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ademy’s Black-Haired Foreigner RAW novel - Chapter (366)
#364
그럴 줄 알았다
천지검식을 각성한 이후에도 나는 계속해서 수행을 이어갔다.
천지검을 제대로 사용하면 연습실은 물론 학원이 남아나지 않기에 직접 수행하지는 못했지만, 심상세계 속에서 흑태자와 계속해서 대련하면서 검식을 좀 더 다듬었다.
물론 유지의 훈련도 빼먹지는 않았다.
어쨌건 유지가 심상전개를 각성한다면 내게는 카드 하나가 더 주어지는 셈이니 나쁜 일은 아니었으니까.
여기까지는 개인 차원의 준비다.
하지만 메사이어를 막으려면 나 혼자의 힘으로는 부족했다.
집단의 힘이 필요했다.
원작 최종장에서도 메사이어는 혼자 오지 않았다.
남은 간부들과 리그의 말단 빌런들, 그리고 리그에 편입된 소련군 전력들을 이끌고 도쿄 상공에 나타나 학원을 포함한 도쿄 전체를 급습했다.
도쿄도 전역에 게이트를 동시다발적으로 열고 이계종을 부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놈들까지 내가 전부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협회장 이치로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결전의 날에 대비해서 일본 전역의 영웅 전력을 도쿄로 소집하고 자위대를 움직여 방어망을 구축하며, 비상시를 대비해 도쿄 민간인들의 대피 계획을 짜고 있었다.
영웅 강국이라 불리는 일본의 전력이 도쿄로 모이고 있는 만큼, 대도시 도쿄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아직 조금 아쉬워. 미국 같은 다른 국가들이 도와주면 좋겠지만······.’
원작에서는 3학기 기말고사에서 그레이트 게임 출전 후보생을 선발한 뒤, 봄방학 기간에 학원에서 그레이트 게임을 개최할 때 메사이어가 학원을 급습했었다.
그레이트 게임.
전 세계의 모든 영웅 아카데미가 모여 최강의 영웅 후보생, 크라운 프린스를 뽑는 토너먼트 게임.
올해 그레이트 게임은 슈오우 영웅 학원에서 개최하기로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영웅 후보생, 그것도 크라운 프린스의 자리를 노리는 그레이트 게임 출전자라면 사실상 각 나라에서 고르고 골라 뽑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당연히 영웅 후보생과 그들을 인솔하는 교관이라는 막대한 전력이 더해진 만큼, 원작에서는 메사이어가 대회 도중 학원을 습격하는 비상 상황에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작과는 다른 상황.
아니, 오히려 잘 생각해보니 이편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원작에서 소련을 비롯한 공산권 출신 영웅 후보생은 메사이어 습격 당시 사실상 리그의 편에서 그들의 습격을 도와주는 내부의 적 역할이었기 때문이었다.
전력은 약화됐지만, 내부의 적이 있는 전력은 없느니만 못했다.
[준비는 순조로운 것 같은데. 파트너.]머릿속에서 흑태자가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나도 동의했다.
물론 혼란을 막기 위해서, 메사이어의 습격에 대한 정보는 이치로를 포함한 일본 영웅 협회의 최상층과 히로인들, 유지와 이시하라를 포함한 극소수에게만 알렸다.
일반 학원 생도나 도쿄의 민간인들은 메사이어의 습격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나는 기한 안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최선을 다했다.
이제 남은 건 결전뿐이었다.
*
시간이 흐르고 흘러 마침내 결전 전일.
2월 14일이 다가왔다.
발렌타인 데이를 맞아 곳곳에서 초콜릿을 서로 교환하는 풋풋한 모습이 보였지만 나는 무관심했다.
메사이어가 예고한 날이 내일.
긴장을 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나는 수련의 성과와 학원과 도쿄의 방어 태세를 복기하면서 학원으로 향했다.
아직 2월이라 그런지 쌀쌀한 등굣길.
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말대로였다.
항상 같이 등교하던 히로인들의 모습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았다.
평소라면 내 가방을 누가 드느냐고 서로 쓸데없이 싸웠을 텐데, 안 보이니까 좀 이상하다.
그것보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 아닌가?
클리셰대로 서로 앞다퉈서 초콜릿을 준다고 난리를 쳐야 정상인데.
