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isor Jihoon Kim RAW novel - Chapter 119
118. 불씨 (1)
2014년 2월 말.
며칠 동안 임시국회를 여는 문제를 가지고 갑론을박을 펼치던 여야 원내대표는 오랜 진통 끝에 몇 가지 쟁점법안들과 민생법안들을 처리하기로 합의하며 3월 임시 국회가 열리려 하고 있었다.
또한, 곧 있을 지방선거를 위해 각 당은 공천 작업에 한창 몰두하고 있었다.
“추천받은 인물을 추려서 세 분을 골랐습니다.”
지훈과 김용일은 정현석이 출근하자마자 그의 방으로 따라 들어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곧 있을 지방선거를 위해 공천관리위원장을 맡길 인물을 선택하기 위함이었는데, 지난 며칠간 당 내외 인사들에게 추천받은 인물 중 정현석의 요구에 맞춰 인원을 추린 참이었다.
“한 번 들어볼까?”
정현석의 말에 김용일은 준비된 보고 파일을 정현석 앞에 펼쳐 놓았다.
“첫 번째 인물은 박호용 전 국회의장이십니다.”
김용일이 그렇게 말하자 정현석은 흥미롭다는 듯 박호용의 프로필을 보며 김용일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박호용 전 의장님은 우리 당 출신 인물 중 가장 색깔과 계파가 없다는 평을 들으시며 국회의장에 선출되실 때에도 그 부분이 높은 점수를 받으셨습니다.”
박호용은 보수당 출신 국회의장이었으며 국회의장직 이후 정계에서 은퇴해 한 사립대학교의 석좌교수직을 지내고 있었다.
“처음부터 꽤 괜찮은 분이네.”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이며 김용일의 말을 듣고 있었고, 김용일은 지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단점이 뚜렷하신 분입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들고 지훈을 바라보았다.
“단점?”
“박 전 의장님 같은 경우는 다른 분들과 다른 공명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의문스럽다는 표정으로 지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박 의장님은 워낙에 정계의 평이 좋으시다 보니 주변에 따르는 인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계파가 없다며?”
“네. 계파가 아니라 그냥 박 의장님을 따르는 정치 낭인들이 많습니다. 문제는 박 의장님 또한 그들을 정계로 밀어 올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니까 네가 말한 박 의장님의 공명심은 사람을 발굴해서 정치계에 자신의 족적을 남기고 싶어한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본인은 의도하지 않는다손 치더라도 결국, 한 번이라도 더 본 사람에게 시선이 쏠리지 않겠어?”
“네. 맞습니다. 오히려 이런 분들은 공천관리위원장보다는 인재영입위원장이라는 직책이 어울리는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따로 보고 드리는 겁니다.”
“좋아. 일단 다른 인물들도 들어보고 결정하자.”
정현석의 말이 떨어지자 김용일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보고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 인물은 구연찬 전 감사원장입니다. 대검 강력부장과 중수부장직을 맡으셨을 때부터 재벌과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봐주는 것 없이 수사하며 거물 킬러라고 불리었던 인물입니다. 감사원장으로 재직 시절 정부 부처를 상대로 티끌만 한 비위 사실에도 대대적 감사를 진행하며 국민적 인기를 끌었던 분입니다.”
김용일의 설명을 듣던 정현석은 만족스러운 인물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국민적 인기라······ 좋네. 저런 사람이 공천을 확정지으면 적어도 도덕적인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으니까.”
정현석은 그렇게 말하며 네 차례라는 듯 지훈을 바라보았다.
“구 전 감사원장님의 단점은 아무래도 부족한 정무적 감각입니다.”
“정무적 감각······.”
“네. 아무래도 정치인 출신이 아니다 보니 말실수가 잦습니다. 감사원장 시절에도 별명이 사이다였을 만큼 강한 성질의 발언을 많이 해오셨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분의 어법에 대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또, 그분은 오랫동안 결정권자의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 이유 때문인지 본인이 바르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주변의 의견을 듣지 않는다는 평이 있습니다.”
단점에 대해 들은 정현석은 고민에 빠졌다.
“우리가 원하는 인물은 공천위원들의 의견을 중재하고 그들이 최대한 자신의 소신을 맡을 인물을 원하는데 오히려 위원장이 그런 사람이 된다면 좀 그렇지 않아?”
정현석의 물음에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위원장에 구 감사원장을 임명한다면 개혁을 하겠다는 의지는 확실히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강력한 장점입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피식 웃었다.
“됐고, 빨리 다음 사람 얘기하지? 맘에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가 우리 의원실 식구들이랑 몇 년을 일했는데 아직도 모를 것 같아? 괜찮은 인물은 항상 마지막에 얘기해오더라.”
