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Tycoon Wizard RAW novel - Chapter 2
2화. 이유는 만들면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
아직 거동을 조심해야 하는 상태이긴 하지만, 천천히 걷는 건 재활 훈련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이고.
무엇보다 이렇게 걸으면서 보는 주변의 경치를 보고 싶었다.
새파랗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맑은 하늘에, 운치가 넘치는 중세 시대 수준의 목조 건물이 가득한 곳만 봤었는데.
스읍-.
“하아··· 이 매캐한 매연 냄새.”
누가 들으면 미친 놈이라고 할 게 뻔하지만.
맑고 푸른 하늘에 신선하고 상쾌한 공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듯.
미세 먼지 가득한 도시에 희뿌연 하늘을 보는 게 소원이었던 사람도 있을 수 있는 법 아닌가.
오랜만에 미세 먼지를 한껏 들이마시며 동네의 휴대폰 매장으로 향했다.
직원일까? 꽤 적극적으로 영업을 한다.
“그러지 마시고, 이 참에 새로 하나 하시죠? 이거 벌써 3년은 넘게 쓰셨을 텐데, 슬슬 바꿀 때 되지 않았어요? 지금 사용하시던 기기 반납하면 할인 행사가 있으니까···.”
예전이라면 신상 스마트폰에 눈이 돌아가던 시기가 있었지.
물론 지금의 나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아뇨. 그냥 이 기계로 개통해 주세요.”
벌써 3년이나 쓴 게 아니라, 겨우 3년 밖에 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필요한 건 공장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지, 좋은 스마트폰 쓴다고 특별히 할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저 전화만 할 수 있으면 그만이지.
단호한 말투에서 결연함이라도 느꼈는지, 직원도 더 이상의 권유는 하지 않았다.
계속 아쉬운 얼굴이기는 했지만, 개통을 안 해줄 수도 없겠지.
“···안녕히 가세요.”
휴대폰 가게 문을 나서는데, 썩 달갑지 않은 목소리가 배웅을 했다.
역시 한국, 신청을 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바로 초고속 개통이라니.
새삼 돌아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배터리를 미리 충전해 둔 낡은 스마트폰에 유심을 끼우자마자 전원을 켜고.
바로 연락처 목록을 뒤져서 두 사람을 찾았다.
정만호 공장장 삼촌.
양호석 영업 삼촌.
누구에게 전화를 하는 게 좋을까?
잠시 생각을 해서 결정을 내린 나는 지체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건너편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선우야! 소식은 들었다.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네. 공장장 삼촌도 잘 지내셨죠?”
[어휴. 당연하지. 얼마 전에 너 깨어났다는 소식 듣고 내가 눈물이 다 나더라. 어제 퇴원했다며? 병원에 있을 때 병문안 한 번 갔어야 하는데··· 미안하다.]“아니예요. 미안하시긴요.”
[그래도 먼저 이렇게 전화도 주고, 고맙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평소에 가깝게 지낸 관계는 아니었으니까.
안부 인사가 끝나니 딱히 할 말이 없어진 셈이다.
[선우야, 혹시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한 건 아니지?]“삼촌, 사실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를 드린 건데···. 혹시 요즘 공장에 무슨 일 있어요?”
이렇게 직접적으로 물어도 될까 고민을 했었다.
아빠가 운영하는 공업소이긴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나는 공업소 일과는 관계가 없는 외부인이니까.
만약 회사 내부의 대외비에 가까운 일이라면 묻는 것 자체가 실례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어, 그게···. 형님이 말씀 안 하시지?]“네, 아버지야 워낙 집에서는 일 이야기를 안 하시잖아요.”
[영일 형님이 좀 그렇긴 하지···. 그런데 이거 내가 말을 해도 되는 건지 잘 모르겠다.]“부탁드려요. 어머니랑 설이는 알고 있는 것 같거든요. 아마 저는 건강 때문에 걱정할까 말을 아끼시는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제가 도울 수 있을지도.”
사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기계를 다루는 것도 알지 못하는 건 당연하고, 뭔가 직접 만들어 본 것도 중고생 시절에 취미로 로봇 프라모델에 잠시 손을 댄 게 전부다.
하물며 공업소에서 하는 일은 금속 가공과 금형인데, 내가 도울 일이 있을 리가 없지.
하지만 그건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27살의 임선우 이야기.
‘지금 나한테는 쓸만한 게 있으니까.’
세상에서 유일하게 마나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마법진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그것도 아주 꽤 많이.
***
경기도 하남.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으로 신도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곳.
하지만 아주 조금만 더 외곽으로 나가면 높은 건물은 사라지고, 가건물이나 조립식으로 지어진 창고가 즐비하게 늘어선 산업 단지가 나온다.
