니와 훈봉 쪽을 슬쩍 훑고는 바로 눈을 돌려 특임반 학생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 살벌한 눈빛에 학생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누가 이런 짓을 시켰습니까!”
“…….”
“누구냐고!”
교관은 학생들 사이를 들쑤시며 분노를 표출했다. 학생들이 대답이 없자, 그는 반장을 불렀다.
“이 싸가지없는 놈의 새끼들. 여기 반장 누구얏!”
삐질 땀을 흘린 원진이 종종걸음으로 뛰어나갔다.
“예, 제가 반장입니다…….”
“무슨 일인지 설명해!”
꿀꺽-
긴장이 돼 침이 저절로 삼켜질 정도였지만, 원진은 사건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설명을 들을수록 교관의 표정이 점점 미묘하게 변해갔다. 그러고는 수습 조교들을 넌지시 바라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크음, 아무리 그래도 조교를 때리면 됩니까?”
“안 됩니다!”
수습 조교가 잘못한 것은 맞다. 하지만 학생들도 대처를 현명하게 한 것은 아니라고 판단한 교관이 가장 덩치가 커 보이는 황보철수를 가리켰다.
교관은 검지를 까딱이며 황보철수를 불러내었다.
“자네 이름이 뭔가?”
“황보철수입니다.”
“자네가 여기서 제일 기골이 장대한 듯 보이니 자네가 책임을 지고 체벌을 받게나. 수습 조교들도 마땅한 처벌을 내릴 것이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
고개를 끄덕인 황보철수가 알겠다고 말하려 했지만, 백일진이 그의 말을 끊고는 앞으로 나서며 손을 들었다.
“무슨 일이지?”
“체벌, 제가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