정현석의 말에 지훈과 김용일은 피식 웃었고, 마지막 인물은 지훈이 소개했다.
“마지막 인물은 박영래 의원입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의 미간은 꿈틀했다.
전혀 상상 밖의 인물을 지훈이 말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영래 의원? 내가 아는 그 박영래?”
정현석은 의원이라는 직함이 붙었으면 자신이 아는 인물이 당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듯 지훈을 향해 물었다.
“네. 수도권 내리 4선의 박영래 의원 맞습니다.”
“박영래 의원님은 정말 의외라서 되물은 거야. 이유부터 한 번 들어볼까?”
“박영래 의원에 대한 당 내부의 평가는 어떻게 저 양반이 4선인지 모르겠다는 평이 지배적입니다.”
지훈의 말에 정현석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워낙에 조용하시고 당내 쟁점 사항에는 뒷짐만 지고 계시는 분이라 어느 한 계파에 속하지 않고 매번 총선 때마다 공천을 받아오셨다는 것이 신기하다는 평이 있습니다.”
박영래는 계파색이 짙은 보수당 내부에서도 그 어느 계파에 속하지 않고 수도권에서만 내리 4선을 한 인물이었다.
“뭐 그거야 오히려 계파가 없으니 쉽지 않았겠어? 공천학살 대상도 아니었고 그 당시 공천을 주도한 사람들 처지에서는 우리는 이런 인물도 공천해 줬다고 핑계 대기 좋은 인물이잖아.”
“네. 공천을 받으신 이유는 그런 점이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박영래 의원의 초, 재선 때 모습을 보면 중재자라는 단어에 그 누구보다 어울리시는 분입니다.”
지훈은 정현석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고 정현석은 흥미롭다는 듯 지훈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8년 전 한창 과거사 정리 기본법으로 국회가 시끄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 진보당 출신의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예고를 했고 우리 당은 의장석 점거를 하고서 진보당 의원들과 몸싸움까지 하며 법안에 반대하던 시절 말입니다.”
지훈의 말에 김용일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 당시 일을 떠올리는 듯했다.
“동물 국회 소리를 들으며 국회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법이 며칠 후 언제 그랬냐는 듯 두 당의 합의로 통과되었습니다.”
“네 말은 그걸 박영래 의원이 중재했다는 거야?”
“네. 박영래 의원은 당시 당 대표 비서실장직을 맡고 계셨는데 우리 당내에서 가장 반대의견이 강한 계파를 찾아가 그들이 반대하는 이유를 듣고 그것들을 꼼꼼히 기록한 이후 진보당을 찾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진보당과 담판을 지은 게 박영래다?”
“네. 우리 당에서 반대하는 조항을 몇 가지 빼는 대신 진보당에서 원하는 법안 몇 가지를 들어주는 선에서요.”
“뭐 그런 협상은 기본적인 거 아냐?”
정현석은 박영래가 한 일은 협상의 기본조건이 아니냐며 지훈에게 물었고 지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앞서 말씀드렸듯 몸싸움까지 번지며 오히려 감정싸움으로 흘러가던 찰나였습니다. 또, 그 당시 원내대표마저 손을 놓았던 일을 박영래 의원이 직접 처리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협치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 그것 하나만 생각하고선 말입니다.”
“원칙이 우선이고 감정에 휩쓸리지 않는 인물이라는 말을 하는 거지?”
“네. 이 일화는 훗날 그 당시 진보당 당 대표의 회고록에 나온 얘기입니다만, 박영래 의원은 혼자 진보당 최고위원회를 찾아와 진보당 의원들의 날 선 모욕도 모두 참으며 합의를 끌어냈다고 합니다.”
“그런 양반이 지금은 왜 저렇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뒷방 늙은이 모습을 하고 있대?”
“합의하고 돌아온 날 당내에서는 박영래는 배신자라고 당 대표 비서실장직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연판장이 돌았기 때문입니다. 그 연판장을 돌린 인물은 과거사정리법에 해당하는 군사정권 시절 권력자의 최측근인 인물이었고요.”
지훈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정현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박영래 의원과 같은 인물은 자신 나름의 원칙과 소신대로 일을 처리합니다. 그 일을 처리하고 난 이후에 자신에게 돌아오는 보상이 없다 하더라도요. 다만, 주변에서 그런 움직임의 숨은 의미를 찾지 못하다 보니 박영래 의원이 외톨이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현석은 지훈이 왜 박영래를 추천하는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한 공관위원장 자리에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구나?”
“네. 박영래 의원 안에 숨어있는 열정에 대표님께서 불만 지펴주신다면, 누구보다 중재자로서는 어울리는 인물입니다.”
