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 staff RAW novel - Chapter 66
아카데미 담당 일진 66화
엘리아의 따귀를 신호로 시끄러웠던 술집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진철은 얼굴이 잔뜩 굳은 채로 혀로 입술을 연신 핥았다. 그가 화가 났을 때 나오는 버릇이었다.
“하…….”
보쿠스와 가이베는 붉은색의 선명한 손자국이 남아 있는 진철의 얼굴을 보고 낄낄대며 놀렸다.
“킥킥, 진철 괜찮아? 많이 아파 보이는데?”
“와, 너 무공전형 맞냐? 그걸 못 피해? 나 같으면 슥- 하면 삭- 피했지.”
놀림을 받은 진철은 굳은 얼굴로 주먹을 꽉 쥔 채 푸들푸들 떨어댔다.
엘리아는 사고를 쳐놓고도 사리 분별이 안 되는지 계속해서 진철을 노려봤다.
“야! 재수 없으니까 가라고!”
더는 엘리아를 볼 수 없었던 하이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엘리아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에, 엘리아!”
자세히 보니 엘리아는 이미 눈이 반쯤 풀려 있는 상태였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게 머리끝까지 취한 모양이었다.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던 술을 마구 마셔대니, 안 취할 수가 없지.’
하이린은 엘리아를 얼른 자리에 앉히고는 그녀를 다그쳤다.
“왜 그랬어! 조심하자고 한 지가 언젠데!”
“딸꾹, 저 자식, 너무, 재수 없잖아!”
“하, 술도 못 마시면서 왜 이렇게 마셔댄 거야.”
“안 취했어!”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진 하이린은 엘리아를 놔두고 진철에게 가 고개를 숙였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지금 많이 취해서요.”
“후…….”
진철은 손자국 모양으로 부어오른 자신의 왼뺨을 어루만졌다. 어찌나 세게 맞았는지 아직도 열감이 느껴졌다.
‘저 개 같은 X이……!’
남궁종수와 모용석도 이런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기에 얼이 빠진 얼굴로 엘리아를 바라만 봤다.
“석, 이거 어떡하냐?”
“하아, 산 넘어 산이군.”
“엘리아 이 녀석 사고 쳐놓고 자는데?”
남궁종수의 말을 듣고 엘리아를 바라보니 아까 황보수정이 자고 있던 자세 그대로 그녀도 잠들어 있었다.
속이 답답해진 모용석은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종수를 말린 거였는데…….’
앞으로의 학교생활을 무난하게 보내려면 선, 후배와의 관계가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렇기에 2학년 선배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그렇다고 엘리아를 버릴 수도 없지 않나.’
그때, 굳어 있던 안색을 밝게 푼 진철이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하이린의 사과를 받았다.
“하하, 친구가 많이 취했다고? 그래, 취했으니까 그럴 수 있어. 괜찮아.”
그렇게 말한 진철이 하이린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의 따귀를 거세게 올려붙였다.
쫘악- 소리와 함께 하이린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입안 쪽 어딘가 찢어지는 느낌과 함께 혀에서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심지어 내공까지 담아서 때렸는지 고통이 쉬이 가시질 않았다.
“근데 나도 많이 취했어. 괜찮지? 취한 사람이니까 이해해 줄 수 있잖아?”
그것을 본 종업원들은 표정이 하얗게 질린 채 점장을 찾아 나섰다. 잠시 후, 점장이 왔지만, 점장도 종업원들이랑 별반 다르지 않았다.
점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종업원을 다그쳤다. 가게에서 싸움이 나면 집기류가 파손되는 것도 문제지만, 손님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더 큰 일이었다.
“손님들 분위기는 어때!”
“그게, 손님들은…….”
다행히 손님들은 나가지 않고 전부 의자의 방향을 돌려 맥주를 마시며 그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와, 싸운다. 저기 저 뺨 맞은 사람이 방금 때렸어.”
“얘기 들어보니까 다 아카데미 학생들 같은데?”
“요즘, 아카데미 학생들 수준 왜 이러냐.”
꿀꺽-
점장은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저, 혹시……. 매장에서 싸우시려는 건 아니죠?”
점장은 혹여 자신에게 불똥이라도 튈까, 조심스레 말했다. 모용석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하며 점장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가게에서 문제 안 일으킬게요.”
“네, 그래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모용석이 들었냐는 듯 가게 문을 바라보며 턱을 까딱였다.
“들으셨죠? 나가서 얘기하죠. 하윤, 종수, 엘리아랑 하이린 챙겨줘.”
설하윤이 기절한 엘리아를 업었다. 남궁종수도 아직 뺨을 붙잡고 있는 하이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진철과 보쿠스, 가이베도 그들을 뒤따라 나갔다.
