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the supporters are hammocked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심층부 (2)
철 인형이 주먹을 뻗어 왔다.
고현우는 마주 달려들며 손에 든 주술검을 휘둘렀다.
일순간 허공에 금빛 궤적이 그려지고,
– 깡—!
주먹과 검이 충돌하며 철 인형이 반걸음 물러났다.
고현우는 그 기세를 살려 빠르게 전진하며 철 인형의 머리를 후려쳤다.
– 깡—!
철 인형의 신형이 옆으로 휘청 굽으며 쓰러졌다.
또 다른 인형이 길쭉한 쇠막대기를 휘둘러 왔다.
고현우는 내력을 검에 집중한 뒤, 놈의 목 부위를 강하게 찔렀다.
– 콱!
뒤로 나가떨어져 바닥을 구르는 철 인형.
고현우는 주술검을 허공에 가볍게 몇 번 그었다.
‘제법 손에 익었군.’
길이나 무게감 등이 철검과 많이 달라 처음에는 약간 어색했으나, 며칠간 철 인형들과 대련을 하며 감을 잡았다.
이제는 실전에도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으리라.
시간을 확인해 보니 벌써 아침.
오늘도 어김없이 트레이닝 센터에서 밤을 새웠다.
아직 수업까지는 시간이 꽤 널널하니, 특수연공실에서 마나 연공을 하다가 등교하면 될 듯했다.
하지만 그 전에 간단하게나마 요기를 해 두는 게 좋겠지.
오늘 아침 메뉴도 평소와 같이 칼로리바 아니면 벽곡단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공간을 뒤지던 고현우가 미간을 좁혔다.
‘불찰이군.’
벽곡단도, 칼로리바도 다 바닥나 버렸다.
근래 여러 일로 바빠서 채워 놓는 걸 깜빡한 것이다.
아무리 수련이 중요하다고는 하나 끼니를 걸러서는 안 되었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면 기량도 함께 무너지게 마련이니까.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하겠군.’
칼로리바 따위가 아닌 제대로 된 아침 식사를.
하산하여 용살학원에 입학한 이래로, 식도락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고현우의 마음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다만 실력을 배양하고 사문의 숙원을 이루는 목표가 우선이었기에, 아쉬워도 많이 참고 포기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아공간이 텅 비었다면, 학생 식당에서 칼로리바를 보충하는 김에 한 끼 식사 정도는 해도 괜찮을 것이다.
고현우는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트레이닝 센터를 나섰다.
밖으로 나오니 저 앞에 걸어가는 김호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 역시 밤새 수련을 했던 모양이다.
고현우가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오, 김 형.”
“일찍 나왔네. 평소엔 더 늦게 나오지 않나?”
“아침 식사를 하려고 말이오.”
“네가 웬일이냐, 아무튼 같이 가자.”
함께 발걸음을 옮기던 도중, 고현우는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서 소저는 오지 않소?”
김호와 서예인은 거의 매일같이 붙어 다니곤 했으니 당연히 오늘 아침 식사도 같이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물은 건데,
“벌써 먹었다네?”
김호는 자기도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답했다.
그러면서 서예인과 주고받은 메시지를 보여 준다.
[김호:밥?] [서예인:(도리도리 토끼 이모티콘)] [김호:먹었어?] [서예인:(끄덕끄덕 토끼 이모티콘)]“서 소저가 이리도 일찍? 별일이구려.”
고현우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서예인이 일찍 일어나는 건 그가 아침을 먹으러 학생 식당까지 가는 것과 비슷하게 드문 일이었다.
그러나 김호는 이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교실 가면 있겠지. 우리 밥이나 먹자고.”
아침 메뉴는 보통 삼각 김밥보다 몇 배는 큰 대왕 삼각 김밥.
안에는 한 움큼이나 되는 고기 폭탄으로 채워져 있었다.
고현우에게는 그야말로 호재였다.
‘운이 좋군…….’
효율을 중시하는 것은 두 남정네가 같았기에, 교실로 이동하면서 대왕 삼각 김밥을 먹었다.
도착할 즈음에는 모두 깔끔하게 빈손이 되었다.
3반에 도착하자 과연 서예인이 먼저 등교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익숙한 종이봉투가 들린 게 보인다.
동시에 고소한 냄새가 고현우의 코끝을 스쳤다.
‘과자로군.’
오늘 아침 식사를 따로 한 것이 이것 때문이었는가.
새벽같이 일어나서 쿠키를 구운 듯했다.
