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12)
제 310화
『사랑』
프로페서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른다.
심상전개는 사용자의 신념을 형상화한 공간.
따라서 심상전개끼리의 싸움은 서로의 신념을 대결하는 거였다.
신념의 대결에서는 강한 신념을 가진 쪽이, 본인의 신념에 강하게 확신하는 쪽이 승리한다.
지금까지 프로페서는 본인의 신념이 메사이어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신념을 지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스승님인 세이라 본인의 신념과 비교해서도.
메사이어가 품은 세계 구원의 신념 수준은 아니지만, 스승님을 구원하겠다는 일념으로 도달한 그의 심상전개는 결코 약한 신념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김덕성이 심상전개를 각성한 순간.
그의 어둠은 김덕성의 우주에 뒤덮여 사라졌다.
‘김덕성, 네놈은 대체 어떤 신념을 지녔기에······.’
프로페서가 미간을 좁힌다.
지금도 계속해서 김덕성의 심상전개가, 그의 우주가 자신의 어둠을 갉아먹고 있다.
스승님을 구원하겠다는 그의 신념이, 김덕성의 신념에 밀리며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프로페서가 이를 악문다.
그의 손이 파르르 떨린다.
프로페서가 마력로를 쥐어짠다.
우우우우웅!
그의 가슴 안에 있는 마력로가 요동치며 마력을 뽑아 올린다.
“······용납할 수 없습니다!!”
프로페서가 그람을 치켜들자 우주의 잠식이 잠깐 멈춘 그때.
프로페서의 눈동자와 세이라의 눈동자가 마주친다.
다시 전성기의 모습으로 돌아온 세이라를 본 프로페서의 눈동자가 떨린다.
세이라의 핏빛 눈동자에는 일말의 동정조차 없었다.
제자가 아닌 배신자를 바라보는 싸늘하게 식은 시선.
그 눈빛이 프로페서의 가슴을 찌른다.
‘스승님······.’
프로페서가 입술을 깨문다.
스승님께 이해받지 못할 것을 각오했다.
선생님께 인정받지 못할 것을 각오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흔들릴 수는 없다.
‘저는 망설이지 않고 스승님의 구원을 위해 전진하겠습니다. 그것이 설령 스승님이 이해하지 못하고 인정하지 못하는 길일지라도!’
프로페서가 각오를 다지고 신념을 세우자 그의 몸 주변에서 어둠이 피어오른다.
‘설령 추한 모습을 보이더라도!’
프로페서가 이를 악문다.
우우우우웅!그의 몸에서 심상전개와는 다른 불길한 다크 그레이색 오라가 피어오른다.
프레데터.
이계종의 살점을 섭취하면 해당 이계종의 능력을 얻는 프로페서의 기프트.
비인도적인 생체 실험의 결과로 부여된 능력이기에, 평소에는 추한 능력이라 여기며 사용을 자제했던 프로페서였다.
하지만 지금은 비상 상황.
추한 능력이라도 사용해야만 했다.
모든 것은 선생님의 구원을 위해.
프로페서가 그렇게 다짐한 순간.
꿀렁.
프로페서의 주변에 펼쳐진 어둠이 형상을 갖춘다.
그것은 이계종이었다.
프로페서가 지금까지 흡수하고 포식했던 수많은 이계종들이 심상전개인 구원자를 갈망하는 심연을 통해 실체화되어 나타나고 있었다.
무저갱을 닮은 어둠 속에서 등장하는, 암흑 이계종.
그의 앞에는 찬란한 백색 휘광을 두른 세이라가 있었다.
“지금부터는 이 백색 여제가 인류의 적을 상대하겠다.”
세이라가 프로페서에게 선고한다.
“슈퍼── 노바! 제네시스!!”
세이라의 입에서 스킬명이 튀어나온다.
그것은 세이라에게 백색 여제라는 이명을 선사해준 스킬.
오메가 랭크 이계종마저 일격에 치명상을 입힌다는 그녀의 궁극기.
초신성의 폭발을 마력으로 재현한 광역 파괴 스킬인 슈퍼 노바 제네시스였다.
그와 함께 검푸른 우주 공간 구석에 새하얀 하늘이 나타난다.
