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번화가 (1)
던전 섬의 전체 면적은 생각보다 넓지 않고, 학교 부지와 번화가 사이의 거리도 제법 가까운 편이다.
그러나 막상 도보로 가기에는 다소 귀찮은 거리이기도 해서, 둘 사이를 정기적으로 오가는 셔틀버스가 존재한다.
때마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고 우리는 버스에 오르는 계단을 밟았다.
내부에는 빈 좌석이 잔뜩 있었다.
버스에 탄 학생들의 수는 겨우 열 명 안팎이며, 그 학생들도 전부 2, 3학년 선배들이다.
한창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1학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정이 여유롭기도 하고, 저 중 대부분은 우리처럼 놀러 가는 게 아니라 의뢰를 수행하러 가는 까닭이다.
이런 이유로 선배들 몇몇이 ‘1학년이 벌써 번화가를 나가?’라는 뜻이 담긴 시선을 보내기도 했으나, 나도 서예인도 남 시선을 신경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서예인이 창가 쪽, 내가 복도 쪽 자리를 잡고 나란히 앉자, 곧 셔틀버스가 고급 리무진을 방불케 하는 매끄러움을 유지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
서예인이 창문으로 반쯤 얼굴을 내밀고 바깥을 내다보았다.
금방이라도 잠들 것 같은 평소의 눈은 어디 가고 눈빛이 맑고 초롱초롱하다.
그만큼 설렌다고 받아들이면 되겠지.
일단은 억지로 말을 붙이기보다 바깥 풍경을 만끽하게 두기로 하고.
나는 잠시 나만의 상념에 잠겨 들었다.
* * *
전날 밤.
안정미와 만나서 대화를 나누었다.
안정미는 나를 보자마자 감사 인사부터 건넸다.
“김호 님 덕분에 금주 멘토링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서예인이 제법 고된 수련을 꿋꿋하게 잘 따라왔을 뿐만 아니라, 공략전까지 고득점을 내면서 아주 훌륭하게 끝마쳤단다.
안정미의 표정에 흡족함과 뿌듯함이 듬뿍 묻어나왔다.
그리고 나는 항상 그렇듯 겸손을 떨었다.
“저는 열심히 하라고 한마디 한 것밖에 없는데요. 고생은 집사님이 다 하셨죠.”
“그렇지 않습니다. 그 한마디가 아가씨에게, 그리고 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김호 님은 모르실 겁니다.”
안정미의 마음속에 나는 사기 증진 토템쯤으로 자리매김한 듯했다.
감사 인사는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아가씨의 성장에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아끼지 않으시는 점, 다시금 미래전략실을 대표해서 감사드립니다.”
그 어조가 평소보다 한층 진지했기에, 이번에는 겸손을 떨면서 대화의 흐름을 끊지 않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과연 안정미의 손이 정장 안주머니로 들어가더니,
“이 감사를 표현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 끝에—”
고급진 쿠폰 한 장을 꺼내 나에게 건넨다.
[교환권 – 귀쟁이 마도구점(B)]“—준비했습니다.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번화가에 자리한 .
제법 강력한 마법 아이템들을 많이 구비해 두었지만, 가격대가 하나같이 만만치 않아 학생 신분으로 이곳에서 뭘 구매하기는 다소 어려운 편이다.
그러나 이 쿠폰을 쓰면 그 마도구점에서 B랭크에 준하는 아이템을 무엇이든 하나 들고 나올 수 있다.
단순히 B랭크 아이템을 주기보다 나에게 선택권을 넘긴다는 점에서 훨씬 유용하다.
‘역시 베풀고 살았더니 다 돌아오는군.’
첫 만남 전부터 예상했듯, 집사님은 고마움을 아는 사람이었다.
나는 사양하지 않고 쿠폰을 받아 들었다.
“감사히 받겠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필요한 게 많아서요.”
“김호 님이라면 분명 유용하게 쓰시겠죠. 그리고 하나 더,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안정미가 귀쟁이 쿠폰(B)을 한 장 더 건네며 말했다.
“겸사겸사 아가씨의 장비도 하나 골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어렵지 않죠. 그런데……. 혜성그룹의 저력이라면 굳이 저기를 이용할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요.”
그 귀하디 귀한 깃털걸음 스킬북조차 척척 구하는데, B랭크 마도구가 문제일까.
마음만 먹으면 일부 A랭크까지도 넘볼 수 있을 거라 예상한다.
그런데 이런 저력을 가진 혜성그룹이 많고 많은 상점 중에서 꼭 번화가를 이용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 뜻이 담긴 질문을 던지자, 안정미의 얼굴이 복잡한 빛을 머금었다.
“이제는 김호 님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아가씨 본인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요.”
서예인이 그토록 찬란한 재능을 갖고도,
그리고 혜성그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면서도,
이제서야 막 기초 스킬과 특성을 쌓아 나가기 시작하는 이유.
