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141)
드르륵.
미팅 룸의 문이 열렸다.
네 소녀의 시선이 열린 문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검은 정장을 입은 회색 머리 미녀.
한서진이 있었다.
한서진의 차분한 회색 눈동자가 침울한 네 소녀를 훑는다.
그녀의 입술이 열린다.
“여러분이 안고 있는 고민······.”
탁.
미팅 룸의 문이 닫힌다.
“제게 그 고민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한서진의 회색 눈동자가 차갑게 가라앉는다.
“한서진 씨! 그 해결책이 뭔가요?”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코토가 손을 들며 소리친다.
꿀꺽.
에리가 마른침을 삼킨다.
이 자리에 있는 네 소녀의 눈길을 받으면서 한서진이 말한다.
“하렘 계획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한서진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번만 임시 동맹이다
하렘 계획.
한서진의 말이 끝나자 미팅 룸 내부에 무거운 정적이 가라앉는다.
이 방에서 무슨 대화가 오갔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소녀들도 이번 단체 데이트를 계기로 깨달았을 것이다.
각개전투로는 올리비아의 독주를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여기 있는 모두가 서로 힘을 모아야만 올리비아를 상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애초에 한서진이 김덕성과 올리비아, 두 사람의 단독 데이트 정보를 그녀들에게 흘린 이유가 이렇게 그녀들을 자극하기 위해서였으니까.
‘예상대로의 분위기와 결과군.’
그녀의 예측대로, 소녀들은 동요하고 있었다.
한서진의 눈동자가 빛난다.
하지만 누구 하나 협력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자존심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소녀들은 서로 사랑의 라이벌이었으니까.
‘내가 할 일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주는 일······.’
균형은 이미 깨졌다.
그렇다면, 깨진 균형을 이용해서 하렘 계획을 완성하는 것이 그녀가 짊어진 책무다.
한서진의 눈길이 소녀들을 훑는다.
그래서 그녀가 나선 것이다.
소녀들을 원팀으로 묶고, 나아가 하렘 계획에 포섭하기 위해.
지금이 적기다.
한서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한서진이 정적을 깬다.
“어, 응. 괜찮아. 한서진 씨라면······.”
그녀의 말에 에리가 말끝을 흐리며 말한다.
한서진이 자리에 앉아 쿠키를 한입 깨문다.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최고급 호텔답게 단순한 과자마저 맛이 범상치 않다.
“하렘 계획이 무슨······. 말인가요. 한서진 씨.”
한서진의 귓가에 질문이 들어온다.
질문을 던진 소녀는 카스미.
아직 물기가 남아 있는 그녀의 보랏빛 눈동자가 한서진을 향한다.
“모두가 탈락하지 않고 다 함께 그의 곁에 있을 수 있는 비책입니다.”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한서진의 말에 그녀들의 눈동자가 동요한다.
“모두가 탈락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카스미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내면서 재차 질문한다.
“말 그대로입니다.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이 전부······. 그와 결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저의 하렘 계획에 협조한다는 전제 하에 말입니다.”
한서진의 눈동자가 빛났다.
그녀도 그분을 사모하는 한 사람의 여인에 불과했기에 알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독점하고자 하는 욕망이 얼마나 큰지.
김덕성을 둘러싼 사랑의 레이스가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그녀들은 한서진의 하렘 계획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터.
‘하지만 지금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레이스에서 그녀 혼자 여기 있는 모든 소녀를 합친 것보다 더 멀리 나아간 상태.
그야말로 폭주, 압도적인 선두 주자.
이런 비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그녀의 하렘 계획이 유일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한서진이 지금 승부수를 띄운 이유였다.
하렘 계획이라는 말을 들은 소녀들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그때.
남색 포니테일 미소녀, 린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서 말한다.
“하, 하지만 한국도 일본도 이, 일부일처제지 않나? 설마 중동으로······.”
물론 일본 영웅 중에도 암암리에 첩실을 들이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비공식적이며, 세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행위.
일부다처제가 합법인 국가는 오직 중동밖에 없다.
‘큿.’
린이 말을 끝맺지 못한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일본 최고 명문가의 딸인 그녀가 중동으로 귀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하지만 마음 같아서는 그렇게라도 그의 아내가 되고 싶다.
린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김덕성 님은 대한민국 국적의 유일한 영웅 전력.”
한서진의 목소리가 린의 뇌리에 꽂혔다.
