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07)
놈의 레반테인은 원본과는 다르게 한참 열화된 마이너 카피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위험하다.
입술을 깨물고 듀랜달을 들어 올린다.
원작에서 주인공조차 고전했던 구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터.
그렇게 각오하면서 곧바로 진명해방을 사용한다.
[듀랜달] [진명해방] [암흑을 불사르는 불괴의 마검]푸슉.
증기 빠지는 소리와 함께 검은 마력파가 전신을 뒤덮는다.
적당히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다.
[동기화] [금강불괴] [동기화]어빌리티를 중첩한다.
전력으로 가야 한다.
파츠츠츠츠츠츳!
검은 스파크와 함께 흑염이 타오르는 검이 그대로 금주마술에게 직격한다.
[이 정도쯤이야······.]금주마술이 메사이어의 목소리로 웃으며 가짜 레반테인을 들어 맞받아친 순간.
[큭?!]놈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파스스스.
마치 컴퓨터 그래픽이 깨지는 것처럼, 놈의 얼굴에 균열이 가고 그 사이로 빛가루가 흩날리기 시작한다.
뭐지? 이런 건 원작에도 없던 일인데?
원작의 유지는 금주마술과 제법 힘겨운 싸움을 했다.
무라마사는 없고 하루가 갇힌 상황에서 심상 세계의 실질적인 주인은 금주마술이었기 때문.
유지가 이긴 건, 의지가 곧 힘으로 직결되는 심상 세계의 특성 때문이었다.
라노벨 호구 주인공답게 강력한 의지로 아무튼 내가 이겼다를 연출하기 위한 설정.
[네놈, 대체 네놈 몸에서 퍼지는 이 말도 안 되는 정신력은 무엇······.]정신력?
뭐야 너 왜 원작이랑 다른 대사 하고 난리야?
[마치 이 세상의 존재와는 다른, 이질적인 느낌의 정신력, 아니 이질적인 느낌이 아니야. 이건······.]금주마술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흔들린다.
내 몸에서 뻗쳐 나가는 암흑이 놈의 몸을 잠식한다.
놈의 몸이 빠르게 부서져 흩어진다.
하반신은 전부 흩어지고, 놈이 든 짝퉁 레반테인마저 가루로 변해 흩어지고 있었다.
뭐지?
설마 내가 빙의자라서 그래?
그래서 이렇게 쉽게 끝나는 거야?
파스스스.
메사이어의 모습을 한 금주마술이 광소한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놈의 형체가 한 줌 빛가루로 변해 허공에 흩어진다.
그때 봤던 세계라니.
머릿속에서 원작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놈의 말이 정말이라면.
그렇다면.
어쩌면 귀환의 실마리를 잡은 걸지도 모른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
구원자 설화가 새겨진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형형색색의 햇빛이 비치는 회의장.
넓은 원탁.
그곳에 한 남자가 홀로 앉아 있었다.
“느껴집니다. 마침내 찾았군요.”
흑발의 미남자, 메사이어가 검은 눈을 뜬다.
“신도 악마도 없는 인간만의 세상, 영웅도 이계종도 마력도 게이트도 없는······. 완벽한 세계에서 온 자의 영혼을······.”
메사이어의 입가에 미소가 새겨진다.
“제가 옳았습니다. 그때 잘못 본 것이 아닙니다. 오직 인간만이 사는 완전한 세계는······. 유토피아는 실존했습니다!”
내가 옳았다.
유토피아는 실존했다.
영웅과 이계종에게 고통받고 있는 이 불합리하고 망가진 세계도 종말을 통해 구원해야 한다.
영웅도, 헌터도, 이계종도, 마력도, 게이트도, 초상병기도, 유적도, 로스트 테크놀로지도, 유물도.
이 세계에는 전부 필요 없다.
비일상은 모조리 사라져야 한다.
초인 신도 괴물 악마도 없는, 오로지 인간만이 존재하는, 보통 인간이 본인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이상적이고 완전하며 순수한 세계.
구세계(Old World)의 종말과 신세계(New World)의 창조는──
오직 진정한 구원자인 나, 메사이어(Messiah)만이 할 수 있다.
메사이어의 검은 눈동자가 섬뜩한 광기로 빛난다.
라노벨이 아니라 웹소설
일본 라노벨의 최종 보스는 대체로 삐뚤어진 신념으로 무장했으며 얼굴이 잘생겼고 신파극에나 나올 법한 슬픈 과거 이야기를 지닌 캐릭터이기 마련이다.
국산 웹소설의 최종 보스가 그냥 순수하게 나쁜 놈에 더럽게 힘센 초월자로 등장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세상, 최약영웅은 세계 구원자의 최종 보스인 메사이어 역시 전형적인 라노벨 최종 보스 캐릭터였다.