그건 바로 여태까지는 뭘 배우고 싶다는 의욕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살학원에 입학한 뒤, 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겪으며 아주 조금씩 생겨나는 중이다.
“대화의 흐름 상 아이템에도 별 관심이 없겠네요.”
“예, 웬만해서는 어떤 물건이든 쉽게 애착을 갖지 않으시는 편입니다. 그런데…….”
안정미의 얼굴이 이번에는 다른 의미로 복잡하게 변했다.
“그런데……. 김호 님이 선물하신 쿠션은 다르더군요.”
깃털뱀 제단을 공략하고, 그 보상인 랜덤박스에서 B랭크 [깃털 쿠션]이 튀어나왔었다.
놀라울 정도의 고등급 아이템이었지만, 나한테는 그다지 중요치 않은 생활 계열인 데다, 피로 해소 등 숙면에 도움이 되는 옵션들이라면 서예인에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선물로 줬었다.
며칠 전 랜덤박스에서 나온 [형태변환 스크롤 – 생활(B)]도 마찬가지였고.
“잘 쓰고 있나 봐요.”
“잘 쓰시는 정도가 아닙니다.”
잘 때 꼭 끌어안고 자는 건 기본이고, 어지간해서는 둘을 떼어 놓기가 쉽지 않단다.
안정미가 아침마다 서예인을 깨우는 방식도 조금 달라졌는데, 기존에는 서예인을 약하게 흔들면서 ‘아가씨, 아침입니다. 일어나십시오.’를 수십 번 반복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쿠션을 슬쩍 빼앗기만 해도 깬다는 것이다.
물론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만, 그것이 극한직업 집사의 역할 아닐까?
안정미가 나에게 교환권을 주는 의도도 알 것 같았다.
“김호 님께서 직접 골라 주신다면 아가씨에게 더 뜻깊은 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래전략실에서 직접 주는 것과 나를 통해서 주는 것은 얼핏 같아 보이지만 느낌이 확연히 다르니까.
그렇게 해서 서예인이 쿠션에 보이는 애착의 절반만 마도구에 보여도 성공이다.
뿐만 아니라 나는 서예인의 성장도를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니, 거기에 알맞은 아이템을 선별하기에도 적격이었다.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서예인이 하나라도 더 좋은 장비를 갖출 수 있다면 기꺼이 협력할 생각이었다.
교환권이 생긴 이상 어차피 마도구점은 행선지에 포함이니, 들리는 김에 같이 고르면 된다.
“알겠습니다. 신경 써서 골라 볼게요.”
“거듭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건 제 작은 성의입니다.”
또 안정미의 품에서 쿠폰이 나왔다.
앞선 마도구 교환권과 비슷하게 고급스럽지만, 이건 디자인이 더 아기자기하고 귀엽다.
번화가 제과점 쿠폰.
학생 식당에서 종종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들여오는 가게가 바로 이곳이다.
이 던전 섬에서는 세 손가락에 꼽히는 맛집이라 인기가 엄청나고, 그만큼 수량이 매우 한정적이라 아무나 못 사 먹는다.
케이크 외 다른 것들도 마찬가지고.
하지만 쿠폰이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
“뭐 먹을까 고민은 덜었네요. 이거 구하기가 은근 쉽지 않은데, 감사히 쓰겠습니다.”
“김호 님의 노고에 비하면 소소합니다. 멀리서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
우리는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 * *
회상이 끝날 때쯤 뭐가 내 손등을 톡톡 건드렸다.
다음으로 소매를 약하게 슥슥 잡아당기길래 시선을 돌려보니, 바깥을 내다보던 서예인이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미끄러지듯 뒤로 움직이던 창밖 풍경도 정지한 상태.
“다 왔네.”
“응.”
셔틀버스에서 내려 번화가에 들어섰다.
번화가는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초입부터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인파의 물결에 합류하면서 서예인에게 물음을 던졌다.
“가 보고 싶은데 있냐.”
– 도리도리,
예상대로 서예인이 무슨 특별한 계획을 세웠을 것 같지는 않았다.
안정미가 개입했다면 하나부터 열까지 빈틈없는 동선을 짜고 예약까지 마쳐 두었을 테지만, 우리가 번화가로 나가는 주된 목적이 휴식인 만큼 그렇게 전투적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따라서 쿠폰 몇 개만 주고 나머지는 우리에게 전부 맡긴 거고.
나 역시 마도구점을 포함해 몇몇 핵심적인 포인트에 들리는 것 외에는 굳이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또 서예인에게 질문.
“아직 배는 별로 안 고프고.”
– 끄덕,
그렇다면 결론.
“일단 걸읍시다.”
“응.”
관심 가는 대로, 발 닿는 대로 돌아다녀 본다.
