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155
155화. 친구의 해후는 주먹을 부른다
쭉 뻗은 길목에서 누런 흙먼지가 힘없이 흩어졌다. 불과 며칠 사이에 절기는 완전히 여름날로 접어들어서, 내리는 햇볕은 가깝고, 부는 바람은 후덥지근했다. 사방이 지쳐서, 참으로 고약한 날씨였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이 없어, 갑갑함은 더했다. 그 와중에도 황토 먼지가 흩날리니, 먼 걸음을 할 만한 때는 아니었다. 그곳에 낡은 천으로 지붕을 올린 조악한 마차 한 대가 덜컹거리며 나아갔다. 마차는 낡았지만, 끄는 말은 단배장복(短背長腹)의 잘생긴 준마였다. 갈색 털에, 가슴은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도 도리가 없는 하늘이었다. 말은 한껏 지쳐서 느릿느릿 걸었다. 오가는 모래바람이 거칠고, 뜨겁게 때리는 햇볕에 기진한 까닭에, 말은 귀를 뒤로 접고 고개를 푹 숙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마차를 끄는 것이 용할 뿐이었다.
마부도 달리 말을 채근하지 않았다. 마부는 한쪽 챙이 바스러진 마른 죽립을 기울여서 쏟아지는 햇빛을 가리고, 비스듬히 기대앉아 있었다. 덜컹거릴 때마다 죽립이 흔들거렸다. 마냥 나른할 새, 문득 마차의 가림막을 걷고 하얀 얼굴의 귀공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소명, 너무 느린 것 아니냐? 이래서야 어느 세월에.”
이청의 얼굴에 초조함이 가득했다. 그러자 마부석에 앉은 소명은 죽립을 슬쩍 들추었다. 그의 안색은 고요하여서 되레 재촉한 이청이 당황할 정도였다. 소명은 지친 말을 가리키며 말했다.
“더 서둘렀다가는 저 녀석이 돌아가시게 생겼다. 지금껏 서둘렀으니, 이제 멀지 않아. 걱정하지 마라.”
“그렇지만.”
이청은 말의 힘겨움을 보고는 한숨을 삼켰다. 스치는 그늘을 소명은 놓치지 않았다.
“왜, 너무 늦장 부리는 것 같아?”
“아무래도.”
이청은 말끝을 흐렸다. 강시당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탁연수의 용태가 좋지 않음을 알았으니. 한시라도 바삐 달려가서 살피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것은 소명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터였다. 소명은 새삼 마른 웃음을 머금었다. 가슴 뛰기는 그도 이청에 못지않았다. 그러나 서두른다고 될 일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시간이었고 여유였다. 소명에게나, 강시당에게나. 소명은 고삐를 흔들어서 지친 말을 살짝 달래었다. 그러자 말은 바닥을 긁으며, 느릿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힘없이 깜빡거리는 눈 동작이 안쓰러울 지경이었다.
말은 길고 거친 숨을 토하며, 푹 고개를 떨구었다. 이제는 버티고 서 있는 것도 힘에 부친 모양인지, 네 무릎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힘 좋은 말을 이렇게까지 부렸으니. 꽥하고 쓰러져버리면 그도 난처하고, 말을 내준 흑선당 보기에도 미안한 일이다.
“이런, 이런.”
소명은 끌끌 혀를 차며 부랴부랴 물주머니를 챙겼다. 손에 물을 따라서 주둥이에 내밀자, 말은 게걸스럽게 물을 핥았다. 소명은 그렇게 거듭 물을 먹이고, 손을 털며 고개를 들었다. 싯누런 하늘 너머에서 타오르는 하얀 햇빛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소명은 눈 위에 올렸던 손을 내리고 고개 내밀고 있는 이청에게 말했다.
“태원부를 거치는 통에 걸음이 지체되었지만, 저녁 나절에는 입구에 닿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안달할 것 없어.”
“그, 그래.”
