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03
102. 싱크탱크 (3)
다음 날, 지훈은 국회로의 출근 대신 정현석의 거처로 출근했다.
설득할 대상은 신영효뿐 아니라 한 사람 더 있었으니까.
지훈은 집으로 올라가지 않고 빌라 앞에 서서 대기하고 있었는데, 최준호가 도착할 시간에 맞춰 입구로 내려온 정현석과 눈이 마주쳤다.
“편히 주무셨습니까.”
“어, 뭐 나야 잘 잤는데. 하하하, 그게 아니라 너 여기 왜 있냐?”
지훈의 물음에 반사적으로 대답한 정현석은 크게 웃으며 지훈을 향해 물었다.
“오늘은 사무실보다 이동하면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여기로 출근했습니다.”
“그래?”
정현석이 지훈을 향해 묻는 와중에 최준호가 운전하는 미니 밴이 두 사람의 앞에 섰다.
“일단 타서 얘기하자.”
정현석의 말에 같이 미니 밴의 뒷좌석으로 올라탄 지훈은 최준호를 향해 인사를 건넸고, 최준호 또한 정현석과 같이 놀란 반응이었지만 인사를 하고는 차를 출발시켰다.
“그래, 김 보좌관께서는 무슨 일인데 아침부터 찾아오셨을까. 그런 표정 짓지 말고 그냥 말해 봐.”
정현석은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고민하는 지훈의 표정을 보고는 웃으며 지훈을 바라보았다.
“의원님의 정책에 조언해주실 분을 찾았습니다.”
“그래? 누구야?”
지훈은 정현석의 물음에 품속 주머니에서 신영효에게 건네받은 학회 초대장을 건넸다.
“한국재정경제학회?”
“네. 거기 학회장을 맡고 계신 신영효 교수님을 어제 만나고 왔습니다.”
“근데 이 초대장은 뭐야?”
정현석의 물음에 지훈은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
“아직 의원님에게 합류를 결정하시지 못하셨습니다. 의원님을 직접 뵙고 결정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피식 웃었다.
“날 시험해보겠다는 건가?”
“의원님··· 시험이라기보다는 아무래도 두 분이 직접···.”
“너 아까부터 왜 그렇게 조심스럽냐? 야, 나는 괜찮아. 당연히 만나봐야지. 나 같아도 보좌관이 와서 우리 의원님 어쩌고 하면 일단 의원님부터 만나보자고 하겠네.”
지훈은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해오는 정현석을 바라보며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너 겨우 이거 때문에 그렇게 끙끙대면서 얘기한 거야?”
“네. 아무래도··· 의원님께서는 다르게 받아들이실 수 있으니까요.”
“야야, 나도 염치라는 게 있는 놈이야. 그나저나 나는 조언자라고 해서 그냥 전문가 정도인 줄 알았는데 왜 학계를 찾아간 거냐?”
정현석은 궁금하다는 듯 지훈을 향해 물어왔고 지훈은 그런 정현석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의원님의 싱크탱크를 지금부터 만들까 합니다. 그 시작이 이번 신영효 교수의 영입이고요.”
“싱크탱크?”
“네. 지난번 대통령비서실장을 만나고 오신 후 제가 느낀 것이 많습니다. 이젠 대권을 위한 길을 걸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지훈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아니 그보다 벌써 대선을 준비하는 건 이른 거 아냐?”
“대선을 준비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지금까지는 무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사안 별로 대응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면, 지금부터는 어떤 발언을 내놓아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 다가온 것 같습니다.”
“네 말은 이제는 적극적으로 내 생각을 얘기해야 한다는 거야?”
“네. 의원님께서 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어야 하고, 그 메시지가 의원님의 소신을 표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는 허점이 없어야 하고, 의원님의 지지자들을 위한 논리적인 무기가 되어야 합니다.”
“소신··· 소신이라···.”
지훈의 말에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턱을 괴고 고민에 빠진 정현석이었다.
“그래서 이젠 저만으로는 힘이 들 것 같습니다. 좀 더 전문적이고, 의원님께 확실한 조언을 해주실 분들이 필요합니다.”
정현석은 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하다가 출근길에서부터 무슨 마음을 먹게 될 줄은 몰랐는데 묘하지 않냐?”
“뭐가 말입니까?”
“내가 어떻게 정치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이 밴 안에서였는데, 대권을 걷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도 이 밴 안이네.”
정현석은 씩 웃으며 최준호를 바라보았다.
“준호야 이 차 나중에 어디 잘 모셔놔라.”
자신을 부르는 정현석의 목소리에 최준호는 룸미러를 통해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네?”
“혹시 아냐? 정현석 생가 이런 거 생기면 갖다 놔야 할지.”
정현석의 실없는 농담에 지훈은 참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웃었고, 최준호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만을 짓고 있었다.
**
며칠 후 주말.
지훈과 정현석은 신영효가 건넨 초대장에 적혀 있는 학회가 열리는 장소로 이동 중이었다.