점장은 계산하지 않고 나가는 그들을 붙잡을 수 없었다. 그는 산처럼 쌓인 안주 그릇을 치우며 눈물을 삼켰다.
“하아……. 회를 몇 접시나 처먹은 거야…….”
* * *
남궁종수는 골목길로 들어가면서 내공을 일으켰다. 조금이나마 취기를 몰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쌓일 대로 쌓인 주독은 쉽게 몰아낼 수 없었다. 제대로 취기를 몰아내기 위해서는 운기조식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렇다고 ‘나 취했으니 운기조식을 할 동안 기다려 줄래?’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인제 와서 도망갈 수도 없고.’
물론 도망가라고 해도 도망갈 생각은 없다.
‘남자로 살아가는 법 3장 127페이지, 상대를 두려워하는 남자는 이미 패배한 것과 다름없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의 구절을 떠올린 남궁종수는 살짝 눈을 돌려 모용석의 상태를 살폈다. 얼굴이 시뻘게진 채로 숨을 거칠게 내쉬는 것이 자신과 상태가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저 자식도 벌칙주를 열 잔도 넘게 마셨지.’
그렇게 모용석을 쳐다보던 남궁종수가 주먹을 꽉 쥐고 모용석에게 내밀었다. 모용석도 잠깐 눈을 감았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먹을 마주쳤다.
“괜찮겠냐?”
“안 괜찮으면 달리 방법이 있나?”
“없지.”
뒤따라 걸어오던 보쿠스와 가이베가 그들의 행동을 보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저 새끼들 뭐 하는 거냐?”
“아직 어려서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는 거 아니야?”
엘리아를 내려놓은 설하윤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보쿠스를 보고는 손을 까딱였다.
피할 수 없는 상황, 태산파의 진철을 상대해 빙궁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 바에는 빠르게 다른 이와 싸우는 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오세요.”
자신을 지목하자 어이가 없었던 보쿠스는 혀를 차며 목을 두둑 풀었다.
“예쁘면 처맞아도 안 아파?”
“못생기면 처맞을 때 더 아픈가요?”
“이 샹X이.”
보쿠스가 시퍼런 안광을 흘리며 설하윤에게 쇄도했다. 그는 마법 전형으로 입학했지만, 무공 수준도 만만치 않았다.
그녀의 복부를 노리고 보쿠스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하지만 그 무공 실력이라고 해도 마법전형치고는 잘하는 수준이었을 뿐 설하윤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설하윤은 보쿠스의 손목을 쳐올렸다. 그녀의 손에서 뿜어지는 냉기에 보쿠스의 손목이 얼어붙었다.
무공으로는 답이 없다고 생각한 보쿠스는 빠르게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네 개의 마법진을 생성해 냈다.
“싸이코키네시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수많은 돌멩이가 솟구쳐 설하윤을 노리고 쏘아졌다. 설하윤은 서리를 얇게 막으로 펼쳐 그 돌멩이들을 전부 막아냈다.
콰아앙!
‘술 때문에 내공이 잘 안 다뤄진다.’
평소였다면 이 정도의 돌멩이는 막아내지 않아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잠시 숨을 고른 설하윤과 보쿠스는 원거리에서 서로를 노려댔다.
진철과 모용석, 남궁종수와 가이베도 전투를 시작했다. 지난 반장 선거에서 원진에게 단 1초식 만에 패배한 그는 절치부심하며 무공을 수련했다.
모용석이 하늘색 내공을 흩뿌리며 진철의 턱을 향해 유성권을 펼쳤다. 그 뒤로 남궁종수가 쏘아지며 가이베의 손목을 노렸다.
“제왕검(帝王剣)!”
가이베는 실드 마법으로 몸을 보호한 뒤, 부유 마법을 사용해 몸을 띄웠다. 진철은 모용석의 주먹을 받는 척하더니, 난데없이 몸을 돌려 남궁종수의 복부에 발을 꽂아 넣었다.
“커억-”
모용석이 재빨리 몸을 돌려 진철의 뒤통수를 가격하려 했으나, 가이베의 실드 마법이 그의 주먹을 튕겨냈다.
그리고 가이베의 헤이스트 마법을 받은 진철은 유유히 거리를 벌렸다.
급하게 복부에 내공을 둘러 방어를 했음에도 속이 진탕 난 남궁종수가 바닥에 걸쭉한 침을 뱉어냈다.
“젠장,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반응 속도가 안 나오네.”
모용석은 침음성을 흘렸다.
‘술 때문이 아니다.’
아무리 술을 마셨어도 일대일로만 붙는다고 하면 쉽게 패배하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다대다 전투라는 것.