“나는 우리 당이 그래도 집권을 헛 했던 것이 아니라고 요즘 느끼고 있어. 당을 장악하고 헛짓거리하던 양반들 다 나가고 나니까 이런 괜찮은 인물들이 하나둘씩 보이잖아.”
정현석은 지훈의 말에 마음에 든다는 듯 씩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 의원이랑 약속 잡아.”
“마음 정하신 겁니까?”
“일단 내 마음만, 차례대로 해보자. 박 의원부터 설득하고 다음은 의원들을 설득해야겠지.”
“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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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위치한 한 한정식집에는 정현석이 먼저 자리에 앉아 박영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방의 문이 열리고 박영래가 들어오고 굉장히 송구하다는 듯한 말투로 인사를 전했다.
“대표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지역구 행사가 늦어졌습니다.”
“아이고, 박 의원님 어서 오십시오. 지역구 행사가 더 중요하지요. 너무 개의치 마십시오.”
자신의 처지를 이해한다는 듯한 정현석의 말에 박영래는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당 개혁 작업에 바쁘신 우리 정 대표님께서 저 같은 늙은 사람을 보자고 하신 이유가 있겠지요?”
“하하, 당 내부의 일로 여러 중진의원분께 의견을 청취하고 있습니다.”
정현석의 말에 박영래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신의 앞에 놓인 물잔을 들어 올렸다.
“그래서 대표님께서 저에게 구하실 의견이 있으십니까?”
박영래의 말에 정현석은 진지한 표정을 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지난 비대위 시절부터 개혁위에서 준비한 개혁안이 너무 급진적이라는 평을 들었습니다. 최고위원회 내부에서도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정현석의 말에 박영래는 마시던 물잔을 내려놓고는 싱긋 웃으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제가 정계에 입문하고 나서 우리 당은 꽤 많은 당 대표가 있었지만, 젊은 대표님이라 그러신지 당의 의원들을 상대로 의견을 물어오시는 분은 처음이십니다.”
박영래는 여전히 웃는 표정으로 정현석에게 말을 이어나갔다,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대로 하시지요.”
“제 생각대로 말씀입니까?”
“네. 대표님은 지난 전대 기간과 당선 이후에 개혁을 말씀해오시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최고위원회 내부가 내홍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대표님께서 세우신 원칙은 당의 폐습을 모두 쳐내는 개혁이 아니었습니까? 그렇다면 반대하는 소수의 의견도 청취하시고 그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쓰셔야 합니다.”
정현석은 박영래의 말에 작은 미소를 지으며 박영래를 바라보았다.
“반대의견으로 인해 대표님께서 세우신 원칙이 무너져서는 안 됩니다. 원칙이란 것은 조직의 기둥입니다. 원칙대로 모든 것을 처리해야 설령 문제가 생기더라도 원인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칙 아래서 만들어진 결과물이야말로 신뢰의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박영래가 자신을 향해 그렇게 말을 해오자 정현석은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 박 의원님을 만나기로 선택한 것은 정말 잘한 선택 같습니다. 박 의원님 같은 대답을 해주시는 인물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박영래는 정현석을 향해 아이러니하다는 듯 되물었다.
“공천관리위원장직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그······ 그게 무슨······.”
“먼저 박 의원님께 사과부터 드려야겠습니다. 앞서 최고위원회가 개혁안에 반대한다는 것은 박 의원님의 생각을 떠보기 위해 제가 지어낸 것입니다. 저의 건방짐을 용서하시지요.”
정현석의 말에 박영래는 아무런 말이 없이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공천관리위원장은 세워진 원칙에 따라 위원들을 중재할 분을 임명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황에 대한 질문을 제게 하셨던 거군요.”
“예. 그렇습니다.”
박영래는 고개를 끄덕이며 정현석을 바라보았다.
“제게 어떤 점을 기대하시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제가 당내의 평판이 좋지 않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하지만······.”
“하하, 대표님 제 평판은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융통성이 없다는 소문을 들으셨겠지요.”
정현석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도 저를 임명하시겠습니까?”
박영래는 정현석의 확신에 찬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인지 다시 한번 되물었고, 정현석은 박영래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분들을 설득하겠습니다. 그것이 제 일이기도 하고요. 박 의원님께서는 그 어떤 외압이 들어오더라도 원칙만을 생각해주시겠습니까?”
정현석의 물음에 한참을 두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박영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정치 생활을 마감해야 할 나이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늘 생각해왔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저에게 믿고 맡겨주신다면 최선을 다해 공천 개혁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정현석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겠다는 듯 웃으며 박영래를 바라보았고, 박영래 또한 자신을 믿어주는 정현석을 향해 작은 미소로 화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