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ti Demon God RAW novel - Chapter 323
323화. 항마신장(降魔神將)
“아들아, 소명, 왜 나를 두고 갔느냐. 소명아. 우리 아들, 왜 나를…….”
“소명, 이놈아! 뭘 하고 있는 거야! 무형결은, 권결을!”
“아들, 아들.”
부친 대웅이 그를 찾으면서 원망한다.
스승 장우상은 자신의 무공을 어찌 알리지 않느냐고 다그친다.
그리고 모친께서는 그저 자신을 찾아 부르기만 한다. 당장에라도 눈을 뜨고 찾는 모친을 마주하고도 싶으려나, 소명은 그저 흘려버렸다.
일만의 목소리가 있어서, 두서없이 떠들기 시작했다. 그 내용은 하나같았다. 자신을 원망하고, 다그치며, 자신을 하염없이 찾는다.
그러나 소명은 흘러가게 두었다.
원망하는 자는 원망하게 두어라.
다그치는 자는 다그치게 두어라.
찾는 자는…… 그저 찾도록 두어라.
소명은 움직이지 않았다. 반응하지 않았다. 마음의 빈틈은 자신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지독한 놈! 내가 너를 그리 키웠더냐!”
급기야 욕설이 터지기도 한다. 누구의 목소리인가, 보이지도 않으며, 분간하지도 못한다.
마라를 마주한 세존의 심마가 이러하였을까.
모를 일이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무수한 원망과 슬픔을 그대로 맞받으면서, 소명은 다만 자신을 지켰다.
그에게 지금 가능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신불(神佛)을 찾을 것도 없이, 오직 자신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시간을 모르겠다. 시간을 감히 헤아릴 수도 없었다.
지금 소명은 스스로 갇힌 셈이었다. 보정만이 남아 오래도록 잠들었던 성마가 이러했을까.
소명은 아득해지는 가운데, 불현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귀를 때리는 울부짖음과 달리, 흐린 읊조림이 돌연 자신을 일깨웠다. 미간을 때리는 듯한 읊조림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
이내, 소명은 한참 아득함 속에 휘감기는 자신을 깨달을 수 있었다.
잃을 뻔한 자신을 다시 찾았다.
“…….”
―이제 보이느냐.
소명은 합장한 손을 천천히 벌렸다. 이어서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말했다.
“예, 제자. 이제 보입니다.”
―그럼, 깨우쳤다.
눈을 감았으되, 그는 보고 있다. 저것이 존재의 불꽃이구나. 번뇌함은 곧 생사의 순간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저것은 쫓아내고자 하여 쫓아낼 것이 아니고, 받아내고자 하여 받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명은 움직였다. 몸이 아니라, 영육이 움직인다.
영육으로 소명은 서서히 권로를 밟았다. 상대가 없고, 내가 없다. 지금 밟아가는 것은 본래의 권법. 천하만인, 무인이건 아니건, 모두가 저것을 알고 있다.
금강권.
소림사의 입문 무공. 또한, 소명에게는 시작이기도 하다.
바르게 서니, 고신정립.
밟아서 곧게 뻗으니, 정법권운.
나아가 뽑아내니, 요이일추.
법의 수레바퀴는 구애받을 것이 없어라, 법륜무애.
금강의 추는 무거워라. 금강포추.
그 모든 것은 금강의 마음이다. 금강여일.
소명은 금강권 십팔식을 거푸 펼쳤다. 그 속에서는 소림오권이 있고, 나한십팔수가 있다. 끝도 없이, 끝도 없이.
이 모두는 외부에서 비롯하였으나, 결국 자신 안에 있는 번뇌이다.
번뇌가 제근(諸根)을 자극하고, 제근이 흔들리니 깨달음의 빛도 저 멀리 멀어진다.
수견제근동(雖見諸根動), 요이일기추(要以一機抽)
비록 모든 근원이 보일지라도, 요컨대 단번에 뽑아버릴지어다
“흐아아압!”
소명은 번쩍 두 눈을 치떴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서 닿았다. 그는 합장한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가, 그대로 휘둘러 떨쳤다.
쩌릉! 쩌르르르릉!