메사이어.
영단어로 구세주라는 뜻을 지닌 이명 그대로 이 미친놈은 자신의 미친 짓이 진심으로 세계를 구원한다고 믿는 또라이였다.
이계종과 영웅, 마력과 이능력, 게이트가 존재하는 이 세계는 이미 가망이 없으니 멸망시키고 그 에너지로 오직 인간만 존재하는 새로운 세계를 열겠다.
그것이 놈이 계획하는 ‘신세계 계획’의 최종 목표였다.
메사이어가 이런 미친 신념을 가지게 된 이유는 너무나 뻔하게도 사후에 세탁용으로 쓰이는 ‘불행한 과거’ 때문이었다.
메사이어는 어린 시절 부모님을 이계종에게 잃었으며, 하나 남은 가족인 누나는 이름 없는 영웅의 불륜 상대로 노리개처럼 쓰이다 놈에게 버림받은 뒤에 스스로 목을 매달았다.
누나의 자살 직후 이능력을 각성한 메사이어는 본인의 가족을 파괴한 영웅과 이계종 모두를 증오하게 되었고, 자신과 같은 비극이 되풀이되는 걸 막기 위해 비일상이 만연하는 이 세상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미친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딱 봐도 뻔한 세탁기용 과거 설정이지.’
덕분에 메사이어는 세계를 조지려는 미친놈인데도 잘생긴 얼굴과 불행한 과거 설정 때문에 세탁기가 잘 돌아갔다.
최종 국면에서 주인공 손에 죽기 직전에 있어 보이게 ‘이제 이 뒤의 세상을 부탁합니다. 새로운 세계 구원자님.’ 같은 유언도 남기고 말이다.
주인공 놈은 가문의 원수고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악당인데도 메사이어를 죽인 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구나.’ 하고 메사이어를 이해하며 눈물을 흘렸고.
하여간, 라노벨은 왜 이렇게 악역 미화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웹소설에 등장하는 순수 악 최종 보스가 훨씬 낫다.
정작 불쌍한 김덕성은 끝까지 찌질한 악역이었는데 말이다.
어쨌건 메사이어의 목표는 초인도 괴물도 마력도 이능력도 없는 평범한 세계를 만드는 것.
그렇다.
우리가 살던, 헌터도 초능력도 괴물도 마법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그냥 인간만 있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현실 세계.
그곳이 바로 놈이 꿈꾸는 신세계인 것이다.
‘작중에서는 메사이어가 금주마술로 신세계 창조 시뮬레이션을 돌리다가 우연히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와 유사한 평행세계에 의식 채널이 잠시간 연결되었고, 그곳의 풍경을 엿봤다고 설명됐었지.’
원작 최종 국면에서 메사이어의 과거를 설명하며 나온 에피소드.
메사이어는 그때 본 이상향의 풍경을 잊지 않고 평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20권 마지막에 지맥의 원천이 지닌 힘을 현자의 돌을 통해 이용, 인위적으로 두 세상을 잇는 월드 게이트를 연 뒤에 이쪽 세상을 멸망시킨 에너지로 이상향와 이쪽 세계를 합일시켜 제3의 세상, 신세계를 창조하는 대마술을 사용하려 했다.
메사이어가 평생을 걸쳐 연구한 금주마술 ‘천지창조(Genesis)’다.
‘여기에 실마리가 있어.’
원작에서 그 평행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라는 언급은 존재하지 않지만, 팬덤에서는 메사이어가 봤다는 ‘이상향’이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가 아닌가 하는 추측이 존재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팬덤의 추측.
원작에서도, 설정집에서도, 작가 인터뷰에서도 메사이어가 봤던 이상향이 현실 세계라고 단정 짓는 부분은 없었다.
이상향의 정체가 현실 세계라는 추측에 작가 놈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보류했다.
최악의 경우에는 ‘이상향’이 원래 세상과 비슷하지만 다른 평행세계일 가능성도 존재했기에.
귀환은 신중해야 한다.
막연한 추측만 믿고 세계를 넘어갔는데, 거기가 내 고향이 아니라면?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런데 결국 팬덤의 추측이 옳았어.’
메사이어, 정확히는 메사이어의 모습을 한 금주마술의 환영이 내뱉은 대사를 통해 나는 확신했다.
메사이어가 엿봤던 이상향은 내가 살던 현실 세계와 같은 세상이라는 사실을.
그렇지 않고서야 ‘그때 봤던 세계의 느낌이다.’ 같은 대사를 내뱉을 리 없다.
금주마술이 메사이어의 형상을 취한 이유는, 금주마술의 술식에 메사이어의 사념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놈이 원거리에서 붙잡힌 부하들을 죽일 수 있는 이유 역시, 사념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고.