그리고 그 한편에 아빠가 운영하는 ‘영일 공업소’가 있다.
“만호 삼촌. 여기요.”
전화 통화를 마치자마자 공업소 근처의 작은 카페에서 공장장인 만호 삼촌과 약속을 잡았다.
아침부터 서둘러 움직인 덕분에 점심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어, 선우야. 오랜만에 보네. 일찍 왔어?”
“아뇨. 조금 전에요. 아빠는 공장에 계세요?”
“아, 영일 형님은 거래처에.”
정만호 삼촌은 편의상 공장장이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양호석 삼촌과 함께 공장의 주주이기도 하다.
공업소는 주식회사는 아니지만 투자금에 따라 지분을 세 분이서 나눠서 운영하고 있다.
각자 잘하는 분야를 맡아서 지금까지 아무런 탈 없이 회사를 잘 이끌어 왔고, 거래처 관리는 대부분이 영업 이사인 양호석 삼촌이 맡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에는.
“아빠가요? 왜 호석 삼촌이 안 가고요?”
“그게···.”
여기까지 나왔지만 아직도 망설이고 계신다.
“삼촌, 저 진짜 괜찮아요. 애도 아니고, 혼자만 아무것도 모른 채로 있는 건 싫어요. 부탁드릴게요. 알려주세요.”
“하아···. 사실은 말이다.”
결심을 굳힌 아저씨가 해준 이야기는 놀랍기 보다는,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이야기였다.
특수 제작을 의뢰한 곳이 대금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갑자기 부도 소문이 돌고 있다는 것.
이대로 가면 대금을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미 제작이 끝난 방열핀을 전부 폐기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럼 그동안 그동안 만든 방열핀은 전부 버려야 한단 말이에요?”
“너도 성광 산업이라고 들어봤지?”
“네. 거긴 저도 알죠.”
성광 산업은 영일 공업소의 가장 큰 고객이자, 컴퓨터 부품 제조사인 ‘알파 테크’의 도급 업체이기도 하다.
간혹 무리한 요구를 해오는 곳이지만 매출에 도움이 되기에 어쩔 수 없이 참고 넘어가야 하는 그런 곳.
평소에도 마음에 안 드는 곳이었는데, 이런 상황까지 겹치니 좋게 보일 리가 없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 곳이었지만··· 이렇게 갑자기 부도가 날 정도로 부실한 회사였나?’
뭔가 이상하다.
“아직 공식적으로 부도가 난 건 아니죠?”
“그렇긴 한데··· 거의 확정이라고 하는 것 같아. 처음부터 아예 작정을 한 건지, 우리처럼 잔뜩 발주를 받은 곳이 더 있는 모양이더라.”
“그럼 불법 아니예요?”
“물건을 받고 도망쳤으면 무조건인데, 이게 물건을 안 받은 상태에서 부도를 내면··· 애초에 계약서만 제대로 썼었어도 괜찮았을 텐데. 그쪽에서 하도 자기들 못 믿는 거냐고 강짜를 부리는 바람에···. 빌어먹을 놈들!”
대체 왜 그런 짓을 할까? 무슨 이득이 있어서?
정말 어쩔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급하게 파산 신청을 했을 가능성도 있겠지만, 뭔가 께름칙하다.
“삼촌, 우리가 만든 방열핀을 다른 곳에서는 못 써요?”
“아냐. 평소에 만들던 거면 어떻게 찾아볼 방법이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독자적인 디자인으로 만들어서 호환이 되는 쿨러가 없을 거야.”
“이번에는 왜 갑자기 디자인을 바꾼 거래요?”
“그건 확실하진 않은데··· 아마 알파 테크에서 신제품을 기획해서 출시하려고 했던 모양이야. 그게 잘 안된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식으로 회사 문 닫고 잠수 타버리면 하청 업체들은 다 죽으라는 거냐고. 빌어먹을 새끼들!”
삼촌 역시 마음이 답답한 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얼음이 가득 들어 있는 아메리카노를 거의 원샷 하다시피 들이켰다.
“회사 문을 닫아요? 그럼 아빠는 어디 간 건데요?”
“알파 테크에.”
“···아.”
영일 공업소는 2차 하청 업체다.
성광 산업에 방열핀을 만들어 납품하면 그곳에서는 방열핀을 조립해 방열판으로 만든 뒤, 또 다른 회사에서 납품받은 팬을 조립해 쿨러로 만드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쿨러가 최종적으로 사용되는 곳이 바로 알파 테크다.
아빠가 거길 찾아간 이유는 뻔하다.
‘직접 납품 계약을 하려고 가셨구나.’