쿠키를 구운 이유도 어렵지 않게 짐작되었다.
김호가 엊그제 랜덤박스에서 나온 베개인지 쿠션인지를 선물이라고 서예인에게 줬는데, 나름대로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려는 모양이었다.
‘선재(善哉)로다, 선재로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고현우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흐뭇해하는 것도 잠시…….
김호가 쿠키를 입으로 가져가려는 찰나, 서예인이 슬며시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런 다음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이거 뭐 같아?”
“……!”
‘저 질문은!’
고현우가 속으로 기함했다.
자신에게 저 질문이 날아왔던 때를 회상해 보면,
– 이거 뭐 같아?
– 마치 도마뱀이 살아 숨 쉬는 것 같구려.
– …….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답했건만, 돌이켜 보면 매우 심각한 오답이었다.
언제나 무표정한 서예인의 미간이 꿈틀거리는 광경을 보게 되었으니.
그 결과 지금 자신에게는 과자는커녕 과자 부스러기조차 안 떨어지게 되었다.
이미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문제는 2차전이 벌어졌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2차전의 향방에 따라 김호 역시 자신과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고현우가 눈에 공력까지 집중해 가며 쿠키를 관찰했다.
초코칩 쿠키.
초코칩이 균등하게 박혀서 맛 부분에서는 이전보다 발전했다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미관적인 부분에서는 오히려 이전보다 퇴보한 느낌이었다.
‘실로 불가사의한 형태로다…….’
그나마 가장 흡사한 것을 꼽자면 물고기? 혹은 몸을 웅크린 토끼?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쪽이란 말인가?
확신하기 어려웠다.
“…….”
김호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듯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시간을 끌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도통 못 알아보겠다는 말과 같고, 그것은 오답이나 다름없으니.
시간제한이 걸린 셈이다.
“…….”
대답이 늦어지자 서예인의 낯빛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눈매가 알아보기 힘들 만큼 살짝 가늘어진 것도 같다.
‘지금 나서야 한다.’
김호가 마지못해 입을 열려는 찰나.
고현우가 두 사람 사이에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크흐흠……. 물고기가 제법 생동감이 있구려. 방금 호수에서 건져 올린 것 같소.”
그런 다음 곁눈질로 슬쩍 서예인의 반응을 살피니, 미간이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보인다.
오답.
그렇다면 남은 정답은 하나.
“토끼, 맞지?”
“……!”
서예인의 낯빛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다.
김호가 자신은 아무 고민도 안 했다는 양 매우 자연스럽게 쿠키를 입에 집어넣고 음미했다.
“맛있네. 실력이 더 늘었어.”
“더 먹어.”
서예인은 김호가 쿠키 하나를 해치우기 무섭게 다음 쿠키를 입에 물려 주었다.
여전히 고현우에게는 부스러기조차 떨어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떨어지지 않을 테지만, 그에게 후회는 없었다.
‘충분히 가치 있는 희생이었다.’
* * *
쿠키 모양 맞추기 챌린지는 고현우의 적절한 개입 덕분에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종종 느끼는 거지만 고현우도 눈치가 보통이 아니다.
다만 이번에는 운이 좋았고, 서예인의 일그러진 미적 감각이 발휘되는 한 언제든 3차전, 4차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두어야 할 것이다.
그 외에는 특별한 일 없이 금요일까지 흘러갔다.
2 대 2 대인전 보고서를 일필휘지로 써서 내고, 공략전 숙제인 던전 지도 그리기 역시 순식간에 그려서 제출했다.
앞으로도 필기 부분에서는 거의 만점을 먹고 들어갈 생각이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내내 트레이닝 센터에 틀어박혀 지낸 결과,
[‘코어’의 랭크가 상승했습니다. (D->C)]금요일에 맞춰 코어의 등급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만하면 심층부 던전에서 부족하지 않을 만큼의 마나량은 확보한 셈이다.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마쳤다.
[흑사방]에서 내가 원하는 보상을 얻기만 하면,‘드디어 무기다운 무기가 나오겠지.’
일전에 제1공방에서 만든 [부유의 철봉]을 꺼냈다.
부품의 수준에 비해 철봉을 이루는 금속의 질이 낮아 E랭크밖에 못 받았었다.
그 탓에 여태 별다른 활약을 못 하던 참이었고.
마나를 슬쩍 불어 넣자 미약한 상승 기류가 앞머리를 들어 올리고 사라졌다.
마치 나에게 빨리 제대로 된 본체를 구해 달라고 항의하는 듯했다.
‘조금만 기다려라.’
