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151
“뭐, 하라처럼 어려서부터 보다 보니 편견이 완전히 굳어져서 안 고쳐지는 애들도 없진 않지.”
색안경을 지우기 위해서일까, 아이돌 출신들의 질도 점차 나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현실과 별개로 배우들의 은은한 적대감과 꺼림은 변하지 않았다.
“누님도 아이돌 출신들 안 좋아하세요?”
“나? 아니. 내가 다 깔고 뭉개서 나 내키는 대로 진행해야 만족하는 거 알잖아.”
판을 주도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라 효신은 자신보다 급이 낮은 이들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 잦았다.
아무리 인기를 등에 업고 들어온 이들이라도 그녀 정도 되는 배우가 ‘꿇어라’라고 말하는데 뻗대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렇다 보니 효신은 오히려 아이돌 출신들을 기꺼워하는 편이었다.
잘만 캐면 저가 어떤 시선을 받는지 아는 고분고분한 노다지가 품 안으로 굴러들어오는데 당연했다.
물론 그렇게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배우들 있는 자리에 그들을 부르지 않았다.
술 한 잔도 아닌 뺨 석 대 맞을 가능성이 큰 만남은 지양하는 게 올발랐기 때문이다.
“자, 그럼. 이해했어?”
“······뭘요?”
“걔가 널 어떻게 생각할지.”
승혁은 연기를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이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의례를 전부 무시하고 혼자 클 정도로 엄청난 실력자는 아니었다.
하필 동료운도 나빠서, 작품마다 아이돌 출신에 적대적인 이들이 그의 상대역을 맡았다.
당연히 승혁은 무시로 가득 찬 연기 생활을 헤쳐나가야 했으며 그 은근한 따돌림 속에 그의 의지는 점차 마모되었다.
“그렇게 쏴댔는데 오히려 좋아했을 거라고요? 누님도 좀 망상벽이······,”
“그래. 그건 네가 직접 겪어보고. 암튼 네가 화나면 매섭다는 건 알렸으니 진행이 좀 더 순조로워지겠네.”
여전히 물음표를 띄우는 후배의 태도에 효신은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을 남기고 점장이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리필.”
“······너 넉 잔째인 거 알지?”
“커피는 당이 없지.”
배라도 채워놔야 한다며 그녀는 일회용 컵에 새 커피를 받아들었다.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후배를 귀엽다는 듯 응시하던 효신은, 머리에 올렸던 선글라스를 고쳐쓰며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암튼 오랜만에 봐서 즐거웠고. 다음 차기작은 나랑 좀 찍자 응?”
“시간 되면요.”
“진짜 비싸게 군다니까. 잘못 키웠어.”
투덜투덜 우는 소리 하는 효신을 보며, 승혁의 이야기가 나온 뒤로 말을 따라가지 못해 시종일관 미묘한 표정을 짓던 태화가 조금 후련하게 웃었다.
***
효신에게 현실성 없는 가정을 들었던 태화는 당연히 그 말도 안 되는 내용을 잊고 다음 날 촬영장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승혁이나 이틀 전 일에 대해 별생각이 없었다.
단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렸다면 경고로 남겼던 말을 실현해야지’ 정도의 가벼운 결심뿐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 네. 안녕하세요.”
“말 편하게 하세요.”
“아뇨, 괜찮아요.”
더 이상 나서서 인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 승혁이 평소처럼, 아니 평소보다 활기차게 인사를 건넸을 때만 해도 ‘참 오뚝이 같은 사람이네’라는 감상이 앞섰었다.
“저, 태연씨와 스텝들에게 그동안 성질 부렸던 걸 사과했습니다.”
“그래요······. 잘했어요.”
인사를 하고도 가지 않은 채 머뭇거리던 그가 이유 모를 보고를 했을 때, 태화는 떨떠름한 심정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어쨌든 잘 된 일이라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다는 말에 ‘빵긋!’ 소리가 날 정도로 배시시 웃는 승혁이 햇살처럼 밝으면서도, 묘한 불안함을 일으켰지만 말이다.
“······오늘은 안 바쁜가 봐요?”