“우리 대한민국은 유일한 영웅 전력이자 한민족의 성웅(聖雄)인 김덕성 님한테 그 어떤 초법적 권리도 보장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스윽.
한서진이 일본어로 번역된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그것이 설령, 그분 한 명만을 위한 일부다처제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김덕성 하렘 특별법.
청와대에서 열린 비공개 여야 영수 회담에서 결정된 합의안.
그 문서가 지금 네 소녀에게 보여지고 있었다.
최하단에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서명이 있는 합의안의 골자는 간단했다.
“······김덕성에 한해 일부다처제를 허용한다. 배우자의 숫자는 제한하지 않는다. 또한 결혼과 동시에 김덕성의 배우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부여받는다······.”
린이 더듬더듬 합의안을 읽는다.
그녀가 한서진을 바라보며 묻는다.
“······이대로라면 그와 결혼하면 우리는 한국인이 되어야 한다는 건가?”
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일본 최고 명문가의 후계자인 그녀에게 한국 완전 귀화는 정치적 부담이 상당한 조건이었다.
하지만 문화권이 아예 다른 중동이라면 모를까, 같은 동아시아 문화권에 그의 나라인 한국이라면.
마음이 끌린다.
두근.
린의 심장이 뛰었다.
그녀가 입술을 깨물었다.
“원하신다면 한국으로 완전히 귀화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일본 국적과 대한민국 국적을 동시에 보유한 복수국적 상태로도 하렘 특별법의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서진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복수국적 허용 여부.
청와대에서 열린 비공개 영수 회담에서 야당 대표와 대통령이 유일하게 이견이 갈렸던 부분이었다.
야당 대표는 대한민국 단일 국적을, 대통령은 복수국적도 허용하는 방안을 주장했고, 기나긴 논쟁과 정치적 줄다리기 끝에 대통령의 주장이 관철되었다.
그 결과가 눈앞의 합의안이다.
“······복수국적.”
린의 눈동자에 희망의 불씨가 깃들었다.
복수국적도 정치적 부담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완전 귀화보다는 훨씬 나았다.
“보시다시피 대통령님과 제1야당 대표께서 직접 합의한 내용이며, 하렘 계획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전제 하에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법안이 통과될 예정입니다.”
한서진이 합의안 마지막에 있는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사인을 가리키며 말한다.
꿀꺽.
마코토가 마른침을 삼킨다.
“이 특별법에 따라 김덕성님의 배우자들은 ‘처’로서 모두 동등한 법적 지위를 지닙니다.”
동등한 지위.
그녀의 말에 린과 에리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물론 세상에 공정한 것은 없기에, 그 안에서도 서열이 나뉘겠지만.
“이 하렘 계획이라면······. 레이스에서 탈락해서 그분한테 버림받는 일은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아무도 버림받지 않는다.
그것만은 진실이었다.
한서진의 말이 네 소녀의 마음을 뒤흔든다.
“선택하십시오.”
한서진의 눈동자가 네 소녀를 훑는다.
“저의 하렘 계획에 동참해서,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올리비아 씨를 저지하고 전원 그분의 아내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한서진의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이대로 각개전투하다 올리비아 님의 독주를 허용해서 모두가 탈락하는 비극적인 엔딩을 맞이할지.”
톡톡.
한서진의 섬섬옥수가 합의안 서류를 두드린다.
그녀의 말을 끝으로 무거운 침묵이 미팅 룸을 짓누른다.
하렘 계획.
일부다처제.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드르륵.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건 린이었다.
“동참하겠다.”
그녀가 결연한 표정으로 커다란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당신의 하렘 계획에.”
린의 주먹이 파르르 떨린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지금 레이스에서 본인이 가장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여자력도 낮고, 별다른 매력도 없으며, 유일한 무기인 육탄 돌격은 그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에리를 매번 ‘빨래판’이라고 멸시하는 그녀였지만, 실상은 ‘빨래판’보다 뒤처져 있었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린은 멍청하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쩌면 나는······. 영영 탈락하게 될지도 모른다······.’
완전히 버림받을지도 모른다.
그런 공포감이 린의 마음을 좀먹고 있었다.
린의 말아쥔 주먹이 떨린다.
그래서였다.
가장 먼저 하렘 계획 협력 의사를 밝힌 이유는.
“지금의 나로서는······. 이 방법밖에 없으니까······.”
린이 기어들어갈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린이 고개를 떨구면서 눈물을 손으로 닦아낸다.