최고의 금속을 써서 만들어 줄 테니까.
* * *
금요일 밤.
던전동 근처에서 도둑 동아리 부원들과 고현우를 만났다.
당규영은 우리를 쓱 훑어보더니,
“다 왔냐? 가자.”
하고 태연하게 앞장섰다.
고현우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선 고개를 갸웃했다.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이렇게 묻는 것 같다.
‘무언가 잊은 것 같지 않소?’
월요일에는 나름 넥타이핀도 바꾸고 아무개 뱃지도 달았는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으니 준비가 부족한 느낌이 드나 보다.
심지어 오늘은 던전동 심층부라는 지극히 위험한 곳으로 향하는데 말이다.
나는 길게 설명하는 대신 앞장서는 도둑들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계속 지켜봐.’
다른 건 몰라도 의뢰에는 언제나 철저한 이들이다.
그렇게 신뢰도가 쌓여야 다음 의뢰도 들어오니까.
게다가 도둑 동아리 부장이 직접 나서는 의뢰인데 허술하게 처리할 리가 없었다.
의뢰주인 우리는 괜한 걱정 말고 마음 편히 따라가면 그만이다.
그래도 고현우의 질문에 짧게 대답하자면,
‘어설픈 눈속임은 안 통하거든.’
아무개 뱃지 따위가 심층부에 상주하는 실력자들에게 먹히겠는가.
덧붙여 이런 눈속임은 대부분 ‘내려가는 도중에’ 누군가를 마주치는 상황을 대비하기 위함이다.
내려가면서 아무도 안 마주칠 자신이 있다면?
굳이 눈속임할 필요도 없다.
그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겠다는 듯, 당규영은 지하층에 들어서자마자 실력을 발휘했다.
발밑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더니 작고 까만 나비 몇 마리가 날아올랐다.
[영접비행(影蝶飛行)]나비들이 작은 날개를 열심히 팔랑거리며 원형 계단 아래나 통로 너머로 모습을 감추었다.
당규영은 날려 보낸 그림자 나비의 경로를 따라 일행을 이끌다가, 이따금씩 정지하거나 방향을 틀곤 했다.
그러면서 또 영접을 만들어 곳곳에 퍼뜨린다.
정찰병.
먼저 그림자 나비를 보내 놓고, 누군가가 걸려들면 일행을 이끌고 멀찍이 피해 버린다.
술식을 극도로 집중해서 만들어 낸 정찰병이기에, 일반적인 탐색 계열 마법보다 훨씬 먼 곳의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나비가 매우 은밀하게 움직여서 순찰을 도는 선도부 등에게 발견될 가능성도 매우 낮다.
아마 당규영과 비슷한 수준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잡아내지 못할 것이다.
채다빈 역시 자기 실력을 십분 발휘했다.
그녀의 손은 원형 계단을 밟을 때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태블릿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우리가 지나가는 곳곳에 설치된 수정구나 방범 장치 등이 단 하나도 작동하지 않았다.
두 선배가 길잡이를 맡은 덕분에 오래 걸을 필요도 없어졌다.
당규영이 일행을 승강기 앞에 멈춰 세우자,
신병철이 재빨리 달라붙어 장치 몇 개를 만지고 채다빈이 태블릿을 조작했다.
그러자 학생증을 찍지도 않았는데 승강기가 저절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승강기를 타고 한참 내려가서, 또 당규영의 안내를 따라 다음 승강기까지 이동한다.
그것을 몇 번 반복하니 짧은 시간 동안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다.
신병철을 따라 뚜벅거릴 때는 상상도 못 했을 일이었다.
‘거의 다 왔네.’
마지막 승강기가 우리를 심층부 초입 부근, C급 던전들이 모인 곳에 내려 주었다.
심층부로 직행하는 승강기는 발각될 확률이 매우 크기에, C급에서 걸어 들어가기로 정한 상태였다.
“…….”
던전동 하층과 심층부의 경계에 가까워질수록 모두 조금씩 긴장하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느긋하던 당규영 역시 제법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퍼뜨려 두었던 그림자 나비를 모두 회수한다.
아무리 은밀한 그림자 나비라고는 하나 발각될 여지가 조금은 존재한다.
그리고 그 작은 여지 때문에 심층부 전체에 비상이 걸릴 수도 있으니, 지금부터는 안 꺼내는 게 낫다.
우리는 여태까지보다 확연히 조심스러워진 걸음걸이로 계단을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심층부 초입에 들어섰다.
서포터가 다 해먹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