“아! 그룹 일정이 아닌 개인 스케줄들은 일부 미루거나 취소했어요. 전 아직 이쪽에서 배워야 할 게 많은데 허투루 하지 않으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
쑥스럽다는 듯 불을 긁적이는 그의 모습이 ‘저번에 한 말 때문에 그런 결정을 했다’라 말하는 것 같이 느껴졌다면 착각일까.
물론 그가 악의를 가지고 그런 말을 뱉은 게 아닌 데다 태화는 그런 그의 선택이 옳다 여겼다.
하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던 사람을 연기에만 붙들어 놓은 것도 사실인지라, 태화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졌다.
“연습······. 많이 해왔네요.”
“네. 그동안은 보이기 위한 연기를 했는데, 이번에 연기 선생님께 말해서 기초부터 다시 닦기로 했거든요. 알아봐 주시니 기쁘네요.”
고작 이틀 만에 나아지면 얼마나 나아지겠냐만, 그는 그동안 바쁜 스케줄을 핑계로 무너졌던 부분을 다시 쌓아서 돌아왔다.
그럭저럭 태화의 눈에 찰만한 연기력을 선보였다는 의미다.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알았기에, 그는 승혁의 진지한 노력을 외면할 수 없었다.
“선배님, 저 이 부분이 대사가 명확하게 발음되지 않는데 대신······,”
“이건 먼저 입을······,”
그래서였을까, 태화는 갑자기 연기에 관해 물어오는 그를 깔끔하게 밀쳐내기 힘들었다.
‘아니, 왜 내 말에 일희일비하는 건데······.’
거절할 때마다 귀와 꼬리를 축 늘어트린 대형견이 생각나서 더더욱 무시하기 힘들었다.
‘······그래, 작품 향상에 도움될 이야기니까.’
그렇게 고민하던 그는, 결국 ‘소속사 연기 선생에게 물으세요’라 답하는 대신 어영부영 그의 질문에 답하고 필요한 내용을 가르쳤다.
‘좋아! 지오형 말이 맞았어!’
오늘따라 과하게 행동하며 거리감을 좁혔던 승혁은 그런 태화의 변화에 남몰래 주먹을 움켜쥐었다.
태화에게 쓴소리를 들었던 날. 그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은 얼굴로 숙소에 돌아갔다.
눈치 빠른 멤버들은 막내의 이상을 재빨리 알아차렸고 그를 빨래 말리 듯 이리저리 몰아붙여 자초지종을 들었다.
그 날, 그들은 승혁이 배우들 사이에서 대놓고 차별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며 막내가 자신을 혼낸 상대를 동경한다는 것도 눈치챘다.
-너랑 일한다는 배우, 이태화 맞지?
-그 사람 배우계의 우리급이던데.
-그게 무슨 비유냐?
-엄청 잘 나간다고.
엑스타의 멤버들은 빨래터의 아낙들처럼 쉴 새 없이 재잘거렸다.
형들의 수다를 얌전히 듣고 있던 승혁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배우로 봐준 건 고맙지만 친해지고 싶었는데 다 물 건너간 거 같아’란 말을 꺼냈다.
그가 봤을 때 태화는 정말 대단한 배우였다.
홍보 차 출연한 예능에서 선보였던 엄청난 암기력, 외국어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언어 능력,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노력을 멈추지 않는 열정, 그리고 연기를 위해 과감히 돈을 포기하는 결단력까지······.
무엇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게 없었고 같이 작품을 찍게 되었을 땐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설레기도 했다.
승혁에게 태화는 동경 대상이요, 배우인 자신의 롤모델이기 때문이다.
-우리 입덕이가 죽었네.
-어이쿠, 우리 막내 이러는 거 보면 스라 애들 난리 나는데. 귀엽다고.
한 살 위인 멤버 둘이 팬덤인 스타라이트(Starlight)를 언급하며 우울함에 빠진 승혁을 놀렸다.
스라 안에서도 각각의 멤버를 향한 팬층이 갈렸지만 그들 대부분이 이견 없이 좋아하는 멤버가 승혁이었다.