‘그렇다면 돌아갈 수 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다.
월드 게이트를 열기 위해서는 지맥의 원천과 현자의 돌 이외에도 게이트를 여는 복잡한 술식과 각종 아이템을 포함한 준비가 필요하니까.
그리고 이 세상에서 월드 게이트를 여는 방법을 아는 유일한 인간은 메사이어뿐이다.
즉, 내가 귀환하기 위해서는 어쨌건 메사이어를 족치고 리그를 와해시킨 뒤에 리그의 본거지에 보관되어 있을 ‘신세계 계획’의 핵심 데이터를 확보해야만 한다.
리그의 본거지가 소련이 비호하는 시베리아 비밀도시에 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소련을 등에 업은 리그를 직접 타격하는 건 자살 행위다.
그렇다고 제3차 세계 대전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이 세상의 초강대국인 소련과 전면전을 벌이는 건 비인도적이기도 하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역시 원작대로 메사이어를 학원 지하 유적으로 유인해서 조지는 게 최선인가.’
아무리 원작이 비틀렸다 하더라도, 메사이어의 목적마저 바뀐 건 아니다.
놈은 신세계 계획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학원 지하 유적을 노릴 것이다.
그렇다면 만반의 준비를 갖춘 지하 유적에서 놈을 맞이해서 조지는 게 최선이다.
중간에 놈의 계획을 계속 방해해서 리그의 전력을 깎는 일도 소홀해서는 안 될 테고 말이다.
상대하는 적의 전력이 약하면 약할수록 최종 국면에서 상대해야 될 적이 줄어드니까 말이다.
메사이어 사후 리그의 지식은 주인공 유지 주도하에 학원에서 회수해서 학원 대도서관 금서 창고에 봉인했으니까.
‘그것뿐이다.’
게다가 메사이어의 계획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 빌어먹을 신세계 계획인지 뭔지가 실현되면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 양쪽 모두가 신세계 창조의 에너지원이 되어 문자 그대로 멸망할 테니까.
놈의 이상에는 관심 없다. 놈의 계획이 실행된다면 나도 내 부모님도 이쪽 사람들도, 양쪽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종말과 함께 소멸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세계 종말을 통한 재창조라니, 과격한 것도 정도가 있지. 정신 나간 발상이 따로 없다.
두근.
결론을 내리자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마침내 찾았다.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을.
아픈 어머니와 정년퇴임을 앞둔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돌아갈 수 있다.
드디어 제대로 된 효도를 할 수 있다.
분명 기뻐야 할 터.
하지만 왠지 모를 씁쓸함이 입안에 감돈다.
눈앞에 여기서 만난 인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올리비아, 에리, 린, 아리스, 마코토, 카스미 선배, 세이라, 에반젤린, 한서진까지.
[그러니까 괜찮아요. 당신이 숨기고 있는 사정을 모두 해결한 뒤에 제대로 된 대답을 제게 돌려줄 때까지, 여기서 가만히 얌전하게 기다릴게요.]베르사유 궁전, 왕비의 촌락에서 내게 말하던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기다려준다고, 모두가 행복한 쪽이 좋다며 바보처럼 웃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기다리는 건······. 익숙하니까 괜찮다.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다오.] [나는 언제나 네 편이라는 사실을.]비 오던 무인도 동굴.
감기 걸린 나를 간호해주며 내게 가족이 되어주겠다고 말하며 모성애 넘치는 미소를 짓던 린의 모습도 떠오른다.
한국은 부부별성인데도 고지식하게 내 성인 김 씨를 따르겠다고 이야기하던, 엄마를 닮은 그녀의 웃음과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주인님······. 에리링은 주인님이 와줄 줄 알았어······. 믿고 있었어. 주인님이 에리링 반드시 만나러 올 거라고. 왜냐하면 주인님은······. 주인님은······.] [주인님은 상냥하니까······.]비 오던 날, 공원에 도시락을 끌어안은 채 기약 없이 날 기다리던 에리의 모습이 떠오른다.
[은하 랭크 미소녀 에리링은 주인님만의 영원한 노예니까······. 영원히 주인님 편이니까. 그러니까 너무 방치하지 말고, 조금만 신경 써 줬으면 좋겠어. 주인님.]웨딩 화보 촬영이 끝난 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며 미소 짓던 그녀의 웃음소리가 맴돈다.
[아무데도 가면 안 된데이······. 아-쨩 이제 엄마 말도 잘 듣고······. 참한 여자가 될 테니까······.]술주정을 부리면서, 나를 끌어안으며 엄마 이야기를 하던 아리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간다.
샤워장에서 나오다가 그녀와 라노벨처럼 함께 엎어져서 우연히 키스해버렸던, 그날 입술의 감촉도 느껴진다.
