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 Be a Villain in This Life RAW novel - Chapter 376
#376화
“장쉬안?”
나는 그 이름을 듣고 미간을 좁혔다.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그래. 홍콩 쪽의 삼합회 간부일세.
홍콩의 삼합회. 내가 이름이 익숙한 이유가 있었다.
고광목의 서울광목파를 공격한 왕후성과 그 수하들.
그놈들이 홍콩에서 넘어왔었다.
한 마디로, 삼합회가 서울에서 깽판을 치고 간 게 그 장쉬안이라는 놈 때문이라는 소리였다.
반감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굳이 내가 간섭할 이유는 없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어떻게 밀어준다는 소립니까?”
내 질문에 조병철은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건 지금부터 고민해 봐야지.
“예?”
맥 빠지는 소리였다.
“그럼 왜 이야기를 꺼낸 겁니까.”
-사실, 아예 생각을 안 해놓은 건 아니네. 그놈이 제약 회사를 운영한단 말이지.
“예. 그건 알고 있습니다.”
-내가 거래를 터 주는 거야. 그럼 그놈이 다음 보스가 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나?
영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삼합회의 간부가 한국의 권력자와 거래 관계라는 건, 조직 내에서의 입지를 높이기에 충분했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걸 왜 저한테 말씀하냔 말입니다.”
-허허. 성격 급하긴. 본론은 지금부털세.
조병철은 여유롭게 웃음을 흘리고선 진짜 본론을 꺼냈다.
-새사람교회의 성수, 기억하나?
그 말에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기억을 더듬었다.
새사람교회. 신도들을 세뇌하다시피 해 기부금을 걷고, 그 돈을 정치권에 찔러넣던 자칭 성자라는 놈이 있던 곳이다.
‘선생’이라는 존재를 신격화하는 설교를 하지만, 실상은 세속에 찌든 쓰레기였다.
팀원들과 성자를 잡으러 갔을 때, 덩치 큰 놈이 우리를 막아섰었다.
‘성수….’
분명 두들겨 패놨는데, 성수라고 부르는 주사를 맞으니까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덤벼들었다.
그 주사에 들어있던 게 바로 성수일 거다.
약물이 국과수에 넘어갔으니, 조병철도 성수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거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내가 그 성수라는 물건의 샘플을 좀 구했네. 듣자 하니, 양산만 하면 상당히 도움이 될 것 같더군.
“…….”
-마침 명운제약이라는 좋은 수단이 있지.
“그쪽을 통해 양산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성수는 분명 강력한 잠재력을 지닌 약물이다.
다만 내 기억상, 성수는 중독성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런 게 양산되면 좋은 상황이 펼쳐질 리가 없었다.
그러나 대놓고 반대하기도 애매했다.
“그러니까, 명운제약에게 성수의 권리 일부를 넘겨 다음 보스로 추대하겠다. 맞습니까?”
-그리고 양산한 성수를 주기적으로 받아야지.
“받아서 뭐 하시려고.”
-있으면 어딘가엔 유용히 쓰지 않겠나?
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조병철의 이 개입이 민지훈의 계획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모르겠지만, 내 선에선 컨트롤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래서 말인데, 자네 야쿠자 친구들한테 물건을 팔아볼 생각 없나?
흠칫.
나와 스가와라의 모종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드러내는 말이었다.
“야쿠자… 한테 말입니까?”
-그래. 규모도 크고 성수를 써먹을 데도 많은, 아주 괜찮은 시장 아닌가?
“…….”
-물건의 공급권을 쥔다면, 그놈들도 우리 한 마디에 벌벌 떨 걸세. 그동안은 선생 때문에 일본 쪽엔 손을 못 뻗었지 않나.
조병철은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리로도 발 넓혀 봐야지?
나는 잠시 침묵하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한번 밑밥을 깔아보겠습니다.”
-허허허. 잘 생각했네. 좋은 도구가 있다면 잡아서 써야지.
“용건은 그게 끝입니까?”
-그래. 자네도 바쁠 테지. 용건 끝났으니 이만 줄임세. 다음에 다시 연락하겠네.
“예. 그러시죠.”
껄껄 웃던 조병철이 전화를 끊었다.
“….”
핸드폰을 들고 있던 나는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아오, 이 개새끼….”
뭔 일을 벌이려는 것 같은데, 삼합회에 야쿠자까지 엮이니까 상당치 골치가 아픈 문제가 돼버렸다.