막내다움을 내세운 그는 무대와 일상의 반전매력으로 유명했고 특유의 활기와 무해한 느낌으로 넓은 팬층을 보유했다.
그 성격이 꾸밈없는 진실이었기에 스라는 발바리를 닮은 승혁을 상당히 좋아했다.
형들의 장난감이 되어 처음보다 쭈글해진 막내를 보고 팀의 리더 지오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넌 포기하려고?
-아니, 포기랄 건 없지만······.
-이야기 들어보니까 그 사람 성격이 우노 닮았는데, 그런 사람들은 제 관심사 이외의 걸로 다가가려 하면 미스야. 쟬 보면 알잖아.
그는 거실에는 나와 있으나 헤드폰을 낀 채 차기 곡에 열중하고 있는 우노를 가리켰다.
막내가 심각한데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게 참 그다웠다.
-그러니까 접근하려면 다른 방법을 써야지. 먼저······.
지오는 승혁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조언을 건넸다.
스케줄을 최대한 줄인 것도 그런 계획의 일환이었다.
개인 정산이 아닌 그룹 정산이라 승혁이 연습에 집중하면 그만큼 손해인데도, 그들은 그 점을 시원하게 넘겼다.
-마, 우린 팀이잖냐. 원포올 올포원 몰라?
그런 전폭적인 협력 덕에 승혁은 Exstar로서 최소한의 스케줄만 소화하며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힘내서 친해져야지!’
승혁은 어제 있었던 일을 머리 한 구석으로 밀어두며 태화의 말에 집중했다.
형들의 배려를 허투루 만들어선 안 됐다.
조금 유해진 태화를 바라보는 승혁의 눈이 다시 한번 반짝였다.
끝
ⓒ 마늘소금
9월의 시작과 함께 ‘캐트시: 고양이 요정’이 방영됐다.
오랜만에 편성된 특별 기획인 만큼 KBC는 홍보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황금 시간대의 15초 광고 하나를 과감하게 포기하고 예고편을 집어 넣는가 하면, 버스 정류장에 포스터를 깔고 UTV 광고까지 이용하는 등 어떻게든 주말 특별 기획을 부활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배우들도 자신들의 계정에 홍보글을 올려 반응을 끌어모았는데, 특히 태화의 팬클럽 마레드와 Exstar의 공식 팬클럽 스타라이트가 엄청난 참여율을 보이며 내용을 퍼 날랐다.
덕분에 방영 전 드라마에 대한 기대는 상당히 부풀어 구석구석 퍼졌다.
그런 상태에서 작품이 공개 되었을 때, 누군가는 시청자들에게 상당한 미움을 샀다.
[장철진PD 임니다 때도 그러더니 완전 Me친 거 같아요]장철진 PD. 악마로 유명한 분이죠. 드라마 좀 보신 분들이라면 다들 아실 겁니다. 네.
그래도 올해 초에 방영했던 ‘제국의 새벽’보고 이 감독이 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그치, 인간이 악마가 되면 안 되지.
이러면서 시청한 게 기억나는데 오늘 아주 뒤통수가 얼얼하네요.
전 태화 오빠 크랭크인 사진 보고 일본 따라가나 걱정했다가, 홍보 영상에서 원래 머리색에 눈 색인 거 보고 ‘그럼 그렇지’하며 다행으로 여겼어요.
렌즈도 염색도 태화 오빠한테 무섭게 잘 어울리긴 했지만 그게 우리나라 드라마 감성은 아니잖아요?
가슴에 하얀 털 나있는 까만 고양이가 나왔을 때도 그냥 ‘오 CG ㅈㄴ 자연스럽네’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우리 아역 미누의 아장아장한 매력에 빠지면 되는 줄 알았는데.
하(마른땀).
다른 말 안 하겠습니다. 미리보기 푸세요. 지금 저 보고 내일까지 기다리라니 PD가 악마가 아니고선 이럴 순 없습니다.
태화 오빠 벗겼으면!! 그 섹시한 젖고 마른 낮은 음성도 들려줘야지 이 나쁜 놈들아!!
