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218
218화. 마도 소탕
이쪽, 저쪽을 향해서 거듭 공수하는 모양새가 참 대범도 하여라.
마인들은 바로 발작하지 못하고서, 눈만 둥그렇게 떴다.
좌현사는 흔들림 없는 눈초리로 그를 보면서 차분한 어조로 물었다.
“아랑? 탐랑이 아니고, 아랑인가?”
“에헤이, 같이 굶는 처지에 탐심부릴 게 뭐가 있다고 탐랑이라고 하겠소. 헤헤헤……헤에…….”
소후찬은 킬킬거리다가, 이내 숨이 다하였는지. 웃음을 흐렸다. 그는 멋쩍음에 목 아래를 벅벅 긁적거렸다. 손끝으로 검은 때가 올올이 밀려 나왔다.
“쩝. 그래서, 이제 어쩌시려오?”
“사걸의 아랑이 여기에 있다는 것은, 우리네 백발노옹이 어찌 되었는지를 굳이 물을 것도 없겠군.”
“뭐, 그렇겠지요.”
“살아나가기를 기대하지는 않겠지?”
“그것도……뭐…… 그렇지요.”
소후찬은 멋쩍은 듯, 히죽 웃었다. 좌현사의 그림자가 서서히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가까이 마인들도 느릿하게 거리를 두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색색으로 눈가를 물들였다.
지닌 마공으로 인하여서 누구는 검은 빛을 발하고, 붉은 빛을 발하고 등등이었지만, 소후찬을 향한 살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런데…… 잠깐!”
소후찬은 두 손을 번쩍 내밀었다.
기세가 참 단호했다. 나른한 모습이 아니었다. 좌우에서 발하는 여러 마인의 살기가 막 휘몰아칠 참이었다.
소후찬은 주춤하는 그들을 향해서 싱긋 웃고서, 좌현사를 똑바로 보며 물었다.
“뭐, 어차피 뒈지는 거야 각오를 한 바이니, 아무래도 좋지만 말이오. 하나만 물읍시다. 아까 말한 그 존체라는 게 대체 뭐요?”
그는 사뭇 진지한 눈으로 좌현사를 뚫어질 듯이 바라보았다. 웃는 기색이 사그라졌다. 그 눈길에 다른 감정은 없었다. 번뜩이는 안광에 가득한 것은 진실을 알아야겠다는 것 한 가지뿐이다.
좌현사는 입매에 힘을 주고서, 턱 아래를 슬슬 쓰다듬었다.
“존체는 말 그대로 존체이지. 성마께서 편히 계실 수 있는 몸을 찾는 일이다.”
“……엑?”
소후찬은 진지한 얼굴로 있다가, 그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이냐고 되묻는 듯했다.
좌현사는 쓴웃음을 그리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반응이라니 딱히 불쾌할 일은 아니다. 범인으로서는 감히 짐작하거나, 헤아릴 수가 없는 일이니.
“이만하면 되었다. 젊은 협개.”
“헤, 헤헤헤.”
더는 말해 줄 것도, 들을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니.
소후찬은 힘없는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고 번쩍 두 손을 치켜들었다. 마치, 마음대로 하시라는 뜻이다.
좌우에서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
강철 같은 손가락이 억세게 파고들었다. 그대로 살수를 쓰려는 것인가, 둘의 눈에 한광(寒光)이 일었다.
“니미럴, 똥이다!”
소후찬은 세차게 어깨를 뒤틀었다.
손가락 끝에 기세가 맺히는 그 짧은 순간을 노렸다. 그는 허물 벗듯이 걸친 넝마만 남기고서 냅다 뒤로 빠졌다.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미끄러운 몸놀림이다.
그러나 여기 있는 마인 중 호락호락한 자는 단 한 사람도 없다.
“어딜!”
마지막 발악을 예견한 것처럼 뒤에는 다른 마인이 있었다.
앙증맞은 아이의 모습을 한 자였지만, 조소가 맺힌 얼굴에 어린 시퍼런 살기는 여느 고수보다 격렬했다.
하지만 그 또한 이어지는 일은 짐작하지 못했다.
“요거나 먹어라!”
소후찬은 허공에서 몸을 뒤틀며 사지를 활짝 펼쳤다.
펑!
노란 연기가 갑자기 터지면서 방 안을 삽시간에 채웠다.
“흐읍!”
“우엑!”
눈앞을 가린 것은 둘째치고, 감당 못 할 악취가 몰려왔다. 누런 연기에 대체 무슨 수작을 벌였던가.
기침이 터지고, 오만 욕지기가 밀려왔다. 고수가 아니라, 고수 할애비라 해도 도리가 없는 일이다.
와장창!
