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GATE RAW novel - Chapter 90
화
“그래도 세이커 님은 괜찮아요. 포포니 님도 괜찮죠. 일단 세이커 님은 디버프가 이거라서 굳이 사람들과 호흡을 맞출 이유도 없죠. 그냥 멀리서 디버프만 해 줘도 감사인사가 바로 나올 겁니다. 거기다가 우리 포포니 님은 이미 단장님께 실력을 인정받은 분이시니까 언제든 끼어들고 싶으면 말씀만 하시면 되죠. 우리 단장님이 여기 있을 때에는 단장님이 리더거든요.”
하아, 그 인간이 여기서 리더라고? 그거 가지고 나한테 뭐라고 하면 당장 여길 떠야지. ‘리더님의 말씀이다. 형아라고 불러라.’ 뭐 이러면 당장!
“어 여기 있었어? 하하하. 동생 들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여기선 리더야. 그런 의미에서 리더인 내게 형아라고 불러보는 게 어때?”
주, 죽일까? 죽일 수 있을까?
갑자기 살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끼는데 눈치 빠른 알프레가 세바스찬을 끌고 간다.
“이거 놔. 동생에게 형아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이거 놓지 못해?”
“그보다 세이커님에게 칼을 먼저 맞을 겁니다. 제발 그만 좀 놀리십시오.”
“왜 그래. 알프레. 재밌다고 너도 그랬잖아. 발끈하는 것이 매력이 있다…읍읍.”
아, 환청이 들려, 환청이야.
“남편, 저 둘이 사귀는 거야?”
“글쎄. 요즘 보니까 성향이 그 쪽인 거 같기도 하고.”
“남편 무서워. 저 사람들하고 놀지 말자. 응?”
“그래. 그러자. 포포니. 나도 왠지 뭔가 위협받는 느낌이다.”
나는 포포니를 껴안았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했다. 그것이 제6 임시 거점의 첫 날이었다.
“반가워요. 난 굴리야라고 해요.”
굴리야. 한 번 들었던 이름이다. 제6 임시 거점에서 디버프를 잘 하는 정신 능력자라고 했다. 그런데 세바스찬이 내 디버프가 굴리야보다 나을 거라고 해서 기사단 사람들을 흥분시켰었다.
“네. 세바스찬씨에게 굴리야란 분이 디버프를 잘 하신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머, 세바스찬 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아이 참.”
이건 또 뭐냐? 몸은 왜 비비 꼬는데? 설마 이 여자도 세바스찬 바라기 뭐 이런 거였냐?
“그런데 어쩐 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안면도 없는데요.”
“어머, 까칠하시기는 원래 성격이 그러신 모양이구나. 뭐 이해해요. 보니까 요즘 세이커씨에게 좀 안 좋은 쪽으로 흐르는 일이 많더군요. 그럼 그렇게 될 수 있죠. 아참, 제가 찾아 온 것은 서로 디버프에 대해서 이야기를 좀 할 수 있을까 하고 온 거예요. 특별한 방법이 있다면 서로 나누면 좋지 않을까 하고요.”
디버프에 대한 이야기라. 뭐 나쁘진 않을 것 같다.
“그게 좋겠군요. 하지만 저는 연합 상점에서 기본 디버프를 배운 후로 줄곧 혼자서 발전시킨 디버프라서 체계도 없고 막무가내 식인데요?”
“어머나. 그게 더 좋죠. 기본에서 발전시켰다니 얼마나 어떻게 어느 쪽으로 성장을 시켰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지 않겠어요? 저는 사실 기본에서 출발해서 중간에 새로운 기술을 접목을 시켰거든요. 그래서 위력은 좀 나아진 것 같은데 거기서 발전이 멈춘 거죠. 기본형은 계속 성장이 가능한데 기술 접목을 시킨 이후에는 사실 성장이 거의 멈췄어요. 거의 변화가 없죠.”
“거의라는 건 성장을 하긴 한다는 건가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런데 사람들이 느낄 정도는 안 되니 문제죠. 특히 보라색 등급에는 전혀 통하지가 않아요.”
“그건 저도 그럴지도 모르죠. 저는 아직까지 보라색 등급은 본 적도 없으니까요. 제 디버프가 보라색 등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요. 안 될 확률도 있죠. 남색 등급에 효과가 좋다고 보라색에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을 거란 기대는 잘못된 거죠. 디버프 하시니까 알겠지만 등급이 올라가면 몬스터의 생체 에너지 방어 체계 자체가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요? 훨씬 견고하죠. 그걸 뚫고 들어가려면 정말 힘들죠.”