합장 사이에 뇌운벽력(雷雲霹靂)이 맺혀 있었던가.
소명이 두 손을 떨쳐내니, 어마 무시한 벽력성이 사방으로 퍼져 나아갔다.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다. 소명을 에워싼 일체의 어둠을 찢고, 갈랐다.
종심에서 소명은 두 손을 좌우로 떨쳐낸 모습 그대로, 고요했다.
내부에서는 이름 모를 신기가 격렬한 정력을 발휘하고, 육신으로는 수미금강권의 굳건한 공력으로 버티어냈다.
심중에 올곧게 세운 것은 능엄의 지극한 가르침일지니.
소명은 뻗어낸 손을 차차로 거두어서 가슴 앞에 두 손을 마주 모았다.
미약하지만, 소명은 서광을 품고 우두커니 서 있었다. 영육, 곧 자신의 내부에서 갇혀 있다시피 한 소명이었다. 그는 성마 보정을 이겨내고서, 다시금 현세로 돌아왔다.
바깥의 시간은 모르겠다. 다만, 소명은 찰나에 억년의 세월을 흘려보낸 것처럼 아득할 따름이었다.
성마는 고개를 들었다.
이제 형체를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본래에 없는 육신을 무수한 수양과 희생, 그리고 공덕으로 이루어낸 육신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자신을 담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격이 전혀 다르니.
수하의 희생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안타까운 일은 안타까운 대로 둘 수밖에. 아마도 흔적 속에서 자신을 일깨우는 것만으로도 막대한 세월과 공력을 소모했겠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을…….”
성마는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문득 고개를 높이 들었다.
창천의 하늘, 아함이 일으켜서 불태워버린 마기가 씻은 듯 사라진 덕분일까, 새삼 내리는 창천의 새파란 하늘을 한가득 눈에 담았다.
“나의 때가 지났음을 나라고 모르겠느냐. 더는 나를 따르는 자가 없다. 내 힘 앞에서 그저 경배하고, 숭앙할 뿐이지. 그것은 깨어나는 순간부터 알았다.”
성마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이지가 돌아오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지만, 심연 속에서 깨어난 성마는 자신이 전혀 다른 시기에 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신검과의 일전은 한참 예전의 일이라.
그가 뜻하였던 세대는 한참 전에 흘러가 버렸으니. 지금 무슨 삿된 뜻을 품겠는가. 오히려 남은 이들에게 헛된 망상만 안겨줄 따름이라.
손을 들자, 가는 손가락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보정을 억지로 뽑아냈을 때부터 예견된 일이기는 하지만, 막상 맞이하게 되니. 성마는 새삼 복잡한 심경이었다.
“신인의 시대는 이제 진정으로 끝이구나. 내가 귀원(歸元)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제 신기라고 할 수 있는 것 또한 차차로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성마여.”
“산주인가.”
“그렇다.”
고개를 돌리자, 아함이 흩어지는 그의 앞에 섰다. 온전히 대를 이어서, 완성된 화염산 신인의 모습이었다. 검은 머리카락 아래로 불길의 자락이 담담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성마는 아함을 잠시 훑고서 흐린 미소를 지었다.
“그대는 복이 많군. 믿고 따르는 사람이 한참 많아. 그런 이들이 있어야, 신화도 이루어지는 것이지.”
“…….”
“그러나 산주여, 신성은 잊어라. 그것을 고집하다가는 너와 네 후대에 두고두고 저주가 될 뿐이다.”
“음.”
성마는 덕담처럼 한마디를 남겼다. 그것은 비슷한 시기 동안 존재한 신인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아함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그렇구나. 너는 인성을 잃지 않았구나. 그것이 참된 길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는 곧 눈을 감았다.
거칠게 요동치는 검은 바람이 그의 형체를 휩쓸었다.
아함은 자리를 지킨 채, 그 모습이 한참이고 지켜보았다.
바람이 사라진 자리에서, 소명은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은 채, 고개 숙이고 있었다. 지그시 입술을 깨물고, 두 눈을 꼭 감았다.
그런 소명의 얼굴에는 굵은 눈물방울이 맺혀서, 길게 떨어졌다.