문창을 뚫고서 몸을 날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를 붙잡아야 하건만, 뒤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콜록거리는 소리, 밀려오는 욕지기에 헛구역질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와중에 좌현사는 물끄러미 서 있었다.
그는 누런 연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태연했다. 입가에 쓴웃음이 맺혔다.
“쓸데없는 짓을…….”
좌현사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달리 공력을 일으킨 것 같지도 않았지만, 좌현사가 소매를 흔드는 간단한 손짓에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노란 연기가 마치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더니, 구멍 난 곳으로 빠르게 밀려갔다.
단순한 경풍(勁風)이 아니었다.
누런 연기를 가득 담은 바람은 흡사 거대한 손바닥 형상을 취한 채, 끝도 없이 밀려갔다. 바로 뭔가 터지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꽈르릉!
얇은 벽이 무너질 것처럼 크게 뒤흔들렸다. 천장에서 마른 먼지가 부스스 떨어졌다.
좌현사는 먼지를 가벼이 밀어내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허, 끝내 비명도 없다. 개방의 단심이야말로 불멸(不滅), 불괴(不壞)라 하더니.”
조롱이 아니다. 짧은 망정, 그것은 분명한 탄성이었다.
“크, 크흠. 좌현사, 못난 꼴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크흠, 크흠!”
정신 차린 다른 이들이 치미는 기침을 겨우 삼키면서 고개를 숙였다. 사뭇 민망한 일이었다.
고작 개방의 어린 제자에게 이리 농락을 당하였다니.
좌현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개의치 마시오. 천하제일방이라고 하는 개방의 협개. 어찌 지닌 재간이 없었겠소. 그보다 주변 수습을 부탁하겠소.”
“그리하지요.”
마인들은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 속이 불편했지만, 마냥 그것을 달래고 있을 만큼 여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개방의 거지가 마인 중 하나로 가장하고 들어섰다.
이곳은 이미 발각된 것으로 봐야 했다. 빠르게 정리하고서 사라질 뿐이었다.
마인들은 이곳에 이르는 모든 흔적을 말끔히 지웠다. 동시에 채 마당을 빠져나가지 못한 젊은 거지, 소후찬의 시신도 수습했다.
부서진 문창 하나를 제외하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위가 고요했다.
좌현사는 뒷짐을 진 채,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모습을 감추었다.
인적이 모두 사라지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무렵이다.
어느 순간, 여럿의 그림자가 마치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등장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렁뱅이 모습으로, 긴 가죽 포대를 등에 짊어지고, 손때 그득한 죽장을 짚고 있었다.
개방의 거지들이다.
초옥에 들어선 자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그곳 일대가 죄 거지들이었다. 그들은 시커먼 얼굴을 마구 들이대면서 주변 흔적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태반이 빈손이었다.
뭣 하나 유의미한 흔적은 없었다.
“감쪽같구먼, 아주 감쪽같아. 조금도 흔적이 없다니.”
이들의 우두머리인 노걸개가 혀를 찼다.
주름 깊은 얼굴에는 검댕이 그득하여 시커멓다. 걸친 옷은 몇 번을 기웠는지, 본래 모습을 알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것도 잠시, 노인은 슬픈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가 보는 자리에는 젊은 걸개의 시신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퀭하게 뜬 눈은 초점도, 생기도 없었다.
아랑 소후찬이다. 그는 입가에 맺힌 핏물 자국이 없으면 평소처럼 멍한 모습이었다. 그를 보면서 자리의 개방 걸개들은 침중한 안색을 감추지 못했다.
“아랑, 고생했다.”
“고생했네.”
개방 형제들은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시신이나마 온전하게 남겨 주었으니. 그들은 후우, 젖은 숨을 내뱉고는 축 늘어져 있는 소후찬에게 다가갔다.
“그만! 손을 거두어라.”
엄중한 목소리가 다급히 그들의 발을 붙잡았다.
노걸개였다. 그는 굳은 눈으로 눈 뜬 소후찬을 한참이고 들여다보았다.
“장로님……”
“마도의 종자들은 참 지독한 놈들이다. 그 마구니들이 별 이유도 없이 이렇게 시신을 온전히 보전해 놓았을 리가 없다.”
“그 말씀은?”
“시신에 따로 수작을 부려놓았을 것이다. 아랑 녀석에게는 미안한 일이나. 그만 물러나도록 하여라.”
“…….”
거지들은 장로의 제지에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은 늘어져 있는 소후찬의 시신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장로님!”
그때, 밖에서 급한 소리가 들렸다. 모두의 고개가 그쪽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냐.”
