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27
화
카창!
부러졌다. 내 검이 놈의 검을 부러뜨리고 그대로 궤적을 그리며 목덜미를 베고 지나간다.
“커헉, 이, 이게…”
놈은 검을 놓친 손으로 목의 상처를 누르며 뭐라고 하지만 내 관심 밖이다. 나는 곧바로 마토 쪽으로 몸을 날린다. 마토는 두 명에게 둘러싸여서 공격을 받고 있다. 게리가 지원 사격을 하지만 교묘하게 마토의 몸을 방패로 삼아서 화살을 피하고 그러면서 마토를 공략하고 있다. 둘 모두 작은 방패를 팔뚝에 차고 있는 것이 게리의 화살을 방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은 순식간에 공수가 흔들리고 있다. 내가 상대를 죽이고 그들을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본 것이다.
“으라차차차!”
마토가 고함을 지르며 피가 흐르는 팔로 검을 힘차게 휘두른다. 그에 반응해서 움찔하는 놈들을 향해서 내 검이 찔러 들어간다.
투캉!
어렵게 네 찌르기를 막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게리의 화살이 날아와 놈의 등을 파고든다. 나를 상대하느라 몸을 틀어 빈 공간이 생긴 탓이다.
“커억.”
왼 손을 등 뒤로 돌려 화살을 잡으려 하지만 잡히지 않는다. 그런 놈에게 마무리로 검을 날려 목을 잘랐다.
하나 남은 마토의 상대는 전의를 상실하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사, 살려…”
취리릭!
더 들을 이유도 없다. 내 검은 무심하게 놈의 목을 파고든다.
“카악! 덤벼, 덤벼.”
렘리는 그야말로 선전하고 있다. 상대는 렘리의 장검에 이리저리 몰리면서 휘둘린다. 아마도 제일 실력이 처지는 놈이었던 모양이다.
그런 놈에게 게리의 화살이 날아들어 어깨에 박히고, 그 뒤를 이어서 렘리의 검이 놈의 목과 가슴을 사선으로 가르고 지나간다.
역시 강도와 탄성이 향상된 무기는 위력이 좋다.
나는 쓰러진 놈들을 하나하나 돌아가며 생사를 확인하고 숨이 겨우 붙어 있던 내 상대의 마지막을 확실하게 했다.
그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마지막 숨을 뱉는 놈을 보면서 아무런 가책도 느끼지 않는 것은 과거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젝커를 뒤집었을 때, 의외로 제크는 목숨이 붙어 있었다.
“커억,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당신 말고는 다 죽었습니다. 젝커씨.”
“나를 찌른 것이 정말….”
“알면서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그 그렇군요. 이렇게 죽다니 이렇게… 저기 저걸…”
젝커는 뭔가를 손가락으로 겨우 가리켰고 렘리가 그걸 가지고 왔다.
“부, 부셔요.”
렘리가 나를 보는데 나는 다시 젝커를 봤다.
“통신 장애…”
뭔 말인지 알겠다. 헌터가 헌터를 공격하거나 혹은 남모르게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에 툴틱의 무력화 시키는 장치가 있다더니 그것인 모양이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렘리가 뭔가 조작을 하더니 내려놓고 툴틱을 확인한다.
“잘 되는데?”
부수라고 했더니 작동을 멈춘 모양이다. 다시 쓰겠다는 생각이겠지.
젝커는 억지로 툴틱을 꺼내더니 뭔가 조작을 한다.
그런 모습을 게리가 툴틱에 영상으로 담고 있다.
“우, 우리 파티원들이 세이커씨 파티원들을 공격한 것을 사과합니다. 그들이 나를 공격하고 세이커씨 파티를 공격했다가 죽은 것임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내게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게 해 준 여러분께 감사를 전합니다. 다행히 내 남은 재산을 가족들에게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냥 죽었으면 많이 아까웠을 겁니다. 허허허. 이렇게 갈 줄은 몰랐는데…”
젝커는 그렇게 말을 하고는 자신의 툴틱을 끈다. 그리곤 내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더니 내게 무언가 알려준다.
그들이 발견했다는 던전의 위치다.
이걸 어쩌라는 걸까?
“요, 욕심이 나면 가, 가보고… 아니면 저 정보로 팔아도…되… 시험… 정말 주제를 알고 요, 욕심 부리지 않….”
끝이다. 이제 젝커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한다.
마지막에 나를 시험하고 싶었을까? 던전의 위치를 알려주고 거길 내가 가는지 안 가는지 알고 싶었을까? 아니면 내게 선물을 한 걸까?