왜 없지?
‘일단 등교하지.’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발렌타인 데이라고 해도 결전 전날.
긴장했을 수도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학교로 향했다.
“김, 안녕!”
“형님. 오셨음까?”
드르륵.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나를 반기는 건 평소의 히로인이 아닌 유지와 이시하라였다.
히로인들이 앉아 있던 자리는 아직 텅 비어 있었다.
마중을 안 나온 건 그렇다 치고, 왜 안 오지?
조금 있으면 HR 시작인데?
“야. 쿠로사와. 얘네들 다 어디 갔냐?”
나는 텅 빈 올리비아, 에리, 마코토, 하루, 린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말에 유지가 어색하게 웃는다.
“하하하. 글쎄. 겨, 결석인가? 그거 참 드문 일인데. 하하하하.”
어디 갔는지 알고 있는데 숨겨주기 위해 애써 선의의 거짓말을 식은땀을 흘리며 말하는 표정이다.
“그래? 별일이 다 있네.”
나는 유지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내 짝꿍인 마코토의 자리도 텅 비어 있었다.
등교야 그럴 수 있지만 결석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는 건 그녀들이 한 군데 모여서 무언가 꾸미고 있다는 건데.
라노벨 세상에서 히로인들이 모여서 꾸미는 일이야 뻔하다.
내 짐작이 맞다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았고, HR 시간이 되자 예상대로 마유즈미 마유 대신 부담임을 맡은 교관이 들어와 HR을 진행했다.
“마유즈미 선생님은 오늘 휴가이기 때문에 제가 HR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부담임 교관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믿지 않았다.
히로인들의 단체 결석도 모자라 마유즈미 선생까지 쉰다고?
그걸 누가 믿을까.
그렇게 시작된 수업이 끝날 때까지 히로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뭐 때문에 이러는지는 알 것 같은데, 없으니까 묘하게 허전하다.
허전하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다니.
돌겠군.
나는 낯간지러운 생각을 치워버렸다.
딩동댕동.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
나는 책가방을 들고 교실을 나서려고 한 그때.
“김!”
유지가 나를 부르면서 웃었다.
“그, 너랑 단둘이 하, 할 말이 있는데 혹시 시간 괜찮을까? 아하하하. 중요한 일이야.”
그가 어색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쪽을 힐끗힐끗 바라보는 유지.
남자와 단둘이 말하는 취미는 없지만, 일단 히로인들의 꿍꿍이를 어느 정도 알았으니 이 시답잖은 촌극에 어느 정도 어울려줘야 했다.
“그래.”
“그럼 가자. 김. 따라와.”
내 허락이 떨어지자 유지가 안도한 표정으로 웃었다.
안 그래도 잘생긴 놈이 웃기까지 하니 쓸데없이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쿠로사와 군, 엄청 미남인데?”
“꺄아! 웃으니까 반할 것 같아!”
“왕자님이야! 쿠로사와 왕자님!”
“검은 귀축이랑 완전 대비 되는데?”
“야수와 왕자님!”
엑스트라들이 그 모습을 보면서 속삭였다.
F랭크 열등생 이미지는 지난 체육대회 사건 당시의 활약과 본인이 힘숨찐을 그만둔 탓에 완전히 일소된 상황.
열등생 이미지가 사라지고 나니 잘생긴 외모에 검성의 아들이라는 우수한 스펙만 남은 탓에 유지의 인기는 지금 학원 내에서 하늘을 찌를 정도로 치솟은 상황이었다.
오죽하면 팬클럽까지 결성될 정도.
굿즈 발매는 덤이었다.
우우우우우우웅!
여생도들의 목소리에 유지의 허리춤에 있는 일본도가 항의하듯 진동했다.
쿠사나기가 또 난리인 모양.
나로서도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유지를 데리고 교실을 나섰다.
“그래. 나가자, 빨리.”
“응. 따라와, 김.”
유지와 함께 교실 본관 건물을 빠져나와 교정을 걸었다.
유지는 학원 구경이라도 하려는 듯 교정 여기저기를 빙글빙글 돌았다.
아마 시간을 끌고 있는 거겠지.
대체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는 건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뭐냐?”
“그, 그건······.”
