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tor, stand again RAW novel - chapter 222
2차 연습이 끝난 이후, 태화의 외모에 우려를 표하던 이들은 말끔히 사라졌다.
오히려 이번 영화가 역대급 대작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다들 의욕을 드러내며 임전을 기했다.
그 열기는 크랭크 인 날까지 이어져, 편전(便殿)으로 꾸며진 세트장에 시립한 이들은 긴장하며 숨을 죽였다.
“신하 된 자들이 공부를 소홀히 하니 과인의 덕이 부족한 탓이다.”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럼 어찌 유교의 근간이 되는 사서오경조차 왜곡하는가? 그런 경들에게 여(余)가 무엇을 배우라는 말이냐?”
태화는 자신을 짐이나 과인이 아닌 여라 칭했다.
짐은 황제를, 과인은 왕이 자신에게 잘못이 있을 때 본인을 낮추는 호칭이어서다.
대중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가려면 과인이 나았지만 고증 면으로는 여가 맞기에, 대본을 쓴 이는 여를 고집했다.
“······.”
사서오경은 유교의 중심이 되는 서책이자 과거 시험의 주제가 되는 교과서로, 위인전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천재성을 알릴 때 빠지지 않는 물건이었다.
그러나 글자를 외우는 것과 그 속뜻을 이해하고 적용하는 것은 의미가 달라, 왕들은 대부분 경연을 열어 외었던 글들을 다시 공부하곤 했다.
물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달려드는 신하들을 역으로 압도하는 왕들도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정조였다.
“오늘은 이만 파하도록 하지.”
“신, 봉조하 김종수가 감히 아뢰옵나이다.”
경연을 파하기 무섭게 앞으로 한 걸음 나온 이가 고개를 숙였다.
김종수 역을 맡은 배우 추순원으로 영화 ‘정조’에 참여하는 이들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인물이었다.
“고하라.”
“미천한 신의 나이가 이미 70이 되었고 몸 속 깊이 병이 들어 겨우 한 오라기의 목숨만 이어 가고 있사오니······.”
“치례는 되었다. 본론을 말하라.”
‘정조’는 고증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내용상 필요 없는 부분은 과감히 생략했다.
신하가 왕에게 상소를 올리기 전 구구절절 읊는 미사여구도 정조의 입을 통해 잘라 냈는데, 편지 등에 ‘정조의 성질이 급했다’라 묘사된 것을 그렇게 표현했다.
“······하여, 전하를 섬기는 자는 의당 뜻을 헤아려 나라의 명맥을 세워야 할진대, 이명연의 상소는 제 망측한 음모를 드러내고 있으니 어찌 일조일석의 걱정이겠습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여가 명연의 사람됨을 알기에 접때 면대하여 말한 것이 있노라. 이제 와서 어찌 또 다른 말을 하겠는가? 자세한 내용은 빈연(賓筵)의 기주(記注)에 실려 있으니, 경이 취하여 보면 될 것이다.”
“전하.”
“과인이 뱉은 말을 바꾸는 소인배가 되길 원하는가?”
“그것이 아니오라······.”
“쓴말을 삼키지 아니하고, 온전히 매듭짓지도 못하였으니 과인의 부덕이로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태화가 한탄하듯 자신의 모자람을 이야기하자 다른 배우들이 얼굴을 굳히며 고개를 숙였다.
왕이 자신을 탓하는 것은 신하들을 돌려 꾸짖을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신하들의 말을 끊고 제 뜻을 밀고 나가는 데도 참 요긴하게 사용됐다.
“예까지 하도록 하지.”
신하들의 입을 막아 버린 태화가 곤룡포를 휘날리며 일어서자 양쪽에 시립했던 이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본전도 못 찾은 이들은 침울한 낯빛을 숨기지 못했다.
“컷! 좋습니다! 5분 쉬고 다음 장면 가겠습니다!”
“캬아, 보면 볼수록 정조라는 인물이 대단하단 말이야. 태화, 너도 상당해.”
