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Football Talents Are Mine RAW novel - Chapter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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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통곡의 벽(3)
대인마크 뚫림.
강하다, 교묘하다, 거침없다.
지오르지오 키엘리니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좀 더 자세하게 파고들면 그의 장점은 끝도 없다.
187센티 88킬로의 거구에서 나오는 강력한 파워와 스피드.
그에 못지않은 지능적인 플레이.
몸을 불사 지르는 투지와 승부욕 그리고 대담성이 공존하는 멘탈리티.
뿐만 아니라 우월한 예측력과 뛰어난 수비위치선정능력, 더해 빼어난 헤딩실력까지 겸비하고 있어 공중 볼에도 강한 면모를 보인다.
민첩성이나 순간적인 스피드는 다소 떨어질지 몰라도, 순수 주력만큼은 좌측풀백 출신답게 중앙 수비수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
중앙 수비수치고는 소화할 수 있는 포지션도 꽤 다양해서, 토너먼트전에서 강팀을 상대할 때 진정 빛이 난다.
길을 지나가는 축구팬에게 이 시대 최고의 수비수를 뽑으라한다면, 이탈리아에서는 말디니와 네스타의 이름이 나올 것이고, 잉글랜드에서는 리오 퍼디난드와 존 테리가 언급될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점을 단순 대인방어로 삼는다면, 최근 들어 기량이 급증하고 있는 키엘리니를 꼽을 것이다.
더욱이 나이가 고작 스물넷밖에 되지 않은 그는 아직도 성장할 가능성이 남아있었다.
세상에 이렇게까지 다재다능하고 완벽한 선수가 또 있을까.
그럼에도 그의 장점은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칼치오폴리.
2년 전 유벤투스가 승부조작스캔들로 강등되었을 당시, 인테르와 AS로마 등 여러 빅 클럽의 러브콜을 받았음에도 잔류를 선언했던 로맨티스트이다.
허나 신은 공평하다고 하지 않은가?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고, 그에게도 단 하나의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Figlio di puttana(저 육시랄 놈)!”
상당히 거친 멘탈이 문제라면 큰 문제였다.
유벤투스의 전설 ‘에드가 다비즈(Edgar Davids)’가 투견(鬪犬)이라 불렸다면, 키엘리니는 광견(狂犬)이었다.
이탈리아 수비수들 중 터프하지 않으며 미치지 않은 선수가 얼마나 있겠냐마는, 키엘리니는 그 강도가 좀 높은 편이었다.
물론, 깡패 ‘페페(Pepe)나, 필드 위의 킬러 ‘마테라치’ 같은 급보다는 한참 밑이었으나, 그래도 이 정도면 꽤 알아주는 수준이었다.
“미쳐 돌아버리겠네.”
당장 우호영에게 달려가 멱살을 잡고 경기장 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좀 특이한 면이 있었다.
마냥 터프한 성격인 것이 아니라, 평소에는 상당히 순했다.
경기 중에만 불같은 남자가 되는, 문자 그대로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그리고 또 신기한 게, 멘탈 관리는 알아서 잘한다.
이렇게 욕 한 번 뱉고 나면 다시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진면목.
차분하고 참을성이 있다.
‘정신 차리자. 팬들도 아직 나를 믿고 있어.’
키엘리니를 대놓고 비난하는 관중들은 없었다.
방금 전 득점상황은 누가 봐도 키엘리니의 실책이라기보다는, 우호영이 잘해서 벌어진 일이었으니까.
그런 일로 자책하면서 경기를 포기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남은 시간은 70분씩이나 된다.
상대가 잘한다면, 자신이 더 잘해서 막을 궁리를 해야 한다.
그게 현재 키엘리니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한 선수가 다가와 격려의 목소리를 내주었다.
“키엘로.”
“아, 주장.”
유벤투스의 영원한 판타지스타이자 주장.
빅 클럽의 주장으로서 가져야할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가진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Alessandro Del Piero)였다.
34세에도 여전히 경이로운 실력을 가진 그는 우아하다는 평을 받는 선수답게 인격도 훌륭했다.