그렇게만 해도 볼거리가 꽤 되거든.
“……!”
셔틀버스를 탔을 때와 마찬가지로, 서예인은 여태까지 내가 본 모습 중에 가장 활발해 보였다.
속도를 매기자면 ‘아주많이매우느림’에서 ‘매우느림’ 정도의 급격한 변화.
느긋하게 걷다가, 신기한 것이 시야에 잡히면 걸음을 늦추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리고 신기한 것에 대한 관심 지수가 더 상승하면 내 소매를 슬슬 잡아끈다.
“……!”
“어, 뭔데.”
그러면 나는 못 이기는 척 따라가서 그 신기한 것을 같이 살펴보는 식이었다.
우리는 줄줄이 늘어선 노점상들을 구경하고,
솜사탕 하나를 사서 나눠 먹었으며,
다양한 길거리 공연들을 구경했다.
버스킹을 나온 바드들은 물론이요,
허공에 한 치쯤 붕 떠오른 채 현란한 춤사위를 선보이는 댄서,
얼음 기둥을 세운 뒤 즉석에서 조각상을 만드는 마법사…….
개중에 가장 관중을 많이 끌어모은 것은 마술쇼였다.
가면을 쓴 신사가 자그마한 간이 단상 위에 올라서서 과장된 몸짓을 보인다.
말은 한마디도 안 하고, 손등에 올라앉은 비둘기를 가리키며 ‘이 비둘기를 없애 보겠습니다!’라며 어필했다.
마술 모자에 비둘기를 집어넣은 뒤 힘주어 꾸깃꾸깃 접는 가면 신사.
주먹만 하게 구겨진 모자를 살살 흔들자 갑자기 부피가 커지며 커다란 천으로 펼쳐진다.
그리고 바닥을 평평하게 덮은 다음 한순간 확 젖히자,
– 푸드드득!
비둘기 수십 마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 와—
관중들이 탄성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마법과 트릭을 적절하게 섞은 쇼였다.
“…….”
반면 서예인은 시종일관 심드렁한 기색이었다.
눈길이 머무는 곳도 마술 쇼가 아니라, 트릭에 쓰이는 도구나 토끼, 비둘기 등을 숨겨 놓은 곳이다.
‘얘가 눈이 좋기는 하지.’
아마 이번에도 트릭들을 죄다 간파한 모양이다.
빠르게 흥미가 사라졌는지 서예인이 등을 돌리려는 찰나,
간이 단상에 있던 가면 신사가 불쑥 나타나 앞을 가로막더니, 점잖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건넸다.
빤히 마주 보는 서예인.
가면 신사는 손짓 발짓으로, 서예인은 끄덕끄덕, 도리도리로 무언의 의사소통을 나누었다.
“……? ……!”
“……. …….”
도무지 해석할 수가 없네.
어쨌든 두 사람은 무언의 의사소통 끝에 무언의 결론에 도달한 듯했다.
가면 신사가 트럼프 카드 한 세트를 꺼내 보이더니,
– 촤라라락,
카드를 앞면이 보이도록 부채처럼 펼치고, 얼른 하나 뽑아 보라는 듯 내밀었다.
서예인이 대충 한 장을 뽑자,
가면 신사가 그것을 다시 트럼프 속에 집어넣고,
현란하게 촤라락 뒤섞은 다음 세 뭉치로 나눠서 다시 내밀었다.
어디에 있는지 한번 맞춰 보라는 뜻.
“…….”
그러나 서예인은 카드 뭉치는 아예 본 체도 하지 않고 신사의 정장 주머니를 쳐다보았다.
‘맞췄구만.’
신사는 뒤섞는 동안 카드를 몰래 빼돌려 숨겼고, 서예인은 그것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것이다.
한술 더 떠서 어디에 숨겼는지도.
“…….”
가면 신사가 들켰다는 양 이마를 탁! 치는 시늉을 하더니, 카드를 숨겨 둔 주머니에 대고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리고 우리를 처음 가로막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를 갖춰 허리를 굽힌 뒤 간이 무대로 되돌아갔다.
– 와—
우리는 재개되는 마술쇼를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그런데 조금 걷다가 서예인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제자리에 멈춰서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러자 조금 전 골랐던 그 카드가 예쁘게 반짝반짝 빛을 발하며 튀어나왔다.
히든 피스인 [행운의 트럼프 카드]다.
‘역시 얘는 뭘 해도 된다니까.’
지나가는 길에 가볍게 히든 피스를 주워 담는 실력자, 서예인 되시겠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의문이라면,
‘근데 저게 왜 번화가에 있지?’
가면 신사 쪽을 돌아보자, 가면 너머의 눈이 나를 마주 보며 찡긋 윙크를 한 것 같았다.
적대적인 부류는 아니긴 하지만…….
저거 이벤트 보스인데.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