이청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주저앉았다. 덜컹거리는 마차에 앉기가 무섭게 저도 모르게 한숨이 흘렀다. 자리에는 상 부인이 눈을 감은 채, 고요한 신색으로 마주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무런 말도, 아무런 눈짓도 하지 않았건만, 이청은 공연히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자가 그만 못난 꼴을.”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못난 꼴이라니. 친구의 걱정으로 애가 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상 부인은 슬쩍 눈을 뜨더니, 곧 차분하게 웃는 낯으로 말했다. 다른 친구도 아니고, 탁연수였다. 칠황자뿐만 아니라, 황궁 내 진창 같은 암투 속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처지일 적에 천운으로 연이 닿아, 서로 크게 의지한 바였다. 때때로 위험을 피해 강시당에 몸을 숨기거나, 혹은 십삼황자라는 먼지 같은 권력으로 강시당에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 그런 탁연수가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하니.
이청은 시름 짙은 한숨을 다시금 입 밖에 내뱉고 말았다.
칠황자, 봉 공공과의 악연을 끊어내고, 죽다 살았건만, 이청은 전혀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그것은 마차를 느릿하게 몰아가고 있는 소명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 좀 내다오. 이제 길이 멀지 않다.”
소명은 빛 잃은 말갈기를 다독였다. 건네는 한마디에는 진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막상 강시당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이 낭보가 아닌 흉보이면 어떠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손이 떨리고, 무릎이 흔들렸다. 소명은 퍼뜩 정신을 수습하고, 다시금 길을 나섰다. 앞서서 고삐를 잡아끌자, 말은 투레질하면서도 터벅터벅 마차를 다시 끌었다.
소명이 장담한 대로, 마차는 노을빛이 채 내리기 전에 강시당의 입구 중 한 곳에 닿았다. 북악신묘, 이미 한번 지난 길이었다. 소명은 거대한 규모의 북악신묘에서 제일 깊은 곳으로 마차를 끌었다. 그곳은 스산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아직 남은 햇빛에도 그늘이 더욱 짙었다. 어디에도 인적 찾을 길은 없었다. 반쯤 허물어진 묘당 사이로 지나자, 드높은 석비가 눈에 들어왔다.
마차가 덜컹거리며 힘겹게 들어서는데, 그 모습을 따로 지켜보는 눈들이 있었다. 북악신묘, 아니 강시당의 북악묘입을 지키는 십오목장시였다. 그 우두머리인 시진량은 눈매를 매섭게 일그러뜨린 채, 다가오는 마차를 노려보았다.
‘다시 외인이라니.’
불과 얼마 전에 당한 크나큰 굴욕이 다시 떠올라서 절로 기세가 일었다. 그러나 시진량은 서둘러 마음을 다잡았다. 노할 때가 아니었다. 그의 본분은 이곳을 지키는 일이다. 시진량은 더 두고 보지 않고, 앞으로 나섰다.
쿵! 묵직한 소리와 함께 목관이 떨어져 마차 앞을 막아섰다. 이내 다른 관들도 불쑥 솟구쳐 올라, 마차를 둥글게 에워쌌다. 관 속에서 덜그럭, 덜그럭 울리는 소리가 기이했다. 누구라도 놀라 도망할 기괴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마차는 당황하는 바 없었다. 말 혼자 고개를 내저으며 뒷걸음질 쳤지만, 고삐 잡은 이가 자리를 지키며 오히려 태연하게 말 목을 다독여 진정시켰다.
“어허, 괜찮다. 괜찮아.”
시진량은 관 뒤에서 고요히 모습을 드러냈다. 납빛으로 물든 굳은 얼굴에 퀭한 두 눈에서는 인광(燐光)이 흘렀다.
“이곳은 금지. 외인은 물러가라.”
딱딱한 목소리가 사뭇 위압적이었다. 그런데 말을 진정시키던 이는 기겁하기보다는 히죽 웃었다. 그는 눌러쓴 죽립을 걷어 올렸다. 순간, ‘끄익!’ 괴이한 소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다른 이가 아니었다. 시진량의 입에서 튀어나오고 말았다. 저 얼굴을 어찌 잊을까. 다른 목장시들도 마찬가지 심정이라, 시진량을 탓할 수는 없었다.
“또 보게 되는군요.”
“으, 으으으.”