이걸 1화에 보다니 내 2개월은 망했어ㅠㅠㅠ └퍄. 기획자 진짜 용자······. 1화부터 벗길 줄이야.
└마지막 임팩트로 앞의 내용을 다 잊었습니다 정상인가요?
└역시 백설······. 공주님이 주워주니까 냉큼 인간되는 거 보소.
└분명 본체가 애긔애긔한 고양이라 섹시 컨셉은 아닐 텐데ㅠㅠ왜 제 눈엔 섹시하게 반짝 거리죠ㅠㅠ?
└다들 태화 배우님 몸에만 관심 가지시는데 연기도 지리십니다. ㄷㄷㄷ 저 그분이 일어나서 몸 풀고 하품하는 거 보고 우리집 코숏인줄 ㄷㄷㄷ 전생에 고양이셨나?
└전생에 여우였음 ㅅㄱ
‘캐트시’의 1화가 방영되는 도중 천천히 늘어가던 시청자 게시판의 글은 드라마가 끝나기 무섭게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대부분 PD가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저질렀다며 성토하는 내용이었고, 태화의 외형이 드라마에 무섭도록 잘 녹아들어서 역으로 당황했다는 글, 우리 집 고양이랑 행동이 똑같아서 상황이랑 다르게 좀 웃겼다는 글이 그 뒤를 차지했다.
물론 하라와 민후, 그리고 승혁에 대한 이야기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빠르게 갱신되는 글들에 휩쓸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비 오는 날 새끼 고양이 주우면 사람으로 변신해 주나요? 기상청 예보가······.
└저희 동네 비 왔는데 드라마 끝나자마자 한번 나가봤습니다. 아쉽게도 버려진 고양이는 없더군요 ㅠ 태화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던 탓인지 허무맹랑한 글을 작성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 아래 ‘그렇게 주워 와서 싫증나면 버리려는 거겠지. 책임감 없는 인간들 ㅉㅉ’과 같은 댓글이 달리고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드라마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는 못 됐다.
첫 시청률 또한 상당했는데, 평균 17.4퍼센트로 같은 날 시작한 NBC 주말극의 시청자들을 흡수해 1위를 달성했으며, 마지막 장면이 순간 시청률 20.1퍼센트를 기록함으로써 주말의 강자가 누구인지 확실히 각인시켰다.
“드라마가 잘 나가서인가? 참 바쁘네요.”
6화 마지막 부분을 촬영하기 위해 흉터 분장을 하던 하라는 크게 하품을 하다 분장사의 눈총을 샀다.
“반지 때문에 뺨에 상처가 난다니. 참 고전적인 클리셰인 걸요.”
“잘 먹히잖아요. 고전적인 거. 너무 새로워도 시청자들이 적응을 못 해요. 그리고 이 드라마는 고양이 한 마리로도 충분히 독특하죠.”
이미 한 말을 들은 그녀는 얼굴을 고정시킨 채 입술만을 달싹거렸다.
일요일 날 2화가 방영되고 루이의 인기는 열렬하다 못해 폭발적이었다.
코스프레용으로나 팔리던 독특한 색채의 컬러 렌즈가 갑자기 인기를 얻기 시작했으며, ‘루이식 화장’이라 불리는 이국적인 스타일의 화장법이 화제를 모았다.
2화만에 이런 결과를 얻는 데엔 태화의 눈물 연기가 한몫을 했다.
눈물을 아롱아롱 달고 서러움을 토하는 그의 모습은 사람의 약한 부분을 자극했다.
게다가 하늘을 닮은 파란 눈에 고인 물기는 마치 보석 같아서, ‘동양인에게도 파란색 눈이 의외로 어울리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일으켰다.
물론 그 착각은 한가을 밤의 꿈에 불과했기에, 대중들은 아쉬운 대로 검은색이 섞인 파란 렌즈를 사용하거나 독특하면서도 눈에 띄는 색상을 착용했다.
“고양이 하니 생각난 거지만······, 행동방식도 엄청 연습해 왔는데 생각보다 써먹을 곳이 적어서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