내친 김에 아까 유지가 말한 이야기를 다시 되물었다.
내 말에 유지가 말끝을 흐린다.
할 말 같은 건 없는데 물어봐서 당황한 모양.
탁.
유지가 발걸음을 멈췄다.
그와 내가 있는 곳은 도쿄만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해변 공원.
겨울의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장소, 기러기의 끼룩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유지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있어.”
지금만큼은 당황하거나 거짓말하는 표정이 아닌, 진심인 표정.
사내 놈의 진심인 표정 같은 건 별로 안 보고 싶은데.
아무튼 의외로 할 말이 있다는 말은 거짓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뭔데.”
내 질문에 유지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머뭇거리다가 진지한 목소리로 나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결전이 끝나면······. 난 쿠사나기와 결혼할 생각이야.”
결혼?
둘이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결혼이라니.
무엇보다.
“야 불길하게 왜 그런 이야기를 갑자기 해.”
이 싸움이 끝나면 결혼한다니.
이 무슨 불길한 사망 플래그 대사라는 말인가?
여기는 현실이면서 동시에 라노벨 세상.
저런 사망 플래그 대사를 내뱉었다가 진짜로 죽으면 어쩌려고 저러지?
“부, 불길해? 아하하하.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미안해.”
내 말에 유지가 양 손으로 손사래를 치더니, 착하고 합장하며 고개를 숙인다.
오랜만에 보는 합장 사과.
“됐고 마저 할 말이나 해.”
이미 내뱉은 이상 어쩔 수 없다.
뭐 설마 대사 하나가지고 별 일이나 나겠어?
“으응······.”
내 말에 유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살짝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김, 아니 덕성. 괜찮다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친구인 네가 나와 쿠사나기의 결혼식에 주례를 서 줬으면 좋겠어.”
결혼식?
주례?
어이가 없는 제안이지만,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유지를 보니 거절하기도 조금 뭐하다.
남자라는 점이랑 오글거리는 행동만 빼면 호구 라노벨 주인공답게 어디 모나지도 않고 착한 성격이기도 하고.
비상시에는 나 대신 굴러야 할 인재이기도 하니, 이 정도 부탁 들어주기 정도야 어렵지 않다.
“그러지. 대신······. 죽지나 마라.”
“알았어.”
내 말에 환하게 웃는 유지.
윽.
남자의 미소라니, 속이 안 좋다.
“할 말 다 했으면 원래대로 안내나 해라.”
“응, 할······. 뭐, 뭐야?! 어떻게 알았어?”
“안내하라고.”
내 말에 화들짝 놀라는 유지에게 나는 안내를 시켰다.
“알았어. 김.”
고개를 끄덕이면서 안내를 계속하는 유지.
그렇게 그를 따라 도착한 장소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왔던, 요시자키 세이라가 평소에 머무르는 사저였다.
“여, 여기가 목적지야. 그,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안에 꼭 들어가야 해. 김!”
유지가 내게 신신당부를 한 뒤에 빠르게 사라진다.
삑.
끼이이이익.
굳게 닫혀 있던 저택 문이 자동으로 열렸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면서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잘 조성된 정원을 지나고 저택 본관 문 앞에 도착했다.
[파트너. 두근두근하지 않아?]머릿속에서 흑태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근두근은 무슨.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저택의 육중한 문을 열었다.
끼이이이이익.
무거운 소리와 함께 저택 문이 열리자 내 시야에 보인 건 새까만 어둠이었다.
한 발짝.
어둠 안으로 발을 들인 그때.
파파파파팡!
번쩍.
섬광과 함께 불이 켜지면서 축하 폭죽이 나를 향해 쏟아졌다.
“서프라이즈!”
“주인님! 발렌타인 데이 축하해!”
불이 켜진 저택 홀에는 지금까지 못 봤던 히로인들이 전부 모여 있었다.
그리고 들려오는 히로인들의 목소리.
그래.
서프라이즈 파티일 줄 알았다.
발렌타인 데이라는 기념일.
거기에 아침 등굣길부터 텅 빈 교실에 시간을 끄는 유지까지.
그 모든 패턴을 보고도 모르면 그게 더 등신이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입가에 살짝 미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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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지트 소설 (구:아지툰 소설) 에서 배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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