근엄한 표정으로 난색을 드러내던 길춘이 컷이 외쳐지기 무섭게 실실 웃으며 태화를 칭찬했다.
후반 촬영에 나오나, 김종수가 정조에게 상소를 올린 것은 전부 정조의 뜻이었다.
이명연이란 인물에 대한 말이 후일에도 나올 것을 알고, 불똥이 튀지 않을 신하를 골라 그에게 초안을 주어 상소를 올리게 한 것이다.
공격당할 부분을 미리 짜 뒀기에 정조의 반응은 거침이 없다.
감독, 각본 정조, 주연 배우 정조와 김종수로 이뤄진 일종의 사기극이었다.
“인물의 이중성을 미리 알고 있으면 흔들리는 배우가 많은데 도대체 어디서 나온 내공이야?”
친숙하게 옆구리를 툭툭 치는 길춘을 보고 종수 역을 맡았던 순원이 허허롭게 웃었다.
“길춘이, 젊은 후배가 곤란해하는데 그만하지. 자네를 말려 줄 차희도 오늘은 없지 않나.”
정순 왕후가 등장하는 장면은 오늘 없기에 차희는 현장에 오지 않았다.
순원이 그 부분을 꼬집자, 길춘은 태화에게서 한 발짝 멀어지며 나이에 맞지 않게 헤헤거렸다.
“아, 형님. 이 친구가 워낙 대단하니까 그렇죠.”
“자넨 입 다물고 있으면 참 차갑고 권력 지향적으로 보이는데 성격이······. 사극하길 잘했어.”
“하하하······.”
하늘 같은 원로 배우에게 뭐라 하지 못하고 길춘은 억지웃음을 흘렸다.
“자네 같은 배우를 보니 정말 좋아. 사극이 완전히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정말 좋군.”
순원은 따뜻한 눈으로 태화를 바라봤다.
퓨전 사극이 뜨고 많은 배우들이 사극에 뛰어들었다.
가벼운 말투, 흔히 사극투라 말하는 말투만 따라 하면 다 되는 줄 아는 이들도 상당히 늘었다.
음의 고저, 음율, 장, 단음 같은 건 고루한 것이 되었으며 버럭 화내는 것이 박력 있는 연기라고 착각하는 배우도 많아졌다.
‘정통 사극으로 삼을 이야기가 거의 고갈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흐름이지만······.’
시청자와 관객들이 흥미로워할 만한 정사(正史)는 이미 전부 사용되어 단물이 빠졌다.
그러니 고작 한 줄짜리 언급이나 비어 있는 정사를 상상력으로 채우는 작품 늘어난 건 막을 수 없는 일.
그런 시대의 흐름 속에서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났다고 알려졌던 역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이런 식으로 또 다른 정통 사극이 되는 것은 순윈에게 상당히 감상적인 사건이었다.
특히, 사극 연기의 기본이 젊은 배우에게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눈으로 확인한 게, 그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다.
“선생님들과 선배님들께서 잘 이끌어 주셔서 마음 편하게 연기하고 있습니다.”
좋은 말만 해 주는 대선배들에게 태화는 자신의 진심을 말했다.
또래 배우들이 못했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조연까지 완벽한 작품은 이제까지 없었고, 그가 다른 배우들을 완전히 믿어, 마음 놓고 연기하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허허. 겸손은.”
손사래 치면서도 순원은 기분 좋다는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길춘도 최고로 악당처럼 보이며 반전을 꾀하겠다며 부러 꼬장꼬장한 표정을 지어 웃음을 자아냈다.
난방이 안 되는 목조 건물에서 핫 팩을 붙이고 이뤄지는, 나름 가혹한 환경이었음에도 배우들의 얼굴은 밝았다.
***
‘야누스’는 당초 예정했던 12월보다 이른 11월 말에 개봉했다.
배급사가 작았기 때문에 전국에 깔린 스크린 수는 고작 400여 개.
중박 이상을 확신하는 영화들이 500개 이상, 대형 영화는 천 개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한다는 점과 비교할 때 꽤 적은 수였다.