시체 빛으로 물든 시진량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가, 시뻘겋게 달아오르는 등, 계속해서 색을 달리했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일전의 치욕이 고스란히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쳤다. 목시공에도 불구하고 한주먹에 나가떨어진 일이라던가, 단 한 차례도 뚫린 적이 없는 북악묘입의 침입을 허하고 말았다던가. 온갖 괴로움이 일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혼란한 강시당을 죄 뒤집어 버리고는, 정통(正統)을 바로 세운 은인이기도 하였으니. 시진량은 이래저래 도리가 없어 땅이 내려앉을 듯이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습니까?”
소명은 다만 웃으며 대꾸했다. 그리고 에워싼 다른 목관을 바라보았다. 그 뒤에서 목장시들은 분분히 고개를 돌리고, 눈을 내리깔아 소명의 눈길을 피했다. 그들로서도 소명과의 기억은 정말 지우고 싶을 뿐이었다. 시진량은 애써 침착하며 물었다.
“본당으로 들어가시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저 마차는?”
“또 다른 일행이지요.”
시진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명이 따로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마차의 가림막을 걷고서 이청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시진량을 보고 알은체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시진량의 시체 낯빛에도 반가운 기색이 일었다.
“오랜만입니다. 목수좌(木首座).”
“무부 시진량이 십삼황자를 뵙습니다.”
“그만두시오. 괜찮소.”
이청은 시진량이 뻣뻣한 모습으로 허리를 접으려 하자 서둘러 만류했다. 두 사람은 안면이 있던 터였다. 시진량이 있어서 이청은 강시당을 남몰래 오가거나, 탁연수와 연통을 나눌 수가 있었다. 그런 사정은 상 부인도 잘 알고 있었다. 이청이 만류했지만, 시진량과 십오목장시는 뻣뻣한 모습일지언정,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 그런데 이네들 모습이 전과 달랐다.
눈 아래가 우묵하고, 한결 초췌한 얼굴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먼지가 가득했다. 실상 그들은 소명의 주먹에 무너져버린 금도(禁道)를 다시 파헤친다고 정신이 없었다. 이는 달리 사람을 부릴 수도 없는 일이고, 본당에서도 정신이 없는 판국이었다. 결국, 당당한 강시당 고수라는 체면은 밀어 두고, 그들끼리 힘들여 흙을 파내고 벽을 세운다고 분주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강시당의 공력은 허명이 아닌지라, 수백, 수천 근을 헤아리는 흙무더기를 치우고, 돌덩이를 가볍게 다뤘다. 그러나 재주가 조악한 것은 어쩔 도리가 없어서 흙먼지는 옴팡 뒤집어쓰고서, 휑하니 무너진 길목만 겨우 치워낸 참이었다. 복잡한 기관은 어찌 손을 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어쨌든 당장 무너질 리는 없지요.”
두리번거리는 당황한 눈길에 직접 길 안내를 나선 시진량이 씁쓸한 웃음을 그리고 중얼거렸다. 소명은 못 들은 척, 딴청이었다. 그는 다만 말고삐를 잡고 걸었다. 옆에서는 내려선 이청이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강시당에 가까워지자 두 사람의 심중은 한없이 복잡해서 말이 없었다. 시진량 또한 무거운 침묵 속에서 덩달아 입을 다물었다. 드르륵, 드르륵, 바퀴 구르는 소리가 머리 위로 윙윙 울렸다. 그리고 드디어 강시당에 닿았다.
높은 철문이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단단히 잠겨 있는 예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특별한 열쇠로 열어야 하는데, 지금은 문고리며, 잠금쇠며 무참히 비틀려 있었다. 안내한 시진량은 그 모습에 흠칫 어깨를 들썩거렸다. 납빛으로 물들어 딱딱한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청이 넌지시 물었다.
“설마 저것도 네가?”
“뭐, 그렇지.”
소명은 가볍게 대꾸했다. 크게 신경 쓰는 기색은 아니었다. 앞선 시진량 혼자 울컥할 뿐이었다.
‘이, 이게 어떤 기관인데. 이리 무참하게.’
들어간 흑오철이나, 특수한 기관까지 어느 것 하나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없었다. 강시당 선인들의 공이 소명의 손아귀 한 번에 폐물이 되어 버렸으니. 시진량은 거듭 한숨을 삼키고 문을 열었다.
“그럼, 소인은 이만.”
“감사하오.”
“아, 아니. 별말씀을.”