새하얀 하늘에서 새하얀 빛줄기가 그대로 프로페서에게 직격한다.
콰-과-과-과-광!!
하얀 태양을 연상시키는 빛의 폭발이 강림한다.
검푸른 우주의 어둠이 일렁이고, 우주에 떠 있는 별과 은하가 요동친다.
눈이 멀 듯한 하얀 섬광과 뒤따르는 폭음을 보면서 세이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상처가 완전히 나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세이라가 마력로에 입은 상처는 고작 회복 기술 몇 번 받은 것 가지고 회복될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세이라는 EX랭크 영웅이자 파이브 크라운즈의 유일한 생존자.
영웅 강국인 일본에서도 소중한 전력이었고, 그래서 세이라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 차원에서 수많은 신약과 새로운 치료 요법, 회복 기술을 받아왔다.
일본 정부는 그녀의 마력로를 살리기 위해 과학적인 치료방법은 물론 마술적인 치료방법까지 전부 동원했지만 마력로에 입은 영구적 손상은 치유될 기미가 거의 없었다.
지금의 상황은 김덕성의 심상전개와 별의 세례 덕분에 일어난 일시적인 기적에 불과하다.
심상전개가 해제된다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수준이야.’
그러나 지금까지 그 어떤 치료 방법으로도 해낼 수 없었던, 일시적인 완전 회복을 김덕성은 해냈다.
어쩌면 영구 손상의 완전 회복까지는 아니더라도, 심상전개 해제 후에도 어느 정도 약간의 진전이 있을지도 모른다.
세이라는 그 사실을 몸으로 느끼면서 붉은 눈으로 상대를 바라봤다.
스스스스.
하얀 빛이 흩어진 곳, 폭심지에는 달팽이처럼 커다란 껍질이 있었다.
파스스.
커다란 껍질이 부서지면서, 안쪽에서 그가 나타난다.
“크, 크흐흐흐, 흐흐흐흐흐흐······.”
웃음을 흘리는 프로페서였다.
기프트 프레데터를 통해 흡수한 오메가 랭크 이계종, 현무의 특질인 절대 방어 껍질을 사용해 세이라의 슈퍼 노바 제네시스를 겨우 막아낸 것이다.
기프트를 사용해서 이계종의 특성을 발현한 덕분인지 인간이 아닌 이계종에 가까운 이형의 모습으로 변한 프로페서가 혀를 날름거린다.
“······저는, 저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스승님. 저는······. 당신을 기필코······.”
프로페서가 이를 악문다.
이계종의 흔적으로 얼룩진 추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방금의 슈퍼 노바 제네시스로 프로페서가 구현한 심상전개, 구원자를 갈망하는 현실은 완벽하게 파괴되었다.
그래도 프로페서는 멈출 수 없었다.
그가 살아가는 이유가 눈앞에 있었으니까.
여기서 쓰러진다면, 10년 전의 배신조차 아무 의미가 없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나아가야만 했다.
설령 여기서 목숨을 불태우더라도.
스승님을 구원할 수 있다면 상관없다.
프로페서는 그렇게 생각했다.
“······구원하겠습니다. 선생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겠습니다아아아아!!”
프로페서의 팔이 기괴하게 꺾이면서 근육이 부풀던 그때.
“프로페서, 아니 쥬드.”
세이라가 말한다.
본명을 불린 프로페서가 움찔한다.
“너는 이 몸을 구원하겠다고 했지만, 이 몸은 너의 구원을, 네가 바라는 신세계를 원치 않는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
세이라의 말에 프로페서가 렌즈에 금이 간 안경을 고쳐 쓰면서 발악하듯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너의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그 말이 그의 가슴에 비수처럼 꽂힌다.
그렇게 말할 것을 예상했지만, 그런데도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프로페서가 지친 마력로를 혹사하며 마력을 뽑아내던 그때.
“네 말이 맞다. 쥬드.”
세이라의 말에 쥬드의 몸이 멈춘다.
세이라가 희미하게 웃는다.
“한때는 그랬었지. 동료를 먼저 보내고, 제자를 최악의 빌런으로 키워낸 이 몸은 진정으로 행복해질 자격이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세이라가 풍만한 가슴 위에 손을 올린다.