급히 다가갔다. 바깥을 따로 살피는 거지들이었다. 그들은 한쪽 담 구석에서 우두커니 모여 있었다. 그 자리에는 수풀이 엉망으로 짓이겨져 있었고, 피를 토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소후찬이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당해 버린 그 자리였다.
흩어진 핏물이 아니라, 흐트러진 수풀의 모양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곳에는 개방 거지들만이 알아볼 수 있는 뭔가가 있었다.
이를테면, 밀마(密嗎)인 셈이다.
장로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 긴박한 와중에도 용케 밀마를 남겼구나. 참 용케도…….”
거지들은 모두 고개를 돌렸다. 활짝 열어놓은 방문 너머로 축 늘어져 있는 소후찬의 시신이 보였다. 식어버린 그의 얼굴에는 언뜻 미소를 그린 듯했다.
작은 초가에서 불길이 크게 일었다. 검은 연기가 뭉클거리면서 솟구치는 모습이 멀리서도 보일 정도였다.
먼 곳에서 이를 보는 눈초리가 있었다.
그는 외눈을 가늘게 뜨고서 일어나는 검은 연기를 물끄러미 보았다.
“과연, 개방이라고 해야 하는가. 잔재주는 통하지 않은 모양이군. 하하하.”
좌현사는 잠시 쓴웃음을 흘렸다.
웃음은 찰나에 흩어진다. 좌현사의 눈가에는 차디찬 냉기가 어려서, 닿은 모든 것을 얼려버릴 듯이 새하얗게 빛났다.
이러니저러니 하여도, 개방은 소림, 신검일맥과 함께 마도의 제일적이다.
거지들의 지독함을 어찌 모를까.
마도가 집요한 만큼이나, 저 거지들도 마도에 대해서는 편집증적일 정도로 집요하다. 어떤 희생도 마다치 않는 자들이 바로 개방의 거지들이니.
단심협개(丹心俠丐), 개방의 노소 거지들이 자부하는 그 이름.
좌현사는 마치 안개처럼 유형화된 살기를 어깨 위로 드리운 채, 걸음을 옮겼다.
천산 마도의 모든 것을 건 대계, 성화환천지원(聖火還天至願)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기껏 몇 곳에서의 수가 틀어졌다고 해서, 어찌 끝이 나는 것이 아니었다.
하늘은 아직도 파랗다.
성마를 뜻함인가. 적천의 때는 아직 멀었건만, 동천의 어딘가에서 적자(赤紫)의 불길한 기운이 서서히 맺혀갔다.
그것이 단지 천색의 변화인지, 천기의 변화인지는 그 누구도 짐작할 수 없는 일이었다.
* * *
천하의 대방인 개방, 그곳의 총타는 만천하가 알고 있듯이 개봉부의 관제대묘에 자리하고 있었다. 먼지를 하얗게 뒤집어쓰고도 세월 수백 년의 관제상은 눈을 잔뜩 부라리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단 앞에는 개방의 용두방주, 당대의 뇌공이 있었다.
뇌공은 탁한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오랜 세월을 드러내듯이 눈가의 주름은 깊었고, 눈가에는 진물이 맺혔다.
노인의 웅크린 어깨 위에 내린 그늘은 한없이 무거워라, 마치 세상천지의 어둠과 시름을 다 드리운 듯했다. 그러나 탁한 눈의 깊은 곳에서는 희뿌연 광망이 맺혀서, 불빛 어두운 대전에서도 안광이 또렷했다.
뇌공은 개방 총타에서 바쁜 보고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의 좌우로는 개방의 주요한 인사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었다.
딱히 앉을 자리 같은 것은 없었다.
다들 거지답게 각자의 거적 하나를 깔든지, 그냥 흙바닥에 드러눕든지 하는 편한 모습으로 있었다. 자리한 모양새는 그러한데, 그들 얼굴은 그리 편한 기색이 아니었다.
시커멓게 지저분한 얼굴이라도, 안색이라는 것은 있기 마련. 다들 검게 물들어서, 뭐라 할 말을 잃은 듯했다.
바쁜 보고는 한참 전에 끝이 났다.
그것을 떠든 이도 시무룩하여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평소라면 보고 끝에 무슨 허튼소리라도 덧붙였다가, 어른들에게 혼이라도 날 터이지만, 오늘 이때에는 아무 말도 더할 수가 없었다.
“흐어…….”
누구의 입에서랄 것도 없었다.
한숨이, 젖은 한숨이 불쑥 튀어나왔다가 흩어졌다.
뇌공 또한 침묵을 지키다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희뿌옇게 흐린 눈동자가 높은 천장,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거미줄과 먼지가 뒤엉켜서, 비단 자락처럼 나풀거렸다. 깨진 천장의 틈바구니로 햇빛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