남궁종수와 모용석, 설하윤은 합을 맞춰본 적이 없었지만, 저 셋은 평소에도 합을 많이 맞췄는지 저들의 무공과 마법은 엄청난 상승효과를 내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한 명만을 상대하고 저들은 셋이서 한 명을 상대한다.’
전투를 할수록 설하윤과 남궁종수의 속도가 느려졌다. 특히 남궁종수는 심각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았다.
“종수, 괜찮나.”
“아니.”
내부에 진탕이 일어난 데다 술까지 올라오니 남궁종수는 미칠 지경이었다. 토악질을 참는 것만 해도 소모되는 정신력이 장난 아니었다.
진철은 그런 남궁종수를 집요하게 노렸다. 보쿠스가 염력 마법으로 퇴로를 막고 가이베가 보조 마법을 걸어주면 진철이 주먹을 날리는 식이었다.
물론 저들의 상태도 멀쩡하진 않았지만, 갈수록 승기를 잡아가는 것은 확실했다.
“남궁종수 후배, 그렇게 빈틈을 내보이면 안 되지!”
빠르게 달려간 진철이 남궁종수의 대흉근을 밀어 찼다.
“커억-”
진철은 남궁종수의 발목이 틀어지는 것을 보고 주먹을 쥔 채 허리를 틀었다. 그리고 내공을 가득 담은 주먹을 갈비뼈 방향으로 쑤셔 넣었다.
그 순간.
저벅저벅 걷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진철과 남궁종수의 사이로 들어왔다. 그는 남궁종수의 뒷덜미를 잡고 진철의 공격 범위 밖으로 끌어냈다.
진철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얼굴이 노랗게 뜬 남궁종수는 크게 심호흡을 하고는 자신을 끌어낸 사람을 쳐다봤다.
“백일진?”
백일진은 앞에 있는 진철은 신경도 쓰지 않고 남궁종수에게 웬 까만 봉지를 내밀었다.
“아이스크림 먹어라.”
남궁종수는 백일진을 쳐다봤다. 오늘만큼 이 자식이 반갑기는 처음이었다.
‘새끼, 빨리 좀 오지.’
그래도 이제는 걱정이 없었다. 남궁종수는 코피를 닦고 봉지를 받아 들고는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다 녹았잖아.”
모용석과 설하윤도 마찬가지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모용석은 울렁거리는 속을 진정시키고는 백일진에게 물었다.
“철수는?”
“수정이가 못 일어나서 기숙사에 데려다주라고 했다. 간 지 꽤 됐으니 곧 올 거다.”
“근데 진짜 다 녹긴 녹았군.”
“그냥 먹어라.”
설하윤은 그들의 아이스크림을 다시 얼려주었다.
“확실히 아이스크림은 차가워야 제맛이지.”
아이스크림을 자신에 복부에 가져다 댄 남궁종수가 실없는 소리를 하며 킥킥댔다.
싸우다 말고 웬 아이스크림을 먹는단 말인가. 진철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니네 지금 뭐 하냐?”
진철도 백일진이라는 이름은 들어 알고 있었다. 2학년 특임반 내에서 백일진은 꽤 유명했으니.
‘지태경을 반쯤 죽여놨다고 했나?’
그런데 소문이 좀 과장된 것 같았다. 지금 앞에 있는 백일진에게서는 아무런 기세가 느껴지지 않는다.
‘나도 지태경을 상대로는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데, 이런 녀석이 지태경을 눌렀다고?’
모용석에게까지 아이스크림을 건넨 백일진이 진철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귀찮음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가세요.”
그 모습을 본 진철은 주먹을 불끈 쥐고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보쿠스와 가이베가 그를 붙잡았다.
“참아.”
“진철, 그냥 가자.”
생각보다 1학년들의 반항이 거세서 자신들도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지금 이 백일진이라는 녀석까지 합세한다면 안 좋은 꼴을 면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그냥 가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진철은 눈을 부라리면서 백일진을 노려봤다.
“다음에는 친구들 관리 잘해라.”
“조용히 하고, 가세요.”
“뭐?!”
백일진의 눈빛에선 아무런 기색을 읽을 수 없었다. 그저 공허하다. 벌레를 볼 때도 저렇게 보지는 않을 것이다.
‘뭔 놈의 눈빛이…….’
그런데도 왠지 저 눈빛을 감내하기가 힘들었다. 계속 쳐다보자니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고, 머리털은 쭈뼛쭈뼛 서는 느낌이 들었다.
“그, 그래. 알겠다. 오늘은 일단 가도록 하지.”
백일진도 굳이 싸울 생각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렸다. 그때 그의 시야에 무언가 들어왔다.
“잠깐.”
서둘러 가려던 진철과 보쿠스, 가이베는 백일진의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거, 네가 그런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