어쨌거나 던전의 위치가 내게 들어왔다. 그리고 다섯 구의 시체가 눈 앞에 있다.
이걸 어쩌나?
나는 툴틱을 열어 거점 도시의 율티 지부장과 통화를 시도했다.
– 뭐지요?
첫마디부터 차갑다. 스티커 장사가 잘 안 되나?
“싸늘하군요?”
– 당신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아서 그래요. 돈을 받는 값을 해야 하니까.
“많이 팔린다는 소린가요?”
– 관심은 엄청 집중되고 있지요. 판매는 아직 지지부진이지만 곧 없어서 못 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무슨 일인가요?
조금 풀린 목소리다. 바빠서 스트레스가 쌓인 거였나?
나는 차근차근 상황을 설명했다. 던전에 대한 이야기는 빼고 저들이 우릴 습격해서 어쩔 수 없이 싸웠고 그래서 죽였다는 내용과 저들의 리더가 남긴 증언 영상을 첨부했다. 물론 영상은 게리가 찍은 것이었다.
– 사건을 몰고 다니는 운명인가요? 겨우 사흘만에 헌터의 피를 묻혀요?
“원한 바가 아닙니다. 불가항력이지요.”
– 알았어요. 기다려요. 수거팀을 보낼 테니까. 거기에 진술을 해요. 뭐 보아하니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그런데 그들이 무엇을 욕심낸 건지는 모르겠네요. 습격의 이유가…
“우리가 사용한 스티커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30분짜리를 썼는데 그게 겉으로 표시가 나서 우리 장비에 대한 오해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꽤나 고가의 장비로 보였을 수도 있지요. 은은하게 빛이 흐르는 것을 봤을 테니까요.”
– 아 그렇군요. 그럴 수도 있어요. 맞아요. 그거면 답이 되네요. 흐응. 그런데 내 감은 그게 아니라고 하고… 뭐 그래도 상관은 없겠죠. 그 정도면 충분한 이유가 되니까. 알았어요. 바쁘니 나중에 다시 보죠.
율티 지부장은 그렇게 화면에서 사라졌고 오래지 않아서 수거팀이 왔다.
수거팀은 간이 거점에서 오는 것이라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들은 자그마치 에테르 동력을 사용한 차를 타고 움직이고 있었다. 엄청난 덩치가 달려오는 모습은 굉장히 박력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수거자들의 작업은 정말 깔끔하고 간결했다.
죽은 이들을 포장지에 포장을 해서 담고 그들의 장비도 따로 챙겨서 상자에 담았다. 그리고 상황 설명을 우리 넷에게 따로 불러서 물어보고 저장을 한 후에 전차인지 뭔지를 몰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뭔가 정신없는데 일처리는 깔끔하네. 그런데 리더 고블린 잡으러 갈 거야?”
렘리가 묻는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바탕 피를 보는 싸움을 한 뒤라서 뭔가 정리 정돈이 안 된 느낌인데?
그나저나 얘들은 괜찮나?
특히 렘리.
“뭐? 왜 그렇게 보는데?”
“너 아무렇지도 않냐?”
“뭐가? 아까 그 놈 죽인 거? 그게 뭐? 도축장에서 매번 하는 일이나 뭐가 달라서? 사람이나 몬스터나 매한가지지.”
저런 마인드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냐?”
게리와 마토 쪽을 보며 물어본다. 이들은 어떨까?
“사람이나 몬스터나 우릴 죽이려고 하면 같은 놈이지. 솔직히 게이트 열리고 이런 저런 토착 주민들 많이 생겼잖아. 그들이나 몬스터나 뭐 다를 것이 있나? 그들은 사람처럼 취급해 주면서 여기 몬스터만 특별 취급 할 필요 없지. 그들도 많이 죽였잖아. 우리가 한 일은 아니지만 지금도 죽고 죽이고 있고. 여기서도 몬스터를 죽이고 몬스터에게 죽고 하는 거지. 사람끼리도 죽고 죽이고 하는 거고. 다를 것 없다고 생각해.”
게리가 그렇게 말하고 마토는 뭔가 아는지 모르는지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뭐 살인에 대한 충격은 없겠네. 나쁜 일은 아니다.
“좀 쉬었다가 고블린 잡는다. 사람이나 몬스터나 같은 놈인데 특별할 거 없잖아.”
나는 그렇게 결정을 했다. 정말 트라우마가 없다면 당연히 사냥을 계속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충격이 있다면 몸과 마음을 바쁘게 만들어서 잊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일 거다. 놀아서 뭐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