10년 전 그날 이후 9년의 세월 동안, 세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살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세이라가 단호하게 말한다.
와락.
그녀가 풍만한 가슴에 김덕성을 끌어안고는 검은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런 이 몸한테도······. 행복이 찾아온 거다.”
세이라의 입가에 미소가 걸린다.
그녀의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다.
두근, 두근.
세이라의 가슴이 첫사랑을 만난 사춘기 소녀처럼 맥동한다.
좋아한다.
사랑한다.
사랑하는 여자야말로 진정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세이라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렇기에 세이라는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다.
10년 전 그날 이후, 아니 일생을 걸쳐서 처음으로 찾은 행복이었다.
“보아라. 쥬드. 너는 아직도 이 몸이 불행해 보이느냐? 이 미소가 거짓처럼 보이느냐?”
세이라의 시선이 프로페서를 향했다.
적의 유혹에 넘어가 최악의 빌런으로 타락한 전(前) 제자.
파이브 크라운즈로서, 영웅으로서는 그를 단죄해야만 했다.
하지만 스승으로서, 선생님으로서는 그럴 수 없었다.
제자가 엇나간다면, 그것은 곧 스승의 책임.
일탈을 바로잡고 올바른 길로 다시 인도해야만 했다.
영웅이 아닌 스승으로서.
“······지금 이 몸은 진심으로 행복하다. 매일매일이 행복해서······. 하늘나라에 있을 다른 동료들에게 부끄러워서 견딜 수 없노라.”
세이라가 수줍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붉힌다.
그녀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오른다.
프로페서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건······.”
누구보다 스승님을 잘 안다고 자부하는 그였다.
배신한 이후 10년 간 만나지 못했어도, 하루라도 그녀를 그리워하지 않는 날이 없는 프로페서였다.
그렇기에 프로페서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선생님, 요시자키 세이라의 모습은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오히려 짝사랑 상대였던 검성과 함께 지냈을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게 보인다고.
프로페서는 가슴으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아직 잘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맞습니다. 하지만 신세계에서······.”
“이 몸은 신세계 따위는 바란 적 없노라. 그건 너 역시 그렇겠지. 쥬드. 네가 이 몸을 배신한 이유는 신세계 같은 헛소리가 아닌, 어디까지나 이 몸의 행복이었으니 말이다.”
세이라가 프로페서의 말허리를 자른다.
그녀의 말에 프로페서는 입을 다물었다.
“네가 정말 이 몸의 진정한 행복을 원한다면······. 그래서 이 몸을 배신했던 거라면······.”
스윽.
김덕성을 품에서 떼어낸 세이라가 바닥에서 몸을 띄운다.
그녀의 고스로리 드레스가 팔랑거린다.
털썩.
세이라가 지척에 다가오자, 다리에 힘이 풀린 프로페서가 제자리에 주저앉는다.
“이제 겨우 진정한 행복을 찾은 이 몸을 더 괴롭게 하지 말아다오. 다시 불행하게 하지 말아다오.”
세이라의 말에 프로페서의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 몸의 옛 제자야.”
제자.
그 말을 들은 프로페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른다.
그는 이제야 깨달았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스승님의 행복이 지금 달성되었다는 사실을.
자신이 해왔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그가 그토록 찾았던 스승님의 행동은 신세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그런데도 스승님께서는 아직 타락한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나는······. 틀렸던 거야······.’
그리고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프로페서는 인정했다.
“······스승님······. 나는 대체, 지금까지······.”
무엇을.
프로페서가 말끝을 흐리며 뒷말을 삼킨다.
회의감과 무력감, 자괴감이 몰려든다.
프로페서의 몸을 변형하던 이계종의 특질이 점차 모습을 감춘다.
그의 모습이 다시 원래의 인간형으로 변하던 그때.
“그럼, 잘 자라. 옛 제자야.”
세이라의 검지 손가락 끝에서 백색 섬광이 반짝인다.
프로페서는 그것이 자신을 제압하기 위한 공격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고, 충분히 피할 여력이 존재했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대신 받아들였다.
스승의 마지막 회초리를.
콰-과-과-광!
폭음과 함께 백색 섬광이 프로페서의 전신을 휘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