그는 굳은 허리를 꾸벅 접은 뒤, 서둘러서 자리로 돌아갔다. 두 발을 모아 뛰는 강시당 특유의 보신경인 개문보(開門步)까지 펼치는 모습은 한눈에도 도망하는 것처럼 보였다. 얼마나 속이 불편하였던 것인지. 이청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소명을 곁눈질로 살폈다. 그러나 소명은 별달리 표정이 없었다. 여하간에 강시당에 닿았다.
문을 넘자 마을의 평화로운 한 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에 노을빛은 저기 멀리서 잦아들고 있었다. 가가호호마다 불을 밝히고, 연기를 올렸다. 그 고요한 광경을 둘러볼 새, 상 부인이 문득 낮은 웃음을 흘렸다. 안으로 먼저 전한 기별에 백의 여인과 함께, 흑선당의 매향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백의 여인은 상 부인의 모습을 보기가 무섭게 달려 나갔다.
“스승님!”
“어이쿠, 이 녀석. 이 녀석.”
상 부인은 갑작스레 뛰어들어 안기는 그녀를 맞이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여인, 채유영은 상 부인이 말년에 거둔 애제자로, 그녀는 또한 이청에게 사매가 되는 바였다. 몰락한 명문가인 채가의 고명딸로 궁인으로 입궁하였던 것을 이청과 상 부인이 어여삐 여겨 따로 입실제자로 삼았으니. 그녀에게 두 사람은 세상 전부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제껏 냉정, 침착하고자 하였으나, 스승과 사형의 무사한 모습에 쌓아 둔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주변 눈을 생각할 겨를은 추호도 없었다. 채유영은 상 부인의 옷깃을 부여잡고 펑펑 눈물을 쏟았다. 매향은 상 부인이 채유영을 다독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만 머금었다.
입은 은혜를 생각하면, 매향도 채유영과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매향은 아직 상 부인이 요지선자라 불릴 적에 돌봄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상 부인이 궁으로 들어갈 적에 친분이 있던 흑선당주에게 맡겨지면서 흑선당의 매향이 되었던 것이다. 불현듯 매향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소당주.’
퍼뜩 병색 짙은 당주와 소당주 백운당의 얼굴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그녀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는 중에, 소명과 이청은 뒤에 물러나 두 사제의 유별난 해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신이 없구만.”
“정신이 없지.”
둘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고개를 돌려서 혼자 서 있는 매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두 사내의 어두운 눈길에 그녀는 주춤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곧 이청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대례를 취했다.
“천녀, 십삼황자를 뵙습니다.”
“어허, 그만하시게.”
이청은 질색하여서 급히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매향은 어색한 얼굴로 바로 몸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황자라는 신분을 어찌 간단히 모른 체할 수 있을까. 주저하는 그녀 모습에 소명이 말했다.
“그만 일어나시오. 그보다 그 녀석은 아직도 그대로인가?”
“아, 소당주께서는.”
매향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어째서인지 그녀는 바로 답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소명과 이청의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처 앞으로 뛰쳐나갔다.
“헛!”
매향은 자신의 좌우로 갈라져 뛰쳐나가는 서슬에 흠칫 어깨를 들썩였다. 미처 말 꺼내기도 전에 두 남정네가 달려갈 줄은 미처 몰랐다. 부랴부랴 고개를 돌렸지만, 두 사람은 이미 그녀의 시야에서 저만큼이나 멀어져 있었다. 소명은 물론이고, 이청 또한 보신경의 경지가 상당했다. 그녀는 만류한다고 뻗은 손을 어쩔 수가 없어서 천천히 거두며 중얼거렸다.
“아니, 그것이 아닌데.”
오해해도 단단히 오해한 모양이다. 매향은 한숨을 삼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이때, 상 부인이 어두운 얼굴로 다가왔다.
“무엇이냐? 탁 소당주에게 흉한 일이라도.”
“아니, 아닙니다.”
매향은 서둘러 부인하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자 상 부인은 잠시 아연하여서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두 사내가 달려 나간 길목을 돌아보며 하하 웃었다.
“어이쿠, 애써 태연한 척하더니만.”
그러고는 한결 느긋한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 매향과 채유영은 안절부절못하는 심경이었지만, 도리 없이 상 부인의 뒤를 천천히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