[도망 가······. 후배 군······.]피투성이가 된 채로, 나를 지키려다 아키텍트의 공격을 맞고 쓰려졌던 바보 같은 카스미 선배의 모습도 떠오른다.
아직도 코 끝에 혈향이 감도는 것 같다.
[마코삐, 오늘 하루만······. 어리광 부릴래. 내일부터는 다시 착실한 주군의 검으로 돌아갈 테니까······. 그래도 괜찮지?]마코토와 이케부쿠로에서 놀았던 날.
선샤인60 빌딩 전망대에서 그녀가 했던 말이 맴돈다.
[덕성 오빠! 세-라땅 오빠 엄청 보고 싶었어!]날 지키다가 유아 퇴행 현상을 겪은 세이라의 모습도 떠오른다.
[기, 김덕성님······.] [반드시 사셔야 해요······.]멍청하게 나 따위를 지키겠다고 EX랭크 영웅의 공격을 정면에서 받아냈다가 피투성이로 쓰러진 에반젤린의 차가운 체온이 느껴진다.
쏴아아아.
파도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그런 저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분했습니다······. 김덕성님께 필요 없는 존재가 될까 봐, 버려질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저 제 내면에 똬리를 튼 추한 열등감과 욕심, 그것뿐입니다. 김덕성님이 신경 쓸 만한 일은 아닙니다.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김덕성님께 염려를 끼친 것도 모자라 추태까지 보였습니다. 죄송합니다.]한적한 해변가에서 내게 열등감을 고백하던 한서진.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던 인물인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입술을 깨문다.
나는 이 세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감정 과잉에 호구에다, 처음 본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 정도의 멍청이들이 득실거리는 이 빌어먹을 상냥한 라노벨 세계가 싫다.
돌아가야만 한다.
아픈 어머니와 이제는 일을 더 못하는 아버지 대신 내가 가족을 부양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정말 이 세상의 인연을 전부 냉정하게 잘라내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가는 게 맞는 일일까?
손이 파르르 떨린다.
‘그러기에는······.’
그녀들에게 정이 들었다.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빌어먹을 라노벨 말투도, 오글거리는 일본 애니메이션 리액션도.
이해득실 계산 따위 없이, 쓸데없이 퍼주기만 하는 호구 같은 상냥함도.
인정하기 정말 싫지만, 이제는······. 없으면 허전하다.
이제야 깨달았다.
그렇게 정을 주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고, 쿨찐처럼 굴었는데도.
결국 나는 그녀들에게 정이 들었고, 이제는 버릴 수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가족을 버릴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언제부터 이게 양자택일이었지?’
고개를 젓는다.
양자택일 따위, 라노벨적 사고방식이다.
호구 같은 라노벨 주인공들이나 양자택일 상황에 놓였을 때 다른 한쪽을 어쩔 수 없이 희생하는 등신 같은 선택을 하는 거다.
그래 놓고서는 정신적 성장을 위한 시련이라며 방구석에서 끙끙 앓겠지.
모름지기 K-웹소설 주인공이라면,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를 잃는 양자택일 상황에서 멍청하게 한쪽의 손을 들어주면 안 된다.
그렇게 고구마만 먹였다가는 5700자 쪽지를 받는 수가 있다.
두 선택지를 박살 낸 뒤, 양쪽 선택지의 장점만 체리피킹하는 제3의 선택지를 골라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웹소설의 핵심인 ‘사이다’와 ‘갑질’이 아니던가?
나는 호구 라노벨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웹소설 주인공처럼 이기적인 소인배고 사이다패스다.
그래서 가족도, 이 엿 같은 세계의 인연도 버릴 수 없다.
그러니까 소인배답게 비겁하게 양쪽의 장점만 취하겠다.
“······역시 양방향 게이트뿐인가.”
해답은 그것뿐.
원작의 월드 게이트는 일방통행.
세계 간 연결 통로를 통해 현실 세계를 이쪽 세계로 불러오는 용도였다.
하지만 월드 게이트 술식의 데이터를 입수해서 성녀 베아트리체와 천재 과학자 이시하라 사오리에게 연구하라고 던져준다면.
원작과는 다르게 진짜 양방향 월드 게이트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만들어야만 한다.
“그래.”
이게 정답이다.
모든 고민이 해결되자 입에서 헛웃음이 흘러나온다.
“염병······.”
그래, 나는 역시 라노벨이 싫다.
이 빌어먹을 세계는 진심으로 엿 같다.
웹소설처럼.
지극히 이기적으로, 오직 나만을 위해 살겠다.
이를 악물면서 듀랜달의 칼자루를 붙잡은 그때.
그그그그그그그그.
쿠로사와 저택의 모습을 한 풍경이 굉음과 함께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