“너는 충분히 잘했어. 녀석이 플레이가 환상적이었을 뿐이지. 그리고 한 번 당했으니 앞으로는 녀석의 플레이를 막을 수 있을 거야.”
“주장은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그럼.”
델 피에로는 살짝 거짓말을 곁들여 말했다.
“너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어. 분명 놓친 게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게 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그럼 네 우상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
우상이라.
키엘리니의 우상이라 한다면 한 명.
AC밀란의 파울로 말디니(Paolo Maldini)였는데, 그를 제외하고 굳이 꼽자면 당연히 파비오 칸나바로였다.
선수 생활을 시작한 뒤로 그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배웠으니까.
그에게 있어서 칸나바로는 스승이자 후계자나 다름없었다.
‘그럼 내가 만약 칸나바로였다면······.’
생각에 잠기길 잠깐.
‘염병할. 그였어도 못 막았을 것 같은데. 뭐 같네 진짜.’
어웨이석에서 난해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우호영을 바라보던 키엘리니는 속으로 울화를 터트렸다.
느낌이 싸했다.
솔직히 말해서 우호영이 라울이나 반 니스텔루이처럼 위용이 있다거나, 수준이 높다고는 말 못하겠다.
당장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리오넬 메시가 엄청난 평을 받지만, 그들이 지단이나 호나우지뉴만큼 대단한 평을 받지는 못한다.
당장의 실력은 그들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르나, 전체적인 커리어에서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거기에서 비롯되는 경험과 연륜은 결코 무시할 게 못 된다.
고작 한 시즌? 한 달? 한 경기?
반짝 잘해서는 어림도 없다.
지단이나 호나우지뉴가 단 한 시즌만 반짝 잘했더라면 레전드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겨우 한 번이다. 20분 동안 나한테 죽 쓰다가 딱 한 번 당한 것뿐이야. 재수 없게도 그 한 번에 당하고 말았지만.’
키엘리니는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며 우호영을 막아낼 궁리를 했다.
라울과 반 니스텔루이는 다른 선수들이 담당하고 있으니 괜찮았다.
선봉장의 역할을 맡고 있는 공격의 중추 우호영만 공략할 수 있다면, 레알 마드리드의 전술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길 잠깐.
키엘리니의 눈에 총명함이 깃들었다.
‘그래, 이번엔 역으로 끈질기게 달라붙는 거야. 공격과 방어는 한 끗 차이니까. 집중하면 된다.’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키엘리니는 허공에 주먹을 휘두르면서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그것을 시험해볼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전반전이 30분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별 다른 변화는 없어 보이는데요.] [중원은 여전히 전쟁터를 방불케 합니다. 전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심해졌어요. 우호영의 선제골 이후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습니다.] [그러네요. 우호영에게 연결되어야할 공이 중원에서 모두 차단되고 있어요. 중원일대를 돌아다니고 있는 네드베드에게 말이죠.] [하지만 지단도 만만치 않습니다. 양 팀의 노장들이 힘을 써주는군요.]중원은 살벌했다.
키가 191센티에 달하는 모하메드 시소코(Mohamed Sissoko)가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중원을 쓸어 담고 있었다.
그야말로 진공청소기가 따로 없었다.
특히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형 미드필더 디아라와 정면 대결을 펼치며, 보기만 해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힘 싸움을 겨뤘다.
“이런 양아치 같은 새끼!”
“어이, 그걸 몸이라고 키웠냐? 그딴 식으로 해서 공이나 한 번 뺏을 수 있을 것 같아?”
양 팀의 허리를 맡고 있는 두 흑인은 천부적인 운동능력뿐만 아니라 살벌한 입담으로 서로를 공격했다.
이는 둘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었다.
“맡아! 공간을 내어주지 말라고! 보이면 무조건 잡아! 죽어도 여기서 죽는 거야!”
평소에는 소심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경기장에만 들어서면 폭군이 되는 파벨 네드베드.
퍼억!