“아 잠깐만요.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저기 좀 앉아서 이야길 하죠.”
굴리야는 나를 바위를 깎아서 의자를 만들어 놓은 곳으로 데리고 가서 앉혔다. 그리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 뚫고 들어간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는 거죠? 저는 녹이고, 아니면 동화 되서 들어가는 그런 느낌으로 디버프를 쓰거든요? 그건 이런 식이죠.”
굴리야가 손을 들어서 양 손 안에 디버프를 발생시켰다. 범위를 축소해서 펼친 것이다.
나는 그것을 에테르 감지 능력으로 살펴보았다.
확실히 내가 쓰는 방법과는 다르다.
“저는 이런 식입니다.”
나도 일정 범위에 디버프를 형성해서 굴리야에게 느끼게 해 주었다.
“어머나 확실히 다르네요. 뭐랄까 이건 공격적이냐 회유적이냐의 차이 같아요.”
“비슷한 느낌이네요. 전 싸워서 뚫고 들어가는 쪽이고 굴리야님은 달래서 동화하는 쪽이군요.”
“맞아요. 그거예요.”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내 소매를 잡아당기는 손이 있다. 포포니다.
“어! 어서 와. 여긴 굴리야씨. 디버프를 쓰시는 분인데 나하고 쓰는 방법이나 그런 게 달라서 서로 배울 게 있을 것 같아서 토론 중이었어. 잘 갔다 왔어?”
음 포포니가 어딜 갔다 왔냐고? 거기 있어 꽃밭이라고. 응? 몰라? 그냥 꽃 따러 갔다 왔다니까? 그래도 모르면 주위 사람에게 물어 보고 그래도 모름 말아.
“으응.”
포포니는 어정쩡한 대답을 하고는 내 곁에 붙어 앉는다.
“어머나 이 분이 그 소문의 포포니 님이구나? 우리 세바스찬 님께서 제수씨라고 부른다죠? 호호호. 여기 세이커 님은 동생이라고 부르고 말이죠. 반가워요. 난 굴리야라고 해요.”
“네에.”
포포니는 여전히 대답이 건성이다.
“호호, 걱정하지 말아요. 난 여기 세이커님께 관심 없어요. 전 오로지 세바스찬 님을 바라볼 뿐이죠. 지금 세이커님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도 좀 더 디버프를 잘 하게 되어서 세바스찬 님께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죠. 오호호. 세바스찬 님은 정말…멋있어요. 흐응.”
하아, 이건 또 뭐 하는 짓인지. 디버프에 집중은 안하고 헛소리나 하고 있다.
포포니가 다시 소매를 당긴다.
‘좀 이상한 거 같아. 남편.’
조그맣게 귀에 대고 속삭이는 포포니의 숨결이 간지럽다. 하지만 그 뜻에는 나도 전적으로 동감이다. 그래서 고개를 크게 몇 번 끄덕여 줬다.
“자, 집중하시고 다시 이야기를 해 보죠. 그러니까 저는 기본적인 디버프에서 처음 범위 디버프를 만들고 그 다음에 개별 디버프의 강화를 하게 되었는데 그 방법은….”
나와 굴리야는 그렇게 다시 디버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그것은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뛰어난 디버프 두 가지를 서로 비교하며 변화를 시켜보기도 하고 두 디버프를 서로 섞어서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정말 이럴 줄 알았으면 유명한 디버프 능력자들을 찾아다니면서 서로 비교도 하고 연구도 하고 기술 교류도 하고 했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요. 그럼 지금보다 더 나은 디버프를 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맞습니다. 저도 그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뛰어난 디버프 능력자를 찾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우리 정도 되는 사람이라면 모두 최전방 임시 거점에 있을 테니까 말이죠. 그들을 찾아서 모두 만나보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것 같네요.”
“아이. 세바스찬 님만 아니면 그냥 다른 거점 도시로 가보는 건데 아쉽네요. 그래도 세이커 님은 자유로우신 분이니까 한 번 해 보세요. 이 제3 데블 플레인에 있는 유명한 디버프 능력자를 다 만나보고 새로운 디버프 기술을 개발하는 거예요. 멋지지 않아요?”
참 소녀같은 발상이지만 또 그게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굴리야와 내가 서로 교류를 하면서 확인했다. 그러니 저 말대로 한 번 돌아다녀 보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이건 해야 할 때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