그나마도 대형 배우인 이태화가 끼면서 늘어난 것이지, 원래 확보되었던 스크린은 150여개에 불과했다.
└영화 개봉하자마자 보고 왔어요! 흐긓ㄱ 배우님 나오는데 보는 사람이 거의 없고 지방이라 상영하는 곳도 한 군데ㅠ
└근데 흥행하기 힘든 주제더라고요. 좀 난해하달까, 보고 나면 찜찜하기도 하고. 그런 거 다 때려치우고 배우님은 빛났다.
└배우님은 빛났다2222 솔직히 스토리는 크게 대단하지 않은데 배우님 연기력에 소름; 장면 배치도 무난한 내용을 잘 살려서 은근히 반전미 있어요.
가장 먼저 후기 글이 올라온 곳은 역시 마레드였다.
마레드의 팬덤들은 조조로 영화 보러 갔다 왔다며 일단 스크린의 부족을 꼬집었다.
서울이나 대도시의 경우 커다란 영화관에서 관람이 가능했지만 시골 쪽은 지역에 개봉한 곳이 한정되어 교통이나 접근이 불편했던 탓이다.
또한 내용면에서도 흥행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에 서로 동의했다.
이중인격인 주인공이 자신의 약혼자와 호감이 오가는 여성을 죽이는 것까진 자극적이다.
그러나 결말이 새드 엔딩이라 말하기 모호한 씁쓸한 맛이 있었기에 영화를 본 이들은 복잡한 심정을 드러냈다.
물론 태화가 어린애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 탓에 마레드는 나름 즐거워했다.
└영화는 마음에 안 드는데 서세현은 마음에 드네요. 뭔가 요즘 말하는 참한 남자라고 해야 하나ㅎㅎ?
└진짜 미소년 같은 분위기갘ㅋㅋㅋ 거기 나온 여자들이 왜 서세현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알 거 같았어요ㅋㅋ
└그나저나 포스터의 여성은 누군가요? 전 서세연 역으로 다른 여배우가 있는 줄 알고 은근 기대했는데 아역만 있고 서세연 역은 배우님이······. 물론 배우님의 여자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영화를 본 이들이 가장 궁금해한 건 포스터에서 서세현의 머리를 들고 있는 여성의 존재였다.
작품 설정상 서세연일 게 분명한데, 영화 내에서 서세연을 연기한 건 다름 아닌 태화였기 때문이다.
표현을 위해 포스터에만 고용된 모델이란 추측이 주를 이뤘으나 ‘혹시 이태화가 여장을 한 건 아닌가’라는 의견도 없지는 않았다.
└에잌ㅋ 몸매를 보고 얼굴을 보세요. 아무리 배우님이라도 저건 아니죠ㅋㅋ
물론 비주류의 말일 뿐,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3일 후 태화의 공식 계정에 화장하고 브이를 그리고 있는 태화의 사진이 올라가자.
마레드는 ‘혼파망’을 외치며 집단으로 패닉을 일으켰다.
소소하게 말이 오가던 ‘야누스’가 매진 행렬을 이어 간 것도 이때부터였다.
끝
ⓒ 마늘소금
포스터에 있는 여성이 태화가 여장한 모습임이 밝혀지자 ‘톱배우가 여장까지 한 영화’라는 타이틀로 ‘야누스’는 대중들의 호기심을 모았다.
볼만한 영화가 한풀 꺾인 11월인지라 호기심은 곧 관객 수로 연결됐다.
400여개 밖에 없는 관은 연일 매진됐고, 그런 기세는 거의 일주일간 이어졌다.
영화를 관람한 이들의 평가는 대체로 비슷했다.
뒷맛이 씁쓸하다, 그래도 영상 자체는 괜찮았다, 주연인 이태화의 연기가 돋보였다······.
우울함에 치중한 영화다 보니 평론가들의 평가도 갈렸다.
상업성을 고려하는 이들은 거의 최악의 점수를 줬고, 영화를 예술 영화의 일종으로 본 이들은 나름 후한 점수를 매겼다.
그러나 양쪽 평론가들도 태화의 연기를 무시하진 못했다.