조병철, 민지훈. 그리고 스미요시카이의 사이토 회장.
이 셋 다 각자의 목적이 존재하고,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누구한테 붙을지 섣불리 판단하기엔 쉽지 않았다.
당장 한국에서 활동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병철.
‘서클’을 무너뜨린다는, 나와 같은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는 민지훈.
또 민지훈의 뒤통수를 칠 때 방패가 되어 줄, 민지훈을 적대하는 사이토 회장까지.
“흐음….”
고민에 빠져있던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고 보니… 홍콩지부를 한국으로 들여온 게 민지훈이었지.’
그 말인즉슨, 민지훈과 홍콩지부의 장쉬안이라는 놈은 한패일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조병철이 말한 대로 장쉬안에게 힘을 실어줘도 되지 않을까?
나는 곧바로 민지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
바로 받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오늘따라 신호음이 울리는 시간이 길었다.
뚜르르-.
그렇게 열 번의 신호음이 지나고, 전화를 끊으려던 때.
툭.
-여보세요.
“어, 오늘은 늦게 받네.”
-바쁘니 용건만 부탁드립니다.
“그러지. 네가 미는 삼합회의 다음 보스, 홍콩의 장쉬안이냐?”
그 물음에 바로 대답이 나왔다.
-네. 일단은요.
“그래. 알았다.”
-그건 왜….
탁!
나는 핸드폰을 접고 몸을 일으켰다.
이러면 상황은 간단해진다.
‘일단, 성수의 정확한 효과가 뭔지 알아봐야겠어.’
얼마나 위험한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그와 같은 정보가 필요했다.
그리고, 마침 거기에 관해 알 만한 사람이 있었다.
‘새사람교회의 성자.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었지?’
* * *
한편,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외곽.
해가 지평선 아래로 넘어가는 시각, 한 여관 안에서 누군가의 앓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끄으윽….”
그러나, 그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었다.
척.
국정원의 현장 요원, 홍기동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남자의 몸을 수색했다.
삼합회의 조직원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문신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문신이라고 할 만한 건 존재하지 않았다.
“흠. 조직원은 아니었나.”
“꺼어…. 사, 사려주….”
팔다리가 꺾인 채 바닥에서 꿈틀대는 남자의 정체는 바로, 홍기동에게 닭꼬치를 팔아먹은 노점상이었다.
꼬치값에 바가지를 씌운 건 둘째치더라도, 그를 인신매매가 행해지는 여관을 안내해준 장본인이었다.
“이봐. 당신도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었나?”
“모, 모랐어. 몰랐다고…!”
“거짓말이군.”
노점 주인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어눌하던 그가 유창하게 중국어를 구사하는 걸 보며 몸을 비틀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긴 뭐가 아니야.”
“끄으…!”
무덤덤한 그의 표정에 공포에 질린 노점 주인은 어떻게든 여관 바깥으로 기어나가려고 했다.
홍기동은 잠시 그 광경을 내려다보다가, 그의 뒷덜미를 잡고 객실로 끌고 갔다.
“아악!”
여관방 안에 던져진 그는, 의자에 묶인 채 죽어 있는 친구를 보고 기겁했다.
“흐악! 으아아!”
팔다리를 부들거리는 그의 뒤통수에 발차기가 꽂혔다.
빠악! 쿵.
남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홍기동은 바닥에 있던 로프로 그의 사지를 결박한 다음, 여관을 뒤져 찾아낸 포대에 담았다.
꽉.
포대를 포장한 홍기동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여관 주인이 말했던, 창고로 온다던 트럭의 도착 시각은 10시.
아직 그 시간까지는 1시간 반 정도가 남아 있었다.
철컥.
홍기동은 여관방의 문을 닫고 나왔다.
‘어디서 그 트럭을 보내는 건진 모르겠지만, 타고 올라가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삼합회 조직원이 넘기는 사람을 돈 받고 사 가는 자들.
그쪽에 관해 알아보면 뭐라도 보고할 거리가 나올 것이다.
그렇게 보고서를 어떻게 작성해야 하나 고민하던 그때.
쿵쿵쿵.
“….”
누군가가 닿아놓은 여관의 문을 두드렸다.
밤에 가까운 시간이라 여관을 찾은 손님일 수도 있겠으나,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홍기동은 조용히 걸음을 옮겨 카운터 뒤로 숨었다.