“금요일에 보고서 발표한 걸 보니 충격을 줄이려는 거겠지?”
“네. 아무래도 금요일 오후 3시에 보고서를 발표한 것은 어떤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날, KDI에서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원장이 직접 증세가 필요하다는 논지를 담아 보고서에 기고문을 작성했고 금요일 오후 시간대에 발표했다.
금요일 오후 시간대를 정한 것은 어느 정도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지훈과 정현석은 생각하고 있었다.
“방향을 떠나, 증세라는 것이 주는 거부감을 줄이려고 한 것이 확실합니다. 반나절 보도되고 주말 동안은 여론의 관심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청와대 논평은 나온 게 있고?”
“없습니다. 아마 청와대나 정부에서는 KDI 보고서를 가지고 언론에서 열심히 떠들고 나면 그 이후 넌지시 주제를 던질 것 같습니다.”
정현석은 지훈의 말에 공감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보이는 것들은 누가 먼저 화두를 던지느냐에 따라 충격이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청와대는 나름 머리를 잘 쓴 것으로 보입니다. 증세의 방향을 두고 언론에서 왈가왈부하고 있을 때 법인세라는 방향을 던지면 단순 증세라는 주제에 거부감을 가지던 여론은 찬성으로 돌아서거나 거부감을 낮출 테니까요.”
“우리 당은 어때?”
“일단 증세 논의는 환영하지만, 방향을 제시하라고 압박을 한 상태입니다.”
“허훈 장관만 곤란한 상황에 놓였네. 처음부터 설명을 다 했다면 편하게 갈 일을 왜 이렇게 꼬아놓았는지 이해를 못 하겠어.”
정현석은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지훈을 향해 말해왔다.
“그나저나 긴장되네.”
“긴장이요?”
“그래, 아무래도 교수들만 잔뜩 있는 곳에 간다고 하니까.”
정현석은 과장된 몸짓으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나름대로 긴장을 풀려고 하는 행동 같아 보였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저와 많은 준비를 하셨으니까요.”
지훈의 말에 피식 웃은 정현석은 긴장을 풀고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지훈이 운전하는 차는 신영효가 교수로 재직 중인 대학의 정문으로 들어섰고 근처 주차장에 주차한 후 두 사람은 행사장 건물로 들어섰다.
행사장 입구에서부터 대학원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지훈과 정현석을 안내했고, 방명록에 이름을 쓴 이후 두 사람은 행사장으로 들어가서 맨 뒷좌석에 앉았다.
“기자들 뭐냐?”
행사장을 둘러보던 정현석은 한편에 자리 잡고 사진을 찍고 있는 기자들을 발견하고는 지훈을 향해 물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이름있는 교수들이 모인 학회다 보니 취재를 나온 것 같습니다.”
“눈에 안 띄었으면 좋겠네.”
“의원님, 엄살이 심하십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 짜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던 찰나 행사가 시작되었고, 교수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학회 논문들과 자료들을 발표하며 토론을 이어나갔다.
한참을 지루했던 시간이 지나고 오늘의 학회 일정이 모두 끝이 났는지 회장 신영효가 연단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학회 일정은 여기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신영효는 학회 참가자들을 바라보다 정현석과 두 눈이 마주쳤다.
“개회식 때 인사를 드렸어야 했는데 지금에서야 인사드립니다. 저기 맨 뒷줄에 보수당의 정현석 의원이 와 계십니다.”
연단에 선 신영효가 그렇게 말하자 참석자들의 모든 두 눈이 정현석과 지훈을 향해 왔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정 의원님께서는 앞으로 나오셔서 간단한 인사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신영효가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훈만 들으라는 듯 작은 소리로 지훈을 향해 말해왔다.
“시험이 이건가 보네. 스승님 모시기 드럽게 힘들다.”
피식 웃으며 자신에게 말해오는 정현석을 보며 지훈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정현석은 연단으로 나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국회의원 정현석입니다. 이렇게 국내 석학들께서 모이신 자리에 초대를 받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한마디 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현석은 싱긋 웃으며 맨 앞자리에 앉은 신영효를 바라보았다. 신영효는 미묘한 표정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오늘 여러 교수님의 경제에 관련한 정책을 들을 수 있어 참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실제 정치권에서 논의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현석이 고개를 숙이며 아주 짧은 인사를 마치려고 하자 신영효는 정현석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여기 학회소속의 교수님들께서 정 의원님의 내공을 한번 보고 싶어 하십니다. 어제 KDI 보고서에 의하면 곧 증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될 것 같은데 어떤 방향으로 보고 계십니까?”
자신을 떠보듯 말해오는 신영효를 바라보며 정현석은 웃음을 잃지 않았다.
“신 교수님께서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거라 보십니까?”
“중도노선을 타고 있는 이 정부라면 일반 국민이 체감하는 증세는 아니겠지요.”
