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402
화
나는 퉁명스럽게 말을 던지며 율티 총독을 새삼스럽게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헌터 연합의 도시 지부장으로 있다가 나와 엮여서 떠난 여자가 지금은 한 행성을 총괄하는 총독이 되어서 내 앞에 나타났다.
솔직히 나에 대해서 좋은 감정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말만 그렇게 할 뿐 적대적인 감정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걸 속 깊이 숨기고 있는지, 아니면 세월의 흐름에 씻어 버렸는지는 나도 알 수 없는 일이다.
뭐 지금 나도 율티 총독을 보면서 새삼스럽다는 느낌만 있을 뿐, 예전의 그 불쾌감 같은 것은 없으니 저 쪽도 그러리라 생각할 뿐이다. 지금 와서 율티 지부장과의 앙금을 떠올리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흐른 거겠지.
“교역 행성으로 통하는 행성간 이동 게이트가 필요해요.”
아, 그거였지. 저쪽에서 요구하는 것이 그거였어.
요즘 각 행성들이 플레인 게이트 대신에 행성간 이동 게이트를 설치해 달라는 요구가 부쩍 늘어나고 있지. 그것도 항시 가동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 말이지.
도대체 내가 그 짓을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요구가 들어오면 이렇게 나와서 그 행성의 대표를 만나곤 하지. 물론 만난다고 그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주는 건 아니고.
사실 그걸 만들기 위해서 적잖은 화이트 코어가 필요하단 것을 알면서도 그런 요구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게 쉽지 않은 일이거든. 거기 들어가는 화이트 코어를 도저히 맞출 수가 없으니까 말이지.
그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해 주려면 내가 다른 일은 모두 버려두고 화이트 코어 사냥만 죽어라고 다녀야 할 판이지. 그렇게 해도 한 달에 한 두 개의 게이트를 설치하는 것이 고작이다.
수 천 개의 행성이 모두 아우성인데 그걸 내가 다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
그래서 행성간 이동 게이트는 적절한 수준으로 요청을 받아서 설치를 해 주고 있는 상황이다.
아울러서 그걸 만들어주면 각 행성에서는 몬스터 사냥팀을 꾸려서 데블 플레인으로 사냥팀을 보낸다. 그리고 그들이 알아서 에테르 코어를 수급하는 것이다.
물론 그래도 언제나 에테르 코어가 부족하다고 아우성이지만 말이다.
여기 율티 총독도 그런 이유로 나와 만나고 있는 중인 것이다.
“헌터들은 얼마나 확보를 했지? 어차피 사냥을 할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얼마 없어요. 그래서 부탁을 하는 거예요. 우린 식량 수출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행성이에요. 남는 것이 식량이죠. 하지만 식량은 부피가 너무 커요. 물론 영양분만 정제해서 그걸 거래하기도 하지만 그건 솔직히 이익이 너무 적어요. 그래서 식량 자체로 거래를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게이트가 문제가 되겠군.”
“맞아요.”
역시 원하는 것이 그것인가? 상시 가동 가능한 게이트의 설치?
“미안하지만 곤란한 요구로군. 그리고 그렇게 식량이 교역 행성에 풀리게 되면 이쪽도 문제가 생겨. 교역 행성에서도 식량을 생산해서 데블 플레인과 거래를 하고 있는데 거기에 그쪽의 식량이 무차별적으로 풀리게 되면 곤란하지.”
“하지만….”
“아까 이야기하지 않았나? 상위 몇 %의 요구가 문제라고. 나는 그 몇 %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할 생각이 전혀 없어.”
“….”
그렇게 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 그리고 내가 알아봤거든, 율티 당신이 다스리는 그 행성. 문제가 있더구만?
무슨 농노도 아니고 말이야. 행성 주민들을 그렇게 노예 취급 하는 건 정말 웃기는 일이지. 내가 다른 행성의 문제엔 될 수 있으면 관여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가만히 있는 거지, 예전 같았으면 가서 확 뒤엎어 버렸을 거야. 응? 알아?
“변한 것이 없군요.”
율티 총독의 눈빛이 힘을 잃는다. 그러면서 내 시선을 외면한다.
“총독도 별로 변한 건 없는 것 같은데?”
“내가 총독이지만 내 마음대로 행성을 좌우하는 건 아니죠. 우리 행성은 지주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진 말아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눈치를 챈 모양이다. 저런 변명을 하는 것을 보면 말이지.
“그렇긴 하지. 하지만 율티 당신도 만만찮은 지주가 되었더군. 그리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도 다른 지주들 밑의 주민들과 다를 것이 없고 말이야.”
그러니까 너나 다른 지주들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지.
“……”
“어쨌거나 그 쪽의 요구는 들어 줄 수가 없어. 그리고 그 행성은 아무래도 성간 게이트 설치를 보류해야 할 것 같아.”
“뭐라고요? 아니 어째서?”
