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271)
조졌네.
온천욕은 완전히 글렀다.
사람이 한두명 있으면 모른 척하고 그냥 하겠는데, 이건 뭐 1학년 여생도 절반은 여기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온천욕은 불가능하다.
“하와와와와······.”
에반젤린이 붉어진 얼굴로 하와와 소리를 낸다.
그녀가 쫙 벌린 손가락 사이로 나를 보고 있다.
저렇게 다 볼 거면서 대체 왜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거야.
어이가 없네.
아무튼 나가야 한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가려던 순간.
“꺄아아아아아아아아!”
에반젤린 옆에 있던 베아트리체가 비명을 질렀다.
그와 함께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한다.
“검은 귀축이야!”
“당당하게 여탕에 들어오다니······!”
“설마 하렘 멤버들한테 목욕 시중을 받으러 들어온 걸까?”
“꺄아아아아아아아! 나 방금 눈 마주쳤어!”
“헉······! 뭐야! 검은 귀축······. 아랫도리에 저렇게 거대한······. 저래서 매일 밤마다 하렘 멤버들이 비명을 질렀던 거였어?!”
“뭐야 검은 귀축······. 몸 엄청 좋잖아? 이래서 학원의 내로라 하는 미소녀들이 전부 넘어간 거야? 조금 반했을지도?”
엑스트라들의 비명과 웅성대는 소리가 들린다.
내가 이래서 금방 나가려고 했는데.
염병.
애니메이션에서 봤을 때는 왜 김으로 저렇게 히로인들 몸을 가리는지, BD판에서 김이 지워졌을 때 좋아했던 적도 있었는데 실제로 마주하니 그때처럼 마냥 좋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느낌이다.
차라리 2D일 때가 나았지.
내가 발길을 돌리려던 그때.
“으으으으으! 저질! 변태! 파렴치한! 바보! 멍청이! 해삼! 멍게 말미잘! 우주 제일 바보! 시, 시간과 장소를 좀 가리라고요!!”
올리비아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욱한 안개 속.
새빨개진 얼굴을 하고 있는 올리비아의 모습이 보인다.
양팔로 풍만한 가슴을 감싼 채 온천에 몸을 담근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파르르 떨린다.
“방금 시간과 장소를 가리라고 했지?!”
“그럼, 여기 말고 다른 장소에서는 가능하다는 걸까?”
“프랑스의 기사공주님, 대단해! 개방적인 나라 프랑스 출신다워!”
“검은 귀축······. 고귀한 공주님을 저렇게 떨어뜨리다니······. 무서워!”
올리비아의 한마디에 어김없이 뒤따르는 엑스트라들의 헛소리.
이럴 줄 알았다.
에휴.
여기서 더 뭐라 해봤자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아무 말 없이 나가는 게 낫다.
스윽.
여생도들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그대로 밖으로 나간다.
염병.
좀 있다가 대욕탕이 개장하는 밤에 다시 와야겠다.
*
김덕성이 나간 뒤.
대욕탕.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온천 안.
생도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귀축, 몸은 꽤 좋았지?”
“솔직히 더 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과감히 들어올 줄은 몰랐어.”
김덕성에 관해 이야기꽃을 피우는 여생도들.
다른 건 몰라도 몸 하나는 좋은 김덕성인데다가, 특정 부위가 거물인 탓에 아직 여생도들 사이에서는 김덕성 관련 이야기가 계속해서 돌고 있었다.
“으으으으······.”
그 목소리를 들은 올리비아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이봐요! 거기! 시끄러워요!”
척.
올리비아가 몸을 일으키면서 풍만한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뜨거운 온천물이 그녀의 굴곡진 몸을 따라 방울지며 뚝뚝 떨어진다.
“전속 시녀인 저 이외에 다른 어중이떠중이 서민 따위가 그 바보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평가하는 일 따위,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그 바보의 전속 시녀니까요!”
올리비아의 푸른 눈동자가 온천 안의 여생도를 훑는다.
그녀의 몸에서 백금빛 마력이 타오른다.
“그러니까 다들 그 바보 이야기 그만하고 당장 나가요!!”
척.
올리비아가 출구를 가리키며 소리친다.
백금의 기사공주.
그 압도적인 마력 파장에 엑스트라들의 얼굴이 굳는다.
주춤하면서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썰물처럼 여생도들이 빠진 뒤, 온천 안에는 올리비아를 시작으로 린, 에리, 마코토, 하루, 에반젤린, 베아트리체의 일곱 명만 남았다.
히로인들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흐, 흥······. 하, 하여튼······. 그 바보는 전속 시녀인 이 제가 보좌하지 않으면 안 된다니까요······.”
침묵을 깬 건 올리비아.
그녀가 팔짱을 낀 채 입술을 삐죽인다.