정현석이 되물음으로써 어느 순간 학회의 현장은 토론의 장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저도 다시 질문을 드릴까 하는데 정 의원님께서는 정치인이니 정치인으로서 이번 증세 이슈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한 말씀 들을 수 있을까요?”
정현석은 자신을 시험해오는 신영효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정치인으로서라··· 여기 기자분들도 와 계시는데 꽤 긴장됩니다.”
정현석의 너스레에 한 편에 앉아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지훈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조세 정책 경제 정책에 관해서는 무지합니다. 여기 계신 교수님들 앞에서 떠들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정치인으로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현석은 참여자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일반 국민으로서는 법인세가 증세 된다고 하더라도 체감할 수 없으니 조세저항이 없다시피 할 것이고, 또 정치권에서도 수용할 가능성이 큽니다.”
지훈은 주변을 둘러보았는데 정현석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학회 참가자들이 꽤 있었다.
“다만, 이는 너무 정치적 고려가 담긴 증세 방향입니다. 편의주의적 사고를 담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증세는 필요하지만, 반발이 심하니 돌아가자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정 의원님께서는 법인세 증세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견해입니까? 법인세 실효세율 조정은 필요하다고 학계에서도 얘기가 나오는 주제입니다.”
신영효는 정현석을 향해 핵심을 찔러오는 질문을 했다.
“아닙니다. 신 교수님께서 제게 정치인으로서의 답을 원하셨으니 그렇게 답한 것일 뿐입니다. 저는 증세가 필요하다면 법인세뿐만 아니라 조세저항이 예상되는 곳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현석은 확신에 찬 목소리와 눈빛으로 신영효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먼저 이렇게 정부 기관 보고서로 여론을 간 보는 행위를 하기보다는 대통령이나 총리가 하다못해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왜 정부의 지출 확대가 필요한지 설명부터 해야 합니다.”
며칠간 지훈과 열심히 준비한 대로 정현석은 잘 해내고 있었다.
“그리고, 정부의 세출 구조조정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과감한 조정을 통해서 세출 효율성 강화를 한다면 증세를 피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도 증세가 필요하다면 그때는 앞서 말했듯 지출 확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고요.”
정현석은 이야기를 마무리할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대중영합주의적인 선택을 한 정부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정부의 구성원이 아니니 말을 편하게 하는 걸 수도 있습니다. 다만, 저는 어떤 논의가 되기 위해서는 현 상황을 국민 앞에 숨김없이 터놓고 얘기한 이후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현석의 말이 끝나자 학회의 참가자들은 박수를 건넸고 신영효 또한 의외라는 눈으로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정현석은 자리로 돌아와 지훈을 향해 말을 걸었다.
“잘했냐?”
“네. 정말 잘하셨습니다.”
지훈은 정현석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었고, 정현석은 피식 웃었다.
이윽고, 학회 종료를 선언한 신영효가 주변 인물들과의 인사를 마치고는 정현석과 지훈에게 다가왔다.
지훈은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눌 수 있도록 뒤로 멀찍이 물러났다.
“오늘 연구실에 박혀 연구만 한 저의 정치적 식견을 넓혀주시는 이야기 잘 들었습니다.”
신영효는 정현석을 향해 손을 내밀었고, 정현석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학계에서 최근 주장되고 있는 경제 정책에 대해 배우는 것이 많았던 시간이었습니다.”
“아까 법인세뿐만 아니라 다른 증세도 필요하다면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제 생각은 법인세 실효세율 조정만으로도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정치적 수용 가능성이 크니 이 정도로만 해도 현재 정부의 세출이 충당될 것 같습니다.”
정현석을 자신을 향해 대뜸 방향을 제시해주는 듯한 말을 해오는 신영효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좀 더 신 교수님의 생각을 듣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하하, 제 생각이요? 아마 오늘 밤을 새워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어디 오늘만 날이겠습니까? 앞으로 쭉 저를 위해 조언을 해주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신영효는 자신을 향해 말해오는 정현석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승낙을 해왔다.
“제 정치 스승님도 같이 가도 되겠지요?”
“정치 스승이라면 저기 있는 보좌관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제 정치적 동반자이자 스승입니다.”
“두 분은 서로를 신뢰하시는군요. 좋습니다. 같이 가시죠.”
정현석은 웃으며 멀찍이 서 있는 지훈을 향해 다가왔다.
“어딜 내빼려고 멀찍이 서 계실까.”
“두 분 말씀 오래 나누시라고 그랬습니다.”
“됐고, 너도 같이 가.”
“저도요?”
“당연하지. 인마. 신 교수님 하시는 말씀 잘 듣고 나한테 설명해줘야 할 거 아냐.”
자신을 향해 농담하듯 말해오는 정현석을 향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고, 그런 지훈의 표정을 바라보던 정현석은 피식 웃으며 지훈의 등을 떠밀며 자신의 앞에 세우곤 신영효에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