“이런 개 같은!”
“약해빠졌군.”
네드베드는 전투적인 자세로 스네이더를 공략했다.
영악하고 투지 넘치는 그의 성향이 온전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 시각 키엘리니는, 우호영의 집중력을 흐트러뜨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어이, 동양인. 바나나라도 먹고 온 거냐? 신성한 그라운드 위에 고약한 냄새가 풍기잖아.”
하지만 호영은 답이 없었다.
“얌마. 귀먹었어? 아니면 정말 귀머거리라도 되는 거야?”
그럼에도 호영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기라도 한 것인지 그쪽으로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허나 완전한 포커페이스는 아니었다.
참으려하는 것이 우호영의 얼굴에서 보였다.
“이 새끼 이 꽉 물은 거 봐라. 너도 지금 이 상황이 웃기지?”
그러나 대답은 여전히 나오지 않았다.
반응이 나와 줘야 뭐라도 이어갈 텐데, 그런 게 없으니 키엘리니로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래서 강도를 높였다.
“이런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동양인 놈한테 무시당하는 날이 올 줄이야.”
키엘리니는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었다.
착하고 순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
다만 이 모든 행위는, 도발이라는 명분하에 치러지는 것이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무려 챔피언스 리그였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고 싶은 마음뿐인 키엘리니였다.
그것은 호영 또한 마찬가지.
곧 은퇴하게 될 네드베드의 재능이 걸려있는 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경기였다.
그래서 도발에 놀아나지 않았다.
사실 평소였다면 같이 옥신각신하며 역으로 도발을 걸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젯밤 훈련 당시.
‘칸나바로가 그랬지. 키엘리니는 경기가 안 풀리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입으로 상대방의 기를 죽인다고. 그리고 조금씩 이점을 취한다고.’
그것이 키엘리니의 장기이자 노하우라고, 칸나바로가 알려주었다.
그렇기에 호영은 놀아주지 않았다.
키엘리니의 도발을 철저히 무시하며 대담하게 맞섰다.
다만 포커페이스에 능하지는 않았기에, 가끔 흔들리는 멘탈이 표정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땐 스스로 주문을 걸라고 했지.’
축구선수들이 가장 애용한다는 심리기술,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호영은 자기최면을 걸었다.
“호··· 우···.”
“음? 뭐라고?”
승리로 향하는 주문.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타아악!
“흡!”
“···!!”
[우측 측면으로 길게 빠지는 지단의 패스!] [키엘리니가 살짝 늦게 반응했는데요! 과연 따라잡을 수 있을지!] [우호영! 유니폼을 잡아끄는 키엘리니를 간발의 차이로 벗겨버립니다!]“씨발.”
놓쳤다.
역으로 걸리고 말았다.
도발로 인해 정신력이 흐트러진 건 호영이 아닌 키엘리니였던 것이다.
반면에 호영은 멀쩡히 달리고 있었다.
먹이를 포착한 짐승의 그것처럼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면서, 중앙에서 자리를 찾아가는 반 니스텔루이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공중으로 크로스가 올라간 것은 그 직후였다.
타악!
“아.”
키엘리니는 이번에도 역시 직감했다.
망했다는 것을.
그리고 깨달았다.
우호영이 올린 크로스가 깔끔했다는 것을.
철렁!
[골! 반 니스텔루이가 멋진 헤딩골로 유벤투스의 골문을 열어젖힙니다! 우호영의 침투 이후 크로스도 아주 명품이었습니다!] [아~ 키엘리니로서는 상당히 아쉽겠는데요. 살짝 방심한 틈에 간발의 차이로 우호영을 놓치고 말았어요.]레알 마드리드의 두 번째 골.
점수는 2대0.
무엇이든 막아내야 하는 방패는 제 기능도 하지 못한 채 부서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앞에.
어시스트를 만들고 온 우호영이, 절망에 빠져있는 키엘리니의 앞을 지나갔다.
그 자리 앞에 서서는 전광판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공중 위로 뛰어올라 포효했다.
키엘리니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호영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