아예 설치를 해 주지 않겠다는 말에 많이 놀란 모양이다. 좀 갑작스러운 통보긴 하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내가 그 행성의 내정에 간섭을 할 수는 없지만 그 행성 지주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는 있다고 말이야.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행성이니까.”
“아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그렇게 되면 우리 행성의 산업이 막대한 타격을 입어요. 그걸 알고 하는 소린가요?”
“굶어 죽는 사람은 없다면서? 아, 농민들은 사람이 아니었던가? 식량이 남아도는 행성에서 아사자가 나오는 이유를 모르겠다니까. 아주 웃기는 일이지. 식량이 남아도는데 어디선 굶어 죽는 사람들이 넘쳐나니 말이야.”
참 재미있는 일이다. 식량 총 생산을 보면 분명 먹고 남아도는 식량이 있고, 수출도 막힌 상황에서 그것들이 남아 도는 것이 분명한데 왜 굶어서 죽는 이들이 생기는 걸까?
또 굶어 죽는 이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걸 막지 않는 이유를 모르겠단 말이지. 도대체 쓰레기로 버리는 식량과 먹지 못해 죽어야 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는 걸까?
아,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하네. 율티 저 여자를 봐서 그런가? 그냥 적당히 게이트를 설치해주려던 마음이 싹 사라지네?
맞아. 여기 나올 때까지는 그 행성의 내부 사정 따위는 별로 고려하지 않으려고 했다. 적당히 수준 낮은 게이트 하나 설치해 주면 알아서 교역 행성과 거래하며 잘 살겠지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까 그게 하기 싫어진 거다.
변덕?
맞다. 변덕이다.
결국은 율티를 보면서 별다른 악감정이 생기지 않는다고 했던 것도 실제론 거짓말이었던 거다. 지금과 같은 결론을 낸 거 보면 아주 많이 불쾌했던 거다.
아, 그래. 나 속 좁다. 아주 좁아!
“이거 행성 분류표라도 만들어야겠어. 기준을 정해서 점수를 주고 그 점수에 미치지 못하는 행성에는 지원이고 뭐고 딱 끊고 게이트 사용도 중단시키고 그래야지. 이건 뭐 아무데나 게이트를 만들어 주다보니까 엉망이네.”
나는 율티가 듣는 앞에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다시 생각을 해 봐야겠어. 다음에 다시 보지.”
“뭐라고요? 어떻게 이렇게 회의를 마칠 수가 있죠?”
“그건 미안해. 지금 생각하니까 게이트 설치에 대한 기준이 필요할 것 같아. 아무래도 행성 도덕성이란 개념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 게이트는 인류를 위한 내 봉사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봉사를 받을 정도의 가치가 행성에 있는지를 살펴서 점수를 정하고 그에 맞는 게이트를 설치해 주는 게 좋을 거 같거든. 이를테면 독재, 억압, 빈부격차, 법치, 도덕성, 윤리의식 등등을 고려해서 점수를 매기면 될 것 같지 않아?”
나는 율티에게 그렇게 말하고 살짝 웃어주고 등을 돌렸다.
“이, 일부러 그러는 거죠? 나에 대한 감정 때문에!”
율티가 내 등에 대고 악을 쓴다.
“아니. 그런 아니야. 물론 당신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맞는데 만약 당신 행성이 정상적이었다면 나는 당신이 총독으로 있는 그 행성에 분명히 게이트를 만들어 줬을 거야. 그런데 당신의 행성은 내가 그런 호의를 베풀기엔 너무 문제가 많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야. 총독 당신 때문이 아니지.”
나는 그렇게 말하고 회의장을 나와 버렸다.
뭐라고 악을 쓰건 말건 내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 연구원들에게 기준을 만들어서 행성별로 점수를 내 보라고 해야겠다.
이렇게 또 한 가지 일에 규범과 규칙을 만들게 되는구나. 점점 일에 틀이 잡히는 것 같다. 다 경험인 거지 뭐. 그리고 나아지고 있다는 소리일 테고.
그렇다고 그런 일을 내가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아무렴. 자잘한 일은 아랫사람에게 시키는 거지. 아무렴. 그럼 당분간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이런 문제로 회의를 할 일도 없어지는 거네?
아, 빨리 집에 가야 한다. 우리 마눌 지금 집에서 나를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다. 여유가 남으니까 당분간 우리 마눌 곁에 붙어 있어야지. 후훗.
그런데 오늘 아침에 나올 때에 뭘 먹고 싶다고 했더라? 빨간 사과였나? 노란 레몬? 훈제 닭?
아, 홍시! 그게 먹고 싶다고 했지. 그럼 그게 지금 어디서 나나? 어느 행성으로 가야 맛있는 홍시를 딸 수 있으려냐? 공해가 없는 곳으로 가야 할 텐데? 그리고 행성의 기운이 왕성한 그런 곳이 좋을 거야. 음음 룰루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