그를 혼낼 수 있는 사람도, 그를 평가할 자격이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오직 전속 시녀인 자신뿐이다.
올리비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와와와······. 보나파르트 황녀님의 말이 맞사와요. 김덕성님 곁에는 역시 보나파르트 황녀님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이와요!”
착.
에반젤린이 올리비아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영국 공주인 에반젤린의 칭찬을 들은 올리비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오호호호호호호! 역시 저와 버금가게 고귀한 스튜어트 왕실의 왕녀답게 전속 시녀인 이 올리비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진가를 알아봐 주시는군요!”
“보나파르트 황녀님뿐만이 아니어요.”
착.
에반젤린이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그녀의 시야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올리비아부터 린, 에리, 마코토까지.
“시노자키 공, 니시자와 공, 카미야 공까지 전부 김덕성님과 함께 소녀와 소녀의 조국을 그 사람의 손아귀에서 구해준 제 존경하는 은인들이랍니다.”
하와와와.
에반젤린이 웃었다.
그날.
김덕성이 윌리엄의 실체를 전 세계에 폭로하지 않았더라면.
올리비아가 윌리엄을 처단하지 않았더라면.
린, 에리, 마코토가 그녀를 돕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윌리엄의 쿠데타가 성공하고, 자신의 처지는 새장 속의 새가 아니라 노예로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윌리엄이 지배자로 군림하던 세인트 조지 학원의 끔찍했던 기억은 아직도 에반젤린의 뇌리에 선명했다.
같은 스튜어트 왕실의 핏줄이라 대놓고 괴롭히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은근히 따돌리고 그녀 주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어서 에반젤린 본인을 외톨이로 만드는 음습한 괴롭힘.
그의 음탕한 시선을 받고 음담패설을 들을 때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끔찍한 시간에서 구해준 은인들이었다.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상이 비록 영국의 영원한 라이벌인 프랑스의 황녀일지라도.
에반젤린의 진심어린 감사 인사에 어색한 침묵이 감돈다.
“흐, 흥! 따, 딱히 영국의 공주 따위한테 감사 인사를 받으려고 한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차, 착각하지 마시라고요!”
가장 먼저 대답한 건 올리비아.
그녀가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씰룩거리면서 말한다.
현대에 와서 많이 누그러지기는 했지만, 영국과 프랑스는 한때 백 년 동안이나 전쟁했을 정도로 전통의 앙숙 관계.
당연하게도 올리비아 역시 에반젤린을 무의식적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씰룩.
올리비아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황녀님 말이 맞아. 에리링은 그냥 주인님을 도와줬을 뿐이야.”
올리비아의 말 다음으로 말한 건 에리.
그녀가 웃으면서 말한다.
“응. 나도 주군의 검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
에리 옆에 있던 마코토가 말한다.
“에잇!”
“꺄아악!”
그 모습을 본 에리가 마코토의 등 뒤에서 그녀를 덮친다.
“이렇게 하니까 더 큰데? 우리 마코삐.”
“아, 안 돼! 에리쨩! 흐읏?!”
첨벙첨벙.
온천 안에서 벌어지는 파렴치한 짓.
물보라를 보면서 올리비아가 한숨을 쉰다.
“하여간······. 품위가 지나치게 없는 것도 문제예요.”
올리비아의 혼잣말을 들은 린의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그녀가 에반젤린을 바라보며 말한다.
“빚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좋다. 스튜어트.”
“하지만······.”
시노자키 린의 말에 에반젤린이 뭐라 말하려던 순간.
“계약자여! 여는! 여는 왜 빼놓는 것인가!”
첨벙.
물속에서 베아트리체가 솟아오른다.
온천 안에서도 착용하고 있는 안대.
그 모습을 본 에반젤린의 입에서 미소가 새어 나온다.
“어머! 트릭시 양은 소녀의 소중한 친구인걸요? 너무 섭섭해하지 않으셔도 되는 것이와요!”
“흐, 흥. 딱히 그런 대답 같은 건 바라지 않았느니라.”
볼을 부풀리는 베아트리체.
하지만 그녀의 친구인 에반젤린은 지금 베아트리체가 기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뿌듯한 기분으로 가슴 위에 손을 얹는 에반젤린.
‘김덕성님의 여성분들께 아까 못 다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지 않으면······.’
에반젤린이 그렇게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하던 그때.
“니시시시.”
그녀의 귓가에 이질적인 웃음소리가 들린다.
에반젤린의 시선이 웃음소리가 들린 쪽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빨강과 검정이 뒤섞인 투톤 사이드테일이 인상적인 미소녀, 쿠로사와 하루가 있었다.
“에바 언니.”
하루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말투가 초 웃긴 에바 언니. 하루한테는 할 말 없어? 언니들한테만 말하고, 하루 섭섭해.”