그러자, 끼익- 소리와 함께 여관으로 웬 남자들이 들어섰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들어오며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어이, 차오!”
“차오!”
“어디로 간 거야?”
누군가를 찾던 남자들은 나무 바닥에 난 칼자국을 발견했다.
“잠깐. 이거….”
스윽.
남자들이 허리춤에서 날붙이를 꺼내며 경계 어린 시선으로 여관 내부를 훑었다.
그 순간, 몸을 숨기고 있던 홍기동이 훌쩍 카운터를 뛰어넘었다.
탓!
“…!”
그와 동시에 손에 들고 있던 숫돌을 집어던졌다.
빡!
“아악!”
비명을 지르며 남자가 쓰러지고, 홍기동은 나머지 하나를 향해 호랑이처럼 달려들었다.
“썅, 뭐…!”
무어라 소리치려던 남자의 턱이 돌아갔다.
쩌억-!
그대로 쓰러지는 그를 뒤로한 홍기동은, 숫돌에 맞은 머리를 부여잡은 남자의 머리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내리꽂았다.
쾅!
순식간에 당해 축 늘어진 두 남자.
홍기동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땅에 떨어진 칼을 옆으로 쳐냈다.
그리고 여관 문을 다시 닫은 뒤, 아예 잠가버렸다.
‘이것들은 어쩌지.’
잠시 고민하던 홍기동은 두 사람을 여관 주인의 시신이 있는 방으로 데려갔다.
툭.
의식을 잃은 그들을 끌고 와 던져놓자, 묶여 있던 노점상이 고개를 돌렸다.
“히익…!”
“왜. 아는 놈들이냐.”
“모, 모르… 아니, 압니다. 차오, 그러니까, 여관 주인 친구들입니다.”
“너랑은 모르는 사이고?”
“얼굴 정도는….”
대답을 들은 홍기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놈들 중에 트럭 타고 오는 놈이랑 제일 친한 게 누구야?”
“예?”
“사람 사 가는 것들이랑 가장 가까운 놈이 누구냔 소리다.”
그 물음에 노점상은 쓰러진 남자 중 하나를 가리켰다.
“저, 저놈입니다. 혹시 중간에 손님들이 깨면 다시 두들겨 팹니다. 저 중에 제일 악질…!”
그의 설명과 동시에, 홍기동은 노점상이 지목하지 않은 남자의 목을 잡고 꺾었다.
뚜둑!
목이 돌아간 남자의 팔다리가 늘어지는 걸 본 노점상이 화들짝 놀랐다.
“허! 으, 으읍…!”
홍기동은 무심한 듯 노점상을 향해 다가갔다.
“미안하게 됐다. 한 놈만 있으면 충분할 것 같아서.”
“자, 잠깐! 저놈보다 제가 더 잘 압니다!”
“네가 뭔데. 삼합회인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유인책 아닌가?”
“사, 사실… 이 판을 짠 게 접니다….”
“뭐?”
벌벌 떨던 노점상이 설명했다.
“이 여관에… 그 사람들을 중개한 게 저란 말입니다.”
이어지는 그의 말은 홍기동의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노점상이 손님을 데려오고, 여관 주인과 이놈들이 그 손님을 잘 작업해서 트럭에 넘긴다.
그런 여관과 트럭을 연결시킨 게 이 노점상이라는 것이었다.
“그럼, 그걸 사 가는 놈들의 정체는 뭐지?”
“그건….”
“시간 없다.”
“흐, 흑룡방黑龍幇입니다.”
홍기동은 미간을 좁혔다.
노점상이 말한 흑룡방.
국정원에서도 주시하고 있는, 악명 높은 중국의 범죄 조직의 이름이었다.
같은 조직도 아닌 놈들끼리 인신매매를 한다는 것도 의문이었지만, 그것보다 더 이상한 게 있었다.
‘흑룡방의 본거지는 분명… 대만일 텐데?’
그런 흑룡방이 이곳, 북경北京에서 사람을 사고 있다?
수상한 냄새가 풀풀 나는 상황에, 홍기동은 노점상의 머리채를 붙잡았다.
텁.
그리고 험악하게 인상을 구긴 그가 으르렁대며 말했다.
“정확히 무슨 상황인지, 상세히 설명하는 게 좋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