“상공.”
“성마는 갔느냐?”
“예, 신인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고 하더군요.”
“그래, 그런가.”
성마는 처음부터 세상으로 나설 마음이 없었다. 그저 오래도록 갇혀 있던 그 세월을 끝내고 싶었던 것일 뿐일지도 몰랐다.
그와 세월을 같이 했던 이들은 모두 세상에 없으니.
좌현사가 남았다고 하지만, 그 또한 어디 성마의 세월에 감히 비할 수가 있겠나. 고작해야, 백 년이고, 이백여 년에 불과하였던 것을.
소명은 몸을 돌렸다.
오늘의 이 소란으로 천년 고찰, 소림사의 절반이 무너졌다.
소실봉 한 귀퉁이는 아예 흔적조차 없이 소멸하다시피 했다. 무수한 인명이 스러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흩어진 파편 속에서 사람들은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일어났다.
하늘을 태울 듯하던 불길이며, 억누르는 마도의 위압감이 이제야 흩어졌으니. 드러난 창천의 하늘은 밝고 밝아라.
소명은 턱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다.
천하의 대적, 세상을 뒤흔드는 거대한 천재. 여러 가지가 있으려나, 수천 년 세월 동안 전해온 일대의 신인이 사라졌다.
스스로 택한 바도 있으려나, 소명은 그 아득함에 한 방울의 눈물을 흘렸다.
“상공.”
“너는 이리 가지 말거라.”
“피이.”
아함은 입술 한번 삐죽였다. 그러고는 냉큼 소명 옆에 달라붙었다.
“이제야 나 소중한 것을 알겠지요?”
“하, 하하. 그래. 그래. 소중하구나. 다 소중하지. 다.”
소명은 쓴웃음을 흘렸다. 고요함 속에서 그는 한껏 탈색한 채, 아함에게 몸을 기대었다.
그야말로 정신력, 진원, 정력, 모조리 쏟아냈다.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소명은 눈꺼풀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그는 더 버티지 못했다. 휘청하는 그 몸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아함은 쓰러질 듯한 그를 꼭 붙들었다. 그리고 차마 돌아보지는 못하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화염산의 주인이고, 신화시대의 신염을 이어받은 신인이라고 하지만, 그는 또한 깊은 연정을 품은 여인이기도 하다.
소명의 숨소리가 차차로 잦아들수록, 아함 역시 몸이 잘게 떨려왔다. 그때, 저기서 위지백, 호충인, 탁연수, 등등이 급히 달려왔다.
“소명! 살아 있냐!”
“소명아! 이 망할 놈아!”
“야, 임마!”
들떠서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른다. 그 소란에 한껏 내려앉은 고요가 무참하다 싶을 정도로 깨져나갔다. 그러자 푹, 무거운 한숨이 튀어나왔다.
소명이다.
그는 오만상을 쓰면서 지친 고개를 다시 세웠다.
“아, 저것들. 시끄러 죽겠네. 뭐, 쉬는 꼴을 못 봐…….”
혀 차는 소리에는 짜증이 아주 솔직했다. 소명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함도 고운 얼굴을 확 구겼다.
고요 속에서 한참 오붓하게 붙어 있건만, 감히 이때를 훼방 놓다니.
“에잇, 정말!”
그런 줄도 모르고, 가장 앞서 달려오는 위지백은 마냥 해맑았다.
“으하하하! 흐엑!”
해맑은 웃음 끝에 기겁한 소리가 터졌다. 아함이 더 참지 못한 탓이다. 화륵! 한 줄기의 붉은 불길이 위지백의 머리를 스치듯 하고서 하늘 높이 날아올라 흩어졌다.
아함은 손을 뻗은 채, 씩씩 숨을 몰아쉬었다.
“아이고야. 산주, 사람 죽일 셈이요?”
“그냥 죽어, 이 인간아!”
재차 불길이 날아오른다. 흐에엑! 히에엑! 이번에는 위지백만이 아니었다. 뒤따라 오던 자들이 기겁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함을 말릴 사람은 소명뿐이겠다만, 소명도 이번에는 그냥 손을 놓고서, 그저 헛웃음만 지었다.