하긴, 이런 상황이라면 그게 최선일 수도 있겠다 싶은데.
어쩐지 그렇게 일이 잘 풀릴 것 같지는 않다.
“아저씨, 죄송해요. 저 먼저 가볼게요!”
***
임영일은 건물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어떻게든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과연 이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을까?
‘빌어먹을 놈들.’
욕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성광 산업이 갑자기 부도를 내고 파산 신청을 한 이유가 바로 알파 테크 때문이라는 걸 어렵게 알아냈다.
평소와 달리 전혀 다른 디자인에 특수 처리까지 된 고가의 방열핀을 대량으로 주문할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긴했었다.
‘그때 확실하게 계약서만 받았어도···.’
그게 못내 후회스러웠다.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회사 동생들이 별말은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의 실수가 없던 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영일 공업소도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를 일.
억울하고 화도 나지만, 지금은 자존심을 세울 때가 아니다.
꾸욱-.
임영일은 주먹에 힘을 주고,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뗐다.
아니, 떼려고 했다.
“아빠.”
“선우? 네가 여길 어떻게.”
그리고 그 뒤로 다른 목소리도 들렸다.
“서, 선우야. 같이 좀 가자. 아이고, 이제 막 퇴원했다는 녀석이 걸음이 왜 이리 빨라.”
“만호? ···너!”
“형님, 죄송해요. 근데 선우 말도 틀린 거 없어요. 그리고 어차피 곧 기사도 나올 텐데,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그래서 제가 그냥 다 얘기 했어요.”
임영일은 작게 숨을 내쉬고 아들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 몸도 성치 않은 녀석이.”
“괜찮아. 병원에서 퇴원했다는 건 다 나았다는 말이야.”
“아무튼 넌 얼른 집으로 가. 회사 일은 아빠가 알아서 해결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마음이 더 단단해졌다.
아들을 보니 여기서 망설일 때가 아니라는 확신이 선 거다.
“나도 같이 가.”
“어딜? 여기를 네가 왜 들어가!”
좋은 꼴은 보지 못할 확률이 높다.
아니, 확실히 그런 상황으로 흘러가게 될 거다.
아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생각이라니. 설마 다른 방법이 있다는 말이야?”
“응.”
다른 방법은 없다.
방열핀이 지금까지 일반적인 모양과 완전히 다른 디자인으로 설계된 이상 알파 테크에 납품하는 게 유일한 수단이니까.
하지만 만약 이 모든 일을 꾸민 게 정말 알파 테크라면 곧이 곧대로 우리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을 건 뻔하다.
아마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물건을 헐값에 넘기라고 하겠지.
‘대체 무슨 방법이 있다는 거지?’
묘하게 변해버린 아들.
분명 6개월 전에만 하더라도 조금은 철이 없고, 가볍게 웃던 아들은 어딘가 달라졌다.
콕 짚어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우선 그게 뭔지, 그 이야기부터 해보자.”
공업소 일에는 관심도 없던 녀석에게 다른 묘수가 있을까?
없을 게 당연한데도, 어쩐지 조금은 기대가 됐다.
임영일은 아들의 손을 잡고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
아빠를 만나러 오면서 만호 삼촌에게 자세히 이야기를 들었다.
방열핀을 왜 쓰지 못하는 건가에 대해.
“열 전도율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방법인데, 두 장을 겹쳐서 만든 거라 다시 녹여버리면 효과가 절반 이하로 떨어져. 그럼 미세 공정까지 추가된 비용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가 되는 셈이지.”
단순히 알루미늄만으로 제작된 방열핀이라면 시간과 인력을 조금 더 투자해서 다시 제작하면 되는데.
이번에 제작된 방열핀은 미세한 구리선이 방열핀의 내부에 삽입된 형태로 제작됐다.
다시 녹이면 그저 알루미늄에 구리를 섞은 그저 그런 싸구려 합금이 돼버리는 셈이다.
되려 형태를 잡는 게 어려워져서 가치는 더욱 떨어지고 만다.
“지금 제작된 형태로 조립해서 방열판으로 만드는 수 밖에 없는 거네요?”
“그렇지. 그런데 방열 파이프가 들어가는 구멍이 이미 뚫린 상태라 다른 업체에서는 쓰기가 힘든 거지.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방열판 제작 업체가 많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한 손에 꼽힐 정도.
아직은 실험적인 기술이 도입된 방열핀을 굳이 비싼 돈 주고 구매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이미 잘만 돌아가고 있는 공장의 공정을 전부 수정하면서.
‘이유는 만들면 돼.’
필요가 있도록.
이 새로운 기술이 도입된 방열핀에 욕심이 나게 만들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