특히 광기에 가까운 세연 연기는 모두가 볼만한 장면으로 꼽았다.
‘볼 거라곤 주연 배우의 연기뿐’이라 평가하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피규어) 세현세연이 완성되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아티텍입니다.
이태화 배우님이 참여하신 ‘야누스의 시선’ 피규어가 완성되었습니다.
포스터에 있는 사람이 둘 다 배우님임이 알려지고 다시 작업하긴 했습니다만,
굉장히 즐거운 작업이었고, 배우님도 만족스러워하셔 기쁩니다.
(공계_세현연+배우님.jpg)
공계에 올라간 사진입니다만, 이번 피규어의 주제는 포스터를 많이 참조해 ‘쌍둥이’로 갔습니다.
포스터 쪽 몸매보정도 적용했죠.
둘의 의상도 포스터에 나온 의상을 상상력과 결부시켜서······.
덕분에 세연이의 하얀 드레스와 세현이의 검은 신부복이 돋보이네요.
사진 몇 장 더 올립니다.
(세현_얼굴.jpg)(세연_얼굴.jpg)(세연_의상_포인트.jpg)(손.jpg)(전신.jpg)
└끄아!ㅠㅠ금손니뮤ㅠ
└이거 판매 안하시나요? 왜 돈이 있는데 사질 못하니 ㅠ
└퀄이 도랐;; 진짜 이분은 판매로 돌아섰으면 수억 버셨을 듯;;
그렇게 호불호가 갈리는 평론과 달리, ‘야누스’의 2차 창작은 의외로 활발히 이뤄졌다.
이중인격, 새드 엔딩을 알리는 열린 결말 등, 여러 소재가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SNS에는 ‘서현연’, ‘야누스’와 같은 해시태그를 단 그림, 소설들이 난무했고, 이는 새로운 관객을 만들어 상영관이 적음에도 은은한 흥행을 이어가도록 하는 원동력을 제공했다.
피규어 장인이자 마레드 운영자 중 한 명인 아티텍도 2차 창작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가 제작한 물건은 포스터에 나온 서세현과 서세연의 모습을 기본으로, 서로가 등을 맞대고 손을 잡고 있는 1/7사이즈 세트 피규어.
그 섬세함은 팬들의 수집욕을 자극했다.
팬들의 화력에 힘입어 홍보가 계속되자 영화에 별 관심 없던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영향이 미쳤다.
한 번쯤은 볼만한 영화.
돈 내고 찝찝함만 얻은 영화.
‘야누스의 시선’은 이름만큼이나 평도 극단적으로 갈렸지만, 수익 분기점을 웃돌며 괜찮은 결과를 만들었다.
그리고 ‘야누스’에 대한 소식이 슬금슬금 지겨워질 무렵.
[배우 이태화, 차기작은 사극!]
현재 촬영 중인 사극 ‘정조’에 대한 기사가 연예계 섹션을 장악했다.
이번에도 얼얼할 정도로 통수를 맞은 마레드는 분통을 터뜨렸다.
배우님은 너무 혼자만 논다는 둥, 아무리 천상계에서 노닐어도 하계의 인간들을 챙길 줄 알아야 한다는 둥,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이야기들이 게시판에 도배됐다.
그러나 결론은 곧 하나로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로 ‘이렇게 된 거 서포트를 빡세게 합시다!’였다.
└야누스 때는 솔직히 배우님 원탑이시고······. 사이 은근히 별로라는 소문도 있어서 따로 챙기기 그랬죠.
└맞아요. 그에 비하면 한차희 배우님 파랑새에 올라가는 사진들은 ㅎ 완전 사이 좋아. 우리 배우님 인기 폭발 재간둥이ㅎ
└원로부터 사극 좀 한다는 중견 배우분들 대거 출연하시던데 완전 후덜덜
└사극은 세트장 내부에 밥차도 들어가기 힘들어서 식사 문제가 크다는데 우리 도시락 셔틀 한번 가죠? 아니 어르신들 맘껏 드시라고 뷔페도 좋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