“그러니까 함께 하겠다.”
하렘의 일원이 되어서라도.
그의 곁에 있겠다.
그것이 탈락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받아드는 것보다는 낫다.
린은 그렇게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좋습니다. 접수했습니다. 안심하시길. 시노자키 씨.”
“······알겠다.”
털썩.
린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순간.
불쑥.
누군가 손을 들었다.
“나도 참가할래.”
목소리의 주인공은 마코토.
그녀 역시 자신의 처지를 잘 알고 있었다.
입학부터 그와 함께했던 린, 에리, 올리비아의 원년 멤버들과는 다르게, 도중에 전학생으로 끼어든 자신이었다.
레이스를 완주하는 것조차 기적.
하지만 하렘 계획이라면.
우승은 못 해도, 탈락하는 일은 없을 터였다.
“카미야 마코토 씨. 접수했습니다.”
“나도, 나도 참여할래. 후배 군의 곁에서 떨어지는 건······. 죽어도 싫어.”
린과 마코토 다음으로 넘어온 소녀는 카스미.
“나 같은 흉물을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후배 군 밖에 없는걸······. 후배 군을 잃기 싫어······.”
카스미가 양 팔로 상체를 감싸면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알겠습니다. 호시노 씨.”
순식간에 세 명을 포섭한 한서진의 시선이 에리를 향했다.
“히끅!”
한서진의 눈길을 받은 에리가 딸꾹질을 했다.
“니시자와 씨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참여하시겠습니까? 아니면······.”
한서진이 일부러 말끝을 흐린다.
그녀의 눈동자가 냉정하게 빛난다.
이곳에 오기 전.
한서진은 이미 네 소녀에 대해 철저한 분석을 끝마친 상황이었다.
명문가 아가씨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자존감이 바닥인 린이 가장 먼저 합류할 거라는 예상도, 뒤이어 마코토와 카스미가 넘어올 거라는 순서까지 전부 예측이 완료된 상황.
이미 세 명이 넘어온 이상, 에리 역시 분위기에 휩쓸려 넘어올 게 분명했다.
“참여할게! 에리링도······. 아니 나도, 참여할 거야. 한서진 씨의 계획에.”
에리가 눈동자를 결연하게 반짝인다.
폭우가 내린 그날 밤 이후 그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올리비아 추월은 아직 무리였다.
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거기다가.
‘나는 마코삐를 버릴 수 없는걸.’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이제는 제법 친한 친구가 된 마코토가 탈락하는 모습을 에리는 볼 수 없었다.
그렇기에 에리는 하렘 계획 합류를 결심했다.
모두가 함께 행복한 결말을 위해서.
“참여? 좋다. 빨래판, 아니 니시자와. 나는 네가 정말 싫지만······. 보나파르트 상대로는 어쩔 수 없군. 이번만 임시 동맹이다.”
에리의 말을 들은 린이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한다.
“쳇, 그건 내가 할 소리야. 젖소, 아니 시노자키. 황녀님의 독주를 저지할 때까지 임시 동맹이야. 그렇다고 네가 좋다는 건 아니니까 착각하지 말고.”
에리가 볼을 부풀리며 반발한다.
“네가 나를? 좋아해? 웃기지도 않는 소리군.”
“마음대로 생각하셔. 젖소.”
“빨래판.”
린과 에리,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 부딪힌 순간.
짝.
한서진이 박수를 친다.
“좋습니다. 여기 있는 모두의 의사, 확실히 접수했습니다.”
한서진의 회색 눈동자가 반짝인다.
이 자리에 있는 네 소녀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한다.
예상대로.
모두가 하렘 계획의 협조자가 되었다.
“그럼, 다들 잘 부탁드립니다.”
한서진의 말에 네 소녀가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보며 한서진은 결심했다.
아무도 탈락하게 두지 않겠다.
낙오하게 두지도 않겠다.
반드시 그분의 하렘을 만들겠다.
한서진이 각오를 다지며 눈빛을 차갑게 빛냈다.
벌써 어지럽네
그날 이후로는 별다른 일은 없었다.
요리부 견학이라는 명목 때문에 파리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맛집 탐방을 한 것 정도.
프랑스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비싼 식당만 가서 그런가 기대만큼 맛있긴 해서 별 불만은 없었다.
에펠탑 전망대도 가고, 개선문에서 사진도 찍고. 나쁘지 않은 추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