에반젤린의 얼굴이 굳는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저 소녀.
쿠로사와 하루에게 에반젤린이 진 빚은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말투를 비웃다니.
영국 왕실에서 어려서부터 자라며 익힌 교양 있는 말투를 보고 웃기다니.
스튜어트 왕실의 명예가 짓밟힌 상황.
물러날 수 없다.
“말투가 초 웃기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 것이와요?”
에반젤린의 목소리가 살짝 뾰족해진다.
“아하하하하하하! 에바 언니 완전 초 웃겨! 왜 그렇게 예민해? 하루는 그냥······.”
하루가 눈을 가늘게 뜬다.
첨벙.
그녀가 물살을 가르며 에반젤린 바로 앞으로 다가와 웃는다.
“······에바 언니가 나한테도 초 친하게 대해줬으면 해서 농담했을 뿐이야. 하루도 에바 언니처럼 덕성 오빠 완전 사랑하거든. 니시시시.”
하루가 입을 가린다.
“물론 에바 언니처럼 몰개성하고 매력 없는 공기 히로인보다는 초☆카와이☆메스가키 갸루★여동생인 하루가 훨씬 덕성 오빠의 마음에 완전 크리티컬 히트겠지만 말이야. 니시시시. 열심히 해 봐.”
하루의 말에 에반젤린의 눈동자가 무겁게 가라앉는다.
주변에서 호인이라 평가받는 에반젤린이었지만, 참는 데도 한계가 있었다.
‘소, 소녀가 몰개성? 매력이 없는 히로인이라고요?!’
눈앞의 소녀, 하루의 건방짐은 그녀의 인내심을 한계 돌파시키기에 충분했다.
“누구 마음대로 소녀와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건가요? 쿠로사와 양! 그리고 소녀는 충분히 매력 있는 레이디인 것이와요! 김덕성님께서도 소녀의 매력을 분명히 알아주실 것이와요!”
“정말? 자신 있어? 에바 언니?”
하루의 말에 에반젤린이 머뭇한다.
자신이 있냐는 평범한 질문.
하지만 에반젤린은 거기에 확실히 YES라고 답할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은 어디까지나 일방통행에 불과한 팬심이자 짝사랑.
레이디로서 그분에게 매력을 제대로 어필한 적도 없을뿐더러, 당연하게도 그분이 자신을 제대로 돌아봐준 적도 없었다.
그 사실이 에반젤린의 가슴을 비수처럼 찌른다.
“······.”
에반젤린이 침묵한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선다.
“됐사와요. 소녀는 이만 물러나는게 좋을 것 같사와요.”
에반젤린이 욕탕을 벗어난다.
“어? 에바 언니! 에바 언니!”
등 뒤에서 그녀를 부르는 하루의 목소리를 무시하면서, 에반젤린은 대욕탕을 나와 유카타를 걸친 뒤에 나왔다.
머리를 비우고 정처 없이 걷던 그때.
“스튜어트 양.”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에반젤린이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남색 포니테일이 인상적인, 유카타가 잘 어울리는 늘씬한 미소녀.
시노자키 린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
같은 시각.
도쿄, 협회 본부 빌딩.
드넓은 도쿄의 도시 전경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빌딩 꼭대기층.
시시오도시가 오르락내리락하는 협회장실에서는 협회장, 시노자키 이치로와 부협회장인 나카야마 소지로가 서로 대면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린애들 경호, 그것도 그냥 경호가 아니고 비밀 경호라니. 그 비밀 경호에 투입되는 인력이 EX랭크 둘인 협회장님이랑 저라니. 이사장 할머니 진짜 노망 난 거 아닙니까?”
명왕, 나카야마 소지로가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퉁명스럽게 내뱉는다.
그 모습을 본 이치로가 눈을 감았다 뜬다.
그의 음울한 녹색 눈동자 안에 소지로의 얼굴이 담긴다.
“노망이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이번 비밀 경호 임무는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 나카야마.”
“협회장님 따님 때문이죠? 그거? 이번 호위 임무 핑계 대고 따님 보려고 하는 거 다 압니다. 협회장님. 제발 저는 좀 빼 주면 안 될까요? 지방 출장 진짜 극혐입니다.”
“크흠. 안 되네.”
딸바보의 정곡을 찌르는 소지로의 말에 이치로가 헛기침을 흘렸다.
“우리 딸이 벳푸에서 잘 지내는지 궁금하군······. 벌써 보고 싶어.”
“중증 팔불출이 협회장인 빌어먹을 블랙 기업 같으니······.”
이치로의 혼잣말을 들은 소지로가 구시렁댔다.
뉴 월드 리그의 마수가 뻗치기